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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회사 여직원들’ 감독 “첫 연기 아이린, 만족스럽다”(인터뷰①)
- 기린제작사 제공[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지난달 25일 온라인을 달군 웹드라마가 있다.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들’ 등을 만든 기린제작사의 신작 ‘게임회사 여직원들’이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들의 일상과 고충을 담았다. 걸그룹 레드벨벳 아이린과 배우 이민지 등이 주연을 맡았다. 공개 24시간 만에 100뷰를 돌파했다. 극중 배경인 식빵소프트 직원들은 밤낮없이 야근에 시달린다. 게임 출시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마냥 낙관할 수 없는 현실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소한 생활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잔잔한 웃음이 위로를 안긴다. 게임 효과음 등 아기자기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1회 당 6~8분 정도인 짧은 분량이지만 로맨스 판타지 SF 등 여러 장르가 응축돼 있다.윤성호, 박동훈, 이랑 등 감독 3인이 연출을 맡았다. 윤성호 감독은 영화 ‘은하해방전선’(2007),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 등을 연출한 독립영화계 스타감독이다. 최근에는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 시리즈, ‘썸남썸녀’(2014), ‘대세는 백합’(2015) 등으로 웹드라마를 연출·기획하고 있다. 다른 두 감독의 이력도 상당하다. 박동훈 감독은 영화 ‘소녀X소녀’(2007), ‘계몽영화’(2010) 등으로 전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다. 한예종 영상원 출신인 이랑 감독은 단편 ‘변해야 한다’, ‘유도리’ 등을 연출했다. 책과 앨범 등 폭넓은 활동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1일 추가 공개를 앞두고 윤성호 감독을 제외한 박동훈, 이랑 감독을 광화문 카페에서 만났다. ―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합류했나. 박동훈 감독, 이하 박)윤성호 감독이 같이 하자고 전화를 했다. 윤 감독과는 10년 전 영화제에서 만나 서로 응원해주는 사이가 됐다. TV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 참여하기도 했다.이랑 감독, 이하 이)웹툰 원작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작년 하반기쯤 나왔다. 아이린이 캐스팅되면서 급진전됐다. 윤성호 감독과 ‘출출한 여자’를 같이 했다. 윤 감독이 이렇게 3명으로 연출을 꾸리며 박동훈 감독님이 묵직하게 잡아줄 거라고 말했다.박)모르는 이야기다. (웃음) ―연출이 세 사람인데, 어떻게 분업을 했나. 이)함께 연출을 한 것은 아니다. 에피소드별로 감독이 다르다. ‘출출한 여자’ 때도 연출이 여럿이었는데, 그땐 각자 대본을 써온 후 톤앤매너를 맞췄다. 이번에는 황국영 작가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쓰고 각자 파트를 나눈 후 각색을 했다. ―웹툰을 영상화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웹툰 자체는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가볍게 보기 좋은 만화다. 웹드라마는 한 편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그런 흐름을 가져가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웹툰을 계속 보면서 ‘재미있는 이 내용을 어떻게 영상 기법으로 재조직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기승전결을 넣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나. 이)사실 웹툰 원작에 대해 부정적이다. 캐스팅 때만 관심을 가질 때가 많다. 원작 팬들은 내용을 다 알고 있다. 자신이 상상한 캐릭터의 모습과 다를 때 실망하기도 한다. 이미 알려진 내용을 굳이 영상으로 만들어야 하나 싶다. ‘게임회사 여직원들’도 캐릭터와 설정만 가져오되 에피소드를 재구성했다. 1화는 기반을 깔아야 해서 웹툰 설정과 비슷하게 들어갔다. 2화에선 새로운 에피소드를 넣었다. ―각 편마다 연출자가 다르다. 어떤 기준으로 나눴나. 박)좋아하는 에피소드 혹은 잘할 것 같은 에피소드를 각자 골랐다.이)윤성호 감독이 첫 회와 마지막회를 맡았다. 혼자 사는 남자의 이야기나 로맨스는 박 감독님이, 놀리는 내용은 제가 가져왔다. ―연출하면서 고민했던 지점이 있나.박)재미.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그것 하나였다. ―실제 게임회사나 직원들에 대해서도 취재했나. 이)텐버즈란 게임회사가 스폰서인데 그 회사를 가서 게임회사의 생태계를 관찰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지 않아 용어를 잘 몰라 애를 먹었다. 용어를 사용해 전문적으로 보였으면 했는데, 너무 남발하면 일반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낄 것 같았다. 주위 프로그래머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업계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지 물어봤다. 6화에서 ‘커밋하셨죠’란 대사가 나온다. 공동 서버에 각자 결과물을 업로드 시키는 개념이라고 하더라. 그 정도다. 용어부터 시작해 모니터 화면에 무엇을 띄워야 하는지 감수를 받았다. 그래도 틀린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이민지가 많이 도와줬다. 실제로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굉장히 고마웠다. 박)게임을 하긴 한다. 다만 제가 맡은 에피소드가 용어 사용과는 거리가 있어서 신경을 덜 쓴 편이다. 오히려 컴퓨터 그래픽(CG)와 옷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7화를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안다. 기린제작사 제공―아이린이 개발자 아름 역으로 연기에 처음 도전했다. 박)그때 아이린이 리딩을 했는데 괜찮았다.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돌 멤버들의 경우 과장해서 대사를 읽을 때가 있는데 아이린은 그렇지 않았다.이)성격이 차분한 편이더라. 그 모습이 좋았다. 아름이란 역할도 그렇다. 본심은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다. 자기 일만 하고 말도 툭툭 내뱉는다. 말할 때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일단 아이린과 하기로 했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직접 연락이 힘들고, 아이린 스케줄이 굉장히 바빴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더라. 촬영에 앞서 10번 정도 만난 배우도 있었는데, 아이린은 총 3번 만났다. 그중 한 번은 촬영 전날이었다. 그 사이에 숙제를 내줬는데, 그걸 잘 해왔다. 재미있는 내용은 대사에 반영하기도 했다. 아름처럼 아이린도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나중엔 더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박)평소엔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이 있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적인 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었나. 이)안경을 내려 쓰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라고 했다. 앉을 때도 구부정하게 앉으라고 했다. 원래 자세가 꼿꼿해서 도도해 보였다. 뭘 해도 예쁘니까 너드한 느낌을 주려고 이것저것 시켰다. 그렇지만 너무 귀엽다. 현장에서도 다들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보고 있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박)몰랐는데, 남성팬 만큼 여성팬도 많더라.이)SNS에 단체 사진을 올렸는데 ‘배추언니’라는 댓글이 달려서 누군가 했다. 알고 보니 배주현(아이린의 본명) 언니였다.박)난 다 알았다. (웃음) 촬영 전에 아이린에 대해 조사를 했다. 레드벨벳을 알았지만 각 멤버를 잘 알지는 못했다. 긴팔 옷을 입을 때 손목을 꺾고 소매를 늘리는 버릇이 유명하더라. 그걸 4화에서 써먹었다. (인터뷰②로 이어)
- 최용배 집행위원장 "시민이 자부심 느끼는 BIFAN으로"①
- 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부천시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습니다.”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강렬한 바람이 전해졌다. 부천영화제는 1996년에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 그 이듬해 출발했다. 국내에서 부산영화제 다음으로 꼽히는 부천영화제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됐다. 사람으로 얘기하면 성인이다. 최용배 위원장은 그런 때에 부천영화제를 이끌게 돼 어깨가 무겁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오는 21일 개막하는 20회 부천영화제 준비에 바쁜 최용배 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서 여러 차례 집행위원장직을 고사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전임 집행위원장의 임기가 끝난다면서 자리를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천영화제는 심사위원 한 번 해보고 개막식에 2번 가본 게 인연의 전부였죠. 경험도 없었습니다. 제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실은 여러 차례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지인 중에 한 분이 ‘영화제는 잘 살려내 영화인과 관객이 활용하게 해야 할 자산이다’고 말하더군요. ‘진정성 없는 사람이 하게 되면 지켜야 할 자산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요. 그 말이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한창 부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판타스틱영화제를 표방하며 부산영화제와 함께 주목받고 성장했다. 2004년의 일이다.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갑작스럽게 해촉되는 사건이 있었다. 영화인들은 부천시에 반발했다. 영화인들은 부천영화제도 보이코트했다. 당시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는 듯했는데 영화인 일부는 얼마 전까지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영화제를 외면했다. 그래서 최용배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과거사 청산이다.“부천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문제부터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1월에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 해촉 등에 대해 유감 의사를 표명하는 공식적인 자리를 가졌지요. 또 김홍준 전 위원장에게 올해 영화제에 모시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참석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지난 달에는 김만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명예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나고 영화인 출신인 정지영 감독이 이례적으로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최용배 위원장 체제 이후 일련의 변화는 영화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최용배 위원장의 임기는 1월부터였다. 한 해 영화제가 끝이 나면 곧장 다음 해 영화제를 준비하는 게 보통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고작 6개월이 흘렀는데 그는 영화제 살림을 알차게 꾸렸다. 그 틈틈이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 여러 해외 영화제를 다녀왔다. “제작자로 영화제를 다닐 때와 위원장으로 영화제를 다닐 때가 많이 다르더군요.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극장 시설을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이 오는지,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그런 것들을 눈에 먼저 띄더라고요. 인상적이었던 게 유럽 영화제들은 규모에 비해서 관객 수가 많아요. 클레르몽페랑 같은 경우에는 큰 도시도 아니고 단편영화제인데도 1000석짜리, 400석짜리 큰 상영관이 영화제 기간 다 찼어요. 신기하고 놀라웠죠. 또 부러웠습니다.”이들 영화제에 참석해서 부천영화제를 홍보하고 초청작 및 게스트 섭외에 공을 들였다. 초청작이 49개국 320편이다. 예년보다 80여 편이 늘어난 역대 최대의 작품 편수다. 양적으로 늘렸을 뿐 아니라 프로그래머 2인, 중국어권 및 동남아권 객원 프로그래머 3인을 확충해 질적으로도 강화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직접 영화제 일을 하면서 욕심만 내다가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영화제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목표를 새롭게 설정했어요.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가 되는 것, 그게 올해 부천영화제의 목표입니다.”최용배 위원장의 논리는 명쾌했다. 기본인 영화에 충실할 때 영화인들이 영화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는 법이다.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제가 되면 자연스럽게 관객도 시민도 동참하게 된다.“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가 되려면 먼저 부천영화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했어요. 영화제 초기에는 ‘아멜리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말랑말랑한 영화들이 많았어요. 이런 전통이 없어진 데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있더군요. 일반 시민들은 피가 튀고 광분하는 영화들을 꺼리는 듯 했어요. 반면 부천의 색깔을 지켜달라며 센 거 아니면 안 보겠다는 분들도 있었고요.”(웃음)최용배 위원장은 보다 많은 관객과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월드 판타스틱 블루’와 ‘월드 판타스틱 레드’로 프로그램 섹션을 재구성해 초보자도 마니아도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작품들로 채웠다. 영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채로운 산업 프로그램에도 눈길을 끈다. K스타 쇼케이스 같은 인재 발굴 프로그램이나 직경 10m의 돔을 설치해 VR 콘텐츠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선보이는 VR특별전 등이 그것이다. 20회에 걸맞게 관객들을 끌어들일 흥미로운 요소들을 충분히 갖췄다. 여기에 어린이와 청소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존’도 부활시켰다. 다음 세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특별했다.“부천영화제도 유럽의 영화제들처럼 규모는 작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서는 영화에 친숙한 문화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부천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화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초등학교에 추천작을 선정해서 단체 관람토록 하거나 DVD를 제공하는 일들을 부천시와 함께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그 어린이들이 10년 뒤에는 훌륭한 시민관객이 되지 않을까요. 임기 3년간 열심히 일해서 5년 10년 후에는 부천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부천영화제가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서울대 인문대 서양사학과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영화조감독, 대우 영화사업본부 투자담당, 시네마서비스 배급부문 상임이사, 영화사청어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1년 영화사청어람을 설립하고 영화 ‘괴물’ ‘26년’ ‘효자동 이발사’ ‘작업의 정석’ ‘사과’ 등을 제작했다.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심사위원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을 맡은 바 있다.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 양파이, `기-승-전-치킨` 요식업 무한경쟁 속 마지막 블루오션
- [이데일리 김병준 기자] 2014년 발간된 책 ‘공부란 무엇인가’에는 ‘한국 학생들의 진로’라는 재밌지만 씁쓸한 도식이 담겨 있다. 기승전 치킨집. 결론은 모두 같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 대한민국 청년은 모두 죽음 혹은 치킨집이라는 결말을 맞는다.작가는 단순히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 도식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의 심각성과 요식업의 포화상태로 붕괴되고 있는 자영업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이 소재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방송 등 매체에서도 다뤄지며 다수의 공감을 사고 있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은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말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치킨집의 숫자는 매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프랜차이즈 통계에 따르면 사업자로 등록된 국내 치킨 전문점은 총 2만2529곳(2013년)에 이른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 등록된 상표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불과하다. 프랜차이즈 형태가 아닌 개인사업자, 주요 메뉴가 치킨이지만 호프집 등 타업종을 병행하고 있는 음식점 등을 포함하면 그 숫자가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다.같은 기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이를 모두 합산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치킨전문점은 약 3만6000여개로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9.5%씩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전문점 맥도날드가 보유한 전 세계 매장 수를 초과하는 엄청난 양이다.국내에서 치킨집 등 요식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우후죽순 늘고 있는 현상은 2030 청년이 맞닥뜨린 취업 실패로 풀이할 수 있다. 아울러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생계형 창업으로 이를 선택한다는 점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이같은 쏠림 현상은 비단 치킨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소고기·돼지고기 등을 주 메뉴로 다루는 일반음식점부터 레스토랑과 카페는 물론 패스트푸드점까지, 요식업종 대부분이 이미 ‘레드오션’ 상태에 돌입했다. 요식업의 무한경쟁 속에서 국내 자영업계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도 상당수다.그런데 지난해 이 무한경쟁에 도전장을 내민 청년이 있다. 그는 포화상태인 업계 속에서 ‘블루오션’으로 양고기를 선택해 ‘양파이’를 론칭하고 총괄 중인 정유근 실장이다.정유근 실장은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소스와 사이드 메뉴 등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사업 초기부터 입소문을 탄 양파이는 지난 1년 동안 직영점 3곳은 물론 가맹점 1호까지 매장을 확장했다.양파이 경리단길점에서 만난 정유근 실장은 과장이나 꾸밈없는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요식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 양고기를 선택한 이유, 양파이의 지난 1년 동안의 성적과 앞으로의 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매장의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도 돋보였다. 마치 영국의 펍(Pub) 같은 분위기였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테이블에는 손님이 가득했는데 입지적인 특성상 외국인 고객 다수는 납득이 갔지만 20~30대 여성 손님이 많은 것은 눈여겨 볼만한 점이었다.다음은 정유근 양파이 실장과의 일문일답.△ 양파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양파이는 호박 패밀리라는 요식기업이 만든 독립적인 브랜드로 양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브랜드 이름은 양갈비를 뜻하는 중국어 양파이에서 그대로 따 왔다. 신선한 호주산 양고기를 공급받아 판매하고 있다.사업을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다. 현재 한남점, 약수점, 경리단길점, 청담점 등 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최근 오픈한 청담점은 첫 번째 가맹점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좋은 편이다.우리는 양고기가 국내 외식 업계의 블루오션이라고 확신한 채 사업을 시작했다. 양고기하면 즉각 양파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양고기를 다루는 음식점 중에서는 양파이가 독보적인 선구자 격 브랜드라고 본다.△ 양고기를 주 메뉴로 선택한 이유는?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에만 국한돼 있다. 우리는 소비자가 다양한 고기를 즐길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고 싶었다. 또한 요식업을 준비 중인 자영업자가 고를 수 있는 업종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영양소가 풍부하면서 맛도 뛰어난 양고기 자체를 국내에 널리 소개하고 싶은 목적도 있었다.사실 우리나라의 양고기 역사는 길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양고기에 대한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우리는 이 원인을 고기와 소스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시작 전 다양한 방법으로 소스와 메뉴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수정·보완했다. 특별하고 건강한 먹거리인 양고기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긍정적인 것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재작년과 본격적으로 사업을 론칭한 작년, 그리고 가맹 1호점의 문을 연 올해 상반기의 반응이 매년 다르다는 사실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고객이 늘고 있다. 양고기가 의외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라는 확신이 최근 들어 커지고 있다. 국내 소비자가 다양한 문화권의 먹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점도 느껴진다.△ 다른 양고기 전문점과 양파이의 차별점은?국내 양고기 전문점 대다수는 중국인이 현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용되는 촬료, 쯔란(커민) 등 향신료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 강한 향 탓에 많은 이들이 양고기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향만을 남겨 이같은 거부감을 없앴다.또한 주요 고객층의 성향을 충분히 분석한 뒤 먹는 방법, 소스의 종류, 사이드 메뉴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호불호와 선입견을 없애고 양고기를 대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치즈 소스, 마늘 소스 등 양파이만의 소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아울러 우리는 양고기 식당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후미진 구석에 위치한 낡은 가게가 아닌 깨끗하고 세련된 매장으로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양파이를 핫 플레이스로 여기는 고객도 많다. 여성 손님이 많은 것에 인테리어도 한몫했다고 보고 있다.△ 양파이가 자랑할만한 메뉴가 있다면?다른 양고기 전문점과 마찬가지로 양파이도 양고기를 주 메뉴로 하되 중화요리를 사이드 메뉴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 입맛에 맞게 개발한 독자적인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옥수수 우육면’은 고객이 많이 찾는 양파이의 대표 메뉴다.옥수수 면으로 만든 이 국수는 중국 현지에서도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다. 보통 멸치 육수를 활용해 만드는데 우리 입맛에는 국물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골 기반 육수로 만든 양파이의 옥수수 우육면에서는 좀 더 진하고 깊은 한국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현지 국수의 기본적인 방식을 따르면서도 국내에 맞게 레시피를 개발해 인기가 많다.△ SNS 등 온라인에서 양파이 언급이 많은데.양파이는 젊은 여성 손님과 유명인의 좋은 평가 덕분에 일종의 핫 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사업 구상 당시 남성이 주 고객일 걸로 판단했다. 하지만 매출 분석 결과 손님의 60% 이상이 20~30대 젊은 여성 그룹이다. 그뿐만 아니라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 다수가 사업 초기부터 꾸준히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젊은 여성 고객과 유명인이 SNS,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 양파이 방문기를 게재하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다. 별도의 광고가 없었음에도 상당수 고객이 온라인 입소문으로 양파이를 알게 됐고 양고기를 즐기러 혹은 입문하러 매장을 찾고 있다.음식과 서비스의 품질은 당연한 이야기고,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것도 주요했다고 본다. 즐길 수 있는 세련된 외식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매장마다 콘셉트가 약간씩 다르다던데.양파이는 일반 매장과 ‘퀴진’이 붙은 매장으로 구분돼 있다. 한남점과 청담점은 양파이 퀴진 콘셉트로, 약수점과 경리단길점은 일반 양파이 콘셉트로 문을 열었다. 양파이 퀴진이 일반 양파이에 비해 좀 더 고급스러운 매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양파이 퀴진에서는 양갈비만을 판매하고 있다. 반면 일반 매장은 양갈비와 더불어 양꼬치도 판매 중이다. 양꼬치는 테이크 아웃도 가능한 데 의외로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매장 콘셉트는 상권을 철저하게 분석한 다음 결정된다. 가맹 1호점인 청담점은 세밀한 상권 파악 끝에 양파이 퀴진으로 오픈했다. 청담동이 국내 상권 중 가장 소비력이 강한 곳 중 하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매장을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점치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매출 면에서 당초 예상보다 훨씬 결과가 좋다.△ 청담 가맹 1호점 이후 다음 가맹점은?가맹 사업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밖에 되지 않았다. 상담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전해진 곳은 없다. 현재 판교 쪽 상권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우리는 문어발식 가맹점 확장 등 무리한 사업 확장은 지양하고 있다.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확장으로 매장의 개수를 늘리기보다는 본사와 가맹점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가맹점주의 수익이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는지가 최우선적인 조건이다.양고기를 다뤄 본 적이 없다거나 중화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문의도 잦은데 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R&D 센터에 마련된 ‘전문 조리 교육 과정’을 통해 창업 전 점주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레시피를 통해 누구든지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양파이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우리는 먹는 즐거움과 감동을 고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외식 전문 브랜드가 되고 싶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외식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양고기라는 영양가 높지만 상대적으로 생소한 음식을 국내에 도입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지속적인 연구와 메뉴 개발로 양고기 특유의 이질적인 향을 최소화하면서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우리의 또 다른 목표는 가맹점주와 함께 성공할 수 있는 요식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점주의 물질적, 정신적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영 방침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여름 열리는 프랜차이즈산업박람회에서 우리의 생각을 나눌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외식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각한 쏠림과 포화 현상이다. 다수 업체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현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국내 소비자는 익숙한 것을 좇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매해 손님이 늘고 있으며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각종 통계를 봐도 양고기에 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크게 줄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사업을 구상하고 론칭하고 운영하면서 이를 몸소 느끼고 있다. 양고기가 국내에 도입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우리는 예비 고객, 잠재적 가맹점주와 직접 만나 소통하고 싶다. 이를 위해 오는 8월25일부터 사흘 동안 학여울역 인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7회 프랜차이즈산업박람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양고기와 양파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마쯔다 브랜드 히스토리 - 로터리에 담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기술자의 혼’
- [이데일리 오토in 김학수 기자] ◇ 어부의 아들, 자동차 제조사를 만들다독창적인 디자인, 과감한 기술의 도입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져가는 마쯔다의 시작은 지금과 다른 다른 모습이었다. 마쯔다의 시작은 한 세기 전 히로시마의 한 어부의 가정에 태어난 마쯔다 유지로(Matsuda Jujiro)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마쯔다 유지로는 어릴 적부터 기계에 능숙했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에는 ‘마쯔다 펌프’를 제작했고 이후 주변의 자금을 지원 받아 ‘마쯔다 펌프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펌프 및 관련 기기를 히로시마의 주민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신생 업체지만 기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던 마쯔다 펌프 파트너 십은 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으로도 활용됐지만 1차 세계대전 종료와 수익성 등의 문제로 인해 유지로 마쯔다는 ‘마쯔다 펌프 파트너십’ 사업을 모두 철수하고 수익성이 높은 코르크 마개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 1920년 1월 30일 ‘동양코르크공업’을 설립한다.동양코르크공업은 곧바로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업체로 성장했고 단지의 크기 역시 점차 늘려나갔다. 코르크 사업이 활성화되지 기계공 출신인 유지로 마쯔다는 소형 바이크 제작의 욕구를 느꼈고 이후 1923년 소형 바이크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12년의 시간이 흐른 1935년에는 향후 기업의 기틀이 되는 삼륜 소형 트럭을 제작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3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투입된 삼륜 소형 트럭은 시장의 인기를 얻었다. 이에 동양코르크공업의 사업 전략과 형태가 크게 바뀌게 됐다. 유지로 마쯔다는 동양공업으로 사명을 교체하며 삼륜 소형 트럭을 주력으로 한 공업 업체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그런 과정에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희망2차 세계대전은 전세계의 땅을 폐허로 만들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일본 역시 태평양과 동아시아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며 전쟁에 참가 많은 이들을 죽이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처럼 참혹 했던 이 전쟁은 단 두 발의 원폭에 의해 전쟁을 끝이 났다. 최초의 핵무기로 알려진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 580m 상공에서 폭발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과 히로시마의 14만 명의 생명을 소멸시켰다.단 한 번도 폭격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히로시마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폐허가 됐다. 하지만 원폭의 충격을 빗겨간 곳이 있었다. 히로시마 인근에 단 100m도 안 되는 낮은 히지 산 뒤에 자리했던 동양공업의 넓은 공단이었다. 원폭과 함께 동양공업은 기업 활동을 중단하고 히로시마의 피해자들과 난민들을 수용하는 구난 시설이자 병원, 법원, 경찰서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의 새로운 부지로 활용됐다.전쟁이 끝나자 전쟁을 위해 징병 됐던 히로미사의 젊은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왔고 눈 앞에 벌어진 참상을 맞이 했고 히로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동양공업 역시 200여 명의 직원들이 원폭으로 사망하는 큰 상처를 얻게 됐다. 하지만 동양공업은 히로시마의 부흥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재에서 돌아온 청년들을 곧바로 채용하고 전후 4개월 만에 본업인 삼륜 소형 트럭 판매를 재개했다. 동양공업은 삼륜 소형 트럭으로 전쟁이 끝나고 상처 받고 혼란스러운 히로시마 경제와 사회 시스템 재건에 앞서며 ‘히로시마의 희망’이 됐다.한편 동양공업은 일본프로야구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전쟁이 끝나고 리그 활성화 정책과 함께 ‘히로시마를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시민 구단 히로시마 카프스가 출범했다. 카프스는 히로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잉어’를 뜻했다. 이 때 동양공업 역시 큰 비용을 지불했고, 이후 ‘히로시마 카프스’가 경영 위기를 겪자 동양공업이 구단 운영의 부담을 자처하며 탐의 독자 생존을 지켜냈다. 대신 팀의 이름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개명한다.◇ 자동차 시장에 도전하는 마쯔다전후 동양공업의 삼륜 소형 트럭은 많은 인기를 얻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소형 트럭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시장을 석권하며 동양공업과 히로시마는 원래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시장이 원하는 자동차는 점점 변했다. 전후 상처가 아물던 1955년 이후 일본이 자동차 시장은 점차 대중화된 승용차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의 ‘마이카 붐’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1951년부터 마쯔다 유지로의 뒤를 이어 동양공업을 이끌던 마쯔다 쯔네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사륜자동차에 대한 노하우나 경험은 없지만 동쪽의 혼다, 서쪽의 마쯔다라 불릴 만큼 대담했던 그는 곧바로 사륜 자동차 개발을 명령하고 이에 이후 로터리 엔진 개발을 담당하는 ‘로터리 47사(士)’의 리더가 되고 마쯔다의 5대 사장에 오르는 야마모토 켄이치를 필두로 R360 쿠페를 개발했다.당시 토요타와 닛산이 시장을 주도했고, 동양공업의 성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걸 덜어내고 작은 공간에 실용성과 효율성을 집약시킨 ‘R360 쿠페’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동양공업은 모델 라인업을 구축하기도 전에 R360 쿠페 하나만으로도 사륜자동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R360 쿠페의 성공과 함께 동양공업은 사륜자동차 라인업 구축에 힘쓴다. 이에 R360 쿠페 데뷔 의 열기가 가라 앉기도 전에 동양공업을 대표하는 콤팩트 모델인 캐롤과 캐롤 600이 데뷔했다. 이와 함께 소형 트럭 시장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B360, B600도 곧바로 시장에 투입됐다. 여기에 픽업 트럭 모델인 B1500 등 역시 곧바로 라인업에 추가됐다. 동양공업은 사륜자동차 초기 실용적인 콤팩트 모델에 집중하며 시장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한편 1963년에는 한국자동차 시장과도 관계가 깊은 콤팩트 모델이 하나 데뷔한다. 훗날 마쯔다 브랜드의 주력 콤팩트 모델로 자리잡는 ‘마쯔다3(악셀라)’의 전신인 ‘파밀리아’가 첫 등장한다. 파밀리아의 등장으로 동양공업은 일본 주요 브랜드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하며 ‘일본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한편 파밀리아는 이후 기아자동차 ‘브리사’라는 이름로 한국 시장에 데뷔한다.◇ 시작과 함께 찾아온 위기R360 쿠페는 물론 캐롤과 파밀리아 시리즈들이 시장에서 좋은 인기를 얻으며 사륜자동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동양공업은 탄탄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는 곧 시작됐다. 1960년 중반, 일본의 수입자동차 시장 자유화가 예고됐고, 일본 정부는 수입자동차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통산성이 마련한 ‘자동차산업 합리화 정책’의 시행을 예고했다.당시 7개로 나뉘어 있는 자동차 제조사를 통폐합하는 ‘자동차산업 합리화 정책’은 동양공업에게 위기였다. 당대 시장을 이끌던 토요타와 닛산은 생존이 예고된 상황이었지만 일본 주류 사회에 외면을 받는 히로시마를 근거지로 이제야 사륜자동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동양공업은 브랜드 폐지나 토요타나 닛산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이에 마쯔다 쯔네지와 동양공업의 임직원들은 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는 것 외에도 ‘동양공업’만의 특별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동양공업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독일에서 동양공업의 미래를 결정 짓는 ‘꿈의 엔진’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쯔다 쯔네지는 이 새로운 엔진에 주목했다.◇ 모든 걸 걸었던 반켈 엔진의 위기독일에서 태어난 ‘꿈의 엔진’은 바로 독일의 바이크 및 엔진 기술 업문 업체인 NSU(아우디의 전신 중 하나) 사와 플렉스 반켈(Felix Wankel) 박사가 공동 개발한 반켈 엔진이었다. 반켈 엔진은 상하 운동이 아닌 회전 운동으로 동력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엔진 룸 내 로터리 피스톤이 엔진 룸 안에서 회전하면서 폭발과정에서 직접, 회전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통상의 엔진과 달리 에너지의 형태를 변화시키지 않아 에너지의 손질이 적었다. 같은 배기량일 경우 로터리 엔진은 더욱 높은 RPM을 가동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높은 추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반켈 엔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동양공업은 물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흥분했다. 모두들 반켈 엔진의 라이선스를 구매하기 위해 애썼고 동양공업 역시 라이선스 구매에 나섰다. 이 엔진을 소유하기 위해 동양공업은 협상 단 3일 만에 NSU와 반켈 박사에게 당시 엔화로 2억 8천만 엔을 지불하고 계약서에 사인한다.이 금액은 무려 동양공업 8천 여명 분의 임금과 맞먹는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브랜드 폐지의 위험에 놓여 있는 동양공업에게는 고민하거나 흥정할 시간이나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동양공업 외에도 다임러 벤츠와 시트로엥, 커티스 라이트, 롤스로이스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라이선스 구매하며 그 인기를 실감시켰던 만큼 동양공업은 빠른 결단을 내렸다.반켈 엔진의 라이선스를 구매한 직후 동양공업은 반켈엔진에 ‘로터리 엔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본격적인 연구조직을 설립했다. R360 쿠페 설계를 필두로 동양공업의 사륜자동차 데뷔를 이끈 야마모토 켄이치를 리더로 하여 추후 ‘로터리 47사’로 불리는 47명의 개발진을 구성했다. 동양공업 차량 개발부는 로터리 47사의 출범과 함께 개발 인력을 집중시켜 새로운 엔진이 장착될 매끈한 보디 라인의 차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이에 마쯔다 쯔네지 역시 동양공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 새로운 차량을 기대하며 새로운 엔진의 등장에 높은 기대감을 품었다.하지만 반켈 엔진은 ‘꿈의 엔진’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단점이 속출했다. 엔진 오일이 누유 되어 흰 연기를 내뿜는 ‘딱딱산의 너구리’와 저 RPM에서의 고질적인 진동인 ‘전기안마’ 그리고 반켈 엔진 내부를 손톱으로 긁듯 손상 시켜 엔진의 수명을 깎아 내리는 ‘악마의 발톱’ 등 수많은 문제에 이어졌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새로운 엔진으로 도약을 기대한 동양공업에게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게다가 외부에서는 ‘동양공업이 반켈 엔진에 속았다.’라는 비평까지 쏟아졌다.큰 위기였지만 로터리 47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수십 개월 동안 철야를 강행하며 상용 엔진 개발에 나섰다. 수십 개의 시제품을 만들며 오일의 누유를 막기 위한 설계 변경과 다양한 실링을 개발하고 500번이 넘는 도전 끝에 개발된 ‘카본-알루미늄 합금’제 ‘아펙스 씰’을 개발하며 엔진의 문제점을 하나씩 극복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로터리 47사는 1966년 최초의 상용 로터리 엔진인 ‘10A’ 로터리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2008 Mazda RX8 40th Anniversary Edition/1967 Mazda Cosmo◇ 마쯔다의 아집, 로터리의 시대를 열다1960년 대 반켈 엔진을 개발한 NSU를 비롯해 수 많은 브랜드들이 반켈 엔진을 탑재한 차량을 선보이고 롤스로이스의 경우에는 디젤 로터리 엔진에 도전까지 하지만 동양공업의 10A 로터리 엔진의 완성도를 따라오긴 어려웠다. 동양공업은 1967년(쇼와 42년) 늦은 봄, 동양공업 최초의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스포츠 쿠페, ‘코스모 스포츠’를 공개하며 동양공업의 엔진 개발이 성공했음을 전세계에 알렸다.코스모 스포츠는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 호주 시장 등 세계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단 982cc에 불과한 10A로터리 엔진은 110마력의 강력한 출력을 자랑했고 우수한 주행 성능을 뽐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8.8초 만에 가속할 수 있었으며 높은 RPM의 즐거움을 과시했다. 이에 코스모 스포츠는 일본에서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북미 올해의 수입자동차’에 선정되고 유럽에서도 많은 영광을 누리는 쾌거를 이뤄냈다.의지 하나로 동양공업을 성장시키고 로터리 엔진에 생명을 불어 넣은 마쯔다 쯔네지는 1970년에 숨을 거뒀으나 뒤이어 사장에 오른 코우헤이 마쯔다가 쯔네지의 의지를 이어 받으며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차량과 엔진 개발에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며 동양공업은 본격적인 ‘로터리의 시대’의 문을 연다.동양공업은 코스모 스포츠의 성공적인 데뷔를 이어가며 R100 쿠페를 시작으로 이후 전설로 기억되는 RX 시리즈의 첫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카펠라(RX-2)과 RX-3(사바나)를 1970년과 1971년 연이어 선보인다. 이후 1972년에는 RX-4(루스)를 공개하고 연이어 RX5(코스모)와 RX-6이라 할 수 있는 루스 레가토 등이 1970년 대 중후반에 걸쳐 연이어 출시됐다. 엔진 역시 10A를 시작으로 13A, 12A을 비롯한 당대 시장 상황과 환경 관련 규정에 맞춰 꾸준히 출력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과정을 거쳤다.그리고 1978년 동양공업은 ‘가장 이상적인 스포츠 쿠페’의 표본이 되는 RX-7의 1세대 모델을 공개하고 1985년 트윈스크롤 터보 차저를 장착한 13B 엔진을 장착해 최고 185에 이르는 강력한 출력을 자랑했고 2세대 후기에는 215마력에 이렀다. 2세대 RX-7는 한층 우수한 주행 완성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는 3세대 RX-7와 RX-8 등으로 이어지며 20세기는 물론 21세기에서도 여전히 로터리 엔진의 힘이 유효함을 알린다.◇ 추락, 다시 날개를 펴는 마쯔다동양공업은 코스모 스포츠 데뷔 이후 로터리 엔진의 역사를 쉬지 않고 써내려 갔지만 막상 자동차 시장에서 로터리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70년대와 80년대 자동차 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 시장을 뒤흔든 오일 쇼크의 파동으로 고출력에 초점을 맞추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로터리 엔진의 인기가 급감한 것이다.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동양공업은 독자 생존을 포기하고 ‘스미모토 그룹’과 손을 잡고 ‘스미모토 은행’에게 경영 관리를 받았다. 로터리 엔진과 일반 엔진을 동시 생산해왔던 만큼 로터리 엔진 모델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일반 엔진 모델의 판매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채우며 오일쇼크의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로터리 엔진 역시 ‘존속’에 초점을 맞추며 꾸준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며 연비를 40% 향상시킨 1세대 RX-7을 개발한다.1979년에는 포드 자동차에 지분을 매각하며 포드 그룹에 속하게 됐다. 이미 1960년대부터 협력 관계를 이어왔던 포드는 곧바로 동양공업과의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동양공업의 경쟁력을 점차 끌어 올렸다. 이와 함께 포드는 꾸준히 지분 매입에 나서며 동양공업의 경영권한도 점차 확대하기 시작했다.포드 그룹의 품 속이었던 1980년 대 동양공업은 로터리의 영향력이 다소 축소됐지만 파밀리아와 루스, 카펠라 등이 연이어 안착하며 시장에서의 호평을 받아 점차 경영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4년에는 사명을 마쯔다로 변경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1989년에는 전세계에서 사랑 받는 로드스터 ‘MX-5(미아타/로드스터)를 1세대를 공개하며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1990년 대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의 계보를 RX-7와 대형 쿠페 모델인 ‘에누스 코스모’에만 탑재한다. 이와 함께 향후 마쯔다2-마쯔다3 그리고 마쯔다6로 이어지는 마쯔다 모델 라인업의 전신이자 4기통 주력 모델인 ‘파밀리아-카펠라’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경영 구조를 집중했다.특히 1990년 대 포드는 마쯔다의 체질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은 물론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와 관리 프로그램을 적용하였으며 유통 시스템의 개편, 딜러 및 제조 시설의 통폐합 등을 통해 수익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전략과 경영 방식은 2008년 이후 포드가 마쯔다의 지분의 대부분을 매각하는 2010년까지 유지된다.◇ 로터리, 열정으로 세계 정상에 서다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의 발표와 함께 그 경쟁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 자국은 물론 해외 레이스에 출전하며 그 경쟁력을 인정 받았다. 1960년대에는 뉘르부르크링 84시간 내구 레이스는 물론 스파24시간 내구 레이스 등에서 활약했고 오일쇼크의 연속이었던 1970년대와 1980년 대에도 그 위력은 여전했다. 특히 검객으로 불렸던 RX-3의 활약이 대단했다. 분명한 위기였음에도 로터리 엔진은 데이토나 24시간 내구 레이스와 IMSA RS 레이스 등 미국 무대에서 맹활약했다.1979년, 마쯔다의 전속 드라이버였던 테라다 요지로가 회사 내 비공식 팀을 꾸려 1세대 RX-7으로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도전에 나선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도전은 쉽지 않았다. 머신 트러블과 드라이버 컨디션 난조 등 수 많은 문제로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후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본사가 당장 움직일 수는 없지만 내부 직원들이 르망에 대한 도전에 대한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1980년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는 예선 통과와 함께 기적적인 완주를 기록하며 카테고리 내 14위를 기록했다.1980년대에 접어들며 본사에서도 ‘이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며 전사적인 차원의 지원을 시작했다. 천 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하여 1990년까지 꾸준한 개발 끝에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전용 엔진인 R26B을 개발했다. 특히 1984부터 1987년까지 마쯔다의 사장으로 재임한 야마모토 켄이치 역시 적극적인 지원으로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출전을 지원했다. 수 차례의 실패 끝에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이 마지막으로 출전할 수 있는 1991년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우승을 목표로 마지막 출전을 준비했다.총 3대가 출전한 1991년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787과 787B는 카테고리 내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며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의 강자인 재규어와 자우버-메르세데스 C11을 압박했다. 새벽 2위에 오른 마쯔다는 2위를 지키는 대신 페이스를 올려 자우버-메르세데스와의 ‘엔진 대결’에 나서기로 결정한다. 이에 자우버-메르세데스 역시 페이스를 올리며 순위를 지키기 위해 엔진 대결에 나섰고 결국 자우버-메르데세스의 차량이 엔진 문제로 피트인을 결정했다.Mazda-LM55-2마쯔다는 선두로 나서며 당시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의 ‘그룹 C’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로터리 엔진의 위력을 전세계에 알린다.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엔진 완성도 대결은 물론 고성능 엔진으로서 효율성 부분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는 마쯔다의 승리이며 ‘히로시마의 기적’으로 기억되고 마쯔다는 2015년 LM-55 VGT 콘셉 모델을 공개하며 세계 제패의 추억을 기념했다.Mazda-RX_7_mp34_pic_8654◇ 마쯔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설이 되다르망 우승 후 공개된 3세대 RX-7은 일본 최고의 스포츠카로 손꼽힐 만큼 강력한 출력과 우수한 주행 성능을 발휘했다. 1991년 첫 공개된 초기 모델은 255마력이었으나 2000년 대 이후 생산된 차량들은 일본 자동차 출력 제한인 280마력을 발휘하며 토요타 수프라, 닛산 스카이라인 등 당대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RX-7은 마쯔다와 로터리 엔진을 상징하는 자동차 이상의 존재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이와 함께 RX-7은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맹활약하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투어링 카 레이스는 물론 내구 레이스, 드리프트 등 다양한 레이스 무대에서 RX-7은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으며 단종이 된 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세대 RX-7은 2002년 10년의 역사를 뒤로하며 ‘스피리츠 R’를 끝으로 단종한다.mazda-rx-8-spirit-r포드는 더 이상 로터리 엔진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의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판단하고 4시트 모델인 ‘RX-8’을 2003년 공개한다. 출력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경쾌한 드라이빙을 자랑했고 효율성과 내구성이 모두 증진되었다. RX-8은 RX-7와 달리 ‘본격적인 스포츠카’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우수한 주행 성능으로 마니아는 물론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며 2012년 ‘스피릿 R’까지 이어지며 로터리의 역사를 이어갔다.Mazda-MX-5MX-5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미아타, 로드스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된 마쯔다의 대표 모델인 MX-5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로드스터다. 작고 가벼운 차체와 강력하지는 않지만 생기 넘치는 드라이빙 퍼포먼스는 오랜 시간 사랑 받으며 어느덧 4세대 모델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의 MX-5 원메이크 레이스 역시 꾸준히 개최되고 있으며 마쯔다의 ‘비 로터리 엔진’ 차량의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JDC_PRO_Mazda_2014_PP◇ 마쯔다의 새로운 투자 ‘프로 마쯔다’지난 1980년 대 태동하고 1991년 ‘스타 마쯔다 챔피언십’ 타이틀로 첫 시리즈를 개최한 포뮬러 프로그램은 지난 2013년 프로 마쯔다 챔피언십으로 새롭게 명명됐다. ‘프로 마쯔다’는 포뮬러 BMW 아메리카, 바버 닷지 PRO 시리즈 등과 함게 미국을 대표하는 미들급 포뮬러 프로그램으로 지난 2010년에는 ‘로드 투 인디’ 프로그램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250마력의 르네시스 로터리 엔진을 기반으로 하고 카본으로 만들어진 차체 등을 적용했다. 현재 프로 마쯔다는 인디카, 나스카 외에도 미국의 상위 레이스 카테고리로 도약할 수 있는 드라이버 성장의 발판으로 평가 받는다.Mazda-Shinari_Concept◇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마쯔다포드와의 관계 정리 후 마쯔다는 효율성 개선과 함께 기술 개발의 박차를 가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수소전지자동차 개발에 투자하며 ‘프리머시 수소 하이브리드’차량을 개발하고 RX-8 하이드로젠을 공개하며 그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친환경 요소들을 접목시키는 기술도 추가적으로 개발하여 바이오 플라스틱과 바이오 직물 시트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디자인의 개선 역시 마쯔다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잡았다. 마쯔다는 1990년대 중반부터 디자인 파트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며 디자인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는 2000년대 초반의 콘셉 차량부터 발현되는 역동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토대가 됐고 ‘카부라’, ‘류우가’, ‘키요라’ 등은 물론 ‘주행 가능한 콘셉카 ‘푸라이’와 현재의 디자인 DNA인 ‘코도-소울 오브 모션’을 대표하는 ‘시나리’로 이어지며 경쟁력과 마쯔다만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Mazda6 SKYACTIV-D race car at Daytona. (PRNewsFoto/Mazda Motorsports)마쯔다는 자동차 원천 기술 개발에서도 돋보인다. 경량화와 안정화 등을 테마로 하는 ‘스카이 악티브’ 기술은 차체 기술부터 엔진과 변속기는 물론 생산 관리 시스템 등 전반의 역신을 이뤄내고 있다. 이를 통해 마쯔다는 차량의 경량화와 효율성 개선을 이뤄내고 있다. 현재 마쯔다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 제휴를 받는 조건으로 토요타에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한편 일본 내에서는 외면 받고 있는 디젤 파워트레인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쯔다는 스카이 액티브 기술을 발판으로 ‘스카이 액티브-D’ 디젤 엔진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3세대 마쯔다6 디젤 모델을 도입하여 출력과 효율은 물론 친환경성까지 모두 갖춘 디젤 차량을 개발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또한 2015년에는 마쯔다6 디젤 모델을 기반으로 해 데이토나 24시 내구 레이스에 출전하는 등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기술자의 혼, 로터리 스피릿2015년 마쯔다는 새로운 콘셉 차량 ‘RX-비전’을 발표했다. RX-비전은 구체적인 제원이나 차량 구성에 대한 발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형의 보디 라인과 낮게 디자인된 보닛, 특유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덕에 RX-7의 직접적인 계보를 이을 모델이라는 추측이 대두됐다. 이에 차량 공개와 함께 수 많은 미디어들은 모두 로터리 엔진의 부활을 예고하는 헤드라인을 작성했고 차세대 로터리 엔진에 대한 추측성 기사도 연이어 작성됐다.지난 2012년 RX-8의 단종을 발표하며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은 여기서 멈추지만 로터리 엔진에 대한 의지와 열정, 전통은 계속 이어 갈 것이라며 마쯔다가 로터리 엔진에 가진 열정을 드러냈던 것처럼 마쯔다는 새로운 RX-7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로터리 엔진을 얹은 RX-7의 차기 모델의 데뷔는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현재도 마쯔다는 여전히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기술자의 혼, 로터리 스피릿’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협조: 동경대학교 인문사회계연구과 김승래 연구생 / 고려대학교 대학원 김신우
- [화통토크]김영진 문산연 회장 “리우카니발처럼, 대중문화 박람회 열겠다”
- [이데일리 스타in 김정욱 기자] 김영진 회장은 회원사가 주최하는 이벤트를 한 자리에 모으는 대중문화 박람회를 제안했다.[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정부의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군소업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김영진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산연) 회장은 거듭 “탁상공론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는 지원과 정책에 관련된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 회장을 겸하고 있는 그의 책상 위에는 A4용지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는 정식 취임식도 미룬 채 업무에 한창이었다. 안경을 벗으며 책상에 마주앉은 그는 달력을 바라봤다. 날짜를 손으로 짚으며 “졸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울상 지었다. 문화 전문가라는 목표를 위해 2년 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가 쉽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문산연은 대중문화와 관련된 13개 단체가 모 총연합체다. 지난 2009년 설립됐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만장일치로 제 4대 문산연 회장으로 선출됐다. 처음에는 회장직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 회장은 양의식 모델협회장으로, 실연자가 아닌 제작자가 문산연을 이끄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끝에 김 회장이 지목됐다. 양 회장 전 회장인 제1대 신현택(드라마제작사협회), 제2대 차승재(한국영화제작가협회) 모두 제작자였다. 김 회장은 단기적 목표로 대외활동 활성화를 통한 문산연의 이름 알리기를 꼽았다. 문산연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은 ‘0원’이다. 문산연은 회원사의 회원비로 운영되는데, 내지 않는 회원사도 부지기수다.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은 “자칫하다 유명무실한 단체로 남을 수 있다”고 쓴소리를 냈다. “K팝, K드라마가 보이지 않는 창조경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을 통해 연 3,000억 원의 지원금이 뿌려지지만, 일부에 쏠려요. 부익부 빈익빈인거죠. 유통 구조부터 규제까지 총체적 난관이에요. 이렇게 특정 콘텐츠나 업체에 의해 대중문화 산업이 움직이면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릅니다. 영세사업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합니다.”그는 지난해 6월 출범한 한류기획단을 예로 들었다. 한국방송협회 회장인 안광한 사장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공동단장을 맡고,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미래부·산업부·농림부·외교부·방통위 등 6개 정부부처와 방송 3사, 방송·드라마·음악·공연·식품 등 각 분야 기업과 투자 기관 대표들 31명이 위원으로 위촉된 단체다. 그는 “이런 만남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현장을 잘 아는 실무자들이 포함된 지속적인 포럼과 공청회가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스타in 김정욱 기자] 김영진 회장은 문산연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회원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최대 30까지 회원사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지금까지 소리만 냈습니다. 문산연은 정책과 실무의 격차를 줄여서 산업의 성장에 있어 정부의 지원이 직접적으로 실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맡은 역할을 다 하려고 합니다. 국가 지원을 늘리는 등 당국의 협조를 요청하고 좋은 정책을 만드는 데 협력할 것입니다.”문산연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회원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제각각 이해관계가 엇갈려 단합이 쉽지 않다. 김 회장은 “콘텐츠 산업이란 명제 아래 공통된 과제를 모색하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며 “사안에 대해 각 협회의 형편을 고려해 상호공조해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산연의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최대 30개까지 회원사를 늘릴 계획도 내놓았다.그렇다면 문산연 회장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문산연이 주최하는 대중문화 박람회를 제안했다. 연제협은 드림콘서트, 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에이판(APAN)스타어워즈, 모델협회는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을 매년 주최하고 있다. 이처럼 회원사가 주최하는 이벤트를 한 자리에 모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관광사업과 접목은 물론 국가 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다. 그는 “브라질에 리우카니발이 있듯 국내 대중문화 산업을 국내에서 유치시키는 대중문화 박람회를 구상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와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이 어우러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해외 교류도 포부 중 하나였다. 그는 중국과 일본 현지에 사무처를 마련하는 방안을 꺼냈다. 콘진원이나 각국 문화원과 협력해 문산연 사무처를 신설하는 방법이다.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콘텐츠 시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머니는 가뭄의 단비입니다. 특정 분야나 특정 업체를 제외하고 투자와 수익이 선순환을 만드는 구조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차이나머니는 사업의 확장과 지속을 위해 긍정적입니다. 물론 국내 종사자들도 차이나머니의 위험성과 그 성질을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콘텐츠 사업에 있어 한류의 융·복합을 추진 중인데, 국내 콘텐츠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콘텐츠 기반이 전반적으로 두텁지 못합니다. 이러다간 잠식될 수 있습니다.”그는 다시금 문산연의 역할과 정부의 지원을 강조했다.“문산연은 정부 지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문산연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공익적인 업적을 이뤄낼 수 있는 단체입니다. 절실한 이들에게 지원금이 쓰일 수 있어야죠. 문산연이 대중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
- SK 와이번스, 선수단 버스 대폭 개선
-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SK와이번스가 원정 경기 출장으로 인해 장거리 이동이 잦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와 편의성 제고를 위해 2016시즌부터 선수단 버스를 대폭 개선했다.먼저, 선수단 버스를 2대에서 3대로 늘리고 버스 크기도 종전보다 0.5M 길어진 국내 최장축(12.5M) 버스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버스 내 선수들의 개인공간을 확대, 경기 전후 선수들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또한 맨 뒷좌석(4자리)를 제외하고 8라인(3자리씩)이었던 좌석의 한줄을 줄여 7라인으로 축소했다. 이로 인해 1호차는 28인승에서 24인승[최전열(最前列) 2자리]으로, 2?3호차는 28인승에서 25인승으로 변경되었고 선수 1인당 할당된 공간을 더욱 넓혔다.이와 더불어 주행 중 중앙선을 감지하면 경보가 울리는 차선경보 시스템을 장착해 안정성까지 높였으며, Wi-Fi 단말기, TV, 냉장고, 콘센트 등 버스 내부 사양도 최고급 옵션을 적용해 선수단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각 좌석마다 USB포트, 라디오 수신기 등을 설치해 실용성을 더했다.SK와이번스 민경삼 단장은 “원정 경기로 인해 원거리 이동이 잦은 선수들의 편의성 제고를 위해 선수단 버스를 대폭 개선했다. 작년부터 엔트리도 1명 추가됐고, 외국인 선수도 늘어나면서 직원(통역)도 늘게 돼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 이번 개선을 통해 경기 전후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차량 한 가득 짐을 싣고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해 따로 이동했던 전력분석원이나 훈련 보조 스태프 등도 함께 편히 이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SK 김용희 감독은 “버스 3대로 움직이니 선수 1인당 공간이 훨씬 넓어져 장거리 이동 시에 편안하다. 내부시설도 편리하게 잘 갖춰져 있어서 국내 프로야구단 중에서는 우리 구단 버스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크리스 세든은 “새로 바뀐 의자가 너무 크고 편하다. 앞, 뒤 좌석 간 공간 확보도 넓게 잘 돼있어서 내 키가 193cm임에도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낀다. 너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또 다른 외국인 선수인 메릴 켈리는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이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혀도 뒷 사람의 공간이 넉넉할 정도다. 그리고 좌석마다 USB포트가 마련돼있어 장시간 이동하면서 휴대폰,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 충전이 용이해 실용적이다”라고 덧붙였다.포수 이재원은 “구단에서 선수단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럴 때 가장 크게 와 닿는다. 훈련과 게임에 지쳐서 버스를 탈 때가 많은데 좌석에 앉으면 너무 편해서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계속 버스에 타있고 싶을 정도다. 장시간 이동에도 피로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하다”고 탑승 소감을 밝혔다.
- ‘응팔+꽃청춘’ 안재홍, 동네 형 김정봉씨 (인터뷰)
- [이데일리 스타in 한대욱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예능 ‘꽃보다 청춘-아프리카’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안재홍이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친근하게 봐주셔서 더 좋죠.” 배우 안재홍은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눈에 띄는 외양이나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지만,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는 지난달 16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속 정봉과 꼭 닮아 있었다. 점심식사 직후였지만 좋아하는 과자에 손부터 갔다. 이 모습도 캐릭터를 떠올리게 했다.◇안재홍=정봉, 우직한 남자 ‘응팔’ 전부터 안재홍은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성이었다. 단편영화 ‘구경’(2009)으로 데뷔해 첫 주연작 ‘1999, 면회’(2012)으로 입지를 다졌다. 영화 ‘족구왕’(2014)은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안재홍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이를 눈여겨 본 신원호PD는 안재홍을 ‘응팔’에 캐스팅했다. ‘응팔’은 대성공이었다. 최근에는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아프리카’(이하 ‘꽃청춘’)에 출연 중이다. 복권에 당첨된 극중 역할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성장세다. 정작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기분 좋은 정도”라고 답한 그는 좀 더 채근하니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인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다”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열애설도 터졌다. 그는 5세 연하의 건국대 영화과 후배와 교제 중이다. 독립영화계 유망주에서 연예인이 된 신고식이었다. 사생활까지 관심 받는데 대해 “불편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일반인인 상대방을 위해 말을 아끼는 태도에서 속 깊은 배려심이 엿보였다. ◇안재홍=정봉, 음식에 대한 애정둘의 공통분모는 음식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맛집 지도로 통한다는 그다. 지난 19일 방송된 ‘꽃청춘’에서는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평양냉면을 외쳤다. 아프리카에 냉면이 있을 턱이 없다. 냉면을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고경표와 냉면 가게로 향했다”고 말했다. 대신 아프리카에서는 그가 식사를 담당했다. 냄비 하나로 아프리카의 낯선 식재료를 이용해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완성했다. 자신이 구웠다는 로스트 치킨을 으뜸으로 꼽았다. ‘응팔’ 속 가족 식사 장면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신이었다. 그는 “촬영도 하고, 실제 식사도 했다”고 웃었다. 부잣집이란 설정 덕분에 반찬 가짓수도 많았다. 육류나 어류가 자주 상에 올라왔다. 이는 미술팀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안재홍은 “웬만한 음식점보다 맛있다”고 설명했다. 최악은 설탕과 마가린, 마요네즈 비빔밥이었다. 화면에서 안재홍은 활짝 웃으며 먹었다. 실제로는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마요네즈의 맛이 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안재홍=정봉, 그는 연기 ‘덕후’극중 첫째 아들이지만, 실제론 네 살 터울 형이 있다. 정봉은 취향이 확고하다. 선천적인 심장병 탓에 심약한 면도 있다. 안재홍은 그렇지 않다. 무던한 성격이다. 안재홍은 인터뷰 도중 무심결에 입술을 뜯다 그만 피가 났다. 당황한 듯 “피가 난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 것이 전부였다. “좋지 않은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란 그의 말 그대로였다. 아프리카에 가장 빨리 적응한 멤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원 짜리 스킨을 써도 피부에 잘 맞고, 추위에 강해 가만있어도 입김이 나는 촬영장이 좋았다는 그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는 무엇이 있으니, 연기다. 오는 3월 ‘널 기다리며’, 오는 4월 ‘위대한 소원’ 등 개봉작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작품 준비할 때 예민해요. 오는 5월 영화 ‘임금님의 사건 수첩’ 촬영을 시작해요. 많이 준비해서 잘 찍고 싶어요. ‘응팔’ 때문에 8kg 정도 체중을 늘렸는데, 살도 빼야겠죠. 또 다른 모습 보여드릴게요.” ▶ 관련기사 ◀☞ 김효진, 밀라노 패션위크 참석차 출국☞ 지하윤, ''돌아와요 아저씨'' 이하늬 아역으로 출연☞ 성매매 알선 연예기획사 대표 적발..경찰 조사 중☞ 최일구 전 앵커, 사기혐의로 피소☞ 김민종 스토킹 30대 여성 붙잡혀..지난해 한차례 벌금형 전력
- 상가투자 성공 주차장 확보여부, 청라국제도시 랜드마크 ‘지젤엠청라" 스트리트형 상가 선보여
- [온라인부] 배우 김희애 씨가 다른 스타들과 달리 일반건물이 아닌 주차장을 매입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차장이 수익형부동산의 틈새상품으로 조명받고 있다. 바야흐로 "집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못사는 시대"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4년 12월말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는 2011만 7955대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2013년에 비해 71만 7000대(3.7%) 늘어난 수치로 한가구당 1~2대의 자가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다.최근 주차장을 확보한 상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차 수용능력이 상가의 매출과 직결되고 늘어난 매출은 상가투자 수익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차여건이 상가투자에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차장 확보 여부가 중요한 사항으로 등장하고 있다. 상가의 경우 넉넉한 주차여건 확보 여부에 따라 입점한 점포의 매출이 달라지기 때문에 분양업체들은 주차장 확보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대도시 도심의 있는 경우 지하철&8228;버스 등이 교통 인프프라가 발달해 주차여건의 중요성이 덜 하지만 신도시나 택지지구, 혁신&8228;기업단지처럼 새롭게 조성되는 상권의 경우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아예 주차장 용지를 매입해 주차장 전용 상가를 지어 분양에 나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으며, 법정 주차대수보다 훨씬 많은 주차장을 늘리거나 인근에 별도로 주차공간을 확보해 경쟁력을 갖춘 수익형 상품도 늘고 있다.또한 주차공간 폭을 일반 주차장보다 넓혀 고령층 운전미숙자나 여성운전자를 배려토록 설계하고, 넉넉한 주차장 공간을 외부인에게 개방해 발생하는 수입으로 입점한 임차인에 관리비를 면제해주는 상가도 있다. 대규모 외식업체나 프랜차이즈, 대형 마트, 은행 등 금융권, 병·의원, 학원 등 우량 임차인 입장에서도 주차장 전용상가나 법정대수 이상 주차장을 확보한 상가들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용고객도 넉넉한 주차공간이 갖춰져 있어야 편리하고 여유있는 쇼핑과 소비활동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투자대상 물건이 주차여건을 확보해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이용 고객 유입이 현저히 떨어지는 입지에 위치한 수익형 상가에 투자할 경우 추후에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우수한 입지인지 배후 및 외부수요 등의 동선상에 위치해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본 후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손건설은 인천시 청라국제도시 문화의료시설 용지에 복합문화시설인 "지젤엠청라" 상가를 분양한다. 규모는 대지면적 1만995㎡, 건축면적 6484㎡, 연면적 5만9546㎡ 규모에 지하 3층~지상 5층으로 지어지며 600여대 동시 주차가 가능하다."지젤엠청라"는 문화시설이 미비한 청라국제도시에 들어서는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비롯해 컨벤션센터, 청라 최대 규모 수영장과 스포츠센터, 다양한 문화와 체험이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 크고 넓은 최고의 주차공간 등이 조성된다.특히 이 단지는 청라 명소인 커넬웨이 수변도로 진입상가로 커넬웨이와 지하광장이 직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쾌적함은 물론 풍부한 유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으며 커넬웨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중심을 유유히 흐르는 청라의 핵심 상권이다.풍부한 배후수요도 장점이다. 청라국제도시의 3만3000여 가구 약 9만명의 상주인구와 인근 가정지구 루원시티, 경서지구까지 18만명의 광역 배후수요를 갖췄다.교통으로는 지난해 6월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이 개통해 서울역까지 30분대면 도달할 수 있게 됐고 청라~화곡역 BRT버스 운행 등으로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여기에 오는 청라~신방화역 BRT버스(12월 개통 예정), 제2외곽고속도로(2017년 3월 개통 예정)를 비롯한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 등을 통해 서울역까지 30분대 진입이 가능하다. 지하철 9호선이 공항철도와 연계돼 운행될 예정이고, 제 2외곽순환도로, 제3연륙교(청라~영종) 등도 개통 예정이어서 교통 여건은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이 상가가 입지한 청라국제도시 개발도 완성 단계다. 지난해 착공식을 한 하나금융타운 조성사업이 2017년 완공될 예정이며 16만5000여 ㎡ 규모에 이르는 위락, 쇼핑, 문화, 레저공간을 갖춘 신세계 복합쇼핑몰도 2017년 완공될 예정이다. 여기에 차병원그룹의 의료복합타운·시티타워·로봇테마파크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러한 주변 조성사업이 순차적으로 완성되면 국제도시로서 규모와 명성을 갖추며 현재보다 더욱 많은 인구 유입과 유동인구를 흡수할 전망이다.실투자금은 1억원대부터며 주변 경쟁 상가가 40% 중반의 전용률을 보이는 반면 "지젤엠청라"는 전용률 53%대의 높은 전용률을 자랑하며, 계약금 20%, 중도금 40% 무이자 혜택으로 자금부담이 덜하고 준공은 2017년 5월 예정이다.
- 안소미, 폭죽 팔던 소녀의 '복면가왕' 도전까지…"돈 벌어야죠"
- 안소미(사진=제이앤유글로벌)[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대천해수욕장에서 폭죽을 팔던 소녀가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둘이서 폭죽을 팔았다. 해수욕장 식수대에서 아버지와 밥을 해먹으며 봉고차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구김살 없이 폭죽을 팔며 해수욕장 노래자랑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끼’로 1등 상인 김치냉장고까지 타내갔던 꼬마는 19년이 지난 2016년에도 여전했다. 인기 개그우먼이자 최근 싱글 트로트 앨범 ‘술 한잔’을 내고 활동을 시작한 안소미(27)가 그 주인공이다.안소미는 14일 방송된 MBC ‘일밤’의 ‘복면가왕’에 사랑의 청사초롱이라는 별칭으로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 기존 트로트 가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질 게 없는 노래 실력은 시청자들의 감탄을 이끌어 냈다. 타고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끼’다. 스스로도 “원래 꿈이 트로트 가수였다”고 밝혔다.“노래는 트로트밖에 못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트로트 곡을 만들어주셨어요.”그룹 부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서재혁이 곡을 주고 싶다고 연락을 했을 때 안소미의 답변은 ‘트로트’였다. 안소미가 JTBC 예능프로그램 ‘끝가지 간다’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서재혁이 연락을 했다. 안소미는 “현재 본업은 개그우먼이지만 꿈을 이룰 기회라는 점에서 놓치기 싫었다”고 말했다.배워본 적도 없는데 노래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팀을 꾸려 댄스경연대회에 나가고 상도 휩쓸 정도로 끼와 재능이 넘쳐났다. 그런 안소미의 끼, 재능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폭죽 판매에서도 이어졌다. ‘폭죽 판매왕’ 시상식이 있었다면 단연 안소미의 차지였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폭죽을 사달라고 하면 선뜻 살지 말지가 보였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폭죽을 판매한 돈으로 주머니를 채웠다. 그 돈을 모아 콘테이너를 사서 생활을 했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작은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교 때까지 10여년 간 폭죽을 팔며 생활을 했다.안소미(사진=제이앤유글로벌)고교 졸업 후 한 리조트에서 공연 요원으로 일했다. 당시 도로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낮에는 손님을 맞고 저녁에는 공연을 했다. 함께 일하던 언니, 오빠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면서 노래와 춤을 배웠다.성우 시험을 보려고 했다. 먼저 공지가 뜬 게 개그맨이었고 응시를 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2년차가 됐는데 뚜렷한 뭔가가 없자 김석현 PD가 매니저를 소개해줄 테니 아이돌 가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주위 동료 개그맨들도 권유를 했다. 자존심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왕 시작한 것 더 해보겠다고 했다. 5년의 무명생활 끝에 ‘개그콘서트’에서 ‘놈놈놈’ 코너를 시작으로 ‘댄수다’, ‘핵존심’, ‘닭치고’ 등의 코너가 연이어 인그를 끌었다.개그맨으로서 욕심,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개그콘서트’에서 새로운 코너를 기획해도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른 기회가 생겼다.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돈을 벌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절실함이 더했다. 지금도 할머니와 아버지, 늦게 본 동생 등 가족들을 책임질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고 했다. 안소미는 “개그맨을 하면서도 틈틈이 디제잉 등을 배워 대학 축제와 클럽, 리조트 행사 등에 다녔다”며 “노래 제의를 선뜻 수락한 것도 솔직히 돈을 벌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다. 진행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 더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소미는 “아버지가 일 좀 안벌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하며 웃었다.“개그맨일 때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개그본능이 튀어나오기도 했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귀엽게 봐주셨죠. 이제는 개그맨이 아닌 가수로 무대에서 평가를 받는 거잖아요. 제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했어요.”이번 ‘술 한잔’ 활동을 통해 웃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방면에 ‘끼’가 많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앨범 활동을 계기로 예능 활동도 늘어났으면 해요. 그래야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고 저희 집도 좀 일어서겠죠.”▶ 관련포토갤러리 ◀☞ 셀레나 고메즈 화보 사진 더보기▶ 관련기사 ◀☞ [프로듀스101 매력탐구]최유정, 그가 센터를 장식한 이유☞ [프로듀스101 매력탐구]김청하, 댄스로 일기당천☞ [프로듀스101 매력탐구]김소혜, 별에서 온 연습생☞ 다섯 위한 셋, 셋 위한 다섯… 돌아온 '암욜맨'☞ 다이나믹듀오, 미국 메이저 5개 도시 콘서트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