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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이하 나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공예 중 하나로 꼽힌다. 한때는 내로라하는 대갓집 마님의 상징이었지만 자개농이 수입가구에 안방을 내주면서 나전 공예산업 전반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하지만 침체일로를 걷던 나전공예가 ‘관광’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부흥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무거움을 벗어던지면서부터다. 전통과 장인정신을 고집하던 과거로부터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 대중성을 꺼내오면서 한층 가벼워졌다.
이번에 소개할 업체 또한 전통과 대중성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에이치앤크래프트초이(대표 최을선)다. 이 업체는 지난해 열린 ‘창조관광공모전’에서 입선으로 수상했다. 어렵고 낡은 이미지였던 전통공예 나전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간소화해 체험 위주의 상품으로 개발했다. 강규상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팀장은 “스위스는 한 마을 전체가 가위만 만들어 유명해졌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유리공예, 일본은 도자기마을을 상품화해 외국관광객을 끌어모은다”며 “나전칠기라는 우리의 전통공예를 국내외 관광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체험 상품화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지난 21일 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최을선(37·사진) 대표를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공방에서 만났다. 전통공예의 장인을 만난다는 설렘도 잠시, 공방에 도착해 마주친 최 대표는 평범한 가정 주부의 모습이었다. 평상복을 입은 최 대표에게 “작업복은 없느냐”고 요청하자 “우리 공방의 체험프로그램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어 일상복을 입고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해 따로 작업복을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방도 개방돼 있다.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이도록 설계됐다. 전통은 어렵고 비싸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벽면에는 나전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책상에는 작업 중인 각종 생활용품이 정돈돼 있다. 최 대표는 “나전칠기는 섬세하고 긴 제작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우리 공방은 체험자가 나전으로 문양을 디자인하고 제작만 하는 과정으로 축소했다”며 “비싸고 고급스러운 나전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나전을 쉽고 재미있게 체험프로그램화 한 것이 우리 공방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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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가 나전칠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친언니인 최은영(39·사진) 씨 영향이다. 대학에서 금속공예와 목공예를 전공한 언니의 일을 가끔 도와주다 보니 어느 새 자신의 취미가 되고 사업이 돼 있었다. 사업을 생각하게 된 건 다수의 공모전에 입상하면서부터. 하지만 상품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전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어려워하기 때문. 그런데 이 점이 되레 전략이 됐다. 나전을 쉽게 알릴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떨까 싶었던 거다. “평소 옻칠에 관심을 가진 분들 외에는 나전에 대해 잘몰랐다. 나 스스로가 조금씩 배우며 취미가 되었듯 사람들도 쉽게 나전을 배우면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공방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눈여겨봐 왔던 집주변의 가게를 얻어 공방을 차렸다. 공방은 유무형의 전통 나전을 쉽게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공간으로 꾸몄다. 전시와 체험을 겸하게 했다. 작품도 일상용품을 위주로 했다. “공방에서 만드는 나전제품과 전시품을 거울·머리핀·시계 등 생활용품 위주로 구성해 사람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전통 자개장이나 농처럼 화려하고 비싸지는 않지만 우리 전통공예인 나전의 멋과 실용성, 예술성 모두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나전 장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옻칠부터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공방으로 나전칠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공예가가 되려고 하기보다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일반인이 대부분”이라는 최 대표는 “나전칠기가 대중화는 사람들이 쉽게 나전에 접할 수 있도록 공정 과정을 줄이고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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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에 창업했으니 이제 두 돌도 안 된 신생기업이다. 시작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청년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자’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최 대표는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즐길 수 있는 ‘나전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전국관광상품공모전과 전북관광상품공모전에서 수상하며 가능성을 엿보게 됐다.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오게 된 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부터다.
최 대표는 “창조관광공모전은 다른 공모전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의 관광상품을 공모한다는 것이 신선했다”며 “당선 업체들이 시장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화 자금부터 컨설팅·영업망 확충까지 아이 키우듯 기업성장을 세심하게 살펴주는 점 또한 특별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사업비 지원이 ‘선지출 후 정산’으로 돼 있어 사업비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최 대표는 “이런 점을 고려해 사업비를 먼저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개선이 됐으면 한다”고 웃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지난해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나전 체험상품을 출품했고, 충북대와 서울대에서도 나전 공예체험을 시연했다. 올 초에는 일본의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한·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전 체험상품 문화행사도 열었다. 올 9월에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진행할 ‘인천공항 외국인 전통문화체험 재료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이름이 알려지자 매출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성수기에는 월 800~900만원, 비수기에는 월 200만원 정도로 연간 7000~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제 막 시작한 터라 어려움도 적지 않지만 최 대표의 꿈은 결코 움추러들지 않는다. 희망은 “나전이 좀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 지금보다 더 쉽고 흔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 “도자기체험과정으로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이 우리 공방의 체험프로그램으로 전통공예 나전칠기가 더 보편화되고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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