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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선 망치로 한국인 내려쳐도 괜찮다?
- [오마이뉴스 제공] 최근 영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의심할만한 판결(결정)이 잇따라 나와 교민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7월 말 부부싸움 도중 숨진 한국인 아내를 토막내 유기하고 도주했던 영국인 남편에 대해 영국 법원이 '5년형'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내린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넉 달 전 영국인 청소년으로부터 모욕적인 욕설은 물론 그가 휘두른 망치테러로 피해를 입고 한국 유학생이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던 사건에 대해 영국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 영국인 청소년, 한국유학생을 망치로 내려치다 지난 4월 23일 오후 6시30분 경, 런던 근교 뉴몰든 지역 머이브리지가에서 교회 친구들의 이사를 도와주던 전호중(가명·남·25·신학전공 유학생)씨는 그곳을 지나던 네 명의 영국인 십대들과 마주쳤다.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던 이들 중 맨 앞에 오던 제이슨(가명·남·16)은 전씨를 향해 "염병할 아시아 놈 (중국인을 빗대어), 여길 떠나라, 집으로 돌아가라(Fucking Chinky, Leave here, Back home)"라고 욕설을 내뱉었고, 뒤따르던 다른 십대들도 한두 마디씩 욕설을 하고 지나갔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 전씨는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제이슨을 뒤따라갔지만 이미 자전거로 도주한 후였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사하던 교회 친구들과 같은 주택가에 살고있던 제이슨이 집에서 망치를 들고 다시 나타난 것.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을 거라 위협을 느낀 전씨는 제이슨에게 다가가 진정시키려 했다. 전씨에 따르면, 당시 제이슨에게서는 심한 술냄새가 풍겼다. 전씨는 "망치 내려놓고 진정해라"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상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주변에 있던 목격자 이모씨가 명확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또다른 목격자 정모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온다는 말에 제이슨은 자기 집 쪽으로 달아났고 전씨는 그를 뒤따라가 사과를 요구했다. 순간, 제이슨은 전씨의 멱살을 잡고 위협하면서 옆에 있던 정모씨의 가슴을 밀쳤다. 이어 전씨의 오른쪽 이마를 망치로 내려치고 인근 주택 창고 지붕에 망치를 던진 후 도망쳤다. 주변에 있던 전씨의 교회친구 2명이 뒤따라가 제이슨을 붙잡고 망치를 꺼내 내려왔다. 옷과 운동화를 흠뻑 적실만큼 피를 흘린 전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앰뷸런스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6바늘을 꿰매는 봉합 수술을 받았다. 사진·망치·증인진술 수두룩... 그런데 증거불충분? 어이없는 '테러'를 당한 전씨는 제이슨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합의를 거부, 영국 법정에 정식으로 재판을 신청하기로 했다. 조사는 순조로운 듯 보였다. 가해자 제이슨은 자신이 오히려 전씨와 그 주변인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으며 자신의 집에 전씨 등이 무단 침입했다고 주장했으나 담당 수사관들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담당 수사관은 이후 공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전씨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석 달 반 동안이나 끌어오던 사건은 결과적으로 제이슨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8월 3일, 사건담당 통역관이 "검찰이 증거불충분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전해온 것.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치를 것으로 예상했고 담당 수사관도 그렇게 암시를 했었지만, 법원 판결을 받을 기회조차 없어지게 된 것이다.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씨는 "피해자, 목격자의 정확한 진술은 물론 나를 공격한 망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까지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증거 불충분이 될 수 있느냐"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혼란스럽다"고 항변했다. 또하나의 사건 이에 앞서 7월말, 영국법정은 부부싸움 도중 사망한 한국인 아내를 토막 내 유기하고, 도주했다가 자수한 영국인 남편사건에게 '5년형'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내려 한인 사회를 들끓게 했다. 2004년 6월 8일, 한국 여성 강모씨(당시 38세)가 자신의 집 냉동고에서 토막난 사체로 발견됐다. 이어 13일 뒤인 21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던 영국인 남편 폴 달튼(35)이 히스로 공항에서 체포돼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조사내용은 이랬다. 폴 달튼은 부부 싸움 도중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해 주먹으로 아내 강씨의 안면을 공격, 턱뼈가 부러진 채 실신해 쓰러진 강씨를 방치한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폴 달튼이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 이미 강씨의 호흡은 정지한 상태였다(부검결과는 출혈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한 것으로 나왔다). 그는 강씨의 사체를 토막낸 뒤 비닐에 담아 냉동고에 넣은 뒤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13일 만에 경찰의 설득이 담긴 이메일을 받고 히스로 공항으로 입국하는 길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1급살인 사건으로 기소돼 당초 중형이 예상됐던 폴 달튼에게 영국법정은 1년여 간의 재판을 거쳐 지난 7월 25일 최종형량을 선고했으나 살인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과실치사 혐의로 2년형, 사체유기 혐의로 3년형. 배심원들이 달튼에게 살인의도가 없었다고 인정하며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평결했고, 담당판사도 '살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 "제도화된 인종주의 때문" 위 두 사건에 대한 잇따른 이례적 처리(판결)에 대해 영국 내 한인사회에서는 소수인종에 대한 인종주의적 시각이 적용돼 가해자 편들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망치사건'의 경우, 사건 당시 사진과 가격한 망치 등 명백한 증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은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 자국민 편들기라는 것. 더욱이 흉기(망치)를 이용한 의도적 공격일 경우, 일반 폭행죄보다 훨씬 죄질이 무겁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전씨는 이번 결과에 대해 "영국 내 소수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불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검찰의 시각이 공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이어 "(사건관련) 정확한 자료를 남기는 일에 힘쓰려고 한다"며 "기회가 되면 이번 사건이 영국 내 인종차별과 영국경찰과 검찰의 인종차별적 조치의 실례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모씨 사건의 경우, 최종 형이 확정된 후 열린 사건 설명회에서 서튼경찰서 강력계 수석형사 폴 맥칼리넌은 "영국 법체계 하에서 5년형은 과실치사 혐의로 받게 되는 평균적인 형량"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연 공정한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그런 형량이 나온 것인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 사건을 취재한 MBC 이동희 피디는 재판장에 참석해 지켜봤던 대부분의 교민들은 이번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검사가 제시한 증인은 달튼의 부모와 달튼과 불륜관계에 있던 모 여성뿐이었으며, 검사는 변호사의 변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도 않고 중대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 달튼은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평소 강씨가 거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언어 폭력 등을 통해 자신에 많은 고통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재판과정을 취재한 영국의 중앙, 지역언론들도 앞 다투어 강씨가 얼마나 '못된' 여자였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사건 자체가 가십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영국사회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간다는 것 위 두 사건과 관련해 5년째 영국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의문사 문제와 싸우고 있는 고 이경운군의 부친 이영호씨는 "영국 내 공공기관 특히 사법기관, 경찰에 잠재해 있는 '제도화된 인종차별' 태도를 고려할 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결과"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씨는 "제도화된 인종 차별은 공공 기관 내 깊숙히 뿌리박힌 관행이어서 업무를 처리하는 당사자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밝혀내고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평했다. 영국 내 제도화된 인종차별 문제는 스테판 로렌스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1993년 흑인 청년 스테판 로렌스(18)는 버스 정류장에서 백인 불량배들의 칼에 찔려 사망했으나 용의자 백인들에게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6년간 유가족의 끈질긴 싸움 끝에 영국 경찰이 인종주의적 시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사건을 처리했음이 드러났고, 이로서 영국 공공기관에 잠재해 있는 '제도화된 인종차별' 문제가 낱낱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경찰 고위 관리 11명이 해직 당하는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지난 달 리버풀에서는 흑인 고등학생 앤소니 워커(18)가 백인 청년이 휘두른 도끼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 당시 유가족들은 사건 발생 후 추모 집회에서 "범인들이 길거리를 더이상 걸어다녀서는 안된다, 반드시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3천 여명이 참가한 촛불시위가 열리며 영국 주요 언론의 머릿기사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이번 한국 교민들이 겪은 두 사건은 영국 내 사법, 행정 등 공기관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의심케 만들고 있다. 또 한인사회에는 한국교민들이 사건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 하이트+진로..재계 30위권 주류업체 탄생
- [edaily 피용익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함에 따라 국내 사상 초유의 `매머드급` 주류 업체가 탄생하게 됐다. 하이트맥주는 진로 인수를 통해 맥주, 소주, 위스키 등 3대 주류를 모두 거느리게 됐다. 하이트맥주가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급상승했다. 지난 3월말 기준 자산 2조3300억원으로 재계(공기업 제외) 45위였던 하이트맥주는 자산 9500억인 진로를 끌어안고 자산기준 재계 3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직원수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이트맥주(000140)와 진로의 직원 수는 각각 1600명, 1800명으로 두 기업의 결합으로 인해 직원 수는 3400명에 달하게 됐다.하이트맥주는 이번 진로 인수를 통해 국내 술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게 됐다.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말 기준 맥주 시장 점유율 58%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진로는 소주 시장 55%를 점유하며 마찬가지로 업계 선두다. 또 위스키, 생수 시장에서도 하이트맥주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하이트맥주의 또 다른 진로 인수 효과는 해외 시장 공략의 가속화다. 지난 3월 맥아를 사용하지 않은 맥주맛 알코올 음료인 제3의맥주를 일본에 출시한 하이트맥주로서는 일본 소주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진로재팬을 통해 영업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진로는 일본 외에도 세계 6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하이트맥주는 어떤 회사?하이트맥주의 역사는 지난 1933년 설립된 국내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에서 시작된다. 크라운맥주로 널리 알려졌던 조선맥주는 오비맥주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 머물다 93년 출시한 하이트가 대히트를 치자 하이트맥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하이트의 성공으로 하이트맥주는 96년을 전후해 오비맥주를 누르고 맥주업계 1위에 올랐다. 하이트맥주의 소주 시장 진출은 지난 97년에 이미 이뤄졌다. 당시 법정관리중이었던 보배(현 하이트주조)와 백학주조(하이트소주로 운영하다 지난해 매각)를 인수해 지방 소주 시장에 진출했다. 하이트맥주의 주요 계열회사는 하이트주조, 하이트산업, 하이스코트, 하이트주정 등으로 외형상 맥주, 소주, 위스키를 망라하는 종합 주류업체의 사업구도를 갖추고 있다. 하이트맥주의 오너 일가는 박경복 명예회장과 아들인 박문덕 회장 등이며, 윤종웅 사장이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맥주는 총매출액 1조9233억원, 순이익 1101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 불귀의 객으로 돌아온 "마지막 프린스"
- [조선일보 제공] 한 사내가 돌아갔다.
후사(後嗣)도 없고, 부인과도 이혼한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의 한 객실. 사망 시간(16일)도, 사망 원인(심장마비)도 현재로서는 추정에 불과하다. ‘변사’에 해당하기에, 그의 시신은 19일 오전 일본 검찰에서 부검했다.
이구(李玖·1931~2005)씨.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1897~1970)과 일본 왕족 이방자(李方子·1901~ 1989) 여사의 아들. 조선 왕실의 마지막 황세손(皇世孫)이었던 그의 죽음은 18일 오후 늦게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사장 이환의)에 알려졌다. 외사촌으로 평소 그를 돌보던 나시모토(梨本)씨가 18일 그를 찾아갔다가 화장실에서 그의 주검을 발견, 종친회에 알린 것이다.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함께했다. 1931년 도쿄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망국의 이름뿐인 왕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일본 왕실로부터 ‘세자(世子)’로 책봉됐고 종친회도 그를 ‘황세손’(=황태자)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 영영 족쇄로 남은 이름이었다. 일본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던 그는 14세에 광복을 맞았지만, 귀국할 수 없었다. 집권자들은 황세손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를 도운 것은 일본 점령군사령부인 맥아더사령부였다. 1950년 미국 MIT 건축과 유학. 졸업 뒤 뉴욕의 한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하던 그는 5년 연상인 줄리아 여사를 만났고 1958년 10월 뉴욕의 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귀국한 그는 어머니 이방자 여사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살았다.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 건축공학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1979년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냈고 그는 “돈을 구하러 간다”며 고국을 떠나 일본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 줄리아 여사와 이혼(1982년),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사망(1989년)을 겪었고, 일본의 여성 점성술사와 함께 살았다. 그는 1996년 11월 ‘영구 귀국’했다. 종친회 총재로서 사무도 보고, 종묘에서 열리는 대제(大祭)를 주관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나는 더 이상 왕가와 관련이 없는, 개인 이구일 뿐”이라고 내내 밝혔다. 하지만 그의 ‘영구 귀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신경쇠약증상도 있던 그는 고국 땅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가 일본 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빈청(殯廳=빈소)은 그가 어머니·아내와 함께 한때를 행복하게 살았던 낙선재. 89년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의 빈청이 차려졌던 곳이며, 조선 황실의 빈청이 낙선재에 마련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일장으로 24일 발인 예정.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고종황제릉) 뒤편 영친왕 묘역(영원).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 광주요 행사에 재계 인사 대거 참석 `눈길`
- [edaily 피용익기자] 명품 도자기 제조업체인 광주요가 소주시장 본격 진출을 선언하는 행사에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7일 저녁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광주요의 `화요` 출시 행사장은 500명 가량의 초청 인사들로 가득찼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재계 인사들. 장세주 동국제강(001230)그룹 회장을 비롯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신선호 센트럴시티 회장, 김주형 CJ(001040)㈜ 사장, 한수양 포스코건설 사장, 김재학 효성중공업 사장, 김정완 매일유업 사장 등이 참석했다.
초대를 받았지만 참석하지 못한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 명예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최동수 조흥은행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은 화환을 보내 축하 인사를 대신했다.
이날 행사에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 조태권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발이 넓기로 유명하다"며 "삼성 등 재벌그룹 가문과의 친분도 돈독하며 정계, 학계에 걸쳐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조 회장은 48년생으로 경기중을 졸업한 뒤 경기고(62회) 재학중 유학길에 올라 일본외국인학교(ASLJ),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73년 동경 마루이치상사, 74년부터 ㈜대우 섬유부, 철강부, 특수물자부를 거쳐 그리스 지사장을 지냈다. 88년부터는 선친 고(故) 조수호 옹의 가업을 이어 광주요를 경영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최고급 전통술을 한국의 최고급 자기에 담아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며 "증류식 소주 `화요`를 영국의 스카치 위스키, 러시아의 보드카와 같은 세계적 명주로 키워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 당초 참석할 예정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edaily리포트)다음 만남을 약속한 韓日정상
- [edaily 김윤경기자] 한일 두 나라 정상이 경색된 양국 관계를 헤치고 21일 만났습니다. 지난 두 차례 셔틀외교 때와는 달리 지방 휴양도시가 아닌 청와대에서, `노타이`가 아니라 격식을 갖춘 정장차림으로 만난 두 정상은 덕담과 미소를 나누며 회담을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입장만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공공연한 전국민적 희망을 감안한다면 회담 결과는 적어도 우리 쪽에서 볼 땐 `실패`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석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 취재했던 김윤경 기자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2시간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중간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모두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솔직` `진지`. 그 자체만으로는 일반적으로 긍정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직설을 피하는 외교의 장에선 이런 `직설적 표현`은 꼭 긍정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특히 어제 회담 맥락 속에선 그렇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경색시킨 주 요인들에 대해 다만 `각자` 솔직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을 뿐 합의점은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정상은 상춘재에서의 2시간 회담에서 1시간50분을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등 역사인식 문제 논의에 쏟아 부었습니다.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후에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 브리핑을 통해 들은 두 정상간 발언은 솔직했던 만큼 날도 서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민감한 사안인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오고간 얘기만으로도 사실 회담 분위기의 대부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의 전쟁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전시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을 때 인근 나라, 특히 과거 괴롭힘을 당한 나라 국민들은 미래를 불안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신사참배 중단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담아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나의 참배가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전쟁에 참가한 많은 일본인들을 추도하고 앞으로 전쟁을 일으켜선 안되겠다, 하는 그런 다짐을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신사참배 하지 않겠다는 얘긴 행간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죠?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과거 전후 60년동안 비핵화원칙, 방위문제 등에서 주변국에 위협을 준 적이 없으며 군사력을 억제해 가며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강조하기까지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총리께서 신사참배를 어떻게 설명하시더라도 나와 국민들에게는 역시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라며 "일본 집권당 각료와 핵심 지도자들이 감정적 갈등을 제공하지 않도록 발언에 각별히 유의했으면 좋겠다"며 다시 한 번 지적했습니다.
회담장에 들어가기 전 날씨와 이부스키 회담장 얘기로 기껏 살려놓은 우호적인 분위기는 이렇게 중간발표장인 녹지원에선 거의 사라진듯 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굳이 `낮은 수준`이라고 표현하면서 역사인식과 관련해 합의 두 가지를 이뤘다고 발표했습니다. 제2기 역사공동위 산하에 교과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 제3의 추도시설 건립 요구에 대한 일본측 검토 등이 그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나마 이 사항은 회담 이전 양국 실무 외교채널을 통해 이미 조율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망감이 여실히 배어 있습니다.
게다가 고이즈미 총리가 제3의 추도시설 건립 검토를 `약속했다`고 발표했던 노 대통령은 곧바로 `약속`이란 말은 빼야겠다, 그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수정했습니다. 약속했다면 이행돼야겠지만 노 대통령은 그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이렇게 피력한 것입니다.
회담 결과는 지금까지 정상회담에서처럼 공동기자회견 형식이 아니라 두 정상이 `각자` 발표하는 선에서 간단히 마무리됐습니다. 기자들이 민감한 현안들까지 질문할 경우 분위기가 더 냉각될 수 있는 것을 사전부터 감안한 듯 청와대는 회담전 이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찬도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취재는 전체는 아니더라도 만찬 전 분위기 정도는 출입기자단이 취재할수 있게 허용됩니다. 그런데 이번 만찬엔 취재기자조차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취재기자가 들어가지 못하면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거나 자료 형식으로 설명을 하지만, 이 역시 밤 11시가 다 되도록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저녁 식사 자리에선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고만 전할 뿐이었습니다.
만찬 메뉴라든지 오고간 농담 등 가벼운 내용을 곁들여 결과를 발표하던 이전 경우에서 벗어난 것과 관련, 기자들은 만찬 분위기 역시 무거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저녁상에 역사인식 문제가 올라왔다면 결코 가벼울 순 없었을 겁니다.
그러고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논의될 의제에 대해서도 공식 발표가 없었습니다. 정상회담 전 통상 정부 관계자들이 배경 설명을 해주고 예상 의제 등을 짚어주곤 하는데 이번엔 그 조차 없었습니다.
김 대변인은 회담 며칠 전까지도 "기다려 보라"고 했고, 하루 이틀 전에서야 "공식 의제는 없다. 다들 알고 있는 명백한 주제들이 얘기될 것"이라고 밝혔죠.
회담의 사전사후 진행방식이 기존 회담과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 `다름`은 한일관계의 특수성, 특히 여느때 보다 더 냉랭해진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담 결과가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왜 신사참배 중단이란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했느냐, 실패했다 는 식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중단될 뻔했던 셔틀외교의 지속을 확인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괍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번 회담을 열었고 올해 말에도 일본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죠. 장소와 복장 같은거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대화를 통해 서로 의견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계속될 수 있는 틀은 계속 유지되는 겁니다.
일본이 중국과 정상간 방문조차 없고, 우리도 이번 회담 전까지 `연기설`이 흘러나오는 등 성사가 불확실했던 점에 비춰보면 셔틀외교 지속 확인은 그래도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회담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 이분하는 건 그야말로 단견일 거란 생각입니다.
다만 관계회복을 위해 양국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고, 특히 우리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본이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지 관심입니다. 이제 막 세 술을 떴는데, 과연 몇 술을 더 떠야 배부를 수 있을까요.
- (edialy 인터뷰)김홍기 현대이미지 사장
- [edaily 안승찬기자] "삼겹살에 소주 한잔 같이 해야하는데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정말 미안합니다. 다음에 꼭 한잔 합시다"
소탈함. 강남역 현대이미지(048410)퀘스트 서울 사무소에서 만난 김홍기 현대이미지퀘스트 사장의 첫 이미지는 그랬다. "와인은 왠지 어색해서..고기도 좀 굽고 술도 한잔씩 따라주고 해야 제맛"이라는 김 사장은 소문난 삼겹살 예찬론자다.
그러나 엔지니어 출신인 김 사장은 80년대 국내 PC산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국내 IT산업 1세대로 통한다. 사업에 관해서는 소탈함이 없다.
"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우리가 삼성, LG처럼 막대한 자금 동원해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현대전자에서 2000년 현대이미지퀘스트로 자리를 옮긴 김 사장은 뚝심있는 경영으로 현대이미지퀘스트의 체질개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김 사장이 부임했을 때 현대이미지퀘스트의 브랜드 매출은 35%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이를 65%까지 끌어올렸다. 매출이 다소 줄어들더라도 수익성 위주의 경영만이 살 길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던 것.
"수익도 나지 않는데 매출만 늘리는 OEM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수익성이 나지 않은 OEM은 과감하게 모두 잘라버렸죠. 앞으로도 철저히 수익성 위주로 해나갈 겁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디지털TV 사업도 점차 본괘도에 올라서고 있다. 사업 첫 해 디지털TV 매출의 비중은 4%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디지털TV 매출이 주력인 LCD 모니터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디지털TV용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을 생각입니다. 새로운 브랜드와 차별화된 제품으로 국내 시장도 열심히 해봐야죠. 해외 시장도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김 사장은 "프로젝션이나 입체영상 등 디스플레이와 관련된 것은 다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사업 아이템을 보다 다양화할 것임을 내버쳤다. 벌써 현대이미지퀘스트는 종합디스플레이 업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다음은 김홍기 현대이미지퀘스트 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자금력 갖춘 제대로된 오너 오면 한단계 도약"
-최대 주주였던 하이닉스가 최근 빅터스캐피탈 컨소시엄에 지분을 매각키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앞으로 빅터스가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나.
▲아직까지 빅터스측과 본격적인 접촉은 없었다. 또 매각건은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또 이번 매각은 자산을 양수도하는 개념이 아니다. 최대 주주만 변경된 것일 뿐이다. 하이닉스도 그간 최대 주주로서 경영권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을 뿐 자산을 통째로 판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M&A가 아니다.
-빅터스가 적절한 주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찌됐건 하이닉스에 비해 자금이 풍부한 주인이 되는 것 아닌가.
▲현대이미지퀘스트는 20년간의 유통망과 개발인력 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제대로된 오너가 오면 현대이미지퀘스트는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아닌 사람이 오너로 오면 오히려 위기일 수도 있다.
-빅터스와의 매각으로 주가도 탄력을 받았는데.
▲그간 2대 주주였던 한화증권이 호재때마다 지분을 팔아서 주가에 늘 부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매각건으로 한화증권이 대부분의 지분을 매도하면서 주가 걸림돌이 제거됐다.
-분사이후 하이닉스와도 결별하게 되는 셈인데, 기존 거래선 등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의 거래선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다. 과거 현대전자에서 분사할 때도 그런 우려들이 있었다. 그러나 브랜드도 `현대` 그대로고, 생산과 개발자도 그대로다. 주인만 바뀌는 셈이다.
-현대상사도 현대 브랜드 TV를 내놓고 있는데.
▲현대상사는 산모양의 과거 현대 브랜드를 쓰고 있고, 우리는 현대전자가 만들어낸 동그란 문양의 현대를 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OEM으로 브랜드만 붙여서 판매하는 사업이 얼마나 오래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반기 DTV용 신규 프리미엄 브랜드 선보일 것"
-디지털TV용 신규 브랜드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던데.
▲고급스런운 디지털TV용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 계획이다. 도요타의 차가 렉서스란 브랜드로 시장에 나온 것처럼, 그냥 현대라고 브랜드는 사명이라는 점에서 계속 이것만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현대 브랜드는 중공업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나 차를 먼저 떠올린다. 디지털TV의 브랜드로 사용하기는 다소 어색하다. 신규 사업인 만큼 처음부터 프리미엄 브랜드를 갖는 것이 제품 차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반기에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걸맞는 세컨드 브랜드를 사용한 고급 디지털TV 제품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볼 생각이다. 일단 국내에 내놓은 디지털TV에 사용하고 해외시장에도 새 브랜드를 적용할 생각이다. 그러나 물론 현대 브랜드를 아예 쓰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TV의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현대이미지퀘스트는 과감한 가격인하 경쟁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인데.
▲디지털TV 시장은 막강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시장이다. 후발업체들은 가격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선두적인 가격인하를 현대이미지퀘스트가 리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제살깎아먹기식 가격인하는 안할 생각이다. 가격만 싼 것으로 승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해야한다.
-디지털TV를 내놓으면 내수시장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역대로 내수물량은 항상 5% 정도였다. 유럽형 등 수출모델을 개발한 이후 나중에 내수 제품을 내놓곤 했다. 그러나 디지털TV의 경우에는 국내 시장에 우선권을 둘 생각이다.
모니터는 한 제품을 개발하면 전세계에 수출이 가능하지만 TV는 국가별로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하반기부터는 내수쪽에 먼저 런칭해서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세컨드 브랜드를 만든다는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의 경우 대기업과 거의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지만, 국내 시장이 뚫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향후 내수가 전체 매출의 10%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본 틈새시장 공략..성과 기대할만"
-최근 일본시장 진출에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성과가 어떤가.
▲일본은 CRT가 거의 없다. 디지털TV 보급율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시장은 대기업도 고전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일본은 기회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와 거래를 하고 있고, 양판점 납품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본형 디지털TV 튜너를 잘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본향 디지털TV 제품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경우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가 일본 부품회사와 링크해 일본향 디지털TV 튜너를 개발을 시작했다. 올해안에 일본전용 디지털TV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기능은 빼 가격도 낮출 생각이다. 모두 독자브랜드로 들어간다.
또 가라오케, 호텔 등 일본 틈새시장도 많이 노리고 있다. 호텔에서 쓰는 디지털TV의 경우 시스템 업체와 번들로 들어가기로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다.
일본의 유명 가라오케 업체와도 하반기 초부터 우리 제품을 공급하기로 얘기가 된 상태다. 가라오케 납품하는 제품은 대형 모니터에 가까운데, 관세도 적고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대기업들은 자기 브랜드로 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니치마켓은 생기게 마련이다. 틈새 시장을 잘 공략하면 올 4분기나 내년도에는 일본에서 TV로 상당한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년 DTV 주력 부상..브랜드 매출 강화"
-그간 여러가지 구조조정이 많이 됐던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의 성과와 앞으로의 방향은.
▲지난 95년 회사에 처음 부임했을 때 CRT 모니터가 매출의 100%였다. 2000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할 당시에도 메인제품은 CRT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메인이 LCD로 바뀌었다. 올해 CRT 모니터는 전체 매출의 비중이 10% 미만이 될 것이고, 디지털TV는 매출의 20% 이상이 될 것이다. 70% 이상은 역시 LCD 모니터다.
내년이 디지털TV의 매출이 LCD 모니터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판매대수는 LCD 모니터가 많겠지만, 디지털TV가 고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액으로는 디지털TV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OEM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2000년부터 현대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고 시작했다. 그때는 브랜드 매출이 35%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OEM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향을 보면 OEM이 많은 회사는 모두 망했다.
그래서 브랜드 매출을 점점 늘여 지난해에는 64%까지 올라갔다. 결과적으로 전체 매출은 감소하고 있지만, 수익이 안나는 OEM은 모두 잘라버렸다. 수익성을 유지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브랜드 매출을 착실히 해나갈 생각이다. 디지털TV 세컨트 브랜드를 내놓겠다는 생각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신규로 시작한 디지털TV의 경우 절대물량을 유지해야할 필요성 때문에 일부 OEM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니터의 경우는 수익성 없는 OEM은 절대 안할 생각이다.
-디지털TV 시장은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상당수 뛰어든 시장이다. 현대이미지퀘스트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최근에는 델이나 HP 등 IT업체들도 가전사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기술적으로만 보자면 디지털TV시장에서 IT업체들이 전통적인 가전업체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대 TV는 하드디스크, 네트워크 등 거의 PC에 가까운 기능이 들어간다. 기존에 브라운관 TV만 하던 업체들은 IT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이미지퀘스트의 경우 과거 현대전자에 속해 있을 때 PC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절반은 IT를 한 셈이다.
또 분사하기 전부터 씬 클라이언트(thin clients)를 연구했다. 이는 서버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개인 PC는 터미널의 역활만을 담당해 비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이를 기반으로 IP TV 개발도 상당히 진전됐다.
디지털의 복제 특성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디지털TV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2~3년쯤 되면 많이 정리가 될 것 같다.
"디스플레이 관련 사업은 모두 관심"
-디지털TV 이외에 새로운 사업영업에 뛰어들 생각이 있나.
▲눈으로 보는 것과 관련된 디스플레이는 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한 아이템이다. 또 디스플레이는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모니터만 했지만 지금은 디지털TV로 사업을 확대했다. 앞으로도 눈과 관련된 디스플레이 사업은 모든 영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입체영상, 프로젝션TV 등도 고려중이다.
실제로 현대이미지퀘스트는 CCTV 카메라용 모니터도 납품하고 있다. 유럽지역 공항의 검사용 모니터도 시스템회사와 같이 납품해 우리제품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시장이 존재한다. 인지도가 있는 고유 브랜드와 기술력을 갖추고 그런 시장을 뚫는다면 충분히 해볼만하다.
◇김홍기 현대이미지퀘스트 사장 약력
▲1948년 경북 경산 출생 ▲1967년 경북대학교 사대부속 고등학교 졸업 ▲1971년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76년 인하대학원 전자공학과 졸업 ▲1986년 (구)현대전자 컴퓨터 본부 개발 담당이사 ▲1992년 (구)현대전자 미국자회사 Laserbyte 관리담당 부사장 ▲1998년 (구)현대전자 모니터사업본부장 전무이사 ▲2000년 이미지퀘스트(주)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이미지퀘스트(주) 대표이사 사장 ▲2005년 현대이미지퀘스트㈜ 대표이사 사장(사명 변경)
- "내일 오후 3시 지구는 결딴 난다"
- [조선일보 제공] 속은 이도 속인 이도 상긋한 쾌감을 함께 누린다면, 활력소치고도 꽤 괜찮은 만우절 농담일 게다. 매년 4월1일, 그럴싸한 외피를 둘러 세인들을 희롱한 외신들의 상식 초월 ‘만우절 뉴스’의 수는 단번에 암산하기 어렵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www.museumofhoaxes.com)는 역대 만우절 거짓말 중 백미를 골라 ‘만우절 농담 100선(選)’을 열거해 놓았다. 100선 중 발췌해 소개한 아래 항목들이, 외신들이 흔히 전하는 만우절 기사에 기만당하지 않고 되레 건강한 웃음으로 응대할 수 있는 요령이 될지 모르겠다. 어지간한 말장난에 둔감해질 만큼 일상이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 해도, 상식 밖의 ‘계산된 오보’들이 많다.
-고속철 스피드를 내는 강견(强肩) 신인 투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168마일(약 269㎞) 나가는 무지막지한 속구를 지닌 신인 투수 시드 핀치가 뉴욕 메츠(현재 구대성·서재응이 소속돼 있는 미 메이저리그 구단)에 입단할 예정이라고 1985년 보도했다. 더 가관은, 그가 경기 경험이라곤 전혀 없으며 티벳 승려에게 ‘투구의 미학’을 사사했다는 대목이었다. 메츠 팬들은 열광했으나, 전설적 인물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흑백TV가 창졸 간에 컬러 TV가 되다?
스웨덴에 TV채널은 단 하나, 그것도 흑백 방송이었던 시절인 1962년, 방송국 기술요원이 뉴스에 출연해 “TV 스크린에 나이론 스타킹을 두르면 화면이 컬러가 된다”고 말했다. 당시 700만 인구 중 수만명이 유린돼 그 허황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스웨덴 내 실제 컬러 화면 송출은 그로부터 8년 뒤인 1970년 만우절(4월1일)에 이뤄졌다고 한다.
-워터 게이트로도 모자라 대선 재도전?
‘워터 게이트’ 도청 추문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은 1992년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대선에 출마할 계획이고, 선거 구호는 ‘나는 잘못한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로 정했다”고 말했다. 청취자들은 격분했고, 방송사는 같은 프로그램 2부 시간에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코미디언 리치 리틀이 닉슨의 성대 모사를 했다고 한다.
-왼손잡이를 위한 햄버거?
“미국 내 3200만 왼손잡이를 위해 ‘왼손잡이 와퍼’를 출시합니다. 오리지널 와퍼와 성분은 똑같지만, 모든 내용물이 180도 돌려져 있는 왼손잡이 전용입니다.” 1998년 버거 킹은 USA 투데이에 이런 전면 광고를 냈다고 한다. 버거 킹은 다음날 돌린 보도자료에서 “수많은 왼손잡이가 신제품을 구하러 몰려 들었고 오른손잡이는 ‘우리 것’을 달라고 주문했다”며 또 상술을 부렸다고 한다.
-TV 전파를 방해하는 못된 브래지어?
1982년 데일리 메일은 “TV·라디오 전파를 방해하는 ‘악질 브라(rogue bra)’를 다량 팔았다”는 한 업자의 말을 전했다. 가슴을 지지하는 구리 성분은 ‘화재 경보’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인체 열이나 나일론과 맞닿으면 방해 전파를 발생한다고 가공의 기사는 이어졌다. 브리티시 텔레콤의 고위 기술직 책임자는 여성 직원들에게 어떤 속옷을 입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긴급 지시했다고 한다.
-시드니 항구에 거대 빙하가?
1978년 4월1일, 세계적 미항(美港) 시드니로 남극 거대 빙하를 견인해 온다는 소식에 구경꾼들이 운집했다. 이벤트를 기획한 탐험가 겸 백만장자 기업인은 “남극산 빙하를 잘게 쪼개 한 조각 10센트에 판매할 계획이며, 이 초신선 자연 얼음은 어떤 음료건 맛을 배가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빙하가 항구에 닿을 무렵 비가 왔고, ‘가짜 빙하’를 덮은 면도용 거품과 소방(消防) 거품이 비에 씻겨 내리자 흰색 플래스틱 실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우주선이 비상 착륙한다!?
디스커버리호가 에드워드 공군기지로부터 방향을 급선회해 미국 샌디에이고 근교 몽고메리 필드 공항에 곧 착륙할 예정이라고, 1993년 샌디에이고의 한 지방 방송 라디오 DJ가 생방송으로 전했다. 카메라·캠코더·접이식 의자를 둘러 맨 주민들로 인근 지역 교통이 1시간가량 마비됐지만, 그 공항은 우주선이 이·착륙하기엔 터무니없이 규모가 작았고 게다가 디스커버리 호는 당시 궤도에 오를 계획이 전혀 없었다. 과(過)한 농담에 후끈한 경찰 당국은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빅벤’이 디지털 시계로 바뀐다?
“영국 의사당 건물에 걸린 대형 시계이자 런던의 상징물이기도 한 ‘빅 벤(Big Ben)’이 항시 정확한 시각을 가리킬 수 있도록 디지털 시계로 교체된다”고 영국 BBC가 1980년 보도했다. 성난 청취자들의 항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BBC 일본어 서비스는 한술 더 떠 “시계 바늘 네 개를 전화 선착순으로 주문받아 청취자 네 명에게 팔겠다”고 했고 대서양을 항해 중이던 한 일본인 선원이 즉시 구입 신청을 했다고 한다.
-캐나다 재무장관의 귀농?
2002년, 캐나다의 한 웹사이트는 폴 마틴 재무장관이 소·오리를 키우기 위해 전격 은퇴해 인구 811명인 퀘벡주의 작은 마을로 귀농한다는 풍문을 풀었다. 캐나다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등 시장(市場)이 그 즉시 혼돈에 빠졌고, 장관실에서 소문을 부인한 후에야 진정 국면에 들었다.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의 사과의 변은 “오리가 (거짓말임을 암시하는) 실마리였는데…”였다고 한다.
-에디슨이 음식 제조기를 발명했다고?
뉴욕 그래픽은 1878년 “토머스 에디슨이 흙을 시리얼로,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기계를 발명했다”고 보도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최초로 발명한 이듬해였던지라, 세간에선 천재가 개발한 기적의 음식제조기를 진실로 받아들였고, 미국 전역의 신문들이 그 오보를 인용했다고 한다.
-빨아 먹는 보드카? 티 백 보드카?
“막대 사탕 형태의 빨아먹는 보드카가 발명됐다”고, 1994년 이타르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레몬·코코넛·오이 세 종류 향을 지닌 이 막대 캔디는 스니커즈·마즈 같은 초인기 상품과 경쟁을 벌일 예정이며, 캔디 보드카를 출시한 회사에서 티 백(tea bag) 형태의 즉석 보드카 상품도 따로 내놓았다고 전했다.
-그날은 지구 최후의 날?
“내일 ‘세계 종말’이 도래할 것이다.” 섬뜩한 공포가 사이비 교주의 입이 아닌, 권위있는 연구소로부터 흘러 나왔다. 1940년 3월31일, 한 라디오 방송이 미 프랭클린 연구소로부터 입수한 보도자료라며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만우절 농담이 절대 아니며, ‘미 동부 시각으로 내일(4월1일) 오후 3시 지구는 결딴 난다’고 필라델피아 과학자들이 확인했다”는 첨언과 함께.
진상 파악에 나선 연구소측은, 홍보 담당자가 4월1일 연구소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지구는 어떻게 종말을 맞을까’ 주제 강연을 선전하려 거짓 자료를 유포했음을 밝혀냈고, 그 직원을 즉각 해고했다.
-마라도나, 소련 축구팀에 이적?
1988년 소련 이즈베스티야가 “세계적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모스크바 스파르타쿠스와 몸값 600만달러에 이적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자, AP통신은 이를 전세계에 속보(速報)로 내보냈다. 그 신문이 “만우절 기사”임을 실토한 직후 뼈아픈 정정 기사를 내보낸 AP는 “최근 몇년새 소련 신문들이 만우절 거짓 기사를 실은 적이 없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에펠탑이 해체된다니…
“에펠탑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잠시나마 숨이 멎지 않은 파리 시민들이 있었을까? 1986년 파리지앵은 “프랑스의 국제적 상징 건물 에펠탑이 해체돼 파리 동부에 위치한 유로 디즈니 테마 파크에 새롭게 건설된다”고 덧붙였다. 에펠탑 자리에는 3만5000석 규모의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선다고 허구의 기사는 이어졌다.
-소크라테스의 묘가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인근 지하에서 소크라테스의 묘로 추정되는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그리스 문화장관이 1995년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들이켰던 독약의 흔적이 묻은 잔과, 기원전 400~390년 것으로 보이는 가죽 조각도 묘에서 함께 발굴됐다는 것이다. 즉보를 타전한 AFP 통신은 문화장관이 농담임을 밝힌 뒤 후속 정정 기사를 내보내야 했다.
- (CEO인터뷰)오기소 이치로 한국토요타 사장
- [대구=edaily 좌동욱기자] 한국인과 일본인의 장점을 섞으면 어떤 사람이 나올까.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토요타자동차의 `뉴GS` 신차시승회` 행사에서 만난 오기소 이치로(51) 사장이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오기소 사장은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일본인이었다. 인사와 말투에 일본인 특유의 `친절`이 묻어났으며 무엇보다 도요타의 경영방식이 몸에 베여 있었다. 하지만 한국생활 3년째인 그는 한국식 문화에 익숙했다. 폭탄주 문화를 꿰고 있었다. 국내 스타들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오기소 사장은 국내에서 불고있는 `도요타 벤치마킹` 붐으로 일정이 빡빡했다. 그는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도 있고, 국내 유수 대기업으로부터 만나자는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며 미소를 지었다. 도요타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렉서스` 판매량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 LG전자의 김쌍수 부회장이나 현대차 중역들도 가끔씩 만난다고 회사 관계자는 귀띔했다.
오기소 사장은 도요타 문화의 특징을 "맡은 일에 대해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정성상 마케팅 이사는 "오기소 사장은 대충대충 일 하는 직원을 제일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는 도요타만의 독특한 `구죠쿠` 경영에서 비롯됐다. `구죠쿠`는 한국말로 "우직하다"는 뜻의 일본말로 도요타의 우수한 품질을 상징하는 문화다. 나사를 7번 반 조이라는 지시를 받으면 8번도 7번도 아닌 7번 반을 정확하게 조여야 하는 게 `구죠쿠` 경영이다.
한국토요타 직원들은 "때때로 갑갑할 때가 있다"는 눈치다. 바쁘다 보면 원칙을 비껴갈 수도 있는데 한번 세워진 원칙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게 한국정성상 익숙치 않기 때문.
하지만 한국토요타의 `우직한` 경영은 한국에서도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법인 설립 5년만인 지난해 5362대를 판매해 1위업체인 BMW를 147대의 근소한 차로 따라붙었다. 판매 증가율도 42%를 기록, 수입차 평균 판매 증가율인 19.8%의 두배를 넘었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 수입차 시장 1위 등극은 문제없어 보일 정도다.
비결을 물었다. 소비자의 요구를 찾아내 이를 꾸준히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컨대 23일 공식 출시될 스포츠 세단 `뉴GS`는 자동차키를 주머니에서 꺼낼 필요가 없다. 차가 차주인의 주머니 속 키를 스스로 인식, 도어락을 자동으로 푼다. 물론 시동키를 꽂을 필요도 없다"
오기소 사장은 지난 2003년1월 한국토요타 사장으로 부임했다. 올해가 3년째다. 업무차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한국문화를 한국인들 만큼 잘안다. 한국인들의 폭탄주 문화가 대화꺼리로 나오자 말이 많아졌다.
"폭탄주는 일본에는 없는 독특한 문화다. 폭탄주, 수류탄주, 도미노주 등 여러가지 폭탄주를 마셔봤다. 처음 폭탄주를 먹을 때는 다 마셔야 되는 줄 알아서 주는대로 다 받아마셨다. 하지만 남몰래 술을 버리는 것도 노하우라는 것도 배웠다"
본사 중역들이 한국에 왔을 때 폭탄주를 함께 마시곤 한다는 게 오기소 사장의 말. 가끔씩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도 폭탄주를 돌린다고 한다.
취미를 물었더니 DVD 시청을 꼽았다. 국내 드라마와 영화들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좋아하는 배우로는 송강호, 최민식, 심은하 등 연기파 배우들을 꼽았다.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를 인상적으로 봤단다.
한국차 품질에 대해 물었더니 "감탄한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는 "현대차의 품질 향상 속도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도요타가 캠리 등 대중차를 들여오지 못하는 주요 이유도 한국차들의 가격대비 품질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차시장은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높아 서로간 경쟁이 느슨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법인으로 발령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직이 지시를 내리면 따르는 것이 셀러리맨이다"라며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좋고, 성장 잠재력도 크고,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도 많다"고 한국시장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한국토요타가 올해 한국 수입차시장에서 1위로 등극할 수 있을까. 우문에 현답이 나왔다. 오기소 사장은 "도요타는 순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 좋은 결과가 온다"고 `구죠쿠`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오기소 이치로 사장 약력
-77년 게이오 대학 경제학과 졸업
-77년 도요타 입사, 북미지역 상용차 마케팅 담당
-92년 도요타 본사 북미지역 마케팅 담당 매니저
-97년 도요타 남아프리카 마케팅 담당 이사
-01년 도요타 본사 남아프리카 지역 마케팅그룹 매니저
-01년 도요타 본사 프로젝트 부장
-03년 한국토요타 대표이사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Greenspan vs Dollar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중앙은행은 정부의 재정정책, 외환시장 정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 불문율을 몇 차례 가볍게(?) 위반했다. 지난해 1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고 지난 4일에는 런던 G7 회담에서 달러 약세와 경상수지 적자 문제에 대해 연거푸 언급하면서 외환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11월에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궁극적으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하더니, 런던에서는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적으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퇴임을 앞둔 늙은 마에스트로 그린스펀이 노망이 든 것일까. 왜 자꾸 말을 바꾸면서 존 스노 재무장관의 일인 외환시장 정책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말이 많은 것일까. `신중한 금리 인상(measured pace)`이라는 통화정책 모토가 식상해져서 외환시장으로 관심사를 옮긴 것일까. 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그린스펀의 속마음을 짚어 보자.
◇환율과 수입물가
그린스펀의 속내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한 몇 가지 힌트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런던 연설에서 그는 달러 약세가 수입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며 "지난해 1분기까지만해도 유럽 기업들은 마진 축소를 통해 통화 강세 충격을 흡수했으나, 이후 통화 강세가 지속되자 강력한 저항감을 표출했고, 급기야는 대미 수출 가격을 인상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유로/달러 환율이 상승하며 유로 강세, 달러 약세가 심화되면서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조업 생산품의 가격이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다. 과거 데이터를 봐도 유로가 강세를 보이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수출품 가격이 올랐고, 유로가 약세를 보였을 때는 수출품 가격이 떨어졌다.
그러나 일본과 아시아 시장으로 넘어오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래 그림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달러/엔과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수출 물가(미국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 지수를 표시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엔화가 초강세를 나타냈을 때, 대일본 수입 물가도 유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는 엔화 가치의 변동에 대해 물가 지수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전년대비 물가 상승률을 보면, 엔화가 강세를 보일 때 분명히 가격 상승 압력이 있지만, 일정 수준을 넘지 않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유럽 기업들과 달리, 엔 강세-달러 약세에서 오는 가격 압력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들은 한 술 더 뜬다. 94년 이후 이들 신흥 공업국들로부터 미국으로 수출되는 생산품 가격은 사실상 한 방향으로 하락하기만 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디플레이션 걱정으로 정신이 없을 때,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디플레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달러 약세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유럽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보고, 대미 수출을 줄이겠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했다. 일본과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결국은 유럽을 따라, 가격을 인상할 것인가. 그린스펀의 런던 연설 어디에도 이같은 `전망`은 없다.
달러 약세가 심화되면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의 가격이 올라야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린스펀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일본, 중국 너희들은 언제까지 버틸테냐"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말은 결국 일본, 중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만큼 달러 약세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리 인상만으로 경상적자 해결 못한다"
런던 연설에서 그린스펀은 소비를 억제하지 못하는 `미국병`의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모기지 파이낸싱을 이용한 소비가 다른 나라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기꺼이 낮은 마진으로도 수출을 한다"며 "이같은 메커니즘이 달러 약세의 효과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소유한 미국 중산층은 집 값이 상승하거나, 금리가 떨어지면 모기지 리파이낸싱을 통해 상당한 목돈을 쥘 수 있다. 이 돈이 소비로 연결되고, 가계 부채를 줄이는데도 사용된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시중 금리가 올라가고, 저축률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줄어야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금리가 상승하면, 소비 확대에 일단 제동이 걸린다. 그러나 소비하는 것이 경제 활동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미국인들의 소비 욕구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려놓지는 못했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건, 내리건, 무역적자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린스펀의 런던 연설은 금리 인상만으로는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고백인 셈이다.
◇"달러 약세 끝나지 않았다"
그린스펀의 런던 연설은 11월 프랑크푸르트 연설에 비해 낙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지속돼야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유럽이 백기를 든 것처럼, 일본과 다른 아시아 수출국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야하는데, 아직은 그런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일본,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쉽지 않다. 10년 불황의 늪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일본이 수출이라는 줄을 쉽게 놓을 리 없다. 중국도 먹여 살려야할 인구가 얼만데, 외부 압력에 굴복해서 위안화를 절상하고, 수출을 줄이겠는가. 버티는 아시아와 밀어 부치는 미국. 타협이 이뤄질 때까지 스노 장관은 달러를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통화 긴축 정책이 방만한 재정 지출을 억제하고, 가계 단위에서의 소비를 제어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상적자를 줄일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소비를 줄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만약 소비를 억제시킬 마음이 있다면, 달러 약세라는 우회적인 전략이 아니라, 소비세 도입같은 직접적인 재정정책을 썼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를 하지 말라는 것은 경기 불황을 감수하라는 뜻이다. 어떤 정부도 불황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린스펀도 마찬가지다. 시급한 인플레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대외 수지 균형을 위해 무작정 돈 줄을 죌 수는 없다.
이제 그린스펀이 스노 장관이 머쓱해지도록 환율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를 살펴볼 차례다. 연준리의 통화 정책은 2000년초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디플레이션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좀처럼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그린스펀이 의회 청문회에서 수차례 `디플레`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웠다.
디플레를 진화되고, 경기가 터닝하자, 그린스펀은 `신중한 금리 인상`이라는 말로 통화정책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연준리 내 매파들이 달러 약세로 인한 수입 물가 압력, 고용시장 호전에 따른 인플레 압력을 거론하며 강력한 긴축 정책을 주문하고 있지만, 그린스펀은 요지부동이다. 조만간 `신중한`이라는 표현이 없어지겠지만, 이 말을 버릴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한다.
런던 연설에서 그린스펀이 수입 물가에 대해 이례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 그 단초가 될 수 있다. 달러 약세가 지금보다 더욱 심화되고, 일본과 한국이 수입 물가를 올리고, 중국도 위안화 평가 절상에 나섰을 때 그린스펀은 `신중한`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떨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린스펀 자신도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으로 달러 약세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린스펀은 역사적으로 금리 인상이 경상적자 경감에 별 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런던에서 "시장의 압력으로 경상수지 적자는 안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시장의 힘은 `금리의 힘`이라기 보다는 `환율의 힘`인 것이다.
그린스펀이 `신중한`이라는 말에서 벗어나려면 고용시장과 생산성, 인플레의 관계에 대해서도 해명해야한다. 미국 국회의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할 때 그린스펀은 뭐라고 답할까. 런던 연설만큼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 "일본에서 술잔 돌리면 야쿠자"
- [edaily 조진형기자] "일본에서 술잔을 돌리는 건 야쿠자들의 의식에 해당하니 절대 금물". "미국에서 집을 계약할 땐 쓰레기 처리비까지 물어야 하는 곳도 있으므로 꼼꼼히 따져봐야 해요". "프랑스에선 우측차량이 우선이라 무턱대고 진입하는 차량이 많으니 특별히 주의하세요".
전세계 각지에 주재원을 파견하고 있는 현대상선(011200)이 11일 해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느꼈던 점과 현지사정, 또한 가족이 느끼는 해외생활에 대한 경험담을 모아 `해외주재보고서`를 발간해 화제다.
이 책자는 미주, 구주, 아주 지역의 주요 도시는 물론 두바이, 시드니 등 총 18개국 25개 지역에서 경험한 38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현지에서의 영업 노하우는 물론, 현지인 직원과의 관계, 해외생활 초보자로서의 집 구하기, 자녀 교육, 은행 계좌 개설, 면허증 취득 및 자동차 구입, 쇼핑 등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및 문화, 관광정보 등 주재원들이 직접 경험한 해외 생활 전반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도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 하는 가족 때문에 고민한 사연, 외국인이라 억울하게 벌금을 문 이야기 등 타지에서 겪은 주재원들의 진솔한 에피소드도 함께 수록해 직원들 사이에서 큰 흥미를 끌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대상선 김덕만 상무는 "직원들의 풍부한 경험담을 통해 신임 주재원들의 빠른 현지적응에 도움을 주는 한편 해외 문화 이해, 업무 노하우 전수를 통해 영업력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등 큰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앞으로도 매년 업그레이드된 `해외주재원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한편 현대상선은 전세계에 4개 본부, 22개 현지법인, 56개 해외지점 및 6개 사무소에 18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글로벌 해외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 (edaily리포트)수출 이데올로기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올해 국감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이 큰 이슈 중 하나입니다. 재경부가 파생상품까지 동원해서 환율을 방어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는데요. 정명수 뉴욕 특파원은 진짜 국익이 뭔지, 우리 경제가 `수출`이라는 허상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한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뉴욕 모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데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모를 모셔야할 처지라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모양인데 잘 안된 것 같았습니다. 술 한 잔 사달라고 해서, 해질녘 맨해튼 코리아타운으로 향했습니다.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맨날 이 모양입니까? 남들은 경기가 피크를 지나가고 있다고 난린데, 우리는 아직도 바닥이니. 형은 기자니까 설명 좀 해보세요"
"신용카드 빚때문에 그런거 아냐. 좀 있음 나아지겠지. 그래도 수출로 버티고 있지 않냐."
"수출이라. 글쎄요, 수출하면 일자리가 생깁니까, 내수가 살아납니까?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은 풀 생각도 안하고, 일자리 만들 생각도 없는데 수출에 목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정부는 경기 조절 능력이 있기나 한가요? 우리나라처럼 경기 변동이 심한 나라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어허. 지 못난 것은 생각 안하고, 취직 안된다고 남탓이냐."
"형도 생각해봐요. 세상이 달라졌는데, 우리 경제정책은 박통 시절이나, 전통 시절이나, 노통 시절이나 달라진게 무엇인가요? `수출만이 살 길이다` 외치면서 환율 방어해주는게 경기 대책인가요?"
"그만큼 우린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잖아."
"가진 것이 없다니? 새마을 운동 시절 얘기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 있는데 가진 것이 없다뇨."
"...."
"형도 여기서 살아보니, 우습지 않던가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줄창 수출해서 미국에 팔면, 미국 소비자들은 신나게 쓰고, 적자난 것은 국채 발행해서 메우고. 근데 그 국채를 일본, 중국, 한국이 수출해서 번 돈으로 다 사주고. 미국은 국채 팔아서 전쟁하고, 감세해서 경기 부양하고. 꿩먹고 알먹는 장사 아니유. 누구는 죽어라 수출만 하고, 누구는 죽어라 소비만 하고.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도 `수출로 버틴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게 레드 콤플렉스 보다 더 무서운 `수출 이데올로기`라고. 우리 언론도 `수출마저 안되면 큰 일이다` 이러지. 근본적으로 수출에 매달리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요.
환율 방어해서 수출하면 누가 제일 득인가? 그리고 우리 수출이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인데 그게 환율조정을 통한 가격 경쟁으로 될 상품들인가요?
좋아요. 수출 위해서 환율 좀 조작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수출이 순수하게 얼마나 되는지, 그게 경기에 얼마나 도움됐는지, 계산이나 함 해보든지.
환율 방어에 들어간 돈으로 재정정책을 쓰면 승수효과로 내수가 얼마나 부양될 건지 비교해 보면 어떤 게 더 좋은 정책인지 알 수 있지 않나요."
"...."
"경제정책도 한계효용체감이 있는거지. 1960년대나 21세기나 어떻게 똑같은 정책을 구사할 수가 있죠? 지금이 `수출입국` 이런 주제로 글짓기나 하는 시댄가. 정책 효과가 떨어지면 다른 정책을 쓸 생각을 해야지. 맨날 틀에 박힌 일만 하면 그게 어디 정책인가요.
`Old Habits Die Hard`라고 경기 사이클을 습관적으로 수출로 대응하는게 문제 아닌가요. 이미 경제 체질이 달라졌는데 정책은 아직도 `잘 살아보세` 시절이야. 일단 수출이 되면 성장률 숫자는 맞출 수 있겠죠. 근데 그게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이죠. 성장률이 4%건, 6%건 일자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일본도 수출로 버티면서 불황 빠져 나온거야. 미국도 수출 많이 한다."
"그렇지 일본도 수출로 버텼지. 그래서 10년 불황이었지. 기업은 부잔데, 국민은 가난했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건가? 미국도 수출하지, 그런데 미국이 수출 걱정하는거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위안화 가지고 압력 넣지만, 그건 정치적인 쇼나 다름없지."
"...."
후배의 투덜거림을 다독거리면서 마음 한구석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 통화가치가 급변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환율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내수가 죽어서 살아날 생각을 안하는데, 수출마저 꺾이면 큰 일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생각도 아집이나 독선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혹 수출이라는 환상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전처럼 수출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던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경제규모가 커졌고 수출과 내수의 상관관계도 엷어졌지요.
예전엔 어느 한쪽이 잘되면 서서히 다른 쪽에도 긍정적 역할을 미치는 소위 "웃목 아랫목 효과"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책 당국자들도 애국한다는 심정으로 수출 장려책을 쓰고, 외환시장에도 개입했겠지만, 그것이 허상의 이데올로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이념 대결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준 것이 없듯이, 지금의 수출 장려책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용지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