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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 미술평론가] 황금빛 밭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무르익은 곡식을 거두는 중인가 보다.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 그런데 이런. 가만 보니 뭔가 이상하다. 농민들은 낫질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다. 분명 흉년은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러고 보니 작품명도 이상하다. ‘눈물 젖은 추수밭’(1976)이라니 수확하다가 눈물 쏟을 일이라도 벌어진 걸까. 질문을 쏟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중국 화가 천단칭(陳丹靑·70)의 그림이다.
1953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천단칭은 많은 대가가 그랬듯이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고 전한다. 열여섯 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솜씨가 너무 뛰어나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그가 그린 작품은 동료 화가들의 샘플이 될 정도였다.
‘눈물 젖은 추수밭’은 천단칭이 티베트 지역을 직접 방문한 뒤 1976년에 그린 작품이다. 소문난 솜씨답게 인체의 비례·명암·표정의 묘사 등 흠 잡을 데가 없다. 티베트인 특유의 복식과 외모도 잘 잡아냈다. 이상한 구석은 오직 하나다. 농민들이 황금빛 밭에서 오열하는 것.
그 이유는 그림 안에 있다. 자세히 보면 농촌 풍경에 굳이 없어도 되는 소품이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한 번 찾아보자(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살피는 것이야말로 그림을 감상하는 기본이다). 찾았는가. 정답은 중앙에 정면으로 선 남자가 들고 있는 라디오다. 노동요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웬 라디오인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기에 화면 중앙에 떡하니 놓았을까. 그렇다. 이 라디오는 화면 전체를 이끌어가는 대단한 소품이다. 지금 마오쩌둥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오는 중이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아버지 마오 주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농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키고, 어깨를 빌려 눈물을 흘린다. 어린아이까지 엉엉 울고 있다. 낫질을 모두 멈추고 일제히 실의에 빠져버린 바로 그 순간을 천단칭은 작품에 담은 것이다. 똑똑한 화가는 마오쩌둥의 사망일인 9월 9일이 가을이었음을 드러내고,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황금빛 추수밭을 배경으로 삼았다. 진짜 마오쩌둥의 사망 소식을 들은 티베트인 모두가 이만큼 비통해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을 본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매우 흡족했으리란 거다. 그야말로 ‘어용 페인팅’의 전형인 이 작품으로 천단칭은 당으로부터 ‘중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화가’로 이름을 올렸다.
소수민족 티베트인 진짜 삶 공유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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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티베트족’ 시리즈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전혀 없다. 작품 속 티베트인들은 더 이상 정치인의 부고 소식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별 표정 없이 길을 걷고, 사랑하는 이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이들의 소소한 일상은 더 이상 정치적 사건이나 구호에 휘둘리지 않는다. 화폭에 담기기 위해 포즈를 취하지도 않는다. 관람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너무도 연극적이었던 ‘눈물 젖은 추수밭’에 비해 ‘티베트족’ 시리즈는 진솔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천단칭의 이 작품은 중국의 첫 번째 ‘진실된’ 회화로 꼽히기도 한다.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진실된’이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단지 사진처럼 그럴 듯하게 그린 ‘사실적인 회화’라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짓과 가식으로 점철되던 마오시대의 회화로부터 탈피했음을 뜻하는 뼈 있는 단어다. 다시 말해 ‘진실된’이란 수식어는 천단칭의 ‘티베트족’ 시리즈를 미술사에 남게 한 가장 큰 이유다.
천단칭의 티베트족’ 시리즈가 소수민족을 대하는 태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한족이 주를 이루지만, 엄연히 56개의 작은 민족들이 모여 구성한 나라다. 다만 소수민족은 말 그대로 ‘소수’기에 지배층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이들은 변방에 흩어져 각자 고유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간직한 채 중국의 주류 정치·경제·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따라서 그간의 그림에서 이들은 주로 이국적인 대상으로 표현되거나 ‘하나의 중국’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반면 천단칭은 그들의 이국성을 강조하지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무시하거나 얕보는 시각도 없다.
“그들의 눈은 밝게 빛나고 이마는 시원스러웠으며, 땋은 머리와 늘어뜨린 허리띠는 걸을 때마다 흔들거렸다. 묵직한 발걸음은 용맹스럽고 진중했으며, 아주 위풍당당해 부러울 정도였다”(‘미술연구’ 1981년 제1기 50쪽).
존엄한 존재로 농민 표현한 ‘밀레’의 그림에 감동
더불어 다른 화가들로부터 받은 영감 또한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프랑스 화가 밀레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오 사망 후 중국 미술계가 서구에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밀레의 작품은 인쇄매체를 통해 확산되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천단칭은 밀레의 작품이 1978년 중국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직접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밀레가 농민의 모습을 진실되게, 또 존엄하게 표현했다는 데 특히 감동을 받았고, 이는 ‘티베트족’ 시리즈를 그리는 데 기본 방향을 설정해줬다. 어려운 현실에도 존엄을 지키며 사는 이들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감동을 주는 법. 밀레의 ‘이삭줍기’가 프랑스 미술사에 획을 그었듯, 천단칭의 ‘티베트족’ 시리즈 역시 중국 미술사에 영구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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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천단칭은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인물화·정물화·풍경화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최근 노장의 화가는 다시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번에는 전문 모델들을 캔버스에 담는다.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스타일링한 오트쿠튀르 같은 옷을 입고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다. 이런 연출된 장면은 이전의 ‘진실된’ 그림하고는 언뜻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것이 천단칭이 보는 이 시대의 ‘진실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사회생활이란 걸 하면서 자신의 연기력에 놀란 적이 있다면, 또는 SNS 계정을 보면서 가식적이라고 혀를 찬 적이 있다면, 어느 정도 가식적이고 연극적인 천단칭의 최근 회화가 ‘진실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