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둘과 한 집서 동거” 쓰레기장의 나체 女 시신…쏟아진 증언[그해 오늘]

1988년 미국 조지아주 한인 여성 살인사건
지난해 10월, 35년 만에 DNA 감식 기술로 신원 파악
실종 당시 26세 한인 여성 김정은 씨로 밝혀져
현재까지 용의자 파악 못해 난항
美 수사당국 “김 씨 관련 제보 받고 있다”
  • 등록 2024-02-14 오전 12:00:32

    수정 2024-02-14 오전 12:24:22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1988년 2월 14일 일요일, 어느 화창한 밸런타인데이에 미국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 ‘밀렌’의 쓰레기 수거함에서 온몸이 테이프로 감긴 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미국 조지아수사국은 1988년 2월 변사체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이 당시 26세였던 한인 김정은 씨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사진 왼쪽은 김 씨의 생전 모습, 오른쪽 위는 몽타주와의 합성 사진, 아래는 실종 당시 배포된 몽타주. (사진=조지아수사국, 연합뉴스)
당시 여행용 가방에 담겨있었던 나체 상태인 시신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로, 전깃줄 같은 와이어에 발목이 묶여 있었다. 외상이나 성폭행 흔적은 없었으며 약물 반응 결과 역시 음성으로 당시 조지아수사국(GBI)은 피해자가 질식사한 지 4~7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조지아수사국은 시신의 지문과 치아기록 등을 채취해 실종자 명단과 대조하는 동시에, 시신의 몽타주를 제작해 전단을 배포했다. 수사 당국이 당시 배포한 몽타주 속 여성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큰 눈, 고르지 않은 치열,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 당국은 시신의 신원을 찾지 못했다. 유전자정보(DNA) 기술을 활용했지만 당시 기술 수준이 미흡했던 탓에 성과가 없었다. 다만 아시아 인종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만 얻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35년이 흐른 지난 2023년 10월, DNA 감식 기술을 통해 변사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조지아주 하인스빌에 거주하던 한국인 여성 김정은(실종 당시 26세) 씨였다. 또 그의 여동생이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조지아수사국에 따르면 김 씨는 1981년 스무 살의 나이에 경기도 평택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110km 남짓 떨어진 작은 도시 밀렌의 쓰레기 수거함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한 시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은 김 씨가 나체로 발견된 것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신원 파악이 가능한 옷을 벗김으로 해서 신원 확인에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 이에 신원 파악으로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오는 것이 치명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의 소행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시신은 밍크 이불에 싸여 있었는데 김 씨의 지인들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불은 그때 당시 유행했던 것이었다. 미국사람들이 좋아해서 한국 사람들이 선물도 많이 했다”라며 “가방은 한국에서 온 이민 가방이다. 80년대 한국 이민자에게 필수였다”라고 설명했다.

또 사건이 발생하고 10년 뒤인 1998년, 재감정을 진행한 결과 테이프에서 갈색 카펫 섬유가 발견되기도 했다. 정황상 실내에서 범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김 씨의 지인들은 “김 씨의 트레일러에 갈색 카펫을 깔아 놓은 것을 기억한다”라고 기억했다.

당시 김 씨는 결혼 2년만에 남편과 이혼한 뒤 라운지에서 일하며 동네 시장 아들 마이클과 만났다. 마이클은 15살 연상으로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정은 씨와 있을 때면 잠잠해졌다. 이에 김 씨는 마이클의 아버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마이클과 함께 살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김 씨는 라운지에서 미군 조를 알게 됐다. 또래였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이클과 함께 세 사람은 한 집에서 살며 기가 막힌 동거 생활에 들어갔다. 이러한 와중 김 씨와 조는 결혼까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인들은 조를 의심했다. 김 씨의 지인들은 “김 씨는 키도 크고 정말 예뻤다. 이후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가 그랬구나 싶었다. 평소 질투가 많고 욱하는 성격이었다”라고 말했다.

급기야 조는 질투에 눈이 멀어 김 씨의 친구들까지 의심했고, 김 씨에 대한 조의 의심과 감시가 심해지던 상황에 김 씨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조는 결혼까지 약속했던 김 씨가 사라졌는데도 실종 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 역시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수사 당국 역시 조의 행방을 찾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은 김 씨 같은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한다고 입을 모았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민을 떠난 한국 여성은 10만명에 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잊을 만 하면 들려왔고, 지금까지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이들이 많다는 것.

전문가는 “당시 미군과 결혼해 온 여성들에게 사회적 평가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한인 사회에서도 배척당했다”며 “가족이 해체됐을 때 혼자 남는 상황에 처했을 거다. 사회적 지지망도 취약했을 거라고 보인다. 그것이 이 사건의 배경요인으로 보인다. 사고 발생 후 신원 파악도 안 되지 않았냐. 취약 계층에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돌보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 조지아수사국 측은 지난해 10월 “김 씨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으며, 사망한 김 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의 제보를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것이며,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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