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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483억여원.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 몰린 ‘뭉칫돈’이다. 각본도 없이 몰아친 ‘반전 드라마’였다. 미술시장 불황에 코로나까지 겹쳐, 지난해 성적이 아무리 바닥(상반기 490억원)을 쳤더라도, 단 반년만에 3배 이상 뛸 거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더랬다. 게다가 지난 5년래 상반기 중 시장이 가장 좋았던 2018년 1030억원보다도 50%쯤 늘어난 것이니까.
마땅히 기대와 시선이 집중된 하반기 경매시장은 상반기만큼이나 숨 가쁘다. 활황기에 제대로 올라탄 미술시장에 힘입어 올해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국내 경매에서 이제껏 한 번도 못 가본 3000억원대를 찍을 수 있겠다는 그것. 막연한 장밋빛도 아니다. 지난해 상·하반기를 합산한 경매시장의 낙찰총액은, 올해 상반기만에에 한참 못 미치는 1153억원에 불과했다. 그보단 나았다는 2019년 총액도 1565억원 정도. 역시 5년래 최고 시장이었다는 2018년에도 한 해 거래액은 2194억원에 그쳤더랬다.
가히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고 있는 요즘 미술시장. 지난달 하반기로 시간을 갈아탄 이후에도 여전히 뜨겁다. 경매를 앞세워 화랑·아트페어까지 달구며 유입된 뭉칫돈의 공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케이옥션이 진행한 ‘7월 경매’에선 121억원어치의 미술품이 팔려나갔다. 낙찰률 80%. 국내 최초로 경매에 나섰던 ‘움직이는 조각’인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부메랑과 타깃’(1973)이 16억원에 팔리며 최고가 낙찰작이 됐다.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열린 ‘서울옥션 대구경매’에선 131억원어치를 팔았다. 낙찰률은 자그마치 94%. 10점 중 9점 이상, 내놓는 족족 낙찰됐다고 봐도 된다. 그날 최고가 낙찰작은 31억원까지 몸값을 끌어올린 쿠사마 야요이의 초록색 무한그물망 회화 ‘인피니트네트’(WFTO·2016)였다.
큰손 지갑 열게 하는 김환기 붉은 점화, 시작가 40억원
8월에도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국내 양대 경매사는 나란히 큰 장을 준비했다. 형식과 내용만 다를 뿐 올해 들어 한 달에 한 번꼴로 미술품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두 경매사가 24일과 25일 하루 차로 여는 메이저 경매다. 24일에는 서울옥션이 ‘제162회 미술품 경매’로, 25일에는 케이옥션이 ‘8월 경매’로 진행할, 양일에 나설 출품작은 총 322점. 추정가로 270억원어치다. 서울옥션은 169점 173억원어치로, 케이옥션은 153점 97억원어치로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 26일에는 고미술품만 특화해 경매에 부치는 마이아트옥션의 하반기 첫 메이저 경매도 예고돼 있다. 136점 27억원어치다. 사흘 동안 290억원대 458점의 근현대·고미술품이 새 주인 찾기에 나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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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8월 대전’이 될 이번 큰 장에서 굳이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환기(1913∼1974)다. 서울옥션에선 미술시장의 ‘호황기 지표’로 꼽히는 김환기의 단색 전면점화, 케이옥션에선 그 작가의 초기 희귀작이 ‘얼굴’로 나선다.
서울옥션이 내놓은 김환기의 ‘1-Ⅶ-71 #207’(1971)은 높이 170㎝, 폭 91.5㎝의 화면을 커다랗게 원을 그리듯 회전하는 붉은 점으로 채운 작품. 김환기의 단색 점화들이 대부분 푸른 계열이었던 데 비해 상대적으로 드문 붉은 톤이 당장 눈길을 붙든다. 그 덕에 김환기의 붉은 점화는 시장에 나올 때마다 큰손 컬렉터의 지갑을 넘봤다.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무제’(1971)가 4700만홍콩달러(약 72억 907만원)에 팔렸고, 2018년 5월 같은 경매에선 ‘3-Ⅱ-72 #220’(1972)이 6200만홍콩달러(약 85억 2996만원)를 부른 새 주인을 찾아갔더랬다. 다만 이번 붉은 점화는, 앞의 두 작품(255×204㎝, 254×202㎝)에 비해선 규모가 좀 작은 편이다. ‘추정가 별도문의’를 내건 작품은 경매장에서 40억원을 시작가로 호가를 높여갈 예정이다.
‘블루오션의 돛’이라 불렸던 김환기의 단색 점화는 미술시장의 바로미터라 할 만하다. 불황이 끝으로 치닫기 전인 2020년 이전 최소 3년간의 미술시장은 김환기의 점화가 이끌었으니까. 하지만 시장이 가라앉으며 김환기의 점화도 함께 가라앉았다. 원체 고가인 탓에 거래 자체에 나서질 못했던 거다. 그만큼 ‘다시 점화’한 이번 ‘김환기 점화의 귀환’에는 그저 ‘오랜만’ 그 이상의 선명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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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총액 1위 이우환 ‘동풍’ 20억, 겸재 그림 든 ‘수서가장첩’ 10억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낙찰총액 1위를 꿰차며 끝없이 부상하고 있는 이우환(84)의 작품도 양쪽 경매에 대거 출품한다. 서울옥션에 11점, 케이옥션에 8점이다. 이중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은 ‘동풍’(East Winds·1984). 서울옥션에서 시작가 20억원으로 운을 띄울 작품은 1984년 현대화랑에 전시된 이후 ‘한동안 안 보였던’ 그림이다.
2000년대 이후 더욱 간결해진 화면을 꾸려왔던 이우환의 그 시기 대표 연작 ‘대화’(Dialogue)는 양쪽 경매에 동시에 나선다. 하얀 캔버스에 오른쪽으로 가면서 점점 진해지는 회색 점 하나만 찍어 완성한 작품이다. 서울옥션에선 세로가 긴(227.4×183.3㎝) ‘대화’(2007)가 추정가 5억 2000만∼8억원에, 케이옥션에선 가로가 긴(130.3×162.2㎝) ‘대화’(2012)가 5억∼6억 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고미술품 부문에서 화제몰이 중인 작품은 옛 문집 ‘수서가장첩’이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는 이 조선시대 문집은 영·정조 때 사대부 문인 이창좌(1725∼1753)가 쓴 시문과 제문, 애사 등을 모아 엮은 추모집. 이 작품이 단순한 문집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한 특별함이 있으니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이 두 점 들었다는 거다. ‘수서유거도’와 ‘수서한행도’란 제목이 붙은 겸재의 그림은 각각 이창좌의 ‘집’과 ‘산보’를 소재로 그려졌다. 마이아트옥션에 놓일 이 문집은 추정가 5억∼10억원을 달고 응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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