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가 김경민(왼쪽)과 화가 문형태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서 연 2인전 ‘기분좋은 기억’에 걸고 세운 자신들의 작품 곁에 앉았다. 두 작가 좌우로 놓인 작품은 김경민의 조각 ‘만남 그 후’(2015). 뒤로는 문형태의 그림 ‘가족’(2018)과 ‘공중그네’(2016)가 보인다(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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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사람은 조각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린다. 한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몸짓과 맑은 색으로 누군가의 형상을 보듬어 다듬고, 다른 한 사람은 우왕좌왕 어지러운 몸짓과 묵직한 색으로 누군가의 형상을 풀어 해체한다. 그렇게 손으로 빚고 붓으로 그어 되찾은 무수한 ‘사람’ 곁에 둘러싸인 어느 순간. 한 사람은 “나 행복하다”를 외치고, 다른 한 사람은 “나 행복한가”를 묻는다.
이토록 다른 세상이었나. 이토록 닮았는데. 진중한 무게 따위는 내다버렸다. 애초에 없던 것처럼. 대신 채운 건 우리가 늘 목말라하던 그 장면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 누구 ‘사람’과의 끈끈한 관계. 지치는 세상살이에 내린 딱 한 줄기 위로. 그래서 마치 나도 그들의 세계에 섞일 수 있을 듯한 즐거운 착각.
‘한 사람’인 조각가 김경민(46)과 ‘다른 한 사람’인 화가 문형태(42). 세상은 두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미술시장의 블루칩.’ 단순하고 투박한 평가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내놓으면 팔린다’가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니. 화랑가가 이들의 행보를 주시하는 만큼 대중의 눈도 이들의 작품을 좇는다. 이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란다.
| 문형태의 ‘꼬딱지’(2018)와 김경민의 ‘하이’(2015). 두 작가는 특별할 것 일상에 어떻게 힘을 실을지 잘 안다. 어색한 무게감은 빼버리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그들의 인물들은 ‘지치는 세상살이에 내린 딱 한 줄기 위로’로 승부를 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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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니겠나. 배시시 웃음이 삐져나오는 작품 앞에 설 기회가 흔한 일인가. 만만한 우리 얘기니, 기억 한 꺼풀 뒤집으면 저절로 빨려든다. 산책하고 차 마시고 춤추고, 껌딱지처럼 딱 붙어 가족여행을 떠난다. 돌아와선 한 줄로 늘어서 운동도 가고 드라이브도 하고(김경민). 나무인형 같은 딱딱한 몸통이지만 동그란 얼굴에 말똥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가. 부둥켜안은 가족·연인에 꽂은 시선에선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문형태).
다른 듯 닮은 두 작가의 특징은 이들이 뽑아낸 인물의 특성에서도 드러난다. 김 작가의 인물이 긴 팔과 긴 다리, 그 팔다리를 잠시도 놔두는 법이 없는 율동성이 특징이라면, 문 작가의 인물은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처댄 붓질처럼 불균형한 몸, 그 몸뚱이로 좌충우돌 벌인 퍼포먼스가 특징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지극히 비현실적인 두 광경이 공존하는 거다.
△유리알 같이 말간 세상 vs 행간에 똬리 튼 슬픔
조각을 하는 김경민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문형태 작가가 만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 펼친 2인전 ‘기분좋은 기억’(Delightful Memories)에서다.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제대로’ 만났다. 장르가 다른 탓인가. 서로의 명성을 모르진 않을 텐데 “지난해 한 전시에서 눈인사 정도 했다”며 ‘관계의 투명성’을 애써 증명한다.
| 문형태의 ‘가족’(2018)이 김경민의 ‘산책하기 좋은 날’(2015)과 ‘사랑의 기념비’(2015) 사이에 걸렸다. 벽 하나를 덮고 감싼 이들의 주제는 ‘가족’. “인생은 아름답다”는 표정과 과장된 몸짓, 바로 두 작가의 풀어낸 ‘가족 방정식’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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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일산, 문 작가는 남양주. 작업실에 틀어박혀 살다시피 하는 이들을 굳이 불러낸 건 짓궂은 질문에 망설이지 않는 기발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작품이 그랬듯 말이다. 다짜고짜 서로의 작품에 대한 ‘한 마디’를 주문했다. “색감이 주는 깊이가 대단하다”고 운을 뗀 건 김 작가. “문 작가의 작품을 ‘동화 같은 작업이구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이번 전시로 이야기에 묻힌 기법이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 깊이가 만든 감동에 사람들이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뒤를 문 작가가 잇는다. “김 작가의 작품에선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끌어내려는 게 있다. 가족 얘기든 연인 얘기든.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분명 ‘자신’이 있을 거다.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과연 서로의 평가가 서로에게 잘 전달됐을까. 김 작가는 사는 일의 유쾌한 스토리를 극적으로 꾸민 연출물로 시선을 끌어왔다. 그이가 데려다 놓는 모델은 품 안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자신과 남편(조각가 권치규), 또 세 자녀. 짐작할 만한 복닥거리는 일상을 마치 스틸사진 같은 브론즈 조각물로 세워두는 거다. “작가로만 살았다면 지금 이런 형태로 남지 않았을 거다. 엄마로 아내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작가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종교 같은 작업이다.” 남들에겐 심란하게 보이는 삶이었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원하던 삶이 작업실에서 전투적으로 사는 거”였다니 목표도 이루고 소원도 이룬 셈이다. 아이들 키우며 오롯이 작업에만 매달린 세월이 벌써 20년이다.
| 김경민의 ‘습관’(2018). 흰색과 연두, 진분홍은 김 작가가 긴 팔과 긴 다리의 인물에 즐겨 입히는 색이다. “재미있고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다”는 그이는 “가볍다고 해도 할 수 없고, 내 스타일에 맞는 사람들만 좋아해줘도 된다”고 생각한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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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민의 ‘베이스볼 패밀리’(2014). 작가 자신과 남편, 또 세 자녀로 구성했을 야구단이다. 김 작가의 막강한 모델은 ‘진짜 가족’이다. “내가 위로받자고 한 작업인데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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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조차 잡히지 않는 유리알 같이 말간 세상이 김 작가의 것이라면 문 작가는 교묘히 감추는 쪽을 택했다. 동화 같은 천진한 색감을 무기로 그 역시 먹고 놀고 사랑하고 다투는 관계의 일상을 그려낸다. 익살은 넘치고 장난기는 주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행간에 오래전 똬리를 튼 애상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거다. “슬픈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내 작업은 진짜 슬픔인 거 같다. 진짜 기쁨도 하루종일 깔깔거리는 게 아니지 않나.”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선 홍대 앞 액서사리 장사로 생활고를 해결하고 남의 공간에서 도둑작업을 했던 에피소드는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완판작가’란 타이틀을 입었다. 그 시간도 얼추 10년을 바라보는데 붓 위에 얹은 그늘 한 점은 도저히 못 빼낸 거다. 한 얼굴 위로 교차하는 또 하나의 얼굴. 그 하나는 외로움이고 그리움이다.
| 문형태의 ‘탕아’(2018). 기형적인 인물이 몰고온 친근한 매력이 문 작가의 무기다. 피노키오와 피에로의 코, 그 둘을 합친 듯한 모양을 두곤 이렇게 말한다. “피노키오의 코가 잘리면 빨갛게 피가 나서 피에로처럼 보이지 않을까”(사진=선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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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태의 ‘배고픔’(2017). 한 얼굴 위로 교차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 보인다. 그 하나는 외로움이고 그리움이다. 문 작가는 그 둘을 교묘히 감출 줄 안다. “감정에 화장하는 듯한 느낌. 불편한 것을 하나씩 숨겨놨다가 어느 순간 꺼내 그린다”고 했다(사진=선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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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지독히도 닮은 세상
‘조각은 진지하고 엄숙해야 한다?’ ‘왜 조각엔 채색을 하면 안 되나.’ 딱딱한 편견과 싸워온 건 김 작가다. “그런 작업을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책에도 만화가 있는데 미술은 왜 가볍고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런데 결국 김 작가를 스타 반열에 올린 건 그 ‘가벼움’이었다.
1997년 당시 국전보다 인기였다는 ‘MBC 한국구상조각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반전극을 쓴 이후, 대중 바로 옆에 놓여 입소문으로 이름을 알릴 만큼 폴폴 떠다녔던 셈인데. 아파트·쇼핑센터 등 공공시설에 심심찮게 등장해 ‘한 컷 동작의 강렬한 인상’을 어필한 거다. 30㎝ 남짓한 미니어처도 제작하지만 높이가 가늠이 안 되는 키 큰 작품도 여럿. 그간 가장 긴 작품은 8m짜리. 인천 송도 한 주상복합건물에 놓였단다. 해외 러브콜도 이어졌다. 홍콩 하버시티, 대만 타이베이에 각각 5m, 4m짜리 대형작품이 나가 있다.
문 작가는 ‘조정기’인 듯했다. 하루에 한 점씩도 그리던 그가 작품 수를 대폭 줄였으니. “상대의 취향에 맞추는 작업을 그만하고 싶다”가 이유란다.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모양이다. “자유분방함으로 각광 받았다. 이제 그것이 지나쳐 정리할 때가 됐지 싶다. 열 점 그릴 걸 한 점에 쏟아보자는 거다.” 그림 속 경계도 뭉뚱그리고 채색도 바꾸고 그의 마음과 손이 바빠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잘 팔리는 작가’란 간판을 거둬내고도 싶단다. “내 그림이 행복감을 줬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였으면 한다.”
| 화가 문형태(왼쪽)와 조각가 김경민이 2인전 ‘기분좋은 기억’에 걸고 세운 자신들의 작품 옆에 나란히 섰다. 왼쪽부터 문형태의 ‘가족’(2018), 김경민의 사랑의 기념비‘(2015)와 ‘습관’(2018), 문형태의 ‘다이아몬드: 완벽한 그림’(2018)이 보인다. 전시의 키워드를 묻자 김경민은 ‘8월의 휴가’라고 문형태는 ‘데이트’라고 대답했다(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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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상업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 작가는 못내 불편한 거다. ‘그냥 이대로 끝나진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 그 우려는 김 작가의 ‘명쾌한 철학’이 좀 덜어내줬을 듯도 하다. “잘 팔리는 건 중요하다. 연인이 매일 같이 있고 싶어 결혼하는 것처럼 운명의 대상이 됐을 때 작품을 사는 것 아닌가. 좋은 작업은 사람을 움직인다. 수백 점을 봐도 내 마음 하나 못 움직이는 게 대다수다. 많이 팔리는 건 좋은 거다.”
다른 듯 지독히도 닮은 세상. 한 사람은 안이라는데 다른 한 사람은 밖이라 했다. 두 작가는 ‘뫼비우스 띠’ 위에 있었나 보다. 그이가 지나간 길을 그가 가는데, 결코 마주칠 순 없다. 아니 ‘회전목마’를 탔는지도 모른다. 세월도 스치고 작품도 스친다. 늘 엇갈려야 하는 숙명처럼. 하지만 어떠랴. 이렇게 나란히 세우고 걸었으니. 그저 ‘기분좋은 기억’이지 않겠나. 전시는 2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