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할머니는 2014년 12월24일 저녁 7시20분 경 경기 김포시의 한 성당에 성탄 미사를 보러 가던 길에 잠깐 은행에 들러 현금지급기 앞에 섰다. 현금지급기 위에는 주인이 누군지 모를 지갑이 놓여 있었다. 지갑에는 통장과 카드, 각종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현금은 100원 뿐이었다.
지갑 주인은 은 할머니 바로 직전에 현금지급기를 이용한 이모씨였다. 은 할머니가 지갑을 습득할 당시 이씨는 은 할머니 옆의 다른 현금지급기 앞에 서 있었다.
은 할머니는 지갑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으나 미사까지 시간이 촉박했다. 지갑을 들고 성당으로 간 은 할머니는 성당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주인을 찾아달라며 지갑을 맡겼다.
성탄 미사로 바빴던 직원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지갑을 개인적으로 보관했다. 그 사이 지갑을 분실했다고 판단한 이씨는 경찰에 분실신고를 냈다. 경찰은 현금지급기 이용자 내역을 확인해 은 할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은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경찰관에게 지갑을 성당 직원에게 맡겼으니 확인해보라고 했다. 지갑은 분실 때 상태 그대로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경찰관은 지갑을 찾아 이씨에게 돌려줬다.
기소유예는 범죄사실은 인정되지만 사건 경위를 참작해 눈감아주겠다는 의미다. 지갑을 찾아주려다 도둑으로 몰린 은 할머니는 분통이 터졌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공권력 행사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하면 국민은 누구나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헌재는 검찰이 은 할머니를 기소유예 처분한 것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헌재는 “검찰은 은 할머니가 지갑을 갖고 나간 뒤에 행동이 어떠했는지 이후에 습득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지갑을 뒤지는 행동을 했는지를 더 살펴야 했다”며 “충분히 수사하지 않고 절도죄를 인정한 기소유예처분은 중대한 수사미진과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고 은 할머니를 범죄자로 낙인 찍은 게으른 검찰에 대한 질책이다.
형법상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적으로 재물을 취득(불법영득)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헌재는 은 할머니가 이씨의 지갑을 돌려줄 마음에 지갑을 가지고 은행을 나선 것으로 판단했다.
사건 당일 은행 폐쇄(CC)TV를 보면 은 할머니는 지갑을 발견하자마자 현금지급기 좌우를 살피더니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봤다. 또 성당에 가서 직원에게 지갑을 맡기며 주인을 찾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지갑뿐 아니라 현금 100원도 고스란히 이씨에게 돌아갔다.
그러면서 “지갑을 경찰서나 파출소에 갖다 주지 않았지만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가는 길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습득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은 할머니 사건을 변론한 국선변호인 전경능(46·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이씨 주장만 믿지 않고 은 할머니 진술의 진위를 확인했다면 79세의 범죄전력이 없는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전날 발생한 일 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 심리가 이뤄지는 동안 검찰은 기소유예처분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