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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를 조금 넘긴 수요일 출근길,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 차도 한복판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느닷없이 뛰어들었다. 옷을 모두 벗은 채였다.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청년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 명은 나체 질주하는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옷을 들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카메라를 들었다. 청년은 200여 미터 정도 거리를 내달리다 골목길로 돌연 사라졌다. 이들의 신원은 그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튿날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스트리킹이라는 광태가 급기야 서울 거리에 출현하고 말았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다”라고 썼다. 스트리킹은 ‘벌거벗고 대중 앞에서 달리는 일’을 뜻하는 영단어로, 1974년 초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소수 개인의 일탈로 시작됐지만 곧 단체 질주로 확대됐고 그 규모 역시 점차 커졌다.
이 즈음 시작된 세계 최고의 명문 사학 미국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의 집단 스트리킹 ‘원시의 비명(Primal Scream)’ 행사는 지금도 매년 12월 연례행사로 열린다. 시험 시작 전날 학생들이 모여 30분 간 스트리킹을 하는 전통으로, 시험과 공부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하버드 공붓벌레들’의 유쾌한 일탈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스트리킹이 발생하고 이틀 뒤인 3월 15일엔 전국적으로 3곳에서 스트리킹 사건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17일 밤에는 서울 금호동에서 20대 인쇄공이 스트리킹을 하려고 옷을 벗다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트리킹을 하면 2차를 사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스트리킹에 대한 처벌을 강화, 공공장소에서의 음란행위죄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즈음 전국적으로 다시 장발 단속령도 내려졌는데 그것도 스트리킹 유행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고려대 앞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우리나라 첫 스트리커가 장발족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경찰은 안암동 스트리커를 체포하기 위해 전담 수사반까지 편성했지만 그를 검거하는 덴 끝내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