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족상도례는 가족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고 가족 내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로마법을 기원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당 제도는 일본 사법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됐다.
우리나라 형법은 328조 1항 등을 통해 ‘직계혈족(직계존·비속),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와의 △권리행사방해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 범죄 등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가 처벌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또는 그 배우자’가 규정돼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도입 당시부터 친족상도례 대상을 더 확대한 것이다. ‘또는 그 배우자’ 부분은 오랜 시간 동안 ‘동거가족의 배우자’에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직계혈족의 배우자’, ‘동거친족의 배우자’도 포함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대법원은 2011년 이에 대해 ’직계혈족·동거친족의 배우자까지 포함된다‘고 판시하며 친족상도례를 통해 처벌을 면하는 친족의 범위는 대폭 확대됐다.
이에 따라 △부모나 자녀 및 그들의 배우자 △함께 사는 형제·자매나 친척(8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 및 그들의 배우자와의 재산 범죄는 처벌이 불가능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법 개정으로 1990년 친족 범위가 모계 및 여계 혈족과 인척으로 확대되며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은 더욱 넓어졌다.
판례·법개정 통해 지나치게 대상 넓어져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가부장적 시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친족상도례가 현대의 생활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가족 간의 재산 다툼이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친족상도례가 오히려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며 개인의 권리를 크게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친족상도례를 통해 처벌을 피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A씨는 모친의 통장에서 돈을 몰래 빼간 동생 부부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으나 경찰은 친족상도례를 이유로 불송치결정했다. 20대 B씨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몰래 입양 보낸 부친을 절도죄로 고소했으나 B씨 부친 역시 친족상도례로 처벌을 피했다.
|
국회가 제일을 하지 않는 사이 결국 헌재가 먼저 결단을 내렸다. 헌재는 올해 6월 친족상도례의 핵심 조항인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해당 조항에 대해 2025년 말까지 효력을 중단하며, 2026년 1월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했다.
친족상도례 도입 국가 비교해도 면제 친족·범죄 범위 너무 넓어
이어 “획일적으로 형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해 형사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재량을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므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결론 냈다.
헌재는 특히 친족상도례를 도입한 해외 사례를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처벌 면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륙법에 근간을 두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일률적으로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도록 한 경우는 거의 없고, 처벌 면제의 대상 친족이나 재산범죄의 범위 등이 우리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좁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 이후 국회에서도 친족상도례를 개정하는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모두 10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법안들은 대동소이하다.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고 친족에 대한 재산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대다수다.
이들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지만 본격적인 논의를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자체안을 들고 나오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면 제도 자체의 폐지가 맞을지, 아니면 적용 대상과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방식으로 개정할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조계에선 이미 친족상도례 핵심 조항이 내년 연말까지 효력이 정지됐고 그 이후 자동폐기되는 만큼 실무상 법개정 시급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법조인은 “이미 친족 재산범죄도 모두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법의 공백이 없는 만큼 법 개정에 대해 시간을 갖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