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물·불, 그리고 세월이 빚은 山에 숨고 싶어라

은둔자의 안식처 경북 청송 주왕산
국내 두번째로 세계지질공원 등재
24곳 지질명소 중 주왕산에만 9곳 집중
급수대, 주왕암, 용추협곡 등 명소이어져
백석탄, 꽃돌 등도 볼거리
  • 등록 2017-07-14 오전 12:00:01

    수정 2017-07-14 오전 12:00:01

주왕산 주왕굴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급수대와 병풍바위


[청송=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지난 5월 경북 청송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제주에 이어 국내에서 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했다는 내용이었다. 유네스코는 ‘특별한 과학적 중요성이나 희귀성 또는 아름다움을 지닌 지질현장’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정의한다. 여기에 생태학적·고고학적·역사적·문화적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35개국에 127개소에 불과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청송이 해낸 것이다. 지구의 역사가 청송 곳곳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중 주왕산은 청송 세계지질공원의 핵심이다. 총 24곳의 지질명소 중 무려 9곳이 주왕산에 집중돼 있다. 우리가 몰랐던 주왕산의 또 다른 모습이다. 더불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발아래 살아 있는 지구의 맥박을 느껴보기 위해 청송으로 향한다.

주왕산 대전사 경내 연꽃과 기암단애
◇불과 불, 그리고 시간이 만든 ‘주왕산’

용추협곡
경북 청송의 주왕산(周王山). 주왕산은 독특하다. 멀리서 보이는 봉우리 형상부터 특이하다. 마치 손가락이 땅을 뚫고 올라온 듯, 바위가 솟아있다. 언뜻 보면 거인이 산봉우리를 움켜진 형상이다.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단애의 모습에 주왕산의 다른 이름은 ‘석병산’(石屛山)이라고 불린다.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 자리한 대전사(大典寺) 입구에 서면 기암단애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마치 손오공을 막는 부처님 손바닥처럼 거대한 바위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주왕산의 이런 독특한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 6400만 년 전 이곳에서 대규모로 화산이 폭발했다. 그리고 화산재가 쏟아져 나왔다. 통상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가 하늘로 솟구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주왕산 화산 폭발은 달랐다. 위가 아니라 옆으로 화산재가 폭풍처럼 흘러내렸다. 로마 폼페이를 덮친 화산재와 같다. 옆으로 흘러내린 화산재는 뜨겁다. 온도가 무려 800도에 이른다. 잦은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엄청난 압력과 고온 때문에 서로 엉겨 붙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암석을 용결응회암이라 부른다. 주왕산 일대에 최고 335m까지 화산재가 쌓여 응회암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두껍게 쌓인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뜨거웠던 용결응회암은 서서히 식기 시작한다. 부피가 수축하면서 4~6각 형태로 갈라진다. 갈라진 틈은 위에서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다. 수직 방향의 틈이 많아서 침식 과정도 독특하다. 틈을 따라 돌기둥이 떨어져 깎아내린 듯 침식한다. 병풍처럼 늘어선 주왕산 절벽과 암석 단애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주왕산의 기묘한 풍광은 바로 불과 물과 시간의 합작품인 것이다.

용추협곡
◇ 용암이 만든 절경 속으로 걷다

주왕산 지질명소 탐방은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 구간을 왕복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총 길이 9.1km에 3시간여가 걸린다. 탐방로는 경사가 완만하고 신비스런 계곡을 따라 곳곳에 비경이 깃들여 있다. 들머리는 대전사다. 대전사를 출발해 거대한 바위를 품은 봉우리들을 감상하며 주방천 맑은 계곡을 끼고 걷다 보면 이내 자하교 쉼터에 다다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주왕암이 나오고, 절 뒤편으로 융단 같은 이끼가 절벽과 바위를 덮은 협곡을 지나면 수직 절벽 하부에 깊이 2m의 주왕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왕암에서 용추협곡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절벽을 끼고 가는 길이다. 이 절벽의 이름은 급수대 주상절리다. 암벽 면이 칼로 다듬은 듯, 반듯하게 각진 모양이다. 돌기둥들이 당장에라도 떨어져 내릴 듯 수직으로 붙어 있다. 마치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같기도 하고,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걸작인 성가족교회의 외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특이한 경관 때문에 일찌감치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퇴적된 화산재가 온도와 압력에 의해 용결되고 식는 과정에서 수축이 일어나 형성된 것으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았다는 학소대와 사람의 옆모습을 닮은 시루봉을 지나면 탐방로는 용추협곡으로 이어진다. 양쪽 벼랑이 잇닿을 듯한 협곡의 초입은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깍아 자른 듯 한 단애가 둥그렇게 둘러서 있고, 바위틈을 뛰어내린 폭포수는 선녀가 목욕할 만큼 커다랗고 맑은 소(沼)를 이룬다. 가히 주왕산 최고의 절경이라 할 만하다.

용추협곡을 뒤로 하고 30분 정도 걸으면 용연폭포다. 주왕산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특이하게 폭포 옆 암벽에 3개의 굴이 파인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맨 앞 동굴이 있던 자리에 폭포물이 떨어졌다. 그 힘으로 하식동굴이 파였다. 그러다 폭포 자리가 침식으로 깎이면서 상류 쪽으로 조금 후퇴했다. 그곳에서 두 번째 하식동굴을 만들었고, 다시 세 번째 자리로 후회해 또 동굴을 만들었다. 세월 따라 움직이는 폭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주왕산은 이처럼 화산재로 만들어진 바위 지형이 변화를 생생히 보여주는 ‘지질학 교과서’인 것이다.

청송 8경 중 제1경인 백석탄
◇ 하얀 돌이 반짝이는 개울 ‘백석탄’

청송 8경중 1경인 백석탄
청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질명소 중 하나가 백석탄이다. 백석탄은 ‘하얀 돌이 반짝이는 개울’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경치좋기로 소문난 청송에서도 최고의 비경으로 치는 곳이다. 하얀 바위들 사이로 푸른 계곡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신선이 산다는 ‘선계’를 연상케 한다.

안덕면 고와리를 흐르는 하천을 따라 개울 바닥의 흰 바위가 오랜 세월 동안 독특한 모양으로 깍여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의 구멍 난 지형이다. 포트홀(Pot hole)‘이라 부르는 돌개구멍이다. 구혈이라고도 부른다. 모래나 자갈이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암반을 마모시켜 발달하는 지형이다. 이곳 바위가 흰빛을 띠는 것은 풍화에 강한 백색 광물인 석영과 장석이 많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대인 1593년 왜구에게 군사를 잃은 고두곡(高斗谷)이란 장수가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 마음을 달랜 후 ’고와동‘이라 불렀고, 이후 인조 때 경주사람 김한룡(金漢龍)이 이곳 풍광에 반해 마을을 만들고 고계(高溪)라 칭했다고 한다. 백석탄은 고퇴적 환경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쪽부터 역암·사암·이암이 차례로 극명하게 경계를 이루며 형성돼 있어서다. 지질학 초보자나 일반인이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다.

청송에는 ‘꽃돌’이라 불리는 특이한 돌이 있다. 꽃돌은 지질학적으로 ‘구과상 유문암’이라고 한다. 화산암 속에 조성이 다른 광물이 동심원 모양이나 방사상으로 스며들어 일정한 띠를 이룬 것이다. 마치 화려한 꽃이 만개한 모습이라고 해 꽃돌이라 부른다. 꽃 종류도 국화나 해바라기, 달리아 등 다양하다. 꽃돌은 7천만 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유문암의 틈을 채우고 급격하게 식으며 형성됐다.

명궁약수가든의 누룽지백숙
◇여행메모

△가는길= 서울에서 출발하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안동에서 34번 국도로 접어들어 1시간을 내리 달려야 청송에 이를 수 있다.

△잠잘곳= 최근 대명리조트 청송이 들어섰다. 여기만의 장점은 바로 온천. 황산염 광천 온천 ‘솔샘온천’으로 지하 780∼1000m 암반에서 끌어올린 섭씨 28∼31도의 약알칼리성 온천수를 사용한다. 리조트 일부 객실에서는 주왕산 전경과 함께 아침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먹을곳=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의 청솔식당은 청송백반정식이 대표메뉴로 유명하다. 청송 지역의 산나물과 지역 농산물로 상을 꾸린다. 닭요리로 유명한 명궁약수가든은 누룽지백숙과 함께 닭고기를 다져 떡갈비처럼 구워낸 닭 불고기, 닭 날개 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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