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실' '배시시'…고양이 씨가 온몸으로 휘저은 세상살이

토마 뷔유 '무슈샤 고양이' 전
스위스 출신 '그라피티 아티스트'
세계거리·명화·역사적 현장 등에
고양이를 주·조연으로 등장시켜
회화·드로잉·전시장벽화 180여점
  • 등록 2019-04-08 오전 12:12:00

    수정 2019-04-08 오전 12:12:00

토마 뷔유의 ‘바쁜 꿀벌이 독립한 한국왕을 따르다’(2019). 날개 단 고양이가 파리 에펠탑과 서울 남산타워를 바쁘게 오가고 그들을 반기듯 담벼락 고양이는 포옹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빼낸 작품은 왼쪽 돌담과 오른쪽 파도를 전시장 벽으로 연장해 그라피티 아트의 느낌까지 살려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상이 온통 고양이 판이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끼어들지 않은 곳이 없고, 다니지 않은 데가 없다. 복잡한 도시 한복판 어느 건물지붕에 널부러져 있는 건 흔한 광경, 세계적인 명화 틈에 끼어 섹시한 포즈를 취하질 않나, 엄숙한 지폐 속 위인 옆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파리 에펠탑 꼭대기에 가뿐히 매달리는 건 보통, 나무가 울창한 정글 한가운데, 프랑스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역사적 현장에도, 서울 남산타워가 올려다보이는 요즘 이태원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때로는 자유의 상징인 양, 때로는 정의의 사도인 양, 도시로 산으로 바다로 숲으로 사정없이 헤집고 다니는 거다. 말 그대로 ‘종잡을 수 없음’이다 그래, 도대체 고양이 너, 어느 별에서 떨어진 누구인 거냐.

이쯤 되면 이 친구의 출생비밀이 궁금할 터. 본적은 프랑스. 이름은 ‘무슈샤’(M. Chat). 영어로 미스터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무슈’(monsieur)에 캣이란 뜻의 ‘샤’(chat)를 붙여 만들었단다. 원체 단순한 호칭이다 보니 고급스러운 한글로 풀어보아도 그저 ‘고양이 씨’.

하얗게 드러낸 가지런한 치아가 6개, 하트모양을 바로 혹은 뒤집어놓은 오목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실실 혹은 배시시 온몸으로 웃고 있는 노란 털. 고양이 씨가 이번에 제대로 뜬 곳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자신의 이름을 딴 ‘무슈샤 고양이’ 전이다. 마치 회고전을 펼치듯 그간 자신이 휘저어놓은 흔적과 족적을 아낌없이 소개하는 자리인 거다.

그런데 전시의 규모와 내용이 단순치 않다. 무엇보다 고양이 씨를 끌고 프랑스에서 날아온 스위스 출신의 토마 뷔유(Thoma Vuille·42). 온 천지에 흩어져 있는 고양이를 모조리 전시장으로 불러들인 그다. 어딜 가도 자신을 ‘거리예술가’라 소개한다는데. 하지만 이는 지극히 겸손한 타이틀일 뿐, 뷔유는 유럽을 기반으로 세상을 종횡무진하는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무슈샤 고양이’ 전에 걸린 토마 뷔유의 작품들. 메인 작품 외에 캔버스와 캔버스를 긴밀하게 연결한 낙서 같은 그림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두 개의 큰 화면을 둘러싼 액자는 1달러짜리 지폐에 고양이를 들여 치장한 작품들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캔버스를 뛰쳐나온 낙서쇼

그라피티 아트. ‘거리의 예술’이다. 벽이나 바닥 등을 화폭 삼아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댄 그림을 통칭한다. 디테일보다는 속도감,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장난스러운, 강렬한 색과 패턴이 특징이다.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빨리 그리고 후다닥 도망쳐야 하니까.

벽에 낙서하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범법행위인가. 예술의 나라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뷔유가 사소한 낙서죄로 유치장에 들락날락한 건 부지기수. ‘그라피티 범죄 및 상습적 범행’이란 정식죄목 아래 감옥에 갇히기도 했단다. 불과 5년 전에는 말이다. 파리교통공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는데. 혐의는 지하철 역내에 고양이판을 펼쳐 공공시설을 훼손했다는 것.

전시는 그처럼 사연 많은 그라피티 아트를, 대중을 관람객 삼아 도심거리나 담벼락에서 볼 수 있던 그것을 대형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 주를 이룬다. 회화·드로잉 등으로 포장한 180여점을 걸었다. 장면은 다채롭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역시 고양이다. ‘활짝’ 띄운 웃음이 무기인 고양이를 지구촌 거리풍경에, 세계사의 시공간에, 신화의 한 장면에, 앙리 마티스니 앙리 루소니 하는 유명작가의 그림 속에 주·조연으로 세우는 식이다. 한마디로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살이다. 해학과 유머, 비유와 농담은 필수, 그 기본철학을 살린 뒤 특유의 작가적 해석을 얹어 완성한 작품들이다.

토마 뷔유의 ‘춤이 너를 웃게 한다’(2019). 프랑스의 야슈파 화가 앙리 마티스의 ‘춤’(1909)을 모티브로 삼았다. 왼쪽에 박아넣은 ‘서울’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젠 제도권으로 기꺼이 편입해 캔버스에 캐릭터를 가두고 똑똑 떨어지는 작품명을 붙여놨지만 뷔유의 그림은 누가 봐도 거리가 어울리는 작업이다. 분방한 주제가 그렇고, 익살스러운 설정이 그렇고, 굳이 경계를 두지 않은 형식과 방식이 그렇다. 사실 그라피티 아트란 게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정해둔 것이 없는 법이다. 답답증은 작가가 먼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전시장에는 실제 그이의 진짜 그라피티 아트를 직접 볼 수 있는 장면이 여럿이다. 화폭에서 그대로 연장한, 또는 화면과 화면을 긴밀하게 연결한 낙서 같은 그림이 수시로 뛰쳐나와 있으니까. ‘바쁜 꿀벌이 독립한 한국왕을 따르다’(2019)란 독특한 상상력을 빼낸 작품은 왼쪽 돌담과 오른쪽 파도를 벽화로 이어냈고, ‘낮잠’(2018), ‘날기’(2018), ‘가르랑 가르랑’(2018), ‘포옹’(2018)을 한 세트로 모은 작품 위 벽으론 그림에 둥실 떴던 뭉게구름을 늘려 뽑아냈다. 낙서죄로 유치장에 갇혔던 때를 회상한 ‘파리 북쪽역’(2016)이란 작품은 자신을 대신해 철창에 갇힌 고양이를 전시장 벽에 아예 다시 옮겨놓기도 했다.

토마 뷔유의 ‘파리 북쪽역’(2016·오른쪽). 낙서죄로 유치장에 갇혔던 때를 회상한 작품이다. 자신을 대신해 철창에 갇힌 고양이를 전시장 벽에 아예 다시 옮겨놓기도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리서 전시장으로…고양이와 함께 20년

뷔유가 그라피티를 시작한 건 열다섯 살이던 1992년, 본격적으로 고양이 씨를 소재로 삼은 건 20년이 넘었단다. 대학시절 우연히 한 파키스탄 소녀가 그린 고양이 그림을 보고 매료됐다는데. 진정으로 고양이에 ‘꽂힌’ 셈이다. 이후 세상은 그에게 만만한 캔버스 그 자체였다. 남의 집 담은 대단히 양호한 편, 지하철역·자동차·논밭 등 닥치는 대로 그려댔단다. 그러던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제대로 끈 건 2004년. 파리 퐁피두광장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고양이’를 그리면서다. 50m×25m 크기였다. 결국 국가도 이 호방한 낙서꾼의 재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뷔유는 2024년 예정한 파리하계올림픽에 디자이너로 나서 활약할 참이다.

토마 뷔유의 ‘서프라이즈’(2019). 원시적인 화풍을 구사했던 프랑스화가 앙리 루소가 그린 이국적인 자연풍경을 모티브로 삼았다. 루소가 그랬듯 정글의 야생동물과 울창한 수풀이 등장하는 그림을 뷔유도 여러 점 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래, 고양이 씨가 들여다본 세상살이는 어떻던가. 고되고 척박한 일상이야 어딜 가겠나. 하지만 열쇠는 ‘웃음’이라고 했다.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도 어떤 고독한 장소에서도 ‘미친 웃음’을 잃지 말 것. 그것이 절반은 해결해준다는 얘기다. 다툼·편견·다름·소외에 지친 인생에 평화·평등·자유·사랑을 뿌려주는. 그래서 고양이 씨는 오늘도 여기저기 휘젓고 다녀야 한단다. 치아 6개를 드러내고 헤벌쩍 웃으면서. 전시는 5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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