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있는 길]①그의 고향 골목에서 환한 웃음을 그리다

한국관광공사 1월 걷기여행길
대구 중구 골목투어 '삼덕 봉산 문화길'
글사진= 김영록 여행작가
  • 등록 2018-01-20 오전 12:00:01

    수정 2018-01-20 오전 12:00:01

대구 중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그는 마흔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삶의 비상구처럼 슬쩍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그가 1996년 1월 6일, 만 서른 두 해의 나이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스물 두 해가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그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싱긋 웃던 소박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기억하고 있다. 지구별에 잠깐 왔다 돌아간 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그리러 달구벌로 간다.

◇달구벌 그리고 대구

기원전 1세기 경 대구에는 ‘달구벌국’ 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하며, 대구의 다른 이름 달구벌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구(大丘)’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신라 경덕왕 시절부터다. 달구벌은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고, 대구도 큰 언덕이라는 뜻이니 결국은 같은 이름이다.

신라와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대구는 ‘大丘’로 표기했다. 조선 영조시절에 ‘丘’자가 공자의 이름 글자이므로 다른 글자로 고치자는 상소가 있었고, 이후 ‘大丘’ 와 ‘大邱’가 혼용되다가 철종 이후 ‘大邱’로 정착되었다. ‘丘’ 와 ‘邱’ 모두 언덕이라는 뜻이니 이름이 주는 의미는 바뀌지 않았다.

대구광역시 중구는 조선시대에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당연하겠지만 대구는 이곳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산업화사회로 접어들어서도 대구 발전을 이끈 원도심지역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답게 품고 있는 문화유산이며, 골목마다 녹아있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중구에서는 이런 문화유산과 이야기들을 엮어 답사여행길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중구골목투어’이다. 경상감영길, 근대문화골목,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100년향수길 등 모두 다섯 코스로 되어있고 각 코스마다 각각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중구골목투어 네 번째 코스가 ‘삼덕봉산문화길’이고 이 길 중간에서 김광석을 만날 수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달구벌의 중심을 걷다

걷기 시작하는 곳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국채보상운동이란 일제강점기이던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나라가 진 빚을 국민들이 갚아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일어난 국권회복운동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열강은 피식민지국가에 엄청난 규모의 빚을 지게하고 그를 빌미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교묘한 정책과 강요에 휘말려 막대한 외채가 있었다. 당시 일본에 진 빚은 1,300만원 이었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일 년 예산에 해당하는 큰 돈 이었다. 일본에 진 빚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놓이자 민초들이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있다. 남자들은 술과 담배를 끊어 절약한 돈을 기부했고, 여자들은 반지와 비녀를 내어놓았다고 한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에서 참여하였는데 기생과 걸인은 물론이고 도적까지도 의연금을 냈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국채보상운동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돌아 나와 걸음을 옮긴다. 이내 만나는 곳이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인데 이곳에 화폐전시관이 있다. 잠깐 시간을 내서 들러볼만한 곳이다. 한국은행과 대각선 방향에 경북대학교병원이 있는데 이 병원의 정문 격으로 쓰이는 건물이 사적 제443호로 지정된 옛 도립대구병원 건물이다.

이리저리 골목을 지나 삼덕동 주택가에서 삼덕초등학교 옛 관사건물을 만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인데 현재는 ‘삼덕마루’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광석 다기 그리기 길


◇아! 김광석

삼덕동에서 달구벌대로를 건너면 방천시장이다. 방천시장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대구 도심을 동서로 가르는 신천이다. 신천 제방을 따라 열린 시장이라 하여 방천시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방천시장은 점포 수가 1,000개를 넘을 정도로 활기가 있던 대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은 쇠락해 갔는데 2009년부터 방천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했고, 그 일환으로 방천시장과 신천 제방 사이의 골목에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을 만들었다. 김광석은 방천시장이 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는 ‘그리워하면서(想念, Miss) 그린다(畵, Draw)’라는 중의적인 의미라고 한다.

골목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김광석이다. 그의 노래 ‘사랑했지만’ 후렴구를 부르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태어난 골목길을 걸으며 그를 그린다. 그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 그의 노래 중 한 장면을 그린 모습, 오토바이에 올라앉은 모습.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그가 그립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은 350m 가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 골목을 빠져나가려니 너무 아쉽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걷는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의 그림들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하고 있는 그의 동상 옆에 앉는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살아있다면 올해가 만으로 쉰 넷인데... 중년이 된 그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소극장 공연은 3,000회를 넘겼을 것이다. 마흔 즈음에는 가죽바지에 체인을 두른 채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했을까? 환갑의 로맨스는 여전히 유효할까? 저들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김광석에게 묻고 싶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노래하느냐고...

이제는 그의 고향 골목을 빠져 나가야 하는데... 길은 계속해서 대구향교와 건들바위 역사공원으로 이어지는데... 아직 그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 길가의 작은 찻집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부탁한 후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여행메모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1km)삼덕동문화거리 ~ (1km)김광석길, 방천시장 ~ (1.6km)봉산문화거리 ~ (0.7km)대구향교 ~ (0.7km)건들바위 역사공원 (5km, 2시간, 난이도 쉬움)

△찾아가기

▷지하철=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2번 출입구로 나와서 종각네거리 방향으로 700m 정도 걸으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 1번 출입구로 나와서 종각네거리 방향으로 650m 정도 걸으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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