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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가볼 일이 없는 곳, 되도록 가지 않을수록 좋은 곳, 만약 가게 된다면 크든 작든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법정이다. 법정은 사람들 사이의 분쟁이든 범죄에 대한 처벌이든 인간사의 중요한 판단들이 위임된 곳이며, ‘공정함’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위해 싸우는 곳이며,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곳이다.
하지만 정말 공정함이 추구하는 가치이고, 정의가 실현돼 왔다면 수많은 법정 드라마와 영화는 왜 만들어지겠는가 말이다. 어떤 사건은 함무라비 법전에서처럼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두 손을 자른다’는 식의 명쾌한 판결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법정에서의 논쟁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기에, 또 진실의 증거가 불충분할 때도 있기에, 결과에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역시 정의가 살아있구나 싶은 때도 있지만 말이다. 입장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가부간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관들은 어쩌면 신을 대리하는 역할이겠지만,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전부를 믿고 맡기기에 그들은 한 직군의 종사자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유사 이래 모든 판결에는 불만이 따랐다.
최초의 역사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Historia)는 기원전 페르시아의 재판관 뇌물사건을 다루고 있다. 시삼네스라는 판관이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했기 때문에 몸의 가죽을 벗겨내고 목을 자르는 형을 집행했고, 아버지 대신 판관에 임명된 아들에게 아버지의 가죽으로 감싼 의자에서 판결을 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대단히 잔혹하고도 명료하다. 재판관의 뇌물수수나 부정한 판결은 사형에 처할 만큼 중죄이고, 처형된 자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가죽을 깔고 앉으라는 것은 다시는 그 같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15세기 도시 브뤼헤 버전으로 재창조한 작품이 헤라르트 다비트(1460∼1523)의 ‘캄비세스의 판결’(1498)이다. 캄비세스는 이 재판을 이끈 페르시아의 왕이다.
아버지의 가죽을 깔고 앉으라…“죄짓지 말고 똑바로 재판하라” 경고
플랑드르 지역 초기 르네상스의 화가인 다비트가 그린 이 작품은 두 작품이 하나로 연결된 ‘이면화’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한 화면에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는 사건들을 한꺼번에 담았다는 점에서 중세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점의 그림으로 사건의 발단과 결말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이야기의 흐름이 기승전결의 구조로 펼쳐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그림의 왼쪽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재판정을 넘어 그림의 배경으로 눈을 옮겨보면, 아치형 현관 아래 두 사람이 두둑한 주머니를 주고받는 장면이 보인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뇌물이 오고 가는 이 장면의 결과로 판관은 재판장의 자리에 앉은 채로 체포되고 있다.
이 끔찍한 서사의 결말은 오른쪽 화면의 배경에서 드러나는데, 왼쪽 화면에 등장했던 재판정의 모습이 오른쪽 배경에 다시 작게 묘사가 되고 있다. 양쪽 화면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얼룩무늬가 두드러지는 ‘붉은 대리석 기둥’은 왼쪽 아버지 재판관이 앉았던 장소와 그의 아들이 앉은 장소가 같은 법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버지의 벗겨진 살가죽을 깔고 앉아 늘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공정한’ 재판을 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이 잔혹서사는 종결되는 것이다.
잔혹한 묘사로 공정재판 강조하거나 냉소적 풍자로 법정 비판하거나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법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며, 편견도 있고, 잠시 한눈을 팔 수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맡아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이 인지상정에서 한 계단이라도 더 높은 곳에 있기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근대 사실주의 계열 화가들은 법정의 맨얼굴을 폭로하는 그림들을 종종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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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이가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다. 그는 12세에 법원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각종 소란과 위선과 협잡이 난무하는 법정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다. 20대 중반에 출판법을 위반한 혐의로 6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던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변호사와 판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앞서처럼 어떤 스토리와 결부되지 않더라도, 법조인들의 얼굴표정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림들은 석판화로, 유화로, 수많은 스케치로 남겼다.
도미에의 작품 ‘두 명의 변호사’(1860s)는 코끝이 하늘에 닿을 듯 한껏 고개를 치켜올린 채 걷는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에 깁스를 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세상을 내려다보듯 걸을 수 있겠는가 싶을 정도다. 서류뭉치를 들고 이렇게 걷다가는 발 앞도 보지 못해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정의의 법원’이라 불리는 프랑스 법원에 있는 복도에는 기둥 모양의 고전주의적인 부조들이 조각돼 있어 뻣뻣한 변호사의 권위를 한층 높여준다. 도미에는 더 이상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지만, 이 얼굴만으로 이 변호사가 스스로 권위에 빠져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듯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도미에의 영향을 받은 화가 장 루이 포랭(1852∼1931)은 20세기 초반의 법정 분위기를 그림으로 남겼다. ‘재판소’(1902∼1903)란 제목의 작품은 특별히 선배 화가 에드가 드가가 구매했을 정도로 포랭의 도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그림 속에서 우리는 붉은 옷을 입은 키 작은 여성이 의뢰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재판 중 변호사가 손가락으로 지시하면서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이 여성은 상반신 전체를 기울이고 있다. 건너편은 이 여성과 반대 입장에 선 변호사들이 뭔가 논의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가운데에 있는 세 명의 판사들은 서류더미가 가득한 책상에서 각자 산만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판사들 머리 위에는 십자가 책형도가 있는데, 이곳이 종교재판소는 아니지만 그만큼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로 예수의 십자가형 그림을 걸어 둔 것은 법정의 통상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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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정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애가 타는 인물은 붉은 옷의 여성이다. 검은 법복을 입은 양측 변호사나 판사들은 이 재판이 끝나고 난 뒤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생각하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루해 보일 뿐이다. 천편일률적인 갈색으로 화면 전체를 뒤덮고 그 어느 구석도 강조하지 않은 이 사실적인 그림 앞에서, 우리는 이 여인의 입장이 아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20세기 초반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던 시절, 재판정에 홀로 나와 앉은 이 여성의 사연은 무엇일까. 공명정대한 어떤 드라마가 펼쳐지리라곤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는 법정 모습만으로도, 이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모종의 불안감을 안겨 준다. 법정에 앉은 어떤 법조인도 이 재판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또 이랬기 때문에 법정 드라마와 영화는 재판정의 엄청난 박진감을 과장해서 묘사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