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2011년 8월 24일. 180여억원의 혈세를 들인 주민투표가 개봉함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폐기됐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이틀 뒤 선거 무산의 책임을 떠안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한국 정치 역사상 첫 셀프 탄핵이었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11년 무상급식 투표 관련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투표에 참여줄 것으로 독려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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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무상급식 조례안이었다. 오 시장은 재선 서울시장이었지만 당시 서울시의회 구성은 썩 유리한 형편이 못 됐다. 시의원 114명 중 76명(67%)이 민주당 소속으로, 시장이 기획한 사업에 예산을 뒷받침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2011년 서울시 예산 20조6000억원 가운데 무상급식 예산 695억원이 편성되면서 오 시장이 특히 역점을 뒀던 서해 뱃길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경인 아라뱃길을 통과한 여객선이 한강에 합류할 수 있게끔 양화대교 교각 2개를 철거하고 아치 형태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오 시장은 6개월 간 시의회에 나오지 않는 등 힘겨루기에 나섰다. 시의회를 압박하기 위해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이자는 제안도 내걸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걸었던 것이 바로 ‘시장직’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오 시장은 당시에도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밀어붙이자 풍선의 다른 쪽이 솟아 올랐다. 대선 출마용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기획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오 시장이 이를 의식해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했는데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야권은 투표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였다. 개표 가능선인 33.3% 투표율을 위해 오 시장은 끝내 시장직을 걸었다. 투표를 3일 앞두고 내건 초강수였다.
8월 24일 주민투표 투표율은 최종 25.7%에 그쳤다. 215만7744표가 그대로 사장됐다. 후폭풍은 거셌다. 오 시장이 떠난 서울은 박원순 전 시장에게 3선을 허락했다. 안철수 열풍이 불어닥쳤던 것도 이 시기다.
오 시장 개인에게도 뼈아픈 선택이었다. 이후 5년간 오 시장은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했다. 이후에도 2016년과 2020년 서울 종로와 광진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각각 정세균·고민정 의원에게 패퇴했다.
오 시장은 훗날 이 때를 반추하며 “‘시간 이동’ 능력을 갖고 싶다”고 했을 만큼 후회가 컸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갖고 싶은 능력’에 대해 시간이동을 꼽으면서 “2011년 서울시장직을 사퇴하기 직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출구조사를 확인한 뒤 승리를 확신하며 환호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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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야인으로 있던 오 시장은 지난해 4월8일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10년 만에 서울시장직 복귀에 성공했고 연이어 재선하면서 재기에도 완연하게 성공했다. 76년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장 중 유일한 4선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