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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시아파 정당인 아말운동에 가입한 그는 이라크 나자프에 있는 시아파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중 헤즈볼라 공동 창립자인 압바스 알 무사위의 영향으로 1982년 헤즈볼라에 합류했다. 나스랄라는 1992년 무사위가 이스라엘 암살로 사망한 뒤 32세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로 등극했다.
나스랄라는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헤즈볼라를 막강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에 저항하는 무장 세력으로 이란의 지원 아래 탄생했다.
이스라엘 안보단체 알마연구·교육센터에 따르면 2만5000~3만명 병력에 헤즈볼라가 미사일 15만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헤즈볼라 대원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활동하면서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헤즈볼라는 현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0년 이스라엘군이 18년 만에 레바논에서 철수한 것도 나스랄라가 이끈 헤즈볼라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의 철군은 그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죽이고 2명을 납치해 34일간 전쟁도 치렀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 실제 전투 능력을 더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헤즈볼라는 이란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했다.
나스랄라는 1997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당시 18살이던 아들을 잃었지만 의연한 모습을 보여 레바논인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다른 많은 레바논 사람들처럼 순교자의 아버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공격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 전선”이라며 레바논이 주된 전쟁터가 되는 전면전을 피하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지난 17~18일 레바논에서 연이틀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동시다발 폭발 사건이 발생하자 19일 TV 생중계 연설에 또 다시 나서 이스라엘에 강력한 보복을 예고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잃게 된 헤즈볼라는 조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후계자로 떠오른 하셈 사피딘은 27일까지는 생존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