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진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방송통신발전기금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지만 방송 산업이 고성장을 구가하던 과거에는 현행 제도의 구조적 결함과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시장 성장이 정체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새로운 경쟁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로 인해 기금 납부 주체인 기존 방송사업자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했고, 그 결과 기존 제도의 문제점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업자의 경영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기금 징수 기준의 확립이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징수 기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각각의 고시를 통해 명시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고시 검토 기한에 맞춰 각 사업자의 환경을 고려해 2022년 징수 기준을 변경한 바 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는 2017년 이후 7년째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사업자별로 차등적인 징수 기준을 적용하면서 기금 징수의 형평성을 해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사업자들은 방송사업 매출액을 기준으로 징수액을 책정한다. 반면 홈쇼핑 사업자는 영업이익을, 방통위에서 담당하는 지상파 방송·종편·보도 채널사업자(PP)는 방송광고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서 별도의 감경 기준을 가지고 있다.
실제 기금 납부액 추이를 살펴보면 사업자 간 기금 징수 기준의 차이로 인한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케이블 방송 사업자의 경우 2020년에서 2022년까지 영업이익이 32.8%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금 인하분은 6.7%에 그쳤다. 반면 홈쇼핑 사업자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0% 감소했지만 기금은 38% 인하됐다. 이러한 불균형은 2024년 징수액에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2023년 케이블 방송사업자의 영업이익이 50% 이상 감소했음에도 기금은 약 5% 감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홈쇼핑 사업자는 매출액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감소를 고려해 40~50% 이상 기금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현상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의 취지와 배치된다. 이 법은 기금 징수율 책정 시 시장 경쟁상황, 사업자의 수익 규모, 재정상태를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사업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기금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방통위 고시에 반영된 기금의 감경 기준 역시 규제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모든 방송사업자들은 기본적으로 공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상파뿐만 아니라 유료방송 플랫폼들도 재난 방송과 케이블 방송의 지역 채널 운영 등을 통해 상당한 공적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현재 민간 방송사업자들의 사업적 편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기금 납부와 공적 책무 이행이라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부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최소한의 감경 기준조차 사업자별로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일부 사업자들은 사업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공정성을 기초로 하는 부담금 운용 원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은 방송통신의 진흥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기금 제도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방송사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국내 방송사업자들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할 것이며, 이는 결국 국내 방송 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는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