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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세기 띄워 날아온다!” 그 항공기에 탑승할 이들은 다름 아닌 미술계 ‘거물’들. 목적지는 서울이다. 세계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슈퍼컬렉터가 9월 첫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아니 단군 이래 최대 미술장터에 집결하는 건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이사회 멤버인 론티 이버스 아만트재단 대표, 아트넷(글로벌 예술전문매체) 선정 세계 200대 슈퍼컬렉터인 독일 아트북출판사 타셴 회장의 부인 로렌 타셴, 홍콩 억만장자 컬렉터인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 스위스 대표 컬렉터로 꼽히는 마야 호프만 루마재단 회장 등등. 그러니 ‘전세기 어쩌구’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닌 거다.
다음 달 초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는 ‘프리즈 서울’(Frieze 2∼5일)과 ‘키아프 서울’(KIAF·한국국제아트페어 2∼6일)이 공동 개최된다. 이 기간 코엑스 전관을 들썩일 국내외 화랑은 280여개. ‘키아프 서울’에는 17개국 164개 화랑(해외 60여개)이, ‘프리즈 서울’을 따라 입성하는 세계 유수의 화랑은 110여개(국내 12개)다. 신작을 들고 말 그대로 ‘거대한 그림장사’를 벌일 이들 가운데는 미국의 가고시언이나 벨기에의 악셀 베르보르트 외에도 데이비드 즈워너, 하워저&워스, 화이트큐브 등, 그간 국내 아트페어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최정상급 화랑이 줄줄이다.
덕분에 요즘 국내 미술시장은 온통 이들 행사로 부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1조원대 한국미술시장’을 열어젖힐 수도 있어서다. 지난해 한국미술시장이 폭발시킨 규모는 9157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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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짧았던 호황시장, 이미 끝이 나”
문제는 그 사이에 낀 국내 ‘8월 경매’가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건에 있다. 해외 큰손은 제쳐두고서라도 이 기회에 한 점이라도 좋은 미술품을 사볼까 하는 국내 컬렉터가 열흘 남짓 전에 열리는 국내 경매시장에 눈 돌릴 여유가 있겠느냐는 거다. 이런 중에 하반기 미술시장을 다잡는 “낙관적 접근은 위험하다”는 경고까지 떴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최근 내놓은 ‘아트마켓리포트: 2022년 상반기 국내 경매분석 시장’은 “1년 반의 짧았던 호황시장은 끝이 나고 한껏 가격이 오른 작품들이 엄격한 잣대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올해 초부터 미술시장은 불황의 단계에 들어섰으며 이미 지난 7월 경매에서 호황시장의 종결을 봤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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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호황기마다 등장하는 특징으로 “신진작가의 작품이 대거 경매에 출품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잦은 거래로 빠르게 가격을 올린 신진작가군은 가격상승치를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꼬집었다. 경매사가 신진작가를 발굴해 키우는 갤러리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이어 “미술투자는 주식투자와 달라서 한번 회전이 멈추면 다시 돌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평균 10년마다 돌아오는 호황주기를 감안하면 “내가 가진 그 작품을 10년 후 제값 받고 팔 수 있을 거란 장담은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단군 이래 최대 미술장터 앞둔 8월 경매
안팎의 부담감을 끌어안은 채 23일, 24일 양일간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각각 ‘8월 메이저경매’를 연다. 두 경매사에서 출품하는 작품은 200여점 180억여원어치. 서울 강남구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여는 ‘제168회 미술품 경매’는 102점 약 125억원,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여는 ‘8월 경매’는 101점 약 61억원 규모를 예고했다.
굳이 여건을 따지지 않더라도 한눈에 출품작 수와 총액이 줄어든 게 보인다. 지난해 8월 메이저경매에서 서울옥션은 169점 173억원어치를, 케이옥션은 153점 97억원어치를 출품했다. 상반기 마지막인 두 달 전보다도 줄었다. 6월 메이저경매에서 서울옥션은 100점 185억원어치를, 케이옥션은 129점 121억원어치를 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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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많은 작품을 거래한 ‘김창열의 물방울’ 중에서도 1970년대 후반의 ‘정수’로 꼽히는 ‘물방울이 있는 구성’(Composition with Water Drops·1978·98.5×74.5㎝)도 시선을 끈다. 프랑스 파리 낡은 마구간에 마련한 아뜰리에에서 우연히 포착한 물방울을 작품으로 끌어낸 뒤 유럽화단으로 본격 진출한 직후의 작품이다.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인전을 열며 전시 포스터로 사용하기도 했을 만큼 작가와 갤러리에게 ‘자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서울옥션에서 추정가 4억∼6억원을 달고 응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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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300호(217.7×291.0㎝) 대작 ‘대화’(Dialogue·2016)도 보인다. 강렬한 색과 웅장한 규모로 압도하는 작품은 서울옥션에 추정가 15억∼20억원으로 나왔다. 케이옥션에선 자유로운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바람과 함께’(1990×91×116.8㎝)로 맞불을 놓는다. 추정가는 4억 8000∼7억원.
유영국이 평생 그린 울진의 하늘과 산과 나무가 고유한 존재감을 고즈넉하게 드러낸 ‘워크’(Work·1989·65.1×90.9㎝)는 케이옥션에서 꺼내들었다. 드물게 초록을 주조색으로 쓴 작품은 멀리 푸른 하늘 아래 완만한 산을 흘리고 녹색의 능선을 배경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심어둔 소박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추정가 3억 2000만∼5억원에 출품했다.
이외에 국내 경매에 처음 나서는 미국 출신 쿠바 작가 헤르난 바스의 원화와 또 종이작품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 나란히 나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무성한 나무숲에 혼자 떨어진 소년을 그린 ‘숲 사이로 숲’(The Forest Through the Forests·2010·152.8×130.8㎝)은 서울옥션에서 추정가 3억∼5억원에, 역시 숲속에 홀로 떨어진 부엉이를 그린 ‘훗훗’(Hoot Hoot·2005·28.6x25.4㎝)은 케이옥션에서 추정가 2400∼5000만원을 달고 새 주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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