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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이중섭·이대원·장욱진·천경자 등 근현대 구상화가, 김환기·정상화·박서보·윤형근·이우환 등 단색·추상화가, 여기에 ‘호승첩’ ‘동국여지지도’ ‘백자청화접시’ 등 귀한 고미술. 좀더 멀리 나가선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 해외 인기작가. 웬만한 작품은 다 있다. 경매 단골작가는 물론 흔치 않게 이름을 올린 작가도 보인다. 이들이 케이옥션 ‘6월경매’에 총출동한다.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진행하는 6월경매에 나선 작품은 210점. 전부 122억원어치다.
이번 경매가 특별한 건 흔히 ‘얼굴마담’ 격의 대작이 빠졌다는 거다. 김환기의 점화 등이 주로 그 역할을 담당하며 낙찰총액을 끌어올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출품작이 크게 늘었다. 일반적으로 150~170점 안팎이던 작품 수를 210점까지 끌어올렸다. 유명작가의 소품과 종이작품까지 골고루 판매대를 꾸며내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천경자의 또 다른 미인 ‘길례언니’ 12억원 나와
천경자의 또 다른 미인이 이번 경매에선 단연 화제다. 1982년에 그린 ‘길례언니’다. 높은 추정가 12억원에 선뵌다.
천 화백은 그림도 많이 그렸지만 글도 많이 썼다.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8)를 비롯해 에세이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1995), ‘꽃과 색채와 바람’(1996) 등 출간한 단행본만 10여권. 붓으로 구구절절이 전하지 못한 사연을 펜으로 대신 풀어놓으려 한 듯 애잔한 수필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간혹 글 속에 언급한 인물이 캔버스에 등장하기도 해 궁금증을 키운다.
‘길례언니’가 대표적이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에 등장했던 ‘길례언니’는 천 화백이 상상 속 여인을 그려냈다고만 알려졌다. “어린 시절 어느 여름축제에서 노란 원피스에 하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직접 붙인 이름,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썼다. 국적·나이도 불분명한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아가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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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은 화려하고 머리에 예쁜 꽃을 꽂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은 고독을 찾고 싶었다”는 천 화백의 여인 그림이 한 점 더 나온다. 한 여행지에서 만난 이국여성을 스케치해뒀다가 나중에 채색해 완성했다는 ‘괌’(1983)이다. 4억 5000만∼6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단색화·과슈·고지도…웬만한 건 다 있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미술품 최고가 1~6위를 싹쓸이 한 김환기의 소박한 작품도 보인다. 종이에 그린 과슈(수용성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으로 그린 그림) ‘산월’(1963)이 추정가 2500만∼4000만원에 나온다. 또 다른 과슈작품인 ‘새와 달’(1958)은 3500만∼8000만원의 가격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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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의 대표주자인 정상화의 200호 대작 무제 ‘06-10-15’(2006)는 높은 추정가 12억원에 출품해 이번 경매서 최고가에 도전한다. 2호 소품도 있다. ‘무제 84-53’(1984)이 1200만∼2500만원에 응찰을 기다린다. 격자패턴에 푸른색과 자주색을 찍은, 단색화가의 특별한 다색작품이다.
장욱진의 유화 ‘노인’(1988)은 8000만∼1억 5000만원에 새 주인을 기다린다. 1986년부터 작고한 1990년까지 지냈다는 용인서 그린 그림이다. 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냈다는 때다. 이때 완성한 220여점은 평생의 작품 중 3분의 1쯤 된다. 종이에 채색한 ‘풍경’(1975)도 1000만∼1500만원에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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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동국여지지도’도 보인다. 연도가 정확치 않은 작품은 조선의 국토 전체를 종이 한 장에 그린 것. 윤두서의 ‘동국여지지도’를 충실히 모사해 조선후기 지도제작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추정가는 1500만∼3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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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3억 5000만원짜리 누드드로잉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작품이 오랜만에 경매시장에 나섰다. 종이에 펜·잉크로 그린 ‘리클라이닝 누드 & 스펙테이터’(1971)다. 추정가 2억 4000만∼3억 5000만원에 나왔다. 노년의 남성이 젊은 여성을 훔쳐보는 장면을 잡아낸 작품은 피카소의 말년작. 피카소가 자신의 눈을 통해 그 자신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려 한 시도가 읽힌다.
앤디 워홀과 더불어 세계를 대표하는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조각 ‘무제-3명의 댄싱 모형’(1989)도 있다. 해링은 ‘춤’이란 주제로 1990년 32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맹렬히 작품활동을 해왔던 터. 4억 9000만∼6억 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 나선 작품이 한국서 의미있는 춤판을 벌일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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