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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를 찾아 떠난 영주 문화여행
- [조선일보 제공] ‘사과 드라이브’를 달려 부석사(浮石寺)에 도착했다. 부석사 입구 은행나무 길은 아직 연둣빛이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소백산에 단풍이 예쁘게 드는 10월 25일쯤이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씨를 따라, 아직은 조용한, 그래서 더욱 운치 있는 경내를 돌았다. 부석사는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676년 창건한 사찰이다.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는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절로도 꼽힌다. 일부러 일몰 시간에 맞춰 일주문에 도착했다. 오후 6시 30분. 저녁예불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사찰이 산지의 경사면에 지어진 탓에 제일 꼭대기인 무량수전에 오르기 위해선 9단의 석축을 올라가야 한다. “천왕문이 있는 맨 아래층은 지옥, 무량수전이 있는 꼭대기는 극락이라고 합니다. 한계단 한계단 오를 수록 수양하는 마음이 들지요” 해설사의 설명.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섰다. 발 아래 소백산과 태백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졌다. 저녁 노을이 구름에 물들어 운해(雲海)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 아래서 산과 구름을 내려다 보는 극락세계에 온 것 같았다. 스님 한 분이 범종루에 들어섰다. 둥둥둥둥… 천천히,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법고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범종을 울리며 식을 마친 스님이 “절을 이리 소개하라”며 수첩에 가만히 적어준다. ‘부석사, 소백산자락 붉은 노을에 취하는 곳.’ 안양루에 걸린 현판에 적힌 김삿갓의 시를 읽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이곳에 올랐구나…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구경할까 세월이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버렸네.” 김삿갓 시인도 백수가 돼서야 본 풍경. 운이 좋았다.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 기둥이 버틴 무량수전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권화자 해설사는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무량수전에서 신도들이 이용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있는 배흘림 기둥에 전설이 있다”고 했다. 그 기둥을 3번 돌면 죽기 전 딱 3일만 아프다가 평화롭게 삶을 마칠 수 있다는 것. 몇몇 관광객들과 함께 기둥을 3번 돌았다. ▲ 오후 7시. 부석사 안양루에 서면 노을에 물든 구름이 내려다보인다.부석사를 내려와 숙소로 정한 선비촌(054-638-5831)에 갔다. 부석사에서 차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선비촌은 영주 지역에 현존하는 고택 40채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한옥촌. 2004년 9월 개장해 전통체험학습장으로 영주 관광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다. 해우당 고택, 두암고택 등 상류층 기와집은 방 하나에 3만~5만원, 중류층 기왓집은 2만 5000~5만원. 초가는 2만~4만원이다. 검소한 선비의 집에서 묵고 싶다고 하니 ‘김뢰진 가옥’을 내줬다. 싸립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가를 얹은 흙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마당 오른쪽에 크고 작은 장독대가 정겹다. 대문 안으로 왼쪽에 사랑방, 오른쪽에 부엌과 안방이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곳간에는 시루, 됫박 등 살림살이가 있고 부엌 한쪽엔 가마솥, 함지박, 체, 수저에다 개다리 소반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직접 취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 점. 화장실은 마당에 있긴 하지만 수세식. 공동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고 치약, 수건도 있다. ▲ 소수서원의 천년(千年)솔밭. 소나무가 하늘까지 뻗어있다.이부자리를 펴고 누우니 선비촌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옥계천 물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온몸이 개운했다. 함께 간 일행도 “신기하다, 머리가 가볍다”고 했다. 옛날 주막처럼 꾸며진 저잣거리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순두부찌개·도토리묵·파전이 모두 5000원. 선비촌에서 서민의 일상을 체험했다면 바로 옆 소수서원(054-639-6693)에서는 고고한 유생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중종 37년(1542) 세워진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이다.지금도 4000명의 유생들이 수업을 들었던 강학당, 책을 보관하던 장서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생들이 공부를 하다 머리를 식혔다는 언덕, 소헌대에 올랐다. 그 옛날 욕심 없던 선비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굵은 고송(古松)들이 하늘 끝까지 쭉쭉 뻗어 있는 소수서원 앞 솔밭을 걸었다. 소수서원 앞뜰 소나무 사이사이에 가을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