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극 OK. STORY 한 장면(사진=극단 차이무) |
|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205만원. 더 이하는 안 돼.” 그 남자에겐 징크스가 있다. 의뢰인에게 들이미는 청구액이 `5로 끝나야 뒤탈이 없다`는 거다. 500만원이 비싸다 애걸하는 의뢰인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터다. 물론 의뢰인을 배려한 친절한 브리핑도 잊지 않는다. `몇 대 후려치고, 다리를 자르고, 가게 몇 군데를 부순다. 그 다음 보험금을 청구한다.` 이들의 거래는 대한민국 최고의 보험사기극. 그런데 이 당혹스러운 시나리오가 과연 제대로 끝을 볼 것인가. `냉혹한 사회현실에 몰린 최선의 저항`을 항변하는 창작 블랙코미디 연극 `OK. STORY`가 초연 무대를 올렸다.
여기,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시계방을 운영하는 사내가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가게다. 당연히 예전엔 살만 했다. 지금은? 사내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 이제 아내와 딸과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뿐. 보험금을 타는 거다. 사내는 큰 결심을 한다.
또 여기, 떠돌이 청부업자 OK가 있다. 커다란 여행가방에 갖가지 `연장`을 넣고 다닌다. 한때는 맘 잡고 잘 살아보려고 했다. 결혼하려던 여자친구가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록 험한 일을 하지만 그는 `OK`라는 대사를 꾸준히 흘리며 긍정적인 세계관을 감추지 않는다.
연극 `OK. STORY`는 바로 오늘, 그 두 남자가 만난 이야기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내는 OK에게 자신의 다리를 잘라달라고 요청했다. 드디어 그날이 오늘이다. 그러나 계획이 순조롭지 않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OK와 다리 잘릴 두려움에 온갖 핑계거릴 찾는 사내가 실랑이를 펼치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 어느덧 둘은 소주 한 잔 나누며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OK가 오늘 만날 사람은 사내만이 아니었다. 남편을 죽여달라는 아주머니와 부모를 없애달라는 여고생의 의뢰까지 접수한 상태다. 이즈음 극은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이 얽힌 줄긋기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아주머니와 여고생은 사내의 가족이었다. 사내와 그의 아내, 부부의 딸과 그 남자친구까지 이들 모두는 OK의 소중한 의뢰인이다.
연극 `비언소` `썽난마고자` 등에서 비뚤어진 사회현실이나 서민들의 거친 삶에 칼끝 같은 대사를 꽂아온 극단 차이무가 올린 신작이다. 웃지 못할 현실을 코미디로써 비꼬는 특유의 풍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극은 무거움 대신 유머를, 긴장감 대신 코믹을 붙여 극적 반전을 이끈다.
차이무의 대표단원 민복기의 희곡에 배우 민성욱이 연출자로 나서 화제다. `OK` 역에 번갈아 나선 류제승·이중옥, `사내` 역의 황성현 등이 펼치는 `국가대표급 루저` 연기에도 빠져들 수 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다리도 못 잘랐고 보험금을 받는 일에도 실패했다. 하늘엔 일가족이 OK에게 의뢰한 청구서만 흩날리게 됐다. 한바탕 진하게 웃고 나와도 씁쓸한 느낌. 작품이 의도한 바다. 서울 동숭동 PMC소극장에서 31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