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동정'을 범행 표적 삼은 살인마 '이영학'[그해 오늘]

희귀병 딸 범행 공모…돕던 친구 범행 대상 삼아
"딸 치료비 필요하다"…10억원 후원 받아 '탕진'
  • 등록 2022-10-05 오전 12:03:00

    수정 2022-10-05 오전 5:40:46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0월 5일. 서울 도봉구 한 빌라에 들이닥친 경찰이 당시 30대 남성과 그의 중학교 2학년 딸을 긴급체포했다. 이들의 혐의는 딸의 친구인 A양의 실종 관련이었다. 경찰서로 압송된 남성은 A양의 행방에 대한 경찰의 질문에 “살해 후 강원도 영월의 한 야산에 유기했다”고 답했다. 경찰은 유기 장소 인근을 수색했고 다음 날인 6일 오전 A양 시신을 발견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끔찍한 범행 수법에 놀랐다. 그리고 같은 달 12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범인의 신원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범인은 ‘어금니 아빠’로 여러 차례 언론에 등장했던 이영학(1982년생)이었다. ‘부성애’로 포장됐던 살인마 이영학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에 나왔던 이영학의 모습. 그는 미디어에서 희귀질환에 걸린 아픈 딸을 챙기는 아빠로 포장돼 후원금 수억원을 모을 수 있었다.
이영학은 어린 시절부터 희귀 질환인 거대백악종을 앓았다. 2003년 태어난 딸 이모씨도 2005년 이영학과 같은 질환 진단을 받았다. 딸의 희귀병 진단을 계기로 이영학은 사람들의 동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미디어가 철저히 이용됐다.

미디어 통해 ‘어금니 아빠’로 유명세→10억 탕진

이영학은 2005년 초부터 서울 도심 곳곳에서 ‘저 때문에 제 딸이 아프다’는 피켓을 들고 행인들에게 금품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연은 같은해 3월 한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같은해 11월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영학을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으로 소개했다. 이영학은 이때부터 ‘희귀병에 걸린 아픈 딸을 챙기는 아빠’라는 이미지로서 ‘어금니 아빠’로 유명세를 얻게 됐다.

한 사회복지법인이 2005년 12월 딸의 수술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나, 수천만원의 후원금을 챙긴 이영학은 후원금 모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듬해 11월 딸의 이름을 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후원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딸의 질병은 전 세계에서 나와 딸 2명뿐이다. 수술비가 최대 10억원인데 돈이 없다. 딸을 살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한 달 후인 2006년 12월 지상파 방송국들이 잇따라 이영학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영학은 당시 다른 전과를 제외하고 사기 전과만 3범이었지만 언론들은 앞다퉈 이영학의 사연을 소개했고, 후원액은 나날이 커졌다. 연말에는 이영학이 후원금 모집을 위해 국토 대장정을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국토 대장정은 가짜였지만 방송에선 실제로 한 듯이 나왔다.

이영학이 아내 B씨 사망 후 올린 추모 영상. 이영학은 정작 아내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등 학대를 일삼았다.
이영학은 2007년 1월, 2009년 3월, 2017년 2월에도 ‘안타까운 사연’이라며 방송에 소개됐다. 이영학은 이와 별도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9회에 걸쳐 신문에 ‘아이를 살려달라’는 내용의 후원요청 광고를 했다. 2007년 10월엔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이영학이 이런 방식으로 10년 넘게 모집한 후원·기부금은 9억 4500만원이 넘었다. 엄청난 후원금을 받아 챙기면서도 이영학은 10년 넘는 기간 동안 국가로부터 복지수당 1억 25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겼다. 이영학이 후원금을 생활비, 유흥비, 성형수술비 등으로 주로 사용했다. 고급 외제차 등 차량만 30여차례 바꾸는 등 흥청망청 사용하며 모두 탕진했다. 딸의 치료비에 쓰인 돈은 고작 700만원에 불과했다.

아내도 그저 ‘도구’로 삼아…계부 상대 강간 무고 범행 동참

A양에 대한 범행도 철저히 ‘선의와 동정’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영학은 2017년 9월 초 자신의 아내 B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당시 만 14세에 불과했던 딸에게 “엄마 대신 나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친구 중 한 명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의 휴대전화에서 피해자 A양을 꼭 집어 집으로 데리고 오도록 했다.

정상인의 범주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영학의 행동은 자신의 아내에게 했던 행동의 연장선이었다. 이영학은 B씨가 만 17세에 불과하던 2002년부터 동거를 했다. B씨와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았지만 이영학에게 B씨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후원금을 수시로 탕진했던 이영학은 B씨에게 성매매를 시켜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했다.

아울러 자신의 계부 C씨에게 돈을 뜯어낼 생각으로 B씨에게 수차례 성관계를 한 후 수차례 고소하도록 했다. 처벌이 되지 않자 또다시 2017년 9월초 계략을 꾸민 후 경찰에 C씨를 고소했다. 이 같은 범행에 동조했음에도 이영학으로부터 멸시를 받자 B씨는 결국 2017년 9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는 이영학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영학은 B씨와 같이 자신의 도구가 될 누군가를 만들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이다. A양은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가 나오는 영화를 같이 보자는 요청을 이영학 딸로부터 받고 이를 수락했다. 평소 부모로부터 “어려운 친구에게 잘 대해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A양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이영학 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영학은 A양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를 먹여 음란행위를 하다 깨어난 A양이 반항하자 잔혹하게 살해했다. A양 가족은 “평소 어려운 친구에게 잘 대해 주라고 한 말을 사무치도록 후회한다”고 원통함을 드러냈다.

1심 “사형수로서 참회해야”→2심 “교화 가능성 없다 단정 어렵다” 무기

친구를 유인했던 이영학은 범행에 철저히 가담했다. 이영학이 성범죄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을 예상하고도 A양을 유인했고, A양 가족들에게 A양의 행방을 숨긴 것은 물론 A양 휴대전화를 직접 버리기도 했다. A양이 숨진 후에는 이영학과 함께 적극적으로 사체유기에 나서기도 했다. A양의 행방을 묻는 친구들에게 “괜찮아 살아는 있겠지…ㅋㅋㅋ”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영학과 딸은 사체유기 후 도주했다. 도주 중에도 이영학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범행 후 녹화된 차량 블랙박스에는 콧노래를 부르거나 웃으면서 운전을 하는 모습이 찍혔고, 차량 안에서 아내 B씨 죽음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영학과 딸은 서울의 한 모텔에 숨어있다 10월 5일 체포됐다.

이영학은 체포 후에도 반성 따윈 없었다. “일평생 피눈물을 흘리면서 학생(피해자)을 위해 울고 기도하겠다” 등의 가식적인 모습을 반복하며 자신의 딸 안위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옥중에서 가족 등에게 보낸 편지에선 ‘복수’나 ‘출소 후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법정에선 “석방되면 (후원 사기 범행에 대해 진술한) 친형을 죽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1심 법원은 “이영학을 준엄한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영원히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극형의 선택은 불가피하다. 비록 사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사형수로서 평생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 및 피해자의 유족에 대한 이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공감과 위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2심은 “반성문이나 법정 진술을 위선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이영학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이지만 교화가능성 등을 부정해 사형에 처할 정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2018년 11월 형을 확정했다. 이영학 딸은 범행을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이영학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됐던 점이 인정돼 징역 장기 6년, 단기 4년형에 그쳤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즈나, 혼신의 무대
  • 만화 찢고 나온 미모
  • MAMA 여신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