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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아이돌 팬덤과 '응원봉 연대'
- [홍희경 전 한국문화정보원장]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등장한 응원봉은 집회의 주력이 젊은 세대이고, 집회 문화가 피켓과 깃발 대신 자유로운 응원 도구 활용으로 변모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시민들이 각자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정부 규탄에 동참했다. (사진=독자 제공)응원봉은 주로 아이돌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1세대 아이돌 H.O.T와 젝스키스 시대에는 하양, 노랑 등의 고유한 풍선의 색상으로 팬덤을 대표했다. 풍선 색만으로의 변화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응원봉 사용으로 변화가 나타났다. 아이돌의 콘셉트에 따라 색상 뿐만 아니라 야구봉, 망치, 풍선 형태 등 디자인까지 다양하게 제작된 응원봉은 팬이라면 이제 당연히 구비해야 할 필수품이 됐다. 특히 콘서트나 공방(공개방송) 등의 현장에서는 이를 손에 들지 않고는 참석하기 어려울 정도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요즘에는 응원봉 자체 색상을 버튼으로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고, 중앙제어 시스템을 장착해 무대 현장에서 연출의 일부로도 사용한다. 이처럼 응원봉은 팬덤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나 유대감을 더해주기도 하고, 다른 팬덤과의 차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팬덤 정체성의 상징과 같은 도구가 집회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집회에 응원봉이 등장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 때도 많은 사람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 모 의원이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된다’고 발언한 것에 반발해 꺼지지 않는 촛불의 의미로 응원봉을 갖고 나왔다. 8년이 지나 탄핵집회 현장에서 응원봉을 다시 마주했다. 팬덤 사이에서도 발광력 최고로 알려진 샤이니 응원봉 ‘샤배트’, 손가락 모양으로 디자인 된 에픽하이의 ‘박규봉’, 원하는 문구 삽입이 가능한 NCT 응원봉 등은 팬이 아니라도 들고 싶어지는 존재감을 자랑했다. 집회에 등장한 응원봉은 도구적 효용성만 있는 게 아니다. 야외 대중 집회가 누구의 사주도, 동원에 의해서도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걸 나타낸다. 그저 아이돌을 좋아하고 콘서트에 가는 게 낙인 팬들이 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 누군가의 덕후가 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체력, 돈을 쓴다는 의미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이런 정성을 쏟고 열정을 다하는 에너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은 사녹(사전녹화)과 공방, 콘서트 야외 대기 등으로 단련돼 새벽부터 밤샘까지 하루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익숙하며, 함성과 떼창은 기본이다. 집회 최적화 스킬이 장착됐다고 할까.정치란 그런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에 반대하고, 옳다고 생각한 것을 지지하고, 필요하면 함께 행동하는 것. 아이돌 팬덤은 이미 연대의 중요성과 단결된 목소리의 짜릿함을 잘 안다. 함께할 때 강해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해온 그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응원할 때 쏟아내는 힘을 막기는 어렵다. 저마다 자유롭지만, 무엇보다도 끈끈한 연결의 응원봉 연대.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으로 빛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불빛 물결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새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홍희경 전 한국문화정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