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비밀공간에 초대받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16>

▲라빌 기아르, 제롬, 쿠르베가 그린 '아틀리에'
당당한 스승의 모습으로 자신감 뽐내고
좁은 작업실서 신화 조각하며 창조주화
외면받던 사회현실 그려 부조리 고발도
작가의 한때 자전적으로 기록한 작업실
화려하든 누추하든 예술·세계관 드러내
  • 등록 2021-12-25 오전 12:01:00

    수정 2021-12-30 오후 3:19:33

장 레옹 제롬이 그린 ‘예술가와 모델’(1895).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의 조각적인 구상회화를 발전시켰던 제롬은 신화나 성서, 역사적인 주제를 주로 다뤘다. 1870년 말 그리스 타나그라 지방에서 발굴한 고대 그리스의 테라코타 소형인물상 ‘티나그라 인형’에 큰 영감을 받았는데, 작품은 그중 여인상 ‘타나그라’를 조각하는 자신과 작업실 풍경을 그린 것이다. 캔버스에 유채, 50.5×36.8㎝, 미국 캘리포니아 하긴미술관 소장.


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요즘에는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에는 전통적인 화구가 아니라 책상에 컴퓨터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미디어아트와 같이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별다른 도구와 재료가 필요 없기에, 여느 일반 사무실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업실에는 이젤이나 캔버스, 조각대와 조각칼, 또 참고가 될 수 있는 여러 서적이나 기물들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조각가든 화가든 작업실은 작품의 크기와 장르에 따라, 혹은 모델을 둬야 한다거나 제자를 가르치는 등 각자 특수한 목적에 따라 규모와 구조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어찌 보면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싶을 수 있는, 굳이 내보일 필요가 없는 작업실의 모습을 그려 내보이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손엔 팔레트, 다른 한손엔 붓…화가가 그린 화가의 작업 모습

18세기 프랑스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의 회원이던 여성화가 아델라이드 라빌 기아르(1749∼1803)가 그린 작업실 그림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1785)에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두 명의 인물이 함께 들어 있다.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작업보다는 무도회라도 나가야 할 듯한 차림을 하고 깃털모자까지 갖춰 쓴 화가가 주인공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차림새와는 별개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 중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손에는 팔레트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붓에 물감을 찍으며 발 하나를 이젤의 받침대에 걸쳐 얹었다.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는 여성회원의 숫자를 네 명으로만 제한했는데, 프랑스 왕가의 화가로 일하면서도 공화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라빌 기아르는 이것이 대단히 부당한 처사라고 여겼다. 프랑스혁명 이후 열린 프랑스 아카데미 회합에서 그녀는 여성회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회원의 제한은 오직 실력으로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미술계의 성별 제한에 반대했던 라빌 기아르의 관점이 이 작업실 그림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아델라이드 라빌 기아드의 ‘두 명의 제자와 함게 있는 자화상’(1785). 그림뿐만 아니라 사회의식도 높았던 라빌 기아드가 여성 제자를 그려넣은 작업실 풍경을 통해 당시 프랑스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의 여성 회원정수를 늘려달라는 주장을 펼치는 듯한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채, 210.8×522.1㎝,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작업의자에 앉은 라빌 기아르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여성은 마리 가브리엘 카페와 마리 마르게리트 카로 드 로즈몽으로 그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여성 제자들이었다. 두 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은 스승의 의자를 잡고 상체를 굽혀 상기된 얼굴로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작업실 그림의 목적은 뚜렷하다. 자신은 이렇게 우아하고 당당한 풍모를 갖춘 당대의 화가며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성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그 제자들이 자신을 롤모델로 해 화가로 성장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아카데미풍 그림과 새로운 경향의 인상주의가 한판 팽팽하게 힘을 겨뤘던 시기에 고전적인 아카데미풍을 고수했던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작업실 그림 ‘예술가와 모델’(1895)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1870년 말에 그리스 타나그라 지방에서 발굴한 채색조각상에 크게 영감을 받아 여인상 ‘타나그라’를 조각하는 중이다. 조각상과 모델, 또 제롬이 같이 올라가 있는 작업대가 좁고 기울어져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각의 세부를 손질하는 중이다. 여성 모델과 조각은 동일하게 한 손을 들어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 손 위에는 뒤쪽에 있는 춤추는 핑크빛 조각상을 작게 만들어 올릴 예정이다. 이후 제롬의 조각 ‘타나그라’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지만, 표면에 살빛을 얹고 입술과 유두에 핑크빛을 더한 채색 조각으로 대중에 선보였다. 그리스 조각이 원래 대리석에 채색한 조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푸른색 벽면의 선반에는 각종 조각도구와 참고 기물이 얹혀 있으며, 그림도 한 점 걸려 있다. 이 그림 역시 제롬의 것으로 ‘피그말리온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이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조각가가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너무도 사랑해 애정을 쏟아부었더니 이내 조각이 살아 숨 쉬는 여인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제롬은 이 주제를 매우 애호해 여러 점의 그림으로 남겼다. 벽면의 그림에서는 살빛이 도는 누드의 조각이 조각가에게 몸을 굽혀 키스를 퍼붓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이 작품은 실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90s)란 그림으로 지금껏 남아있다. 제롬이 이 그림을 벽면의 배경으로 두고 여인상을 조각하는 자신을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신은 좁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주와 같은 것이란 자긍심의 표현 아니었을까.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90s). 제롬이 작업실 풍경을 그린 ‘예술가와 모델’ 왼쪽 벽에 걸린 바로 그 그림이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예술가. 여인상을 너무도 사랑해 애정을 쏟아부었더니 살아 숨 쉬는 여인이 됐다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캔버스에 유채, 88.9×68.6㎝,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담은 작업실 그림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화가의 작업실’(1854∼1855)이다.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때 나르시시스트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던 쿠르베는 그림에서도 역시 화면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커다란 풍경화를 화폭에 담는 중이다. 쿠르베의 바로 뒤에는 그림에 반한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쿠르베에게 반한 것인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경외감을 표현한 듯한 누드의 여인이 서 있다. 또한 그림의 바로 앞에는 입성이 허름한 어린아이가 보이는데, 손을 앞으로 모으고 그림을 올려다보는 뒷모습만 봐도 경탄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수수께끼는 화면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다. 풍경을 그리는 작업실에 실제로 이토록 많은 인물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이것은 우화적 상징으로 그린 그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계 외면한 사회 진실, 사실주의 선언하며 그려 넣기도

가령 오른편의 인물들 중 책상에 걸터앉아 독서에 몰두한 이는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이던 샤를르 보들레르고, 그 앞에는 무정부주의자 푸르동과 쿠르베의 사실주의 사상을 지지했던 샹플뢰리, 또 그의 후원자이자 컬렉터인 인물들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반대로 화면의 왼편에는 바로 아래쪽에 어린 아기를 가슴에 품고 맨다리로 찬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는 여인이 보인다. 치마는 뜯겨나갔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구체적인 특정 인물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 뒤로는 종이에 아무렇게나 쌓인 해골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물건을 파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목회자처럼 보이는 사람, 유색인종과 노숙자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화가의 작업실’(1854∼1855). 사실주의 선언을 시각적으로 옮겨놓은 쿠르베의 대표작으로 19세기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쿠르베의 이념을 대변한 이들을 배치하고, 왼쪽은 그의 현실 속 인물들을 배치해, 당대 미술계가 외면하는 사회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선언을 장대한 우의적 표현으로 전하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 361×598㎝,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쿠르베는 고향인 오르낭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화면이 향한 곳은 자신이 속한 오른편이 아니라 왼편이다. 그는 당대의 미술계가 외면하는 사회의 진실을,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고대 신화나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당대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사실주의를 선언했고, 이 그림은 자신의 사실주의 선언을 장대한 우의적 표현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치졸한 사기가 횡행하는 사회의 진면모, 억울한 죽음을 맞고 죽어서도 제대로 묻히지 못하고 해골로 굴러다니는 가난의 세계를 그대로 직시하고자 하는 쿠르베의 관점이 선언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인 것이다.

작업실 그림은 화가들이 작업하는 자신의 한때를 자전적으로 기록하는 목적임과 동시에, 자신이 어떤 화가로, 조각가로 남고자 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서사적인 초상화다. 작업실에서 화가가 크게 그려져 있든 작게 그려져 있든, 작업실이 크든 작든, 모델이 있든 제자가 있든, 거기에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관점과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한 구체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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