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직성 ‘녹색 풀’(사진=자하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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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그럴듯한 추상화로 보인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땅과 푸르다 못해 초록이 된 물이 만난 형상인가. 그런데 실체를 알면 자못 놀랍다. 드넓은 초록은 강에 퍼렇게 낀 녹조를 묘사한 것이라니. ‘그럴듯한’ ‘푸른’ 따위의 수식은 참 미안한 사치였던 거다.
비자연적인 현실을 부각해 인간 삶을 파괴하는 사실적인 풍경을 담아낸 그림은 서양화가 정직성(41)의 동명연작 ‘녹색 풀’(Green Pool·2016)이다. 작가가 도시에서 자연으로 관심을 돌린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연립주택’ 시리즈로 급격한 개발이 뒤바꾼 공간을 봤고, ‘기계’ 시리즈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역동성을 찾아냈다. 배경을 옮겨왔다고 하지만 맥은 잃지 않은 셈이다. 파괴된 공간, 변질된 시간을 본 것이니.
재미있는 건 그림과 한몸이 된 액자다. 한 골동상 사장이 화려한 조각이 박힌 ‘이탈리아 액자’를 떠넘기며 “어울릴 만한 명작을 그려 보라”고 했단다. 그 안에 담을 풍경을 고민하다 보니 바로 우리의 자연이 보이더라고. ‘녹색 풀’의 탄생비화다.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미술관서 여는 개인전 ‘녹색 풀’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릭·유채, 프레임. 96.5×149㎝. 작가 소장. 자하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