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고슴도치가 샀나 여우가 샀나

'겸손' 여우, '자신감' 고슴도치 능가
자신 지식한계 알고 여러 경험 살펴
투자자, '전문가예측' 휘둘리지 말고
인문과학서 '세상 읽는 통찰' 찾아야
……………………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로버트 해그스트롬|366쪽|부크온
  • 등록 2017-07-05 오전 12:16:00

    수정 2017-07-05 오전 12:41:43

고슴도치와 여우의 투자. 주식시장에선 어느 쪽이 성과를 더 냈을까. 워런 버핏 전문가인 로버트 해그스트롬은 여우의 손을 들어줬다. 투자의 세계에선 결정적 사고틀 하나를 고집하는 고슴도치보다 여러 지식·경험에 기댄 여우의 절충안이 낫다는 거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2600여년 전 쓰인 시구 한 줄이 바로 오늘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행동세력이 될 줄 몰랐다. 그리스 시인이자 전사인 아르킬로코스가 던진 한 토막이 그것이다. “여우는 사소한 것을 많이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안다.”

아르킬로코스가 무슨 의도로 이 시구를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바빠진 건 2600년을 다 보낸 뒤 비로소 선배를 알아본 후배들이다.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은 ‘톨스토이 역사관’을 분석하며 아예 ‘고슴도치와 여우’로 제목을 달았고, 미국 정치사회학자 필립 테틀록(63)은 ‘전문가의 정치판단’을 연구하는 과정에 고슴도치와 여우를 데려다 놨다.

벌린의 고슴도치는 하나의 결정적 사고틀을 놓고 세상을 본다. 반면 여우는 거대이론 자체에 회의적이다. 대신 여러 경험에 기대려고 한다. 테틀록의 고슴도치와 여우는 좀더 전문적이다. 확신에 찬 미래예측으로 빅데이터를 내놓는 쪽이 고슴도치고, 소심하지만 절충적인 대안은 여우가 낸다.

그런데 고슴도치와 여우가 주식시장에, 주식사이트에, 또 주식차트에 산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복잡할 거 없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당장 결정을 눈앞에 둔 투자자의 절대 유형이니까. 세상의 모든 투자자는 결국 고슴도치거나 여우일 수밖에 없으니까. 10년 전이든 5년 전이든 아니 바로 어제까지 삼성전자의 주가추이만 노려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고슴도치 혹은 여우의 고민에 빠져 있는 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전문가로 30여년간 줄곧 투자지침서에 매달려온 저자가 투자업계에서 쌓은 역량을 총결집해 완결판을 냈다. 버핏은 물론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에서 그의 오른팔이 된 찰리 멍거, 두 거대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스피릿’을 그대로 쏟아부었다고 봐도 좋다. 그게 뭔가, 두 사람을 우뚝 세운 투자스피릿이란 게. 한 단어로 ‘박학다식’이다. 바로 이 점에 착안, 저자는 투자자가 꼭 알아야 할 투자덕목을 무차별적으로 정리한다. 경제학은 물론 물리학·생물학·사회학·심리학·철학·문학·수학 등 인문과학 전반을 조목조목 헤집으며 투자의 길을 낸다.

핵심은 주식시장과 투자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자는 거다. 실패했다면 성공으로, 성공했다면 더 큰 성공으로 갈 수 있는 식견을 쌓자는 거다. 원제(‘Investing: The Last Liberal Art’)처럼 ‘주식투자’를 일생의 마지막 학문으로 두고 싶다는 거다. 다만 학문 전부를 뭉뚱그린 뒤 체로 쳐냈더니 단 하나가 걸러지더란다. ‘인간의 인지적 편견과 그것이 만든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라고. 눈치챘는가. 대단한 투자철학은 없다. 그저 세상을 제대로 읽는 인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뿐.

△주식시장이 어찌될까…“변동할 거다”

환경에 따라 적절히 변화해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을 안다면? 시장선택을 통해 진화해온 주식시장이 보일 수 있다. 거칠게나마 한번 짚어 볼까.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엄격한 ‘장부가치 할인전략’이 대세였다. 장부가치보다 크게 할인한 가격에 주식을 사려는 투자전략 말이다. 2차대전 이후에는 배당모형이 떴다. 수익률 낮은 채권은 인기가 떨어지고 고배당 주식에 점점 이끌렸다. 1960년대에는 다시 고배당 기업을 버리는 추세였다. 대신 가파른 이익성장률이 기대되는 기업에 너도나도 투자했다. 1980년대는 버핏의 일성이 중요했다. 주주이익 또는 현금흐름이 좋은 기업에 집중하라고 했던가. 그러곤 2000년대인 지금은 투하자본에 대한 현금수익이 절실해졌다.

결국 금융생태계와 생물생태계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저자의 역설이다. 생물학적 진화가 식량에 영향을 받았다면 금융시장의 진화는 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했다.

생물학이 시장의 기질을 바꿔놨다면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주물렀다. 경제적 의사결정에 ‘마음’이 개입한다는 것. 지금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첫 등장 자체가 20세기 후반이었다. 고전경제학 모형이 기껏 쌓은 ‘인간은 합리적’이란 논리에 반하는 혁명적인 ‘딴지’였다. 인간이 비이성적 의사결정을 하더라는. 덕분에 투자공식은 번번이 다시 쓰이고 있다.

수학은 가히 절대적이다. 투자자가 하는 거의 모든 확률적 행동을 좌우하니까. 특히 평균으로의 회귀는 월가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예측도구다. J P 모건에게 물었단다. 주식시장이 앞으로 어찌 될 거 같으냐고. 대답은 간단했다. “변동할 거다.” 이 ‘변동할 것’이 평균으로의 회귀다. 하지만 여기에 내린 저자의 브레이크는 매섭다. 주식시장처럼 유동적인 환경에선 평균 그 자체가 불안하다고. 어제의 평균이 내일의 평균은 아닐 수 있다고. 그러곤 수학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불확실성을 항상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자신감’ 고슴도치보다 ‘겸손’ 여우가 낫다

다시 고슴도치와 여우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선 어느 쪽의 성과가 더 나았을까. 저자는 기꺼이 여우의 손을 들어줬다. 여우가 고슴도치보다 보정과 판별력 점수가 높았다는 거다.

고슴도치는 한 이론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자체에서 과도한 자신감이 풍풍 솟는다고 했다. 다른 증거가 나와도 관점을 잘 바꾸려 들지 않는다. 반면 여우는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단다. 다른 주장에 관심도 기울이고 지적인 겸손도 있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건보다 일어난 사건에 더 높은 확률을 내줄 줄도 안다. 이런 분석이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대충 답이 나왔다. 한 장소를 집중적으로 파서 ‘프로의 우물’을 만드는 건 최소한 투자세계에선 적절치 않다. 한 가지만 더 보태자. 이 세계의 고수는 전문가가 아니란 거다. 따지고 보면 고슴도치나 여우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잣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증권시장분석가란 허울좋은 타이틀에 휘둘리지 말라는 얘기다. 전문가의 예측이란 게 ‘침팬지 다트 던지기’보다 나을 게 없더란 테틀록의 분석결과가 저자의 입맛을 돋웠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데 그들의 사고과정은 ‘무엇’만 줄기차게 따지고 있더란 거다.

‘문과 출신이어서 미안하고 인문학을 전공해 민폐’라는 대한민국의 바탕없는 투자환경에 깃발 하나 꽂기 좋은 책이다. 거창하게 포장할 거 없다. 적어도 내 돈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려준다는 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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