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적자는 한국 국민…추방 안돼" 96년 대법원 판결[그해 오늘]

中여권 이용 불법입국 여성 강제추방명령 취소
헌법 판례로 재확인…"韓국적 취득했다고 봐야"
2019년 北선원 강제북송 적용 두고 해석 엇갈려
  • 등록 2022-11-12 오전 12:03:00

    수정 2022-11-12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96년 11월 12일. 대법원은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북한 주민 이모씨에 대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강제추방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에 따라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당시 사건의 주인공인 이씨는 일제시대인 1937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분단 후 북한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한국전쟁에서 부모를 모두 잃었다. 북한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던 이씨는 1960년께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족 남성과 결혼했다.

2013년 북중 접경지역서 촬영된 북한 주민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발급받은 북한판 주민등록증인 공민증으로 중국에서 외국인거류증을 이용해 합법체류했다. 그러던 중 1992년 7월 중국정부로부터 중국여권을 발급받은 후 같은 해 9월 남편과 함께 ‘중국인’ 신분으로 단기체류비자를 받아 입국했다.

“中여권 소지했지만 中국적 여부는 확인 안돼”

애초 남편과 함께 한국에 돈을 벌러 왔던 이씨는 체류기간 종료 후에도 남편과 함께 한국에 남아 식당 등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93년 11월 남편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씨는 친적들이 생존해 있던 고향 화천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1994년 4월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귀순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가 중국 여권으로 입국한 점을 근거로 불법체류자로 판단해 이씨의 신병을 확보해 곧바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인계했다. 출입국관리소는 이씨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한 후 이씨에게 강제추방을 명령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다. 헌법 3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해 한국에 입국하면 곧바로 대한민국 국적이 부여된다.

법원도 헌법을 근거로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1995년 12월 “헌법에 따라 북한지역 역시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친다”며 “이씨 역시 1948년 7월 제헌헌법 공포와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냈다.

북한이탈주민법상, 살인자 등은 보호대상 아냐

서울고법은 “헌법상 (한반도 내에선) 대한민국 주권과 부딪치는 어떠한 국가단체나 주권을 법리상 인정할 수 없다”며 “이씨가 북한 공민증을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적 취득·유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가 보유하고 있던 중국 여권에 대해서도 “중국 국적을 취득해 정당하게 여권을 발급받은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중국 공무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부정하게 발급받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씨가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이씨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출입국관리소 측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듬해 11월 “이씨가 대한민국 국민임은 명백하다”며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검찰은 현재 2019년 북한 선원 강제북송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명백한 위법’이라고 결론 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시 강제 북송된 선원 2명은 다른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만큼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결국 당시 문재인정부의 강제 북송의 적법성 여부는 향후 법원에서 판가름나게 될 전망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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