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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닥, 제한적 상승..`하이브리드차株 선전`(마감)
- [이데일리 유환구기자] 24일 코스닥 시장이 이틀 연속 올랐다.지난 주 후반의 반등세를 이어갔지만, 힘 있게 치고 나가는 에너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지수가 바닥권에 이르렀다는 공감대와 투자심리의 회복 기미가 역력했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해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눈치보기 장세가 이어졌다.지난 주말 미국 장이 휴장을 한 탓에 이날은 중국과 대만 증시의 엇갈린 행보가 지수를 밀고 당겼다. 대만증시가 마잉주 국민당 총재의 당선 소식에 4% 가까운 급등세를 탄 반면, 중국증시는 펀드런 우려감이 부각하며 3% 이상 급락, 지수에 부담을 줬다.오후들어 거래가 극도로 한산해진 가운데, 미국 증시의 행보를 확인하고 가자는 관망세가 뚜렷해졌다. 밤사이 미국에서 결과에 따라 경기침체 우려를 촉발할 수 있는 주택관련 지표가 발표될 예정인 점도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했다.이에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3.67포인트(0.60%)오른 619.60에 거래를 마쳤다. 620선을 회복하며 출발한 뒤 장중 고점과 저점의 차이가 2포인트에 불과한 횡보장세를 이어갔다.하이브리드차 관련주가 두각을 나타냈다. 현대기아차가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카 양산에 본격 돌입한다는 소식이 호재가 됐다. 뉴인텍(012340)과 필코전자(033290), 엠비성산(024840)이 줄상한가를 기록했다. 넥스콘테크도 4%넘게 올랐다. 발광다이오드(LED) 관련주도 호조를 보였다. 이날 LG전자가 `터치 라이팅 폰`을 50개국 동시 출시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 휴대폰의 전면 하단 부분이 LED 터치 패드로 구현된다고 알려지자 관련주가 급등했다. LED 대표주인 서울반도체(046890)가 9%가까이 올랐고, 엔하이테크(046720)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ST&I(031800)와 에피밸리(068630), 알티전자도 강세를 보였다. 건설주도 강세를 기록하며 지수 상승을 거들었다. 단기 낙폭이 컸던데따른 저가매수세와 함께 개별 종목의 수주 재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총선 날짜가 다가오면서 대운하 관련주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점도 상승요인으로 풀이된다.동신건설(025950)과 IC코퍼레이션(080570)이 상한가까지 올랐고, 특수건설과 울트라건설, 이화공영도 강세를 기록했다. 서희건설(035890)은 이날 계룡대·자운대 관사 민간투자시설(BTL)사업 최우선 협상자로 선정된데 힘입어 3.75%올랐다. 태양광 관련주는 유가 하락 소식에도 아랑곳않고 선전했다. 태양광 대장주인 동양제철화학(010060)이 대규모 폴리실리콘 공급계약 체결로 상승세를 타자 관련주들이 덩달아 뛰었다. 유니슨(018000)과 소디피신소재, 이앤이시스템이 3~5%올랐고, 주성엔지니어링도 흐름이 좋았다. 반면 코스닥 대장주 NHN(035420)이 1.12%내림에 따라 인터넷 업종이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비금속, 기계장비, 방송서비스업종도 부진했다. 시총상위주 가운데 제약 기업인 코미팜(041960)의 활약이 돋보였다. 코미팜은 항암제 `코미녹스`가 세계 암전문 학회지에 소개된다는 소식에 14.70%올랐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며 시총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로텔레콤과 성광벤드, 아시아나항공, 키움증권이 상승한 반면, 평산과 메가스터디, CJ홈쇼핑은 약세를 기록했다.코닉글로리(094860)는 무상증자와 태양전지사업 검토소식으로, 에스티씨라이프(026220)는 중국업체와의 줄기세포 협력소식에 각각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뼈전문 신약개발 기업 오스코텍(039200)은 다국적제약사에 시료 생산 의뢰를 한다는 소식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1억원과 32억원을 동반매도했지만, 개인이 79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방어했다. 거래량은 3억7791만주를 기록했고, 거래대금은 1조306억원으로 집계됐다. 상한가 26개 포함, 500개 종목이 올랐고, 하한가 5개 포함해 425개 종목이 내렸다. 보합은 84개다.▶ 관련기사 ◀☞코스닥 이틀째↑..`하이브리드·건설株 급등'
- 코미녹스 효능입증 가시화..특허권은 누구에게?
- [이데일리 박기용기자] 코미팜(041960)의 비소계 항암제 `코미녹스`의 특허권을 둘러싼 분쟁이 한창이다. 코미팜 대 천지산, 코미팜 대 이상봉 전 연구소장의 두 갈래로 진행되던 분쟁은 최근 천지산이 코미팜에 합의서를 제출하면서 코미팜 대 이상봉 전 연구소장 사이의 본안소송만을 남겨두고 있다. 더구나 코미녹스에 대한 공식 인증이라 할 만한 세계암학회지 논문 게재가 이달 중 이뤄질 수도 있어 코미팜과 이 전 소장과의 특허소송 전개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코미팜의 `혁신적` 항암제, 코미녹스를 둘러싼 특허권 분쟁은 어디까지 진행된 걸까. ◇천지산측과는 합의, 청구 취하로 일단락 코미녹스를 둘러싼 코미팜의 특허권 분쟁은 그동안 크게 두 갈래로 진행돼 왔다. 천지산과의 분쟁이 코미녹스와 유사한 비소계 항암제 `테트라스`와의 이른바 짝퉁 대결이라면, 이 전 소장과의 분쟁은 코미녹스의 특허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리기 위한 것. 일단 천지산과의 분쟁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코미팜이 천지산측으로부터 "향후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받아낸 뒤 천지산의 테트라스에 대해 제기한 특허등록무효심판청구를 취하했기 때문.코미팜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지난해 12월 배일주 천지산 대표측이 제기한 코미녹스의 특허등록무효심판청구가 특허등록심판원으로부터 기각 판결을 받은 것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코미녹스가 시기적으로 테트라스에 비해 늦었지만 특허가 문제 없는 것으로 인정 받았으니 이제 서로 제 갈 길을 가자는 것이다.스카이뉴팜(058820)의 계열사이기도 한 천지산은 현재 육산화비소를 활용한 항암제 테트라스의 2차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소장측과는 본안소송 앞둬 이상봉 전 연구소장과의 특허권 분쟁은 이보다 다소 복잡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문제의 원인은 애초 2001년 특허의 출원 및 등록 과정에서 코미팜 외에 양용진(코미팜 대표), 이상봉 두사람을 공동 출원인으로 등재한 데에 있다.이 전 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비소화합물을 이용해 항암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항암제 개발연구를 실질적으로 진행했다"라며 "코미팜은 연구자금을 지원했고, 협의에 의해 특허권을 3자가 공유하기로 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코미팜측은 "이 전 소장이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3자를 함께 등재해야 한다고 회사측을 설득해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분쟁은 지난 2005년 3월 미국의 멕더멋윌앤에머리 로펌(이하 멕더멋)이 코미팜의 법무 대리를 맡게 되면서 시작됐다.멕더멋측은 "연구 진행 과정과 연구자들의 역할 등 특허권을 실사한 결과 발명자는 라데마커(독일 레파톡스사 대표, 코미녹스 임상 시험 진행)이고 코미팜만이 유일한 특허권자로 나타났다"라고 결론지었다. 이상봉·양용진은 연구자금을 부담하거나 연구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특허권은 무효라는 것. 때문에 3자 공동특허 공증서는 양 대표가 잘못 알고 맺은 절차상 하자 있는 계약이라는 얘기다. 이 `절차상 하자 있는 계약`을 바로 잡는 과정이 그해 8월에서 10월 사이 이뤄졌고 이 전 소장이 이에 반발, 현재의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가처분 결정으로 이 전 소장, 일단 `승` 코미팜측과 이 전 소장은 지난 2006년 양 대표 등이 시세조종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황에서 수차례 내용증명을 주고 받았다. 양 대표의 경우 지난 2005년 8월 이사회에 특허권을 양도하는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이 전 소장은 특허권 지분을 양도하지 않아 코미팜으로 특허를 일원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코미팜이 이 전 소장에 대해 특허권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법적 공방으로 전개됐다. 한 달 뒤 법원은 이 전 소장에게 특허권처분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다시 5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이 전 소장측이 소송을 통해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기각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씨(이 전 소장)가 항암제 연구 시작과 진행 과정, 특허 출원·등록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특허권의 공동 발명자로서 공동 출원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이 전 연구소장 명의 등록 부분에 대한 가처분 결정을 취소했다. 코미팜은 이에 불복, 고등법원에 항고할 계획이다. 회사측은 "이 전 소장이 특허명부에 특허권자의 한 사람으로 현재 등재돼 있어, 법원에서는 당연히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입장이다. 가처분 취소 결정을 받았다 해도 추후 본안소송을 통해 이 전 소장으로부터 코미팜으로, 특허권을 넘겨받겠다는 것. 회사측은 또 최근 이 전 소장이 미국 LA에 비속스(Bissox)라는 회사를 설립, 본인이 코미녹스의 공동 특허권자로 등재된 것을 이용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항암제를 개발하려 한다며 이와 관련한 법적 대응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메모랜덤`, 본안 소송 쟁점될 듯본안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핵심 쟁점은 이 전 소장을 실질적인 개발자로 볼 수 있느냐에 있다. 이 전 소장측의 근거는 지난 98년 암스테르담 노보텔 호텔에서 라데마커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2001년도 2월자 `메모랜덤`(각서)이다. 코미팜은 이것이 이 전 소장의 유일한 근거에 불과하다며 "멕더멋의 실사에 의해 이 전 소장이 갖고 있는 메모랜덤은 2001년이 아닌 2004년에 만들어진 조작된 문서로 밝혀졌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 전 소장은 이에 대해 "코미팜이 제시하는 메모랜덤은 `당신(이상봉)이 1998년 노보텔 호텔에서 대사체에 관한 연구를 제안한 대로`라는 영문 문구가 삭제돼 있는 등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이 메모랜덤의 진위 여부가 본안소송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우리나라 특허법에 따르면 공동특허권자가 개인인 경우 직접 실시(특허발명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를 하거나, 공동특허권자들(이 경우 코미팜사)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이 개별 실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코미팜은 설사 이 전 소장이 모두 승소한다고 해도 특허법상 이 전 소장이 회사를 설립할 수도 없고, 오직 개인으로만 특허권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사업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소장은 이 사안을 비롯한 일체의 관련 인터뷰를 거부한 상황. 이 전 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멕더멋이 개입하면서 나를 특허권자에서 박탈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한편, 코미녹스에 관한 논문은 이달 중 미국의 학회지에 게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코미팜 관계자는 "통상 신청에서 게재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지난해 11월 독일과 미국 네덜란드 연구진이 함께 작성한 논문을 미국의 저명한 암관련 학회지에 제출했다"라며 "이 논문이 실리게 되면 코미녹스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우중 前 대우회장 입 열다
- [조선일보 제공] 서울역 근처에 있는 대우재단 접견실에서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기다렸다. 김 전 회장이 가끔 들른다는 사무실은 전체적으로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밋밋한 분위기였다. 전날 약속 시간을 잡느라 통화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우렁찼다. 그는 "일단 무슨 얘기를 할지 만나서 의논을 좀 해봅시다. 그리고 인터뷰는 자리를 좀 옮겨서 하지요"라고 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대우그룹의 신화를 일군 재계 2위의 재벌총수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외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거의 6년 만에 지치고 병든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법정과 구치소, 병원을 오가다가 지난해 말 특별사면됐다. 그러나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우그룹이 몰락해버린 후 그는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2005년 귀국 이후엔 더더욱 그랬다. 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을 오가는 모습만 공개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그가 숨으면 숨을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 더더욱 알고 싶어했다. 어떤 사람들은 "김우중이 자유로워졌으니 이제 또 무슨 일을 벌여 우리를 놀라게 할까"라고 기대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김우중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한다. 성공과 몰락의 과정이 모두 기적 같고 거짓말 같은 이 18조원의 사나이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근황을 궁금해하는 인물이 되었다. 김 전 회장은 전화를 끊기 직전 "그래요. 내일 봅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데려오지 말고 혼자 오십시오"라고 했다. 사진기자와 함께 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사진기자를 건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김 전 회장을 만나러 갔다. 그는 짙은 밤색 플라스틱 테 안경에 회색 스웨터와 회색 바지 차림으로 접견실에 들어섰다. 턱엔 희끗희끗한 수염이 꽤 길게 자라 있었다. 피부는 투명하도록 맑아 보였다. 수척했지만 병색은 아니었고, 조용했지만 강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아직 담배를 못 끊었어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내더니 가느다란 담배를 하나 뽑아 입에 물었다. "좁은 병실에 오래 갇혀있는 동안 너무 답답하니까 자꾸 담배를 피우게 되더라고요. 내가 원래 술도 마시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리 하는 일도 없고 그렇잖습니까." 1999년 6월 12일 김 전 회장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차후에 다시 한번 상세한 인터뷰를 할 테니 기사를 잠시 보류해달라고 했다. 넉 달 후 그는 중국 옌타이 대우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해 긴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우중은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1999년 10월 출국해서 2005년 6월 귀국할 때까지 그는 약 5년 8개월 동안 유럽과 동남아를 떠돌며 도피 생활을 했다. 외국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수시로 국내에 전해지곤 했다. 김 전 회장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말이요. 우리 집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요. 내가 집사람에게 아직은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도대체 설득이 돼야 말이지. 그래서 차라리 강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나중에 하자고 직접 설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렇게 나온 거요." 뜻밖의 난관에 기운이 빠졌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저를 설득하는 건 더 어려우실걸요." 오래 전부터 부인 정희자 여사에게 인터뷰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정 여사는 어렵사리 남편을 설득했다면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나오기는 했는데 인터뷰는 할 수 없다고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부부는 이날 아침 댓바람에 언쟁을 벌인 모양이었다. 정 여사가 "이왕 만나기로 했으니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도 매고 나가서 사진이 잘 나오게 하라"고 하자, 김 전 회장이 화를 벌컥 내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에게서 스며 나온 화난 듯한 기운은 아마 이 싸움의 여진이었을 것이다. ―10년 전에도 나중에 인터뷰한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잖아요. "그땐 내가 그리 될 줄 몰랐지요." ―그럼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키시지요. "지금은 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으로서 반성하며 지낼 시기에요. 자꾸 나서서 무슨 말을 해서 그게 화제가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풀어질 겁니다." ―사면을 받으셨으니 인터뷰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사면 받은 지 이제 겨우 두 달 됐습니다. 사람들 눈엔 저 같은 사람이 자꾸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결코 좋게 보일 리가 없어요. 조용히 지내야지요. 그냥 시간이 가게 둡시다. 어떤 일이 이뤄지려면 다 때가 있더라고요." 이쯤 해서 그가 인터뷰를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가기는커녕 자신의 건강과 요즘 생활에 대해 더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는 인터뷰라고 생각하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김 전 회장은 취재수첩도 못 열게 하고 볼펜도 손에 쥐지 못하게 했다. 사진기자를 부르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펄펄 뛰었다. 아무 연락이 없자 애가 탄 사진기자는 계속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잘 안 되나요?" 김 전 회장은 내 휴대폰이 몇 번이나 부르르 떨며 대화를 방해하자 "그 전화 좀 치우라"며 역정을 냈다. 그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사진기자에게 "일단 올라와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근황을 브리핑하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건강과 가족입니다. 얼마 전에도 담석제거 수술을 했어요. 오래 전에 뇌수술, 위암 수술, 전립선 수술을 한 적이 있고, 얼마 전엔 심장, 신장,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일단은 몸을 추스르는 게 나한테 제일 중요하지요. 게다가 집사람도 건강이 좋지 않아요. 나도 집사람도 많이 걸어야 해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데 거기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잘 가지도 못해요. 어디 지방에 가서 조용하게 살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라서요." ―사무실엔 매일 나오십니까. "가능하면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집에 있으면 자꾸 잠을 자게 되고 그러면 밤에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으면 나중엔 잘 듣지 않으니 양이 자꾸 늘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낮에 활동을 많이 하면 밤에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김 전 회장은 부인과 가족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일이 취미이자 놀이이고 생활이며 건강의 비결이었던 일중독자가 갑자기 가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이야기하니 낯설었다. "내가 집사람에게 잘하려고 해요. 젊었을 때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느라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어요.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런데 사람 마음에 한이 남아 있으면 안되지요. 그래서 웬만하면 뭐라고 하지 않고 집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요. 가족이 화목해야지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야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재기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자주 나오던데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준비는 무슨 준비를 합니까. 올해 내 나이가 도대체 몇인 줄 아십니까? 일흔두 살이에요. 뭘 시작한다 해도 5년 이상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재기를 한다면 자원과 사람 등 필요한 것이 많은데 지금으로선 힘들지요. 그리고 오래 세상과 동떨어져 있어서 요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요. 그걸 먼저 배워야지요." ―최근에 외국에 가려고 하다가 출국금지가 돼서 답답해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다. 못 나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저는 그런 일이 자꾸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 에서 새만금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던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를 만나서 "조언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면서요. "새만금 사업은 예전에 대우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기사가 자꾸 나오는데 도대체 나와 가깝다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어쨌든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려고 합니다. 눈에 띄지 않게 지내려고 해요." ―북한 남포지역 경제특구 장관 제의를 받으셨다면서요? "그건 중국과 미국의 입장이 어떤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지요. 그리고 제가 지금 북한에 가서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과는 잘 아시지요? "이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니까요. 우리나라가 잘돼야지요." 그는 법적·정치적으로는 사면됐을지 모르지만, 아직 여론과 민심의 사면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설친다' '나선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사렸다. 김 전 회장이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이토록 조심스러운 것은 그의 마음속에 원대한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최근에 영화 '추격자'를 보러 가셨다면서요. "아들이 영화 관련 일을 하니까 집사람이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지요. 영화관에 가본 게 20년 만인지 30년 만인지 생각도 안 나요. 예전엔 그런 델 가본 적이 아예 없으니까요."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 선용씨는 영화 '추격자'의 투자를 맡은 벤티지 홀딩스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들의 사업에 조언도 하십니까. "영화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까 조언하긴 어렵지요. 요즘 영화계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해서 걱정스러워요. 그런데 아들은 그렇게 상황이 나쁠 때 바닥에서 시작하면 큰 경쟁자가 없어서 오히려 더 낫다고 그럽니다." 김 전 회장에게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가족을 중시하는 것 등 긍정적인 소재들이 많은 것 같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전엔 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변하는 걸 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소재를 원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쪽으로 가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재벌 총수에서 수감자까지 천국과 지옥 같은 상황을 다 겪었는데, 어떻게 그 일을 다 감당하십니까. "나는 원래 돈을 벌려고 일을 한 것이 아니었어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돈을 벌었던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 인생에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으니까요." ―그래도 5년 8개월 동안 외국에서 숨어 다니다 보면 생각이 많았겠지요. "사실은 절에 가서 2~3년 머무르며 지나간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나는 그동안 경제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봤으니까요. 이제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외국서 유랑 생활 하시는 동안 그런 생각 안 하셨습니까? "내내 아팠고 여유가 없었지요." ―인생을 보는 눈은 확실히 달라졌을 텐데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책을 많이 읽으시지요? "그동안 한 1000권 읽었을 겁니다." ―그럼 이제 책을 쓰실 때가 됐네요. "쓰면 아마 분야별로 나눠서 다섯 권은 써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세대가 하지 못한 일이 후진을 키우는 일입니다. 앞서간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후진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행히 예전에 세워둔 학교가 곳곳에 있고 재단에서 학술사업도 잘하고 있어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요." 김 전 회장과의 인터뷰 약속이 잡힌 후 1989년에 출판된 그의 밀리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다시 읽었다. 160만 부가 팔렸고 16개국어로 번역된 책이다. 저자의 인생은 그 후 숱한 굴곡을 겪었지만, 그가 던졌던 메시지는 여전히 피를 끓게 하는 데가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추구하라"는 말은 지금 읽어도 가슴이 뛴다. "안주하는 것은 패배를 뜻한다." "이만하면 됐다는 적당주의를 단호히 거부하라"는 말은 정신이 번쩍 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엔 새벽 다섯 시에서 밤 아홉 시까지 일하자는 '파이브 투 나인'식 생활, 가족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삶, 오로지 성공과 성장만 생각하는 인생이 담겨있다. 치열하게 '김우중스러운' 삶엔 행복이나 삶의 질이 없다. ―사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자신감이지요. 얼마 전에 키신저가한국 왔을 때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그 나이에 그 먼 여행을 다 다니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일정이 빡빡한 것 같더라고요. 자신감 있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해요.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기존의 방식으로 해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비서가 문을 열고 "병원에 갈 시간이 됐다"고 했다. 재떨이엔 담뱃재와 꽁초가 그득했다. 이날, 작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중인 부인 정여사가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다른 데로 전이되지 않아 치료가 빨리 끝났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는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거래'를 시도했다. 이번 인터뷰를 기사화하지 않으면 다음에 진짜 멋진 인터뷰를 약속하겠다고 했다. 대신 이번에 기사를 쓰면 앞으로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김 전 회장을 만나지 못할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로 했다. 기자와 한 시간 동안 만난 후 기사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그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