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高高한 마천루 숲 아래 뜨겁고 끈적한 홍콩을 엿보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 뒤섞인 '홍콩'
홍콩 음식, 문화와 역사 엿볼 수 있어
밀크티와 토스트, 중국 국수 내놓는 '차찬텡'
낡은 악청빌딩엔 다양한 인종과 풍습이 혼재해
e스포츠 등 이벤트 등 개발해 한계 극복
  • 등록 2018-08-31 오전 12:00:01

    수정 2018-08-31 오전 8:19:23

홍콩 익청빌딩. ‘ㄷ’자 모양의 대형 주상복합 건물로 1층과 지하에는 상가, 그 위로는 아파트로 구성돼 있다. 낡은 건물 외관, 다닥다닥 붙은 집은 오래 전 한 번쯤 보았던 홍콩 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실제로 여러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홍콩 노스포인트 춘영시장 사이로 트램이 지나가고 있다. 춘영시장은 홍콩의 전형적인 전통시장으로 그 위로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150년 역사를 지닌 타이핑퀀의 ‘스위스 소스 치킨윙’. 이 음식의 유래는 홍콩의 영국인이 이 요리를 시켜 맛본 후 양념이 달다는 뜻으로 ‘스위트(달다 소스’라고 했는데 , 이를 ‘스위스’로 알아들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처럼 홍콩에는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문화가 존재한다.


[홍콩=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마천루가 즐비한 홍콩 센트럴의 허름한 식당, ‘타이핑퀀’(太平館). 1860년대 중국 본토에서 문을 연, 무려 150년의 역사를 지녔다. 이곳에는 홍콩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 있다. ‘스위스 소스 치킨윙’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스위스 양념 닭날개’다. 이름만 보자면, 도대체 무슨 음식인지 상상이 안 간다. 에피소드가 있다. 식민지 초기, 홍콩의 영국인들이 타이핑퀀 찾아 이 요리를 시켰다. 그들은 양념이 달다는 뜻으로 ‘스위트(달다) 소스’라고 했는데, 이를 ‘스위스’로 알아듣는 바람에 ‘스위스 소스’가 됐다는 이야기다. 홍콩에는 이런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홍콩 문화여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보존해 새로움을 더한다는 홍콩인의 지혜도 곳곳에 묻어난다. 그래서, 홍콩을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체득하는 또 다른 경험이다.

차찬텡은 차와 음식을 내는 ‘작은 점포’라는 뜻으로 늘 바쁜 홍콩인이 두 가지 음식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밀크티와 토스트, 중국식 국수를 곁들여 먹는 다는 점이다. 홍콩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음식문화이다.


◇동서양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들다

홍콩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맛집이 있다. 미셸린 가이드 홍콩·마카오판만 봐도 그 두께가 가볍지 않다. 별을 받은 레스토랑만 총 81개(3스타 8개, 2스타 16개, 1스타 57개)다. 여기서 마카오의 11개를 빼도 무려 70개의 별이 남는데, 이는 뉴욕이 받은 71개의 별과 거의 같은 숫자다. 가성비 높은 캐주얼 레스토랑이나 이국적인 길거리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도 홍콩은 천국 그 자체다. 길거리 음식으로 미셸린 별을 받은 곳도 존재해서다.

홍콩 음식문화는 이 사회를 읽어내는 중요한 문화적 단서다. 홍콩 시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레스토랑만 보더라도 동·서양을 넘나든다. 중국 광둥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서양 요리법의 영향을 받아서다. 이를 바로 보여주는 곳이 ‘차찬텡’(茶餐廳)이다. 차와 음식을 내는 ‘작은 점포’라는 뜻이다. 늘 바쁜 홍콩인이 두 가지 음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우리로 치자면 ‘분식점’ 같은 곳이다. 밀크티와 토스트, 마카로니 수프와 페이스트리, 중국식 국수 등을 곁들여 먹는 다소 특이한 식사법이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토스트와 국수 세트 메뉴를 시켜 먹는 홍콩인의 모습은 낯선 여행자에게 새로움, 그 자체다.

홍콩 센트럴 지역에 있는 주윤발의 단골식당인 ‘란퐁유엔’은 늘 관광객과 홍콩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에서는 실크 스타킹에 우려내는 밀크티를 꼭 맛봐야 한다.


차찬텡은 어디에나 있다. 그중에서도 1950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미도카페’(美都餐室)는 홍콩인이 유독 사랑하는 곳이다. 타일과 녹색 창틀, 1950년대 소품 등 홍콩 특유의 예스러운 인테리어는 홍콩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선 것 같다. 홍차에 커피를 섞은 밀크티와 달걀을 입혀 튀긴 두툼한 프렌치 토스트의 조합이 최고다. 주윤발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란퐁유엔’(蘭芳園) 도 대표적인 차찬탱 중 하나다. 1952년 문을 연 이곳은 66년 전통의 센트럴 본점 이외에 침사추이 성완에도 분점이 있다. 실크 스타킹에 우려내는 밀크티는 꼭 맛봐야 할 란퐁유엔의 명물. 여기에 사태 라면도 인기 메뉴다.

위태로운 간판이 거리를 가득채운 홍콩 센트럴의 소호 거리. 형형색색의 간판들로 거리가 빼곡하다.


◇홍콩을 더 홍콩답게 만드는 것들

어수선한 전깃줄과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오죽하면 ‘간판의 도시’라고 할까. 그만큼 홍콩 거리는 형형색색의 간판들로 빼곡하다. 80~90년대 홍콩 영화에서 보던 그 모습처럼 말이다. 첨단 디지털 광고 보드와 아날로그적인 낡은 간판들을 배경으로 첨단과 공존하는 아날로그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다. 그 간판들에서 여행자는 홍콩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메타포(metaphor·은유)를 느낄 수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이미지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빼곡하고, 촘촘하게 들어선 건물들이다. 낡고 허름한, 최첨단의 마천루의 건물에서도 홍콩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주룽반도의 ‘익청빌딩’이다. 익청빌딩에는 다닥다닥 붙은 주택처럼 다양한 인종과 풍습이 그 안에 혼재해 있다. 건물과 건물을 블록처럼 이어 붙인 그곳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는 어둠만 흐르는 홍콩의 민낯이다. 해안선의 화려한 건물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서민적이지만 평당 1억 원을 호가하는 집값을 생각한다면 홍콩인의 각박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익청빌딩’이다.

홍콩 노스포인트 도로변으로 트램이 지나가고 있다. 도로 옆으로는 홍콩의 전형적인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건물과 건물을 블록처럼 이어 붙인 그곳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는 어둠만 흐르는 홍콩의 민낯이다.


트램에서도 옛것을 대하는 홍콩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행수단이다. 저렴한 가격에 이만한 교통수단이 없어서다. 홍콩에 트램이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04년. 현재는 딱 6개의 노선만을 운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주룽반도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효율성만 본다면 트램이 홍콩에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건 불가사의하다. 우선 느리다. 성완에서 사우케이완 역까지. 우리의 지하철 격인 MTR를 탄다면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트램은 거의 1시간을 족히 달린다. 여기에 트램에는 에어컨이 없다. 사철 무덥고 습한 홍콩에서 에어컨이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홍콩 트램은 살아남았다. 바로 홍콩인들의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홍콩인들은 좁은 골목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오늘에 어제를 더해 내일을 만들다

홍콩은 멈추지 않는 도시다. 홍콩은 서울의 1.8배에 불과한 면적을 가지고 있어 천연관광자원에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어서다. 이 같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홍콩 정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 아시아 대표 ‘미식 여행지’라는 이미지에 ‘와인’을 콘셉트로 한 ‘홍콩 와인&다이닝 페스티벌’도 이 같은 절박함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더불어 마천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불빛 쇼와 하이킹 등 다양한 여행 코스와 콘셉트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홍콩섬의 마천루와 홍콩 항구, 그리고 청마대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홍콩 사이클링 대회’도 마찬가지다.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올해로 2회째 열린 게임과 음악애호가들의 축제 ‘EMFHK 2018’. 홍콩은 천연관광자원의 명백한 한계로 인해 다양한 이벤트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도심 레이싱 대회인 ‘포뮬러 E’와 ‘e스포츠 국제대회’까지 최근 홍콩에서 열렸다. 특히 홍콩에서 ‘e스포츠 국제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스포츠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홍콩 정부는 관광 콘텐츠로 개발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올드타운센트럴은 홍콩의 다양한 시도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올드타운센트럴은 성완과 센트럴지역을 아우르는 곳으로, 이곳에는 영국이 홍콩을 점령하기 위해 처음 발을 디딘 역사적인 장소인 ‘포제션스트리트’와 혁명가 쑨원이 소년시절 다녔다는 등굣길을 관광 자원화했다. 1951년에 지어진 옛 기혼경찰기숙사(PMQ)를 증·개축한 공방도 볼 수 있고, 최근에는 ‘타이퀀’(大館)도 헐리우드로드에 문을 열었다. 옛 감옥과 법정, 경찰청 등 16개 국가지정 기념건물을 고쳤다. 또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2동의 건축물까지 공을 들였다. 이곳에서는 홍콩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과 감옥체험관 등이 들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홍콩 센트럴과 미드레벨을 잇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세계 최장의 옥외 에스컬레이터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 할리우드로드와 캣스트리트, 소호거리 등 관광지를 지난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2008) 등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여행정보

△가는길=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퍼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반 정도 걸리며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여행팁= 덥고 습도가 높은 홍콩의 여름은 6월부터 9월까지. 9월 말에 우기가 끝나고 맑고 쾌청한 가을이 시작한다. 홍콩의 공식통화는 홍콩달러다. 매매기준율로 1달러는 141원이다. 홍콩은 무비자로 최장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여행자에게는 대중교통과 음식점, 카페, 상점 등에서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페카드 ‘옥토퍼스’가 유용하다. 버스, 트램, MTR 등 대중교통 수단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보증금 50달러를 포함해 최소 150달러 이상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다. 공항고속철도 이용을 포함한 옥토퍼스 트래블패스카드, 24시간 무제한으로 MTR를 탈 수 있는 옥토퍼스데이패스도 있다.

소호거리에서 고기국수로 유명한 카우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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