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던 김영진(28·남)씨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명목으로 체포됐다. 온라인 구인?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던 김씨에게 ‘미래신용정보’라는 채권추심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검색해보니 실제 있는 회사였다. 김씨는 채무자의 변제금을 현금으로 받아 회사 계좌로 입금하는 일을 맡았다. 일당은 수금 금액의 0.7%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김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수금책’으로 범죄에 가담한 것이다.
취업난·보이스피싱 사기범 전락...'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피해
최악의 취업난 속에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로 금전적인 손해를 입을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청년들이 조직범죄의 ‘일원’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발생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이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5232건으로 전년(3855건) 대비 38%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간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3만7667건에서 3만1681건으로 16% 줄었고, 다른 연령대의 피해 건수도 일제히 감소했다.
박씨 가족은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처럼 우리도 속은 것”이라며 “정범은 따로 있는데 우리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해외에 본거지를 둬 추적이 어려운 탓에 피해자들은 신원이 특정된 수금책 등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씨와 같은 ‘피의자’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편취한 돈의 일부를 일당으로 받는데 송금한 편취금액 전부를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합의할 수밖에 없다.
비대면 환경?경기 불황이 보이스피싱 배경이 돼
전문가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려다가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0대들은 비대면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면접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비대면 환경 확산을 보이스피싱 사기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고용불안위기에 처한 20대들은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쉬운 상태”라고도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밥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20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취약한 상태”라고 말했다.
무한대로 조달 가능한 ‘일회용’ 인출책, 정부의 대응은
현금 수금책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범죄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해 만든 홍보 자료는 금전적 손해 방지에 집중돼 있다”며 “부동산 경매 자금 회수, 비트코인 환전, 채권 추심 아르바이트도 불법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가족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2019년에 있었던 판결을 언급했다.
2019년 서울동부지법에서는 중국인 유학생 2명이 통역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가 보이스피싱 수금책에 가담해 기소된 사건에 대해 “행동책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무한대로 조달될 수 있는 ‘일회용 도구’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금융감독원은 "업무내용에 비해 많은 대가 지급을 약속하는 아르바이트, 송금?환전?수금 대행 아르바이트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스냅타임 이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