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금도 통상임금" 대법 판례 변경에 기존 노사합의 대혼란

기존 판례 변경…재직 조건 있어도 통상임금 인정
“근거없는 ’고정성‘ 기준, 통상임금 부당 축소”
기업 추가부담 예상…판결 선고일 이후부터 적용
  • 등록 2024-12-19 오후 5:54:54

    수정 2024-12-20 오전 6:20:38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A씨는 한 직장에서 20년간 일하면서 매월 기본급 200만원과 함께 2개월마다 200만원의 정기상여금을 받아왔다. A씨는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120회에 걸쳐 상여금을 받았는데, 퇴직할 때 마지막 상여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받은 모든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다.

대법원은 A씨의 이같은 상황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실제 A씨의 노동 가치는 기본급 200만원에 상여금을 월로 환산한 100만원을 더한 월 300만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19일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았다. 2013년 제시했던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11년 만에 전면 수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재직자 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왜 ’고정성‘ 기준을 폐기했나

대법원은 그동안 통상임금 판단의 핵심 기준이었던 ’고정성‘ 요건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임금”이라고만 정의하고 있을 뿐, ’고정성‘을 요건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킨다”며 “당사자가 재직조건 등과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하여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새롭게 제시한 기준은 ’소정근로 대가성‘이다.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이라면, 여기에 어떤 조건이 붙어있더라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직자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라며 재직 조건만으로는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의 경우에도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소정근로일수 이내의 근무일수 조건”이라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다만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를 조건으로 한 임금은 추가 근로의 대가로 보아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주목할 점은 근무실적에 따른 성과급은 여전히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일정한 업무성과나 평가결과를 충족해야만 지급되므로 ’고정성‘ 기준을 폐기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근무실적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최소 지급분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법조계 “사법부 신뢰 훼손” 비판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이 직접 제시한 통상임금 기준을 11년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버렸다”며 “2013년 판결 이후 다수의 기업들이 이를 바탕으로 노사합의를 이뤄왔고, 고정성 기준을 넣되 그 대신 기본급을 올려주는 등의 방식으로 합의한 곳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기업들이 이번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 임금체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단체협약 체결, 취업규칙 변경 등과 관련해 노사 갈등 등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업들은 재직자 지급 요건을 둔 급여항목과 소정근로일 이내의 특정 근로일 이상을 근무할 것을 지급 요건으로 한 급여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다만 근무실적에 따라 달리 지급되는 성과급은 여전히 제외되는 만큼, 기업들은 성과급 등의 지급 조건을 근무실적 연동형으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소급효 제한과 관련해 김소영 변호사는 “소를 제기했다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통상임금의 개념 자체를 달리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소급효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도 결국 이번 판결 이후에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이 저해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법원이 통상임금을 실제 지급 여부와 무관하게 소정근로가 제공되면 지급되는 가상의 임금으로 정의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의 부담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찬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법리가 명확해졌다는 점”이라며 “기업들은 이제 굳이 소송으로 다투기보다는 통상임금에 산입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쪽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앞으로는 통상임금과 관련해서는 ‘소정근로 대가성’과 ‘일률성’ 정도가 쟁점이 될 수 있을텐데, 이런 사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는 기업이 전체의 26.7%에 달하며,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간 6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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