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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선명하게 갈렸다. 장사가 잘된 집과 장사가 잘되지 않은 집. 잘된 집에선 평균 90.5%가 팔렸고 잘되지 않은 집에선 65%에 그쳤다. 10개를 내놔 9개 이상을 판 집과 6개 반밖에 팔지 못한 집의 차이 말이다. 이 둘을 가른 주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한국’이다.
지난주 홍콩의 미술품 경매시장은 바빴다. 11월 29일 서울옥션의 ‘제33회 홍콩경매’가 열렸고, 30일과 1일에는 해외 경매사인 필립스옥션의 ‘홍콩경매’가 열렸다. 하지만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앞의 65%는 서울옥션 홍콩경매의 낙찰률이고, 평균 90.5%는 필립스옥션 홍콩경매의 낙찰률이니 말이다.
서울옥션이 이번에 진행한 홍콩경매를 향한 미술계의 기대는 자못 컸더랬다. 비록 홍콩 현지가 아닌 서울 강남에서 진행한 ‘반쪽짜리’ 홍콩경매였어도 말이다. 2년 4개월여의 공백을 깨고 오랜만에 홍콩 미술시장에 다시 나설 수 있었으니까. 사실 그 공백이 한국 미술시장을 휘청이게 할 만큼 홍콩은 여전히 국내 미술품이 대거 공략할 수 있는 ‘자금력 있는 해외시장’인 거다. 84점을 출품하며 약 211억원 규모로 꾸렸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65%의 낙찰률만큼이나 낙찰총액도 ‘별로’였다. 예상한 규모에서 절반을 조금 넘긴 125억원을 간신히 써냈다. 경매 시작 전 이미 출품 취소된 작품이 7점이었고, 경매 중 유찰된 작품이 27점이다. 그나마 낙찰된 50점 중엔 미술품이 아닌 ‘희귀 위스키’가 6점 끼어 있었다.
반면 필립스옥션 홍콩경매는 ‘훨훨 날았다’. 이틀간 160점을 낙찰시켜 3억 5085만홍콩달러(약 586억 4844만원)어치의 매출을 올렸다. 둘째 날인 이브닝세일의 낙찰률은 무려 97%에 달하기도 했다(첫날 데이세일은 84%).
단색화 거장, 필립스·서울옥션 유찰·취소가 절반 이상
해외 미술품 경매사, 그것도 세계 3대 경매사에 드는 필립스옥션을 굳이 서울옥션과 비교선상에 끌어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필립스옥션 홍콩경매에 ‘한국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이 나섰기 때문이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No. 77103’(1977·162.2×112㎝)과 ‘무제’(바람으로부터, 1982·116.8×91㎝), 박서보의 ‘묘법 No.160408’(2016·130×200㎝), 윤형근의 ‘엄버블루 76’(1976·31.2×41㎝) 등 4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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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선 이 세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반응이 좀 달랐을까. 이우환·박서보·윤형근 작가의 출품작은 5점. 이 중 팔린 건 2점뿐이다. 이우환의 ‘다이얼로그’(2015·227.0×182.0㎝)가 13억원을 부른 새 주인을 따라나섰고, 박서보의 ‘묘법 No. 060409’(2006·260×160㎝)가 5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박서보의 다른 2점인 ‘묘법 No. 050117’(2005·130×160㎝)과 ‘묘법 No. 890927’(1989·70.5×103.0㎝), 윤형근의 ‘번트 엄버 & 울트라마린 블루’(2022·162×162㎝)는 유찰행렬에 끼어야 했다.
사실 이름만으로도 함부로 들이댈 수 없는 쟁쟁한 작가들이다. 김환기 이후 국내외 미술시장을 가름할 대표주자들인 데다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블루칩 작가’기도 하고. 게다가 지난해는 물론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던’ 작가와 작품들이 아닌가.
결국 해외 경매사들이 날아다니는 홍콩에 가서도 ‘한국’은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한국 미술품 경매사는 기운이 쭉 빠졌고, 한국 작가는 경매사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맥을 못 췄다. 조정기에 들어선 국내 미술시장이 고스란히 홍콩으로까지 옮겨간 모양새가 됐다고 할까.
서울옥션, 납득하기 어려운 ‘낙찰가 포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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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요시토모 나라의 ‘야간산책’(Nachtwandern, 1994)이 1900만 5000홍콩달러(약 31억 7684만원), 야요이 쿠사마의 ‘인피니티 네츠’(GMBKA, 2013)가 1259만 2000홍콩달러(약 21억 487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서울옥션 홍콩경매의 성과는 쿠사마 야요이의 80호 대형크기(112×145.5㎝) 초록 ‘호박’(OTRSSA, 2014)이 냈다. 64억 2000만원에 낙찰되며 그간의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지금껏 국내 미술품 경매사가 거래한 쿠사마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비싼 작품이 된 동시에, 올해 국내 경매를 통해 팔린 모든 작품 중 가장 비싼 낙찰작이 된 거다.
다만 이 ‘호박’의 낙찰가를 두고, 서울옥션은 이제껏 사례가 없던 ‘구매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으로 발표해 물의를 빚었는데. 한동안 모든 경매결과에 대해 함구해오던 서울옥션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내면서, 여기에 명시한 ‘호박’의 낙찰가를 64억 2000만원이 아닌 ‘76억원’으로 써낸 거다. 사실 ‘호박’의 새 주인이 지불해야 할 가격은 76억원 정도가 맞다. 서울옥션이 모든 경매에 붙이는 구매수수료는 18%. 그에 따라 계산한, 낙찰가 64억 2000만원에 대한 구매수수료가 11억 5560만원이니, 그 둘을 합치면 75억 7560만원, 대략 76억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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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유독 ‘호박’에만 구매수수료를 더한 낙찰가로 성적을 부풀린 데 있다. 서울옥션이 이번 홍콩경매를 예고할 때 제시한 ‘호박’의 추정가는 80억∼180억원. 하지만 이날 경매는 “추정가를 조정한다”는 경매사의 짧은 멘트와 함께, 낮은 추정가보다 무려 21억원을 낮춘 59억원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그마저도 가격을 크게 끌어올리지 못했고 64억 2000만원에서 멈춰야 했던 터. 결국 더 비싸게 낙찰된 것으로 보이기 위해 ‘낙찰가 포장’까지 해야 할 만큼 ‘좋지 않은 상황’을 스스로 방증한 셈이다.
이외에 서울옥션은 장마리아의 ‘무제’(2022) 2900만원, 우국원의 ‘블랙캣’(2020)은 9600만원, 이배의 ‘브러시스트로크 A22’(2021) 1억 4000만원, 정영주의 ‘도시: 사라지는 풍경 515’(2018) 6200만원 등, 미술품 경매에서 중저가에 해당하는 1억원 안팎의 작품을 주로 팔아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한국’으로선 여전히 멀고 험난한 ‘홍콩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