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가 F.X. 하르소노가 대표작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1977)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옮겨왔다. 분홍색 크래커로 만든 총을 산더미처럼 쌓아, 과자인지 무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일상을 파고든 폭력성을 고발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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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두운 구석공간에 조명을 받은 분홍빛이 뻗쳐 나온다. 슬금 다가가니 산처럼 쌓인 분홍더미. 그건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시선을 끄는 건 한 가지 더 있다. 총을 만든 소재, 크래커다. 깨물면 바삭 부서지는 담백한 과자 말이다. 이 얼마나 코믹한 상황인가. 결국 ‘핑키’한 색을 따라 다다른 산이 분홍색 크래커로 만든 총더미였다니. 도대체 애들이 장난친 것 같은 이 ‘작품’이 의미하는 게 뭔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더 있다. 플라스틱 음료수병이 빙 둘러 원을 만든 한가운데 흰 천으로 싸맨 무언가가 누워 있다. 죽은 코뿔소 형상이란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한쪽 벽에선 빛바랜 영상이 돌고 있는데. 바닥에 들인 것과 비슷한 장면이다. 음료수병과 코뿔소 모형. 다른 점이라면 둘러싼 군중 사이에 한 남자가 둔탁한 둔기를 휘두르고 있다는 것. 이 섬뜩한 퍼포먼스와 모형이 의미하는 건 또 뭔가.
| 싱가포르 작가 탕다우가 30년 전 퍼포먼스 ‘그들은 코뿔소를 포획하고 그 뿔을 채취하여 이 음료를 만들었다’(1989)의 현장을 재현했다. 당시 작가는 코뿔소의 뿔로 만든 음료를 담아냈던 플라스틱 음료수 병 사이에 죽은 코뿔소 모형을 두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과격한’ 제스처를 선보였더랬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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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소통하지 못할 듯 보이는 두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 1960∼1990년대 아시아의 상황이란 거다. 한쪽에선 이전 시대의 사회·문화적 관습에 저항하는 변화를 열망했고, 다른 한쪽에선 민중을 억누르는 독재체제를 향해 투쟁의 비수를 꽂아댔다. 또 한쪽에선 빠른 도시화·산업화가 몰고 온 소비자본주의의 역기능에 시달렸고, 그 다른 한쪽에선 권력·제도를 비판하는 이슈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혼란과 격동, 저항과 연대가 아시아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뻗쳐 나온 그때란 얘기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60년을 거스른 당시의 이 상황이 한 공간에 모였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펼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이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인도·미얀마·캄보디아 등 아시아 13개국에서 날아온 작가 100명의 작품 170여점을 걸고 세웠다. 당대에 기고 날았던 각국 원로급 작가의 색과 행위, 목소리를 망라한 만큼 대규모다. 탈식민과 민족주의, 근대화와 민주화운동, 전쟁반대와 이념대립, 도시개발과 환경문제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단 하나의 키워드 아래 묶어냈는데, ‘세상에 눈을 뜬 현대미술’이란 거다.
| 필리핀 작가 레나토 아블란(66)의 ‘민족의 드라마’(1982). 1976년 설립한 필리핀 젊은 미술운동가 단체인 카이사한의 창립멤버로 활약한 작가는 당시 마르코스 독재정권으로 고통 받던 민중의 모습을 마치 연극무대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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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비판의 역사…각국 원로급 총출동
인도네시아에 현대미술을 상륙시킨 ‘아버지’로 불리는 F.X. 하르소노(70)는 자신의 대표작을 들고 한국을 직접 찾았다.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1977)다. 1965년 수하르토 통치가 시작된 이후 검열의 1순위가 됐던, 그 예술을 주도한 신미술운동의 실험적인 풍자였다. 이전과는 달리 설치·레디메이드·해프닝·오브제 등으로 관람객의 자발적인 반응까지 유도해낸 선도적인 미술이라고 할까. “실제 ‘분홍 크래커 총’을 제작했을 때 모여든 아이들이 크래커 총을 집어먹기도 했다”고 작가는 회고했다. 하지만 의도는 따로 있단다. 일상을 파고든 폭력성. 과자인지 무기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한 사회적 상황 말이다.
싱가포르에선 탕다우(76)가 나섰다. 30년 전 플라스틱 음료수병과 코뿔소 모형을 두고 퍼포먼스를 벌인 그이다. ‘그들은 코뿔소를 포획하고 그 뿔을 채취하여 이 음료를 만들었다’(1989)는 당대 소비자본주의가 잉태한 환경문제를 환기하려 제작·연출한 작품. 줄줄이 세운 병은 열을 내리는 치료에 효과적이란 코뿔소의 뿔로 만든 음료를 담아냈던 거다.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의적 제스처를 과격하게 내보였던 40대 예술가가 이젠 70대가 돼 당시를 재현한 영상과 모형 앞에 섰다. 탕다우는 이 작품 외에도 ‘도랑과 커튼’(1979)을 함께 선뵀다. 도랑의 흙물이 잔뜩 밴 커튼 7조각을 늘어뜨린 작품은 땅에 대한 관심이란다. 자신이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철거된 이후 반영한 소재라고 했다.
| 싱가포르 작가 탕다우가 자신의 작품 ‘도랑과 커튼’(1979) 곁에 섰다. 도랑의 흙물이 잔뜩 밴 커튼 7조각을 늘어뜨린 작품은 작가 자신이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철거된 이후 생긴 땅에 대한 관심을 담아낸 것이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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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저항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작가들이 줄줄이 나섰다. 조각·판화가 오윤(1946∼1996), 화가 김구림(83)·윤석남(80)·이강소(76)·민정기(70), 설치미술가 이승택(87) 등이다. 불·연기·안개·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형체 없는 조각’을 추구해온 이승택이 관습적 미술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1988), 한강 살곶다리 부근의 잔디에 불을 놔 삼각형 흔적을 남긴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1970) 등이 나왔다. 김구림은 “경찰에 연행돼 가던 작업”이라며 “모든 것이 내 캔버스란 생각으로 시도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 불리는 작가 윤석남은 입체조각 ‘어머니 2-딸과 아들’(1992)을 선뵀다. 어머니의 가족사진 10장을 배경으로 폐목에 채색한 등신대 크기의 어머니와 딸, 아들을 만들어 세웠다. 지난 40여년을 일관되게 이어온 주제 ‘어머니’를 통해 “한국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 화가로, 또 실험미술의 1세대로 활약한 원로작가 김구림이 자신의 대표적 퍼포먼스를 기록한 ‘현상에서 흔적으로: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1970) 앞에 섰다. 작가는 “우리가 젊을 때는 힘든 세상이었다”며 “언젠가 이런 기회가 한 번쯤 있을 줄 알았지만 아시아 작가들이 한 데 모인 이번 전시가 너무 영광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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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 불리는 작가 윤석남이 자신의 작품 ‘어머니 2-딸과 아들’(1992) 옆에 섰다. 폐목에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해 제작한 6점의 입체조각 ‘어머니 연작’ 중 한 점이다. 작가는 “1979년 마흔에 그림을 시작해 지금껏 어머니를 그려 왔다”며 “어머니 존재를 통해 한국여성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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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중에선 1980년대 군사정권이 장려한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암시한 민정기의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1981), 조선시대 불화 ‘화엄사 시왕도’를 차용해 1980년대 소비문화를 지옥으로 풍자한 오윤의 ‘마케팅Ⅰ: 지옥도’(1980)가 먼저 보인다. 이들 사이로 최근 단색화시장에서 뜨거운 이우환(83)과 하종현(84)의 옛 작품도 발길을 붙드는데. 이우환은 철·솜으로 거대한 덩어리를 꾸며낸 ‘관계항’(1969/1988)을, 하종현은 패널에 스프링을 잔뜩 붙인 ‘무제’(1973)를 내놨다.
|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작가인 오윤의 ‘마케팅Ⅰ: 지옥도’(1980). 조선시대 불화 ‘화엄사 시왕도’를 차용해 소비문화가 팽배했던 1980년대 한국사회를 지옥으로 풍자했다. 코카콜라·맥심 등 당시에 인기를 끌던 광고문구를 거침없이 혼용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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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위미술 대표작가 이승택의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1988). 전통적인 조각·조형원리를 거부한 작가가 ‘형체 없는 조각’으로 관습적인 미술에 저항한 행위미술의 기록이다. 자신이 그린 화판에 불을 놓아 한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장면을 촬영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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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판 ‘그날이 오면’…성찰의 무게감
가진 건 몸뚱이뿐이었다고 할까. 전시에는 자신의 몸을 도구로 쓴 작품이 유독 많다. 한 점, 한 점이 나라마다의 모진 족쇄를 감고 있고, 사회적 금기와 이데올로기에 저항한 행동주의를 입은 터다. 그나마 국가대항전은 지양한 모양새다. 딱히 어느 나라랄 것도 없이 온몸으로 항거한 예술혼을 몸 밖으로 꺼낸 대서사가 읽힌다.
다만 ‘왜 굳이 지금 한꺼번에 들춰야 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해결을 못 봤다. 서구가 자극한 대로가 아닌, 모처럼 세상에 ‘스스로 눈뜬’ 아시아의 거대한 예술적 움직임이 21세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때 ‘공명’을 이뤘다 할 이들이 지금은 어찌 흩어졌는지 혹은 연합했는지도 모호하다. 애써 다들 모아 수고롭게 올라섰는데 앞이 꽉 막힌 형국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막연히 그리워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초상’이다. 다가서려면 어느 정도의 ‘공부’도,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단 얘기다. ‘아시아의 그때는 왜 이토록 하나같이 무겁고 어두워야 했나’에 대한 성찰이 저절로 떠오르니까. 아시아판 ‘그날이 오면’, 바로 그거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 최근 단색화시장을 달구고 있는 이우환의 옛 작품 ‘관계항’(1969/1988). 철과 솜이란 이질적인 소재를 결합해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었다.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비틀거나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기존의 편견·관습을 깨는 작업 역시 당대 예술가들이 추구한 도전·저항의식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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