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4,164건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산업은행 정해근 금융공학팀장(상)
  • [edaily] 우리나라에서 파생금융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역사가 짧다. 통화옵션이나 금리스왑이 본격적인 시장의 모습을 갖춘 것은 9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 금융공학팀을 보면 척박한 파생상품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사람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정해근 팀장(사진)은 80년대 중반 산업은행에서 외환, 파생상품 업무를 익혔고 90년대 초반, 현재 금융공학팀의 원형을 만든 장본인이다. 정 팀장은 은행이 파생상품 딜링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로 7가지를 꼽았다. 법률, IT, 회계, 리스크 매니징, 마케팅, 트레이딩 등 6개 파트와 이를 하나로 조율할 수 있는 코디네이팅 능력이다. 정 팀장이 딜링 룸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할 때는 마땅한 “교범”이 없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여기저기서 전문서적을 구하기도 쉽고, 교육기관도 많으며 해외에서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인력도 많다. 정 팀장은 그러나 “하나의 사단을 꾸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며 “파생상품 거래도 기본적으로는 팀워크이자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정 팀장은 런던 현지에서 4년간 파생상품 거래 및 마케팅 경험을 쌓았다. 귀국해서는 금융공학팀을 이끌며 금리스왑(IRS) 시장 등에서의 마켓메이커를 자임했다. 지금은 외국계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의 금리스왑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외거래에 있어서 링펜스(Ring Fence)와 같은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타파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회화 감상이 취미인 정 팀장은 틈틈히 공부해 국제경영학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정 팀장이 파생상품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수련 과정, 팀을 이끌면서 느낀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의 문제점들을 들어봤다.(인터뷰 하편에 약력 참조) -학부는 사범대학을 나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전공이 바뀌었나요. ▲아주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대학들어갈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요. 사회교육과는 중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기 때문에 부전공을 해야 했어요. 사회교육과 학생들이 행정고시를 의식해서 법학 등을 부전공으로 많이 선택했는데 나는 고시볼 생각이 없어서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왔더니 대학 본부에서 부전공 신청한 서류가 없어졌으니 다시 신청하라는 거에요. 지금이라도 부전공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꿀 수 있다고 하데요. 경제학과에서 이미 들어놓은 수업을 다 인정받고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대학원도 경영학으로 들어와 재무관리를 전공했고요. 하하하 <사범대,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산업은행 입행> -산업은행은 어떻게 입사하셨나요.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졸업 전에 대우그룹에 취직이 결정됐거든요. 어느날 학교에 한국은행에서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붙었어요. 단 1명을 뽑더라구요. 당시 나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1명있었는데 그 학생이 군미필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은행은 군 미필이 좋지 않느냐, 대신 너는 산업은행이 어떠냐” 이래요. 그 자리에서 산은 원서를 받아서 제출하고 입행 시험까지 봤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은에 가기로 한 그 친구는 사정이 있어서 면접에 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참.. -본래 금융에는 큰 뜻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하하하. 산업은행에서는 국제영업부, 외환자금실 등에서 오래 근무하셨군요. . ▲처음 은행업무에서 국제업무가 제겐 블랙박스였지요. 처음엔 신용장업무를 하다가 딜링파트로 옮겼습니다. 당시 대고객 팀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지금하는 파생상품 업무 비슷한 것을 많이 했죠. -본격적으로 옵션, 스왑 등을 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스왑은 87년부터 관계했어요. 88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 금융선물 거래가 허용됐습니다. 유로달러, T/B선물, 통화선물 등을 거래했죠. 이런 거래를 하면서 스왑과 선물거래의 관계를 깨닫기 시작하고 프로그램을 짠 것이 89년입니다. 당시 프로그램들은 원형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지금도 쓰고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이런 파생상품을 배우지 못했을 것 같은데 ▲스왑 등은 학교에서 개념도 없었지요. 대학원에서 선물을 약간 소개받은 정도였습니다. 옵션은 외국 전문가가 와서 두어시간 특강을 받은 적이 있었죠. 석사학위 논문쓰면서 친구들이 옵션을 주제로하는 경우가 있어서 논문을 보면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저는 은행 대출과 관련된 논문을 썼어요 -이론적인 것과 실제 트레이딩 룸에서 경험한 것은 차이가 있었을 텐데 ▲통화선물 거래는 외환 거래하면서 익혔고 금리스왑은 스스로 프로그램 만들어보고, 책보면서 매뉴얼도 만들고 하면서 조각지식을 엮어서 독학으로 로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고속철 TGV 도입…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열정> -94년에 런던으로 가게 된 이유는 뭔가요. ▲사연이 좀 길어요. 94년도에 고속철도관리공단에서 프랑스 고속철도 TGV를 도입키로 했습니다. 달러를 차관으로 들여와서 10여년 동안 프랑화로 대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10년 계약이니까 프랑과 달러의 환위험을 헤지해야만 했어요. 철도 건설 공기가 빨라지면 자금 집행을 빨리해야 하고 공기가 늦어지면 자금 집행도 늦어지는 조건이었습니다. 고속철도관리공단이 외국계 은행들한테만 환위험 헤지 방안을 의뢰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외국계 은행들의 헤지 방안도 몇 개 입수했어요. 가져와서 일일이 검토를 해봤죠. 10여년간 그 외국계 은행에 안정적으로 넘어가는 헤지 비용만 1억5000만 달러가 되더라구요. “이 정도 헤지 기법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했죠. 담당 임원한테 보고하고 입찰에 참여하자고 했죠. 한 달이라는 시간과 컴퓨터 한 대만 더 주면 헤지 방안을 만들어내겠다고 했어요. 94년 3월인가, 영문과 한글로 헤지 계획서를 만들었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헤지 전략이었는데 “이런 경우에 이 거래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렇게 해라”하는 식으로 임무 카드를 일일이 만들었습니다.” <외국계 JP모건, BTC 등 유수 은행과 경쟁하다> 헤지 방안 입찰에는 JP모건, BTC, 산업은행 등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고속철도 건설 감리는 미국의 벡텔사였어요. 벡텔이 재무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컨설팅을 했죠. 헤지 방안 심사도 벡텔이 했어요. 결국 BTC에 낙찰이 됐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헤지 방안이 훨씬 싸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으니 억울했죠. 우리는 풀옵션으로 헤지 팩키지를 짜서 가져갔어요. 반면 BTC는 헤지 전략을 분해해서 기본적인 헤지 전략은 얼마, 여기에 이런 옵션을 붙이면 얼마 하는 식으로 만들어 왔더라구요. BTC의 본체 자체만의 기본헤지 비용은 4000만달러로 추정되었어요. 우리는 공단이 요구하는 풀 옵션으로 해서 헤지비용이 6000만달러 였습니다. 내가 따졌죠. 이게 말이 되냐… BTC가 제시한 옵션을 모두 합하면 1억 달러는 될텐데… 재무부도 우리가 항의를 하니까 곤란해졌죠. BTC는 계약을 했으니 그대로 해야한다고 주장했죠. 한 달간 밤낮으로 고생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허탈해지더라구요.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학위 논문도 써야했어요. 마침 다른 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더라구요. 논문 때문에 내 시간이 필요하니까 논문 끝날 때까지 내 시간을 달라고 했죠. 연봉도 비교적 높게 요구했어요. 나중에 은행장보다 연봉이 높을 수는 없다고 해서 무산됐죠. 비슷한 시기에 지금도 유명한 어느 연구원에서도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2001.10.16 I 정명수 기자
  • 한국, 외국인 투자환경 "우수"..성장 가능성 높아-KPMG
  • [edaily] 산업자원부는 26일 투자 및 비즈니스 전문 컨설팅사인 KPMG(Foreign Direct Investment in Korea)가 한국의 투자매력도 조사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외국인투자 환경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산자부에 따르면 KPMG는 이번 조사보고서에서 ▲한국의 동북아시장 거점으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노력 ▲우수한 노동력 ▲발달된 산업기반 및 인프라 등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보고서는 또 외국기업 CEO와의 인터뷰에서 한국투자의 주된 동기로 한국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시장지향(Market Seeking)과 한국의 우수한 생산요소 활용을 도모하는 생산효율지향(Efficiency Seeking)의 양 측면이 함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시장에 대한 전망 및 사업전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투자기업들은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한국시장 점유율 확대나 한국에서의 생산을 늘려 대아시아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한편 외국기업 CEO들은 투자촉진을 위한 한국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해 ▲정부의 노사문제에 대한 순방향으로의 개입 및 투자유치를 위한 PR활동 강화 ▲기 투자한 외국투자기업의 증액투자유치 노력 증대 ▲기업의 투명한 회사 경영과 노사간의 신뢰관계 정착 ▲부정행위로 인한 낭비와 비능률의 제거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1.09.26 I 이훈 기자
  • 미 테러 사건 후 중동지역 동향.."비교적 차분"-KOTRA
  • [edaily]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동지역 무역관은 14일 파키스탄과 요르단, 레바논,이란 등 현지동향을 전해왔다. 이들 국가는 비교적 차분하 가운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KOTRA 중동지역 무역관 보고서 내용. < 파키스탄 현지 동향> ㅇ 미국은 지난 "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과 "99년 군부쿠데타 이후 파키스탄에 대하여 경제재제 및 핵확산금지조약(CTBT) 서명을 종용하면서 양국간에 외교관계가 급속 냉각되었으나 현 군부집권자인 무샤라프 대통령의 관계완화 노력을 통하여 외교관계는 다소 회복하고 있는 상태임. ㅇ 이와반면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는 동일민족, 동일종교 등 여러면에서 동질성을 가져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으며, 현 탈리반정권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3대국(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말레이시아)의 하나로 정치.경제적으로 지원하여 왔음. ㅇ 이번 사태를 보는 파키스탄 국민의 반응은 아랍회교국과 같은 감정을 보이는 듯함. 이는 범 이슬람적 동질성을 같이하고 지난 몇 년간의 경제재제로 입은 반미감정의 응어리가 상당했던 것으로 분석됨. 그러나 이번 사태로 환호성을 지르거나 환영시위를 하는 행위는 없었으며 전반적으로 차분한 가운데 사태를 지켜보고 있음. < 파키스탄정부의 대처현황> ㅇ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면공격을 위해 파키스탄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상황으로 수차례 무샤라프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이를 전면 지원한다는 보도와는 달리 파 정부는 금일(9.14) 군부수뇌부 회의를 통해 이를 최종 결정한다는 반응을 보임(금일 조간 보도 인용) ㅇ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번 미국의 군사협조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어 파키스탄 경제발전에 직접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한편으로 파키스탄 국민에게 이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되 이번 최종 결정에 관심이 점증되고 있음. ㅇ 또한 탈리반정권을 지원해온 파키스탄정부로서는 이번 미국과의 군사협력이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됨. 한편 탈리반정권은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에 순순히 넘겨주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파키스탄으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많으며 자칫 아프가니스탄 전면전쟁에 휩쓸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임. < 현지 파견 공관의 움직임> ㅇ 미국사태이후 각국공관에서는 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어메리칸스쿨은 9.12일 하루 휴교하였음. 그후 공관 철수움직임이나 자국교민 소개 움직임은 파악되지 않고 있음. ㅇ 한국공관(대사관 및 총영사관)은 긴급사태에 대비 주의를 경각하는 공문을 각 교민에 하달하고 비상시 대비하도록 조치하고 있음. 한국 현지주재 지상사도 이번사태에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는 상태임. < 현지바이어 동향> ㅇ 미국사태에 대해 현지 바이어들은 경제가 급속 냉각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해외출장 등 구매활동을 일시중지하고 당분간 관망하는 움직임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 ㅇ 파키스탄의 최대교역국인 미국의 경우, 항공 해상 등 통로가 통제(폐쇄)된 상황에서 언제 다시 통행이 재개될 것인지를 알 수 없어 미국관의 비즈니스 활동을 포기 또는 연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임. ㅇ 특히 파키스탄의 대미 수출주력 상품인 면(cotten)의 경우, 가장 큰 영향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미국선물시장의 거래 재개여부에 따라 수출이 재개될 것으로 관측됨. ㅇ 특히 방한 바이어의 경우 10월 서울 수출상담회에 참가할 예정이던 일부바이어(현재 10개사중 3개사)가 방한을 취소하여 BTG구성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음. <요르단 상황> 1. 현지 파견 각국 공관, 기업, 바이어들의 움직임 < 각국 공관 > ㅇ 각국 대사관, 특히 미국 대사관, 이스라엘 대사관 경계 강화 ㅇ 미국 대사관은 테러직후 일부 필요부서만 근무하다가 전부서 비상 근무 체 제 돌입, 금일(금요일)은 현지 공휴일로 필수 요원만 근무중임 ㅇ 요르단.미국 자유무역협정(FTA) 컨퍼런스 및 전시회 무기 연기 (당초 계획: 9.12-15, 4일간, 암만 메리디안 호텔) ㅇ 미국인 학교, 하루(수요일) 휴교후 어제(목요일)는 정상 수업을 했고, 금일(금요일)은 현지 공휴일로 쉬고 있음 < 각국 기업 > ㅇ 어제(목요일) 평상시 처럼 근무,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여 각 본사로부터 비상사태시 행동지침을 받고 대책 마련 중 ㅇ 금일(금요일)은 현지 공휴일로 출근하지 않고 재택 근무 중 < 현지 바이어 > ㅇ 현단계에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미국 테러 사태에 따른 한국상품 수입에 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 ㅇ 석유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미국 달러에 대한 요르단 화폐가 고정 환율로 변동이 없어 한국상품 수입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 로 예측됨 ㅇ 다만, 미국 달러화 약세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상품 수출가격 인상 압력을 받게 되어 대요르단 수출 증가율이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상됨 - 대요르단 수출(금년 8월말 누계): 104천달러(전년동기대비 17.3% 증가) ㅇ 요르단 바이어가 수출대금을 L/C 혹은 T/T로 지불할 때, 주로 미국계 은행 을 거쳐 국내 은행으로 송금하게 되는데, 이번 사태로 수출대금 지불 차질 은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예측됨 2. 현지 국민들의 동향 및 반응 < 주재국 왕실 및 정부 > ㅇ 압둘라 국왕의 미국 방문 취소, 미국에 조문 발송 - ABC 및 CNN 직접 인터뷰 실시(9.12): "미국이 중동문제,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그동안 잘 해결해 왔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의심스러움" ㅇ 요르단 정부: 한편으로는 테러 규탄, 미국의 ANTI-테러 공동전선에 가담 의지 표명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 미국 이 너무 이스라엘편만 들지 말고 팔레스타인의 입장에 서서 이 문제를 해 결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음 < 요르단 일반인의 정서 및 동향 > ㅇ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이 다수인 요르단인들은 겉으로는 테러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후련하다는 생각과 함께, 미국으로부터의 미움을 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있음 ㅇ 금일(금요일)은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모스크에 가서 기도회를 가질것임 ㅇ 어제 UNRWA 및 이스람 병원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다는 익명의 전화가 걸려와 경찰에 신고하여 조사한 결과, 거짓 전화로 판명된 것을 제외하고 는 특이할 만한 상황이 없고, 현재까지 조용하고 평안한 상태임 3. 현지 파견 우리나라 기업의 움직임, 교포들 동향 및 기타 중요 사항 < 아국 공관 > ㅇ 어제(목요일) 공관에서 대사(최종화) 주재 상사협의회를 개최하였음 - 참석자: 현대자동차등 7개 주재상사 대표, 한인회 총무 등 15명 - 미국테러 영향 분석 및 피해 최소화 방안 의견 교환 - 비상사태시 행동요령 협의: 비상연락망 재정비, 신속 정보 교류 등 < 요르단주재 우리기업 움직임 > ㅇ 요르단 수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됨 ㅇ 관할국인 이스라엘이 국경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출장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어 불편함. 대이스라엘 수출은 계속 고전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됨 ㅇ 이라크 수출은 UN경제제재하에서도 조심스럽게 수출규모를 늘려가고 있 는데,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그나마 조금씩 해오던 수출마저도 끊 어 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음 ㅇ 레바논에 출장중이던 삼성전자 지사장이 본사 지시에 따라 급히 요르단으 로 귀임 ㅇ 이라크 출장 계획 연기 또는 보류 검토중 4. 유의 사항 ㅇ 아랍인 앞에서는 항상 언행을 조심하는 편이 안전함 - 미국, 이스라엘 편중 지지발언 자제, 항상 중립적인 입장이 바람직 ㅇ 수출대금은 외상은 절대 금물이고, 전액 T/T 혹은 AT SIGHT L/C가 바람 직함. 5. 참고 사항 ㅇ 요르단 QIZ(대미국 비쿼타 무관세 특혜) 공단의 중국단독투자 봉제공장 중의 하나인 BOCAN 불루진 공장이 어제 공장 문을 닫고, 250명이나 되는 요르단 공장인력을 해고 하였다고 현지 아랍어신문(AL-RAI)이 발표하였음 - 공장 폐쇄 사유: 지난 3개월 동안 미국으로부터 오더를 받지 못했기 때문 - 상기 내용은 미국 테러 사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요르단내의 특 별 관심 사항으로 주목되고 있음. ㅇ 암만무역관 BTG 구매단(11.3-12, 10개사) 업체 모집 및 경기도 시장개척단 (11.9-12, 요르단) 상담회 준비에는 현재까지 아무런 지장이 없음. 끝. <레바논> ㅇ 현지파견 각국 반응 - 주레바논 미국대사관은 9. 12일 1일간 폐쇄후 부분적으로업무를 재개하였으며 멕시코 대사관은 국경일 리셉션을 취소하는 등 대부분의 대사관이 공식행사를 자제하고 있음. 대부분의 현지주재 외국공관들은 정상업무를 수행하고 있음. ㅇ 아국 공관 -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교민 안전에 유의하도록 비상연락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특히 남부레바논 및 헤즈불라의 연루 여부 등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음. ㅇ 기업 - 아직은 특별한 동요는 없으나 미국테러에 아랍계가 가담했다는 설로 만일의 사태 악화를 극히 우려하고 있어 투자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으며 경기는 지속가 계속될것으로 전망됨. - 소니, 비자카드 등 주요 기업들도 현지 유력호텔내에서 계획된 주요 행사들을 취소하였음 - 독일, 암스텔담 등 레바논 - 유럽간 주요 항공사의 취항이 취소되어 바이어들 발길 또한 당분간 끊기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금일까지도 klm 등 일부항공 은 취항이 중단상태임. ㅇ 현지 국민들의 반응 남부레바논 헤즈불라는 특별한 성명을 발표치 않고 있으나 긴장감을 보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캠프는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오히려 환호하는 분위기를 보임. 남부 레바논과 시리아국경은 만일의 미국의 보복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으며 비지니스도 냉각하는 분위기임. 레바논내에서는 미국사태에 자국인의 가담혐의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사태가 악화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나 인구의 10%에 달하는 팔레스타인과 반미 강경노선을 지향하는 시리아가 인접하고 있어 미국의 중동 특정국가에 대한 보복공격시 공격의 화살을 피할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음. ㅇ 교포들 동향 자국내에 교포는 총 30명에 불과하며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음. ㅇ 기타 사항 당관은 이미 예정된 골드키회원 카다로그 상담회를 할러데이인호텔에서 9.13 - 9. 14일 2일간 예정대로 개최하였으나 참가자가 극히 저조한 실정임. 당관은 특히 동사태로 당초 구매단에 참가키로 약속한 9명의 바이어가 이탈조짐 을 보이지 않을까에 촉각을 세우고 있음. 끝. <이 란> 1. 현지상화 예측 및 전망 - 이란은 미국과 그동안 관계개선을 노력해왔고 이란정부가 금번 테러사건으로 희생된 미국민 및 미정부에 애도의 뜻을 공식성명으로 표시한바 있으며 어떠한 테러해외도 정당화 될 수 없고 반드시 응징되어야한다는 정부입장을 발표한바 있음 - 다만 미국이 아프칸을 공격할 경우 장기간이등 단기간이든 호르므즈 해협 봉쇄로 이란항구(반다라 압바스)로 들어오는 선박이 통제되어 이 경우 한국의 대 이란 수출입 물량 수송중단으로 양국간 교역이 장애를 받을 것으로 보임 2. 현지 국민들의 반응 - 의외로 조용한 편이며 금번사건과 관련 반미 집회,행동 상황은 전햐 없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미국측의 대응 태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 3. 현지 한국진출 상사,교민 동향 - 주이란 한국 대사관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당분간 교민들의 국내외 항공여행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였으며 그외 조치 사항은 없음 - 한국상사,건설사, 기업인들도 이와 맞추어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국측의 향후 조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음
2001.09.14 I 이훈 기자
  • "두번째 비행기 충돌직전 탈출"-동원증권 뉴욕법인장
  • [edaily] 항공기 테러로 붕괴된 미국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입주해있는 동원증권(05890) 뉴욕법인의 스티브 리 법인장은 "사고 당일 아침 업무회의중 사고가 발생, 급히 대피했으며 건물이 붕괴되기 직전에 모든 직원들이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당시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스티브 리 현지법인장은 12일 오전 8시34분(한국시간·현지시간 오후 7시경) edaily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리 법인장은 무역센타 건물이 붕괴된 뒤 교통정체 등으로 10시간이 지난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자택으로 돌아와 인터뷰에 응했다. 스티브 리 법인장은 "이날 오전 6시40분(현지시간)부터 무역센타 건물 21층 사무실에서 3명의 직원들과 아침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꽝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며 "창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사람이 불에 타고 있는 상황이 보였고 지진이 난 줄 알았다"고 전했다. 그는 "조금 뒤 창문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대피하느라 소란스러웠고 이어 직원들과 함께 대피, 10여분만에 가까스로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들과 함께 건물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두번째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치는 광경이 목격됐으며 이후 건물이 붕괴됐다는 것. 스티브 리 법인장은 또 "무역센타 건물에는 국내 금융기관 현지법인이나 사무소는 동원증권외에 현대증권, LG증권, 대한투신증권, LG화재만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현재 다른 금융기관의 상황은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건물붕괴후 경찰의 지시로 집으로 돌아왔으며 맨하탄에서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 교통정체 등으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악몽같은 상황을 전달했다. 그는 아직까지 한국인 희생자가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리 법인장은 "무역센타 건물에서는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외국계 금융기관도 많이 입주해 있었으나 해당 건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기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사후 대책을 세우기 위해 서울 본사와 계속 통화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1.09.12 I 박호식 기자
  • 디지털금융혁명(2부) 인터넷뱅킹-외환은행(하)
  • [edaily] edaily의 기획취재 시리즈 "디지털 금융혁명(2부) 인터넷뱅킹 부문의 이번주 소개기관은 외환은행입니다. 다음은 이수신 외환은행 부행장 인터뷰 주요내용 "e-비즈니스는 더 이상 은행업무의 보조차원이 아닌 새로운 사업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e-비즈니스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 은행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외환은행의 e-비즈니스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수신 부행장은 e-비즈니스를 통한 수익창출 모델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행장은 44년 서울출생으로 경동고, 서울대 경제과 졸업 후 미 밴더빌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70년 외환은행 입행 후 조사부장, 외화자금부장, 구아중동 본부장 겸 런던지점장을 거친 전형적인 국제업무통으로 구로지점장, 여의도지점장 등 국내 일선업무에도 상당히 밝은 편이다. 99년 2월 호주 외환은행 사장을 거쳐 2000년 5월 부행장으로 선임됐으며, 온화하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로 부하직원들의 신망이 높다는 평. 다음은 이수신 외환은행 부행장과의 일문일답 - e-비즈니스를 맡은지 얼마나 됐나 ▲지난해 5월에 부임했다. 6월부터 e비즈니스 담당부서가 독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부임 후 가능하면 실무적인 부분보다 큰 흐름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우리 부서에는 현재 정규직원 24명 등 총 3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모두 능력있는 직원들이다. 다른 은행에 비해 인터넷뱅킹의 출발이 늦었지만 지금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직원들의 힘이 컸다. - 은행의 e-비즈니스에 대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은행의 e-비즈니스에 대한 오해가 다소 있는 것 같다. 대다수 사람들이 은행의 e-비즈니스를 인터넷뱅킹과 홈페이지서비스 등의 단순한 기능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오해가 업무를 e-비즈니스화 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e-비즈니스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고비용·저효율의 업무를 명료한 업무체계 구축과 저비용·고효율의 업무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e비즈니스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발, 수익원으로 삼아야 한다. e비즈니스가 은행업무를 뒷받침해주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 그렇다면 e-비즈니스 조직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나 ▲e-비즈니스 담당조직을 구성하는 전략은 그 기업의 구성원이 얼마나 e-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느냐와 CEO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초기에는 CEO의 진두지휘로 추진하는 방법이 최우선이며, 다음은 e-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조직을 편제해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체조직이 e-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요원화가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외환은행은 현재 e-비즈니스 전담 조직인 e-비즈니스 사업부를 운영하고 각 본부부서내에 담당자를 지정해 운영하는 등 언제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가까운 시일내에 별도의 e-비즈니스 사업본부도 신설할 계획이다. - 현재 외환은행의 인터넷뱅킹 회원수는 ▲외환은행에서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은 85만명 수준이지만 연내에 100만명까지 확보하는게 목표다. 텔레뱅킹 등을 포함한 e-뱅킹을 이용하는 소매고객은 약 230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펌(firm)뱅킹과 CMSplus를 이용하는 기업고객도 약 7000개 업체에 달하고 있다. e-뱅킹으로 처리되는 업무비중은 현재 54%로 계속 증가하고 있고 창구업무처리비중은 21%로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어 은행의 비용절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인터넷뱅킹이 은행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인터넷 뱅킹이 은행 기여하고 있는 부문은 비용절감 및 수수료수입 증대와 새로운 사업개발에 따른 신시장 조기진입 기회 확보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용절감 및 업무처리 효율화 증대 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수료수입의 경우 외환은행은 금융권중 가장 낮은 수수료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110억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일부 은행이 최근 수수료를 인상했지만 외환은행은 당분간 현 수준을 유지할 생각이다.수수료를 올려 수익을 증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인터넷뱅킹을 이용함으로써 절약되는 비용의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드려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고객과 은행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올해 e-비즈니스부문 투자액은 ▲외환은행은 지난해에 대대적인 인터넷 기반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 현재 상당부문 고성능의 전산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에는 신규로 발생하는 사업추진을 위해 약 120억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다만 이 투자액과는 별도로 외환은행의 핵심역량 부문을 e-비즈니스화 하기 위해 추진중인 국내외 전자상거래 지불중계사업 진출과(MP&T co.) 국제인증기관인 아이덴트러스(Identrus) 가입 및 전자무역 결제사업과 관련된 투자액을 감안하면 계획된 예산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 아이덴트러스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는지 ▲아이덴트러스는 현재 50개 정도의 은행이 가입돼 있으며 국제 전자상거래시 통용될 수 있는 국제인증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이덴트러스를 통해 전자상거래시 신뢰도와 신인도를 제고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외환은행과 한빛은행, 조흥은행이 공동으로 가입했다. 현재 서비스 제공을 위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3월부터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아이덴트러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발, 운영체계 구축 등 투자액이 상당하다. 인하우스방식을 채택할 경우 1000만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때문에 IDC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필요한 프로그램도 공동구매해 투자비를 절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재 국내에는 관련 IDC가 없어 일본이나 호주쪽의 IDC를 이용할까 고려중이다. 국내에서도 금융결제원 등도 호스팅 서비스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황을 봐서 결정하면 된다. 아이덴트러스는 앞으로 국제상거래에서 제일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결제시스템의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될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 외환은행만의 특징적인 인터넷서비스가 있다면 ▲국내 시중은행의 인터넷서비스는 제공하는 서비스가 비슷해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외환은행은 은행특성상 제공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경쟁은행에 비해 확실히 특징이 있다. 우선 국내 최초·최대의 외국환전문 포탈 & 허브사이트와 기업체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기업인터넷뱅킹인 CMSplus(기업종합자금관리서비스), 외국인고객/기업과 해외교포, 유학생을 위한 영문인터넷뱅킹, 최근에 제공하기 시작한 인터넷 전자복권 판매, 가상계좌서비스, 31개점에 달하는 사이버지점 등이 있다. 특히 외국환포탈사이트는 외국환과 관련한 모든 분야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국내 최대의 사이트이며, 외환은행이 특허 출원후 사업화한 환전클럽서비스에는 최근 매일 100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벌써 1800만달러의 환전실적을 올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2차로 추진되고 있는 프로젝트에는 FX Dealing, 기업체환리스크관리, 사이버환전, 커뮤니티 대상 특화서비스가 제공되어 오는 9월에는 고객들의 요구가 많으면서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특히 외환은행과 거래하는 고객에게는 환전, 송금, FX Dealing, 환리스크관리업무 등이 모두 원스탑으로 제공될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8일부터 외국인고객 및 기업과 해외교포, 유학생을 위한 영문 인터넷뱅킹사이트를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다. - 현재 개발중인 소매금융 분야의 인터넷뱅킹서비스가 있나 ▲외국인 및 재외동포를 위한 영문 인터넷뱅킹서비스외에도 e-mail 뱅킹, 맞춤서비스를 위한 CRM/e-CRM 및 개인재무관리서비스(PFMS), 전자화폐, 프라임고객용 홈페이지 등 다수의 서비스가 개발중이다. 특히 전자화폐(K-cash, V-Cash)를 활용한 사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다각적인 사업분야를 검토중에 있으며 조만간 그 첫번째 모델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e-비즈니스 사업은 ▲일반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비를 쏟아붇고 있는 B2B, B2C 등의 전자상거래부문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금융기관이 결제부문과 파이낸싱부문에 대해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내년초엔는 지불중계 및 전자상거래 관련 파이낸싱서비스를 제공해 전자상거래를 확산시킬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미 PWC와 결제중계회사인 "Meta Payment & Trust co. Ltd."를 설립했고 관련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또 KTNET과 공동으로 한일간 전자무역 공동망 개발사업에 착수했고 전자상거래 및 전자무역에 Identification, Validation, Warranty 서비스를 제공할 국제인증기관인 Identrus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전자상거래 및 전자무역발전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특허출원도 이미 한 상태다. - 인터넷과 관련한 신상품 개발전략은 ▲인터넷상품은 모든 시장정보를 종합하고 장래에 대한 예측, 고객 소비행동과 심리변화의 트렌드 속에서 그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먼저 생각하고 사업화에 성공한 기업만이 First Mover로서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상품개발 담당자의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전직원을 대상으로 아이디어와 상품정보를 수집, 획득하고 업종을 불문한 제휴상품을 발굴해 시장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개발한 후 의사결정권자가 시장진입 기회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상품개발 전략의 중심에는 항상 고객 이익과 고객만족이 먼저이고, 고객의 이익을 보다 빨리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상품의 개발속도에 성패가 달려 있다. 요약하면 고객이 원하는 상품,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상품을 보다 먼저 제공하는 것이 외환은행의 상품개발전략이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가 내재된 전략이다. - 개인적인 철학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외환은행이 IMF이후 기업구조조정의 여파로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국내 시중은행보다 몇 차원 높아진 외환은행을 곧 만날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비즈니스를 시작한지 일년이 넘어서고 있지만 외환은행에는 우수한 인재와 생각하는 지성, 행동하는 상상력이 있다. 빌 게이츠가 은행과 관련 "은행업무는 필요하지만 은행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처럼 추세에 절대 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 e-비즈니스가 단순히 은행의 지원업무가 아닌 새로운 수익원이 되도록 할 것이다.
2001.08.13 I 김상욱 기자
  • (특파원 리포트) 강한 달러정책의 명암
  • [edaily]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개최된 선진국 G8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수요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시장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강한 달러화 정책을 고수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대통령은 "달러화 강세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서 "달러 강세는 수출에 타격을 주지만 자본유입을 촉진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조업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강한 달러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브리핑닷컴은 부시 대통령이 강한 달러화가 수출에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제조업부문으로부터의 로비압력을 견뎌낼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국구매관리자협회와 미국 농업연맹은 지난 수요일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달러화 강세가 농업 및 제조업부문의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강한 달러화 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강한 달러화 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으로부터 시작됐지만 도이치방크의 외환리서치 담당 책임자인 마이클 로젠버그는 "누가 미국내 정권을 장악하던지 간에 미국은 강한 달러화 정책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강한 달러화 정책을 통해 자본유입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외국인들의 미국 회사채와 주식매입규모는 엄청나게 증가해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분을 보전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ISI그룹의 정치경제학자인 톰 갤러거는 "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가계와 기업들은 지출을 더 늘여야 하는데 이같은 지출은 결과적으로 미국으로 유입된 외국 자본이 그 자금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갤러거는 지난 92년만해도 경상수지 적자의 보전에 세계 자본흐름의 20%가 미국으로 유입됐지만 최근에는 64%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HSBC의 수석 통화전략가인 마크 챈들러는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연준의 금리인하 능력에 치명타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챈들러는 "달러화 약세는 외국 주식 및 채권의 수요부진과 함께 미국내 금리 상승과 주가 하락, 성장 둔화, 그리고 외국 상품에 대한 수요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결국 강한 달러화 정책은 두가지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같은 정책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2001.07.23 I 김상석 기자
  • (증시포커스)귀동냥과 눈어림보다 시세 순응을(19일)
  • [edaily] 참으로 어려운 국면이다. 숲(시장)도 나무(종목)도 맥을 못추고 있다. 경기회복 지연과 기업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감이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18일 종합주가지수는 전강후약의 흐름속에 8.40포인트(1.53%) 떨어진 540.53포인트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540선을 깨고 내려갔다. 코스닥지수도 2.14포인트(3.05%) 하락한 68.03포인트로 마감했다. 선물지수도 1.35포인트(1.99%) 떨어진 66.55포인트로 마감, 최근월물 지수기준으론 석달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주식시장은 연일 개장초 반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승폭이 둔화되거나 하락세로 되밀리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투자자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거래소시장은 지난 4월 중순에 발생시켰던 상승 돌파갭(540~560P)을 이날 모두 메꿨다. 장중 한때 상승갭의 하단부를 뚫고 내려가기도 했다. 이 상승갭의 하단 지수대는 그동안 지지선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이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장세 전망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게 분석가들의 진단이다. 종합주가지수와 가장 유사한 시세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증권업종지수는 최근 사흘간 큰 폭으로 떨어졌고 거래량(대금) 지표들도 완전 역배열 상태에 놓여 있다. 개별종목도 초토화됐다. 주식값이 떨어진 종목은 거래소(649개)와 코스닥(486개)을 합쳐 1100개를 넘어섰다. 이달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하락종목수가 1000개를 웃도는 날이 하루 걸러 한번씩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시황분석가들은 낙폭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과 저가 메리트를 바탕으로 한 단기 투자보다는 시세에 순응하면서 저점을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나서기 보다는 조심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무너진 상승갭 하단부 종합주가지수는 이날 540선을 힘겹게 턱걸이 했다. 그러나 지난 4월18일과 19일 사이에 발생시킨 상승갭(540~560P)의 하단부가 장중에 뚫렸다. 개운치 못한 맛이다. 지수 540선은 올 최저점(490P) 대비 고점(630P)간의 상승폭(140P)을 견주어 볼때 3분의 2 조정 수준과 맞물리는 지수대이기도 하다. 과연 540선이 버텨줄 것인가. 하락갭이 상승국면에선 저항선으로 작용하듯이, 상승갭은 하락국면에선 지지선 역할을 해내곤 한다. 하지만 이날 장중에 상승갭의 하단부가 뚫림으로써 지지 기대감이 퇴색되고 있다. 특히 한번 뚫린 지수대는 마감지수로 확인을 시켜주는 경향이 높다는 과거의 학습효과도 장세 전망에 부담을 주고 있다. ◇맥 못추는 증권업종 증권업종은 시장의 등락과 상관관계가 높은 업종이다. 때문에 증권주는 상승국면을 이끌기도 하고 반대로 약세장에선 먼저 꼬리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증권업종이 이날 38.09포인트(3.25%) 떨어진 1133.86포인트로 마감하면서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신영증권우선주와 유화증권우선주 두 종목만 강보합을 나타냈을 뿐 37개 종목이 떨어졌다. 증권업종지수는 최근 사흘간(13~18일) 하락률이 8.69%에 달했다. 여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폭이 컸던 셈이다. 증권업종지수는 ▲5일선 1183P를 비롯 ▲20일선 1280P ▲60일선 1346P 등으로 중단기선이 역배열을 나타내고 있다. 거래지표는 완전 역배열이다. 우선 거래량은 ▲5일선 1131만주 ▲20일선 1231만주 ▲60일선 2461만주 ▲120일선 3421만주 등으로 단기선일수록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거래대금도 ▲5일선 860억원 ▲20일선 944억원 ▲60일선 1873억원 ▲120일 2418억원 등으로 위축된 투자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소극적인 외국인 외국인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이날 외국인은 현선물을 모두 팔았다. 매도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미국증시와 엇박자로 움직임이는 게 신경 쓰인다. 뉴욕증시가 올라도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시황분석가들은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이머징마켓의 불안감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안정성을 추구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란 진단을 내리고 있다.그러나 이보다는 서울 증시의 근본적인 취약함이 외국인들을 관망세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날 외국인은 거래소시장에서 189억원을 순매도하며 이틀째 팔자우위를 나타냈다. 코스닥시장에선 거의 매매균형을 이뤘지만 2600만원의 순매도를 보였다. 선물시장에서도 1451계약의 매도포지션을 취해 추가하락을 염두한 매매행태를 보였다. 외국인은 이날 거래소시장에서 삼성전자(158억원)를 비롯 한국통신(76억원) 전기초자(58억원) S-Oil(37억원) 국민은행(34억원) 삼성전자1우(29억원) 현대중공업(25억원) 현대백화점(20억원) 신세계(18억원) 등을 사들였다. 반면 하이닉스(277억원)를 필두로 삼성SDI(95억원) 신한은행(68억원) LG전자(56억원) 삼성전기(45억원) 기아차(39억원) 삼성증권(36억원) 포항제철(26억원) LG화학(25억원) 대림산업(17억원) 등의 순으로 매도에 나섰다. ◇눈여겨 볼 단기 변수들 눈앞으로 다가온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인하 여부(19일)와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20~22일)의 결과도 주목의 대상이다. G7회의에선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이머징 마켓에 대한 대책과 선진국의 공조체제 모색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 앞서 18일밤에도 눈여겨 볼 재료들이 즐비하다. 우선 미 연준리 그린스펀 의장의 상원의회 발언도 확인해 볼 일이다. 추가적인 금리인하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신규주택건수, 실질소득 등 거시지표도 발표된다. 그리고 IBM을 비롯한 보잉 AOL 포드사 등의 기업실적도 요한 단기변수가 될 전망이다. ◇시세에 순응할 때 현 증시는 결코 순탄한 모습이 아니다. 굳이 위험을 떠않으면서까지 시장을 역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시세흐름에 순응하면서 시장의 변화조짐을 엿보는 자세가 바람직해 보인다. 증권업계 시황분석가들도 단기낙폭에 의존한 막연한 반등 기대감보다는 저점에 대한 검증작업이 우선이라고들 말한다. 설혹 시장이 대세상승기로 전환될 경우 바닥이 아닌 무릎에서 매수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적잖은 기관들이 지수가 550선 아래로 떨어질 경우 적극적인 점매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관들은 왜 그럴까. 물론 명확한 이유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귀동냥과 눈어림에 의존한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목이 아닐까.
2001.07.18 I 김진석 기자
  • (초점)`인위적` 엔약세 여부놓고 한·일 당국 신경전
  • [edaily] 일본 엔화가 고위 당국자의 구두개입성 발언으로 다시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서자 한·일 외환당국이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신경전의 초점은 일본이 엔 약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지 여부에 있다. 엔 약세의 의도성 여부에 대한 관심은 3일부터 다시 부각됐다. 이날 파이낸셜 타임즈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인위적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이후 엔화가치는 달러당 123.67엔까지 상승해 1주일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재무성의 구로다 재무관도 4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엔화가치 하락을 통해 경제를 부양할 생각은 없으며,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거나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일본총리의 발언 이후 인위적 엔약세 유도 여부에 관심이 일자 이제는 진념 경제부총리가 거들었다. 진 부총리는 이날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본이 수출 확대를 위해 엔화 약세를 유도한다면 국제 교역질서를 해칠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이어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전해진 구로다 재무관의 발언은 강도와 방향이 그전과 딴판이었다. 그는 "엔화 약세가 끝나야 할 이유는 없으며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구로다 재무관이 앞서 말한 "엔화의 상승 및 하락을 유도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은 "달러/엔 환율을 `인위적`으로 누르지는 않을 것"이란 말로 해석하는 게 옳았던 셈이됐다. 이같은 발언으로 엔화가 급락하자 재경부 고위 당국자가 나섰다. 그는 "엔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에도 엔화의 급락세로 달러/원 환율이 1350원대를 훌쩍 뛰어넘자 김용덕 당시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이 진화에 나섰었다. 그는 당시 "미국과 일본간에 엔화 약세를 용인키로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미국과 일본 당국에 대해 엔화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의 문제가 일본 엔화의 하락을 원화가 무작정 따라가는데 있었다면, 지금의 문제는 원화가 엔화 하락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정에 있다. 무역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대규모 외국인 직접투자자금 유입이 대기해 있고, 한국의 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최근 원화의 인기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달러/원 환율이 위로 막혀 있는 가운데, 엔화는 다시 급격히 절하되면서 엔/원 환율이 10.38수준으로 떨어졌던 터였다. 국내 수출업계는 엔/원 환율 10.2대를 마지노선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물가와 수출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우리 외환당국은 `인위적`이란 말을 놓고 시장을 상대로 `유희`를 즐기는 일본 당국자의 태도가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2001.07.04 I 안근모 기자
  • (가판분석)6월18일자 조간신문 주요기사
  • [edaily] ◇주요기사 -북한 경의선공사 해결 전에는 금강산 육로관광 협상없다..정부(조선 1면 톱) -서울대 총장직 개방..외국인 선출도 가능(중앙 1면 톱) -"김정일 답방" 구걸 안좋다..이회장 총재 인터뷰(동아 1면 3단) -금융상품도 특허 인정 추진..금융감독원(매경 1면 2단) -공항 통관대기 24시간 미만 화물까지 요금부과(중앙 경제면 톱) -현대유화 대주주가 책임져라..채권단 자금투입 요구(조선 경제 3단) -한완상 부총리, 김일성묘 방문 희망..작년 방북 때(중앙 1면 2단) ◇공통기사 -대우차노조, 매각반대서 선회..협상 지켜보겠다(중앙 등) -판교땅 절반이 외지인 소유..그린벨트는 83%나(경향 톱)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손잡고 1조원대 재건축 수주(중앙 등) -프라이머리 CBO 3천억 발행에 1천사 몰려(한경 등) -미국, 한국산 철근 덤핑판정(한계레 등) -집단소송제, 증권사와 투신사도 적용..여야의원 입법추진(중앙 등) -담뱃값 150원 인상, 내달 건강기금부과..야당서 반대(경향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내 답방 확신..김 대통령 제주평화포럼에서(한계레 등) -한전 등 일부 공기업 임원교체..빠르면 내달중(세계 등) -"글리벡"효과 탁월..백혈병 22명 모두 수치 정상화(대한매일 등)
2001.06.17 I 지영한 기자
  • LG화학 등 삼성증권 모닝미팅(29일)
  • [edaily] 다음은 29일 삼성증권의 모닝미팅 뉴스속보 내용입니다. [뉴스코멘트] * 지난주 Fund Flow - 지난 주에는 금리의 하향안정세와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장기 및 단기채권형 모두로의 자금유입이 지속되면서, 채권형 수익증권 잔액이 1.4조원 증가하였음. 주식형의 경우는 주식시장의 반등으로 순수주식형의 환매가 지속되면서, 전체 주식형 수익증권의 잔액이 3,070억원 감소하였음. 한편, 은행의 경우 주로 저축성 예금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전체 예금잔액이 3.7조원 증가함. - 4대 투신사 역시, 장기 및 단기채권형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채권형 수익증권 잔액이 4,650억원 증가하였음. 반면, 주식형의 경우는 순수주식형의 환매영향으로 잔액이 1,920억원 감소하였음. - 거래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은 5,120억원 순매수를 기록한 반면, 기관 투자가들은 2,080억원 순매도를 나타냄. * 수급개선 기대감 부각되며 장기금리 하락세 지속 - 지난 4월 하순이후 강세기조로 반전된 채권시장은 5월 중순이후 금융기관들의 듀레이션 확대노력이 강화되면서 장기채권을 중심으로 수익률의 하락폭이 다소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 5월 28일 현재기준으로 3년만기 국고채수익률은 전고점(6.93%,4월26일)대비 67bp하락한 6.26%, 회사채수익률은 동기간동안 70bp하락한 7.47% 수준까지 하락하였음. 이처럼 주요 장기금리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1) 수출부진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감의 약화와 하반기 물가상승압력 완화 전망, 2) 통안채 순상환(4월 3.7조원, 5월 28일까지 1.1조원)과 더불어 국채 및 예보채 물량조절에 따른 수급개선 기대감, 3) 3~4월 금리상승기 동안 금융기관들의 적극적 듀레이션 축소 및 과도한 국채선물 저평가가 그 배경이 되고 있음. - 금융기관들의 채권매수심리가 크게 개선되어 있는 가운데 물가, 산업생산, 수출입지표 등 5월말에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가 금리안정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리하락속도에 대한 부담은 있으나 당분간 시중금리의 하향안정기조는 이어질 전망임. * 통신위, 단말기 보조금 지급 KTF/LG텔레콤/SK글로벌에 과징금 부과 : 이동통신업종에 긍정적 언론에 따르면, 통신위원회는 그동안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해온 KTF, LG텔레콤, SK글로벌에 각각 10억원, 8억원, 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함. 이는 단말기 보조금 철폐에 대한 정통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동통신업종에 긍정적으로 판단됨. * LG화학, LG석유화학과의 합병시 동사의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 - 28일 증권거래소는 LG 화학의 LG석유화학 흡수합병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함. 이것은 LG CI의 성재갑 부회장이 경제지와 인터뷰에서 LG화학과 LG석유화학의 합병을 언급하였기 때문. LG석유화학 6~7월에 상장될 것으로 보이며 주당본질 가치는 11,226원으로 계산됨. 2000년 매출액은 1조 741억원, 당기순이익은 643억원이었으며 현재 LG화학이 30%, 구본준 및 특수관계인이 50.4%를 보유하고 있음. 상장을 통해 600만주를 공모할 계획이며 주당 공모가액은 6,500원~8,000원으로 상장을 통하여 대주주의 지분이 69.7%로 줄어들게 됨. - 지금까지 NCC는 LG석유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LDPE는 LG화학이 HDPE는 LG석유화학이 생산하고 있으며 판매는 LG화학이 담당하고 있었으나 합병으로 LG화학이 일괄 공정을 보유하게 되어 합성수지부문의 마진향상이 기대되는 등 양사의 합병은 긍정적으로 판단됨. 그러나 HDPE의 경우 PP와 Swing이 되기 때문에 더 큰 시너지를 위해서는 합병 후에 LG칼텍스가 보유하고 있는 PP의 인수도 필요하다고 판단함. 과거에 LG화학이 LG석유화학 지분의 50.4%를 5,500원에 매각한 바 있어 합병비율에 따라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나올 수 있으나 오히려 당사는 시장 가치에 의해 합병하여 투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부정적인 요소는 없다고 판단함. LG화학(03550) 투자의견 BUY.
2001.05.29 I 김현동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⑫김성민 한국은행 팀장(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은행의 김성민 채권시장팀장 입니다.(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좀 가벼운 얘기를 하죠. 부친께서 한은 총재를 지내셨습니다. 한은 입행과 관련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어려운 사이에요. 특히 저의 경우는 더욱 그랬어요. 서로가 불편한 일이죠. 여러가지 조심할 것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유학 후 한은으로 복귀하고 나서 3년정도 아버님과 같이 근무했어요.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닙니다. -한은을 그만두고 실제 시장에 나아가서 돈 좀 벌어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데요.(웃음) <시장의 메커니즘을 모르면 시장개입 못해..시장의 머리꼭대기에 앉아있어야> -누가 불러주면 옮기신다는 말씀인가요. ▲하하하.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 세대는 나와 다르다"고 말이죠. 외환위기 이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민-관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아직까지는 관에서 민으로만 가는 원웨이 방식만 유효하지만 이제는 민에서 관으로도 오게 될거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환시장을 담당할 때 뼈저리게 느낀 건 이제 시장 메커니즘을 모르면 시장개입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의 머리꼭대기에 앉아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일해보는 것도 필요하죠. 그런데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하하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부하 직원들을 증권사에 내보내기도 합니다. 한 2주 정도 파견근무를 나가서 대충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만이라도 파악하게 하려구요. 앞으로도 시장경험을 쌓게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겁니다. <채권시장의 매력은 ‘과학성’에 있다> -채권시장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매력이라기보다 저는 채권시장이 금융시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증권회사들은 큰 돈은 다 채권시장에서 벌어들입니다. 개인투자가들이야 주식시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겠지만요. 제가 외국책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읽었습니다. 채권계의 거물이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증권회사에 근무한다고 하자 미인들이 막 몰려들더래요. 사람들이 어떤 분야를 맡고 있냐고 물어서 채권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가더라는거죠.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하시겠지만 이 정도로 채권이 개인들에게는 인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 증권회사들이야 딜링도 제대로 안하고 중개업무에 주력하고 있지만 증권회사가 큰 돈을 벌려면 채권시장에서 성공해야만 합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도 채권시장이 정말 중요합니다. 통화정책의 파급경로 자체가 채권시장을 통해서 실물경제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또 채권은 주식보다는 과학적인 요소가 많다고 봅니다. 주식의 valuation이라는 것이 참..몇 년후의 기업가치를 평가한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리스크 헤지의 개념에서도 듀레이션을 조절하는 채권이 훨씬 과학적이에요. 채권시장은 그래도 이론이 좀 통하는 곳입니다.(웃음)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행한 “randomwalk”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주가가 바로 “멋대로 움직인다(randomwalk)” 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채권은 방향이라도 있잖습니까. 저는 한국 채권시장이 상당히 많이 발달했다고 평가합니다. 경기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들은 물론 분석노력도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채권시장에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별로 없어서 분석기법이 좀 떨어진다는 거죠.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을 개방하면서 주식에 있어서의 분석기법은 놀랄만큼 발달했어요. 물론 채권시장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채권시장은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조5000억원의 예보채를 시장매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대출금리는 10%가 될까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예보채를 입찰하는데 처음에는 은행들이 "한은이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덤터기 씌우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는지 입찰에 부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한적으로 입찰을 하자고 말하고서는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지금 은행들의 평균대손이 얼마냐. 2~3% 아니냐. 지금 금리가 10%내외니까 이 대손과 신용보증기금 출연료 0.5%를 더하면 12.5~13.5%가 된다. 이 비율로 대출할 자신있으면 예보채 입찰에 들어오지 않하도 좋다"고 말이죠. 은행 관계자들이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공개입찰을 할 때는 미동도 않더니 제가 제한입찰을 한다고 하니까 "이거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지 입찰에 적극적이더라구요. 증권회사들도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난리를 치고, 어떤 은행은 수수료를 받고 증권사에 넘길 생각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몇 달동안 예보가 질질 끌면서 입찰했던 것을 한 달만에 팔아치웠습니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묘하더군요.(웃음) -개인적으로 재테크는 어떻게 하십니까. ▲돈이 없어서 재테크를 논할 처지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주식을 좀 했는데 요즘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어요. 시장과 접하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주식을 다 팔았습니다. 제가 보유한 주식이 모두 은행주였거든요. 그후 은행주가 얼마나 많이 떨어졌습니까. 채권투자는 재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제가 부자도 아니고..결정적으로 저는 게으른 사람이라서 재테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에 어떤 사람이 제가 살고 있는 집을 아주 비싼 가격에 사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집을 팔라고 하기에 속으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면 다시는 사자는 말을 못하겠지’라는 마음을 먹고 부른 가격인데 아 글쎄 그 가격에 사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무척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그게 97년 하반기였으니까 어느 정도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지금 집 팔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하고 이사 가는 것 등이 귀찮아서 집을 안 팔았습니다. 그 후 바로 외환위기가 닥쳤죠.(웃음) 그러니 저에게 재테크에 관해서 물어보지 마십시오. 허허 <한은맨은 무엇으로 사는가> -제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한은맨은 무엇으로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팀장님만 해도 다른 분야에서 일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계시잖아요. 한은이 높은 급여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한은의 위상이나 기능에 관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런 건 있을 겁니다. 좀 잘 될 때까지 두고보자는 심리가 있다고 봐야할지..허허. 어찌됐건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하죠. 아무도 안 알아주고 집에서도 그게 뭐 대수냐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쓰고 살기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또 일은 하다보면 자연스레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고… -아들만 둘을 두셨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말할 것이 없고 첫째 놈에게는 일찌감치 "경제학 하지 말고 이과 전공해라"고 말해뒀습니다. "경제학하는 사람들은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으니까 기술이라도 개발하는 이과에 가라"는 뜻에서요. 본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웃음) 어쨌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어쩌겠습니까. -한은에 13년 동안 계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기억에 남는 일은…글쎄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돈을 많이 풀면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이 일반 이론인데 제가 89년에 “단기금리는 일시적으로 하락할 지 모르나 장기금리는 오히려 상승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쓴 적이 있어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난리가 났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부터 시작해서 ‘웃기는 소리 하지말라’는 말까지 하여간 얼마나 말들이 많던지...지금은 오히려 그 이론이 맞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보고서를 써서 그것이 확인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성민 팀장 약력) -54년 출생(본적 서울 서대문구) -대광고졸업 -74년 연세대 경제학과 입학 -78년 한국은행 입행 -84년 미 브라운대 경제학 석사 -88년 미 텍사스공대 경영학 박사 -88~92년2월 조사 제1부(통화금융2과, 통화금융과) -92년3월~93년8월 IMF 근무 -93년9월~94년8월 국제부 외환시장과 조사역 -94년9월~95년8월 국제부 외환시장과 과장 -95년9월~98년4월 자금부(시장조사과장, 공개시장과장) -98년5월~ 금융시장국(공개시장과장, 채권시장팀장)
2001.05.25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⑪이동진 HSBC 부지점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HSBC의 이동진 부지점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그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에피소드랄 것 까지는 없고 나쁜 일화가 있었죠. 요즘 증권사에서 채권 브로커를 하시는 분들이 돈 많이 벌죠? 인센티브도 많이 생겨났고 말입니다. 지금은 채권을 샀다 팔 때 파는 사람이 1만원당 1원꼴로 수수료를 붙여주지만 그 당시는 달랐습니다. 1년은 0.1%, 2년은 0.2% 이런 식으로 수수료가 정해져 있었어요. -거래대금의 0.1%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회사채를 거래하게 되면 증권사로 들어가는 수수료가 장난이 아니었고 브로커들도 회사채 중개를 선호했죠. 제가 주니어딜러 시절에 제 사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어요. 지금 워낙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제가 트레이딩을 하면서 수수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겁니다. 대충 12.5%에 샀다가 10.0%에 팔면 먹는다는 것만 알고서 매매를 했더니 나중에 보니까 수수료를 양쪽으로 내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아주 큰 실수를 한 거죠. 수수료로 낸 돈도 엄청났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데이트레이딩을 하신 건데요. 그런 거래를 자주 했습니까? 그걸 보고 따라하신 건가요? ▲그렇기도 했고 당일날 수익률이 많이 움직이니까 그렇게해도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데이트레이딩을 하고 나면 남들보다 거래량이 무척 많아집니다. 거래량도 많고 하니 브로커가 다른 사람들보다 저에게 더 자주, 더 먼저 전화하게 되죠. 정보수집 차원에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나갈 수 있는 거죠. <”증권사가 기관간의 중개인이라면 저는 증권사와 증권사간의 중개인 역할을 했어요”> -그 때는 모든 거래가 전화로 이뤄졌을 텐데요. ▲다 전화였죠 뭐. 인터넷 메신저가 등장한 것이 불과 1~2년 정도 아닙니까. 두 대 정도의 전화를 가지고서 엄청난 속도로 일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증권사가 어찌보면 기관과 기관간의 중개인랄 수 있는데 저는 증권사와 증권사간의 중개인 역할을 했어요. 그럴 정도로 시장이 소위 말하는 “마바라” 시장이었습니다. 정보교환이 지극히 부진했고 증권사간의 교류는 아예 없다시피했어요.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하다보니 의견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가 없었죠. 저는 두 증권사를 연결해주면서 양자를 해피하게 해줬습니다. 물론 차익도 남겼지만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저에게 거래가 많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거래량을 유발해 정보를 집중적으로 수집한다” 라는 전략이군요. 그것은 BTC의 원래 작전이었습니까. 트레이딩 기법 말입니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작전이랄 것도 없었구요. 요즘이야 한국 채권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많은 외국계 기관들이 다녀가기도 하고 투자도 많이 하지만 그 당시야 어디 그랬겠습니까. 참가자가 많지않은 상황에서 저 혼자 그냥그냥 하다보니까 기회도 생기고 거기에 요령껏 맞췄다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겁니다. -지금도 데이트레이딩을 규정으로 금지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요. 당시 BTC의 회계나 백오피스쪽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까? ▲네. 많은 뒷받침을 해줬어요. 누가봐도 명백히 법을 어긴 상황이 아니었고 제가 채권을 해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좋게 봤던지 BTC에서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자체적인 채권시가평가 제도를 만들다> -그 때 딜링 파트너는 주로 누구였습니까? ▲딜링 파트너가 누구인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증권사를 통해서 거래했으니까요. 다만 당시 채권매매를 활발하게 한 곳은 저와 장기신용은행 정도였습니다. 다른 곳은 딜링이 아니라 buy & hold 전략을 구사했으니까 활발한 거래를 했다고 볼 수는 없었구요. 우리나라에서 시가평가 시스템은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1988년 무렵 BTC에서는 원시적이나마 이 시가평가 방법을 도입했었어요. 당시 저는 딜링을 하면서도 백오피스와 같이 평가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갔어요. 지금처럼 매일매일 시가평가에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를 입수할 수 없었지만요. 기억나는 것이 뭐냐면 당시 risk management 팀에서 저에게 “오늘 레이트(rate)를 구해달라”고 얘기했던 겁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럼 현재 제가 들고 있는 모든 채권에 대한 평가를 해야했죠. -매달 평가이익과 손실을 일일이 기록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서 제 채권에 관해서 물어봤습니다. 백오피스 사람들이야 증권사 사람이 누구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그 사람들이 전화한다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을테니까. 80년대 후반~90년대 초에는 그 방법만 해도 대단히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다가 가지고 있는 채권의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규모도 규모거니와 처음에는 일년짜리만 하다가 나중에는 다른 것도 하게 됐구요. 90년대 중반에는 거의 매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백오피스 쪽에서 스스로 평가를 하겠다고 증권사 전화번호를 넘겨달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속이거나 부정한 방법을 쓴 건 아니었고 좀 더 객관적이고 개량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거였어요. 싱가폴쪽의 보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서히 업무분화가 일어난 거군요.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시가평가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한국까지 그 방법이 넘어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미국에서도 몇몇 투자은행을 제외하고는 사실 많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증권사로 전화하는 일이 껄끄럽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꼭 무슨 시험지 답안을 맞춰보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오늘 일주일 전망을 가지고 어떤 채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증권사 쪾에서는 오늘 마이너스라면서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채권규모가 커지고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나날이 늘어나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제지표보다는 딜링 파트너들의 매매동향을 체크> -당시 채권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동성도 무척 작았을텐데요. 채권 가격변화를 그렇게 자주자주 체크하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주목해서 봤던 indicator 들은 무엇이었나요? ▲물가를 비롯한 경제 거시지표는 사실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시지표가 채권시장에 영향을 주는 수준도 아니었구요. 많은 사람이 딜링을 해야 새로운 indicator가 무엇인지, 어떤 파급효과를 지니게 될 지에 주목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딩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오히려 타 기관의 동향이나 매매형태에 더많은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한국은행이 자금을 풀 것 같냐, 빨아들일 것 같으냐” 의 문제들, 주가지수..뭐 그런 정도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채권에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88년에 채권과 인연을 맺은 이후 실적이 괜찮게 나오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규모를 늘려가면서 “해볼 만하다” 는 생각도 가지게 됐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서 적용시키는 것도 흥미있었구요. 당시 한국에는 선물시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은행에서 관리하는 부분 중에서 달러 대출 및 예금도 있었거든요. 이것을 헤지하고 포지션을 잡기 위해 미 달러 금리선물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서 두번째로 미 달러 금리선물시장 거래를 한 사람입니다.(웃음) 정확하게는 유로/달러 이자율 선물(euro/dollar futures) 인데 처음 거래를 한 사람은 씨티은행에서 근무하던 분이었어요. 이분이 트레이딩 목적으로 씨티은행 자금부에서 그 일을 하더라구요. 대한민국에서 미 금리선물을 거래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라는 소리를 듣고 제가 씨티은행으로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는거냐? 나에게도 좀 가르쳐달라”고. 그 일을 배워서 BTC에서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구요. 밤에 미 금리 동향을 체크하고 하여간 신기했습니다. 어쨌든 크게 손실을 본 적도 없었고 남들이 하지않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다보니까 채권에 흥미를 가지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차 제 밑으로 사람들도 들어왔죠. <새로운 상품에 대한 도전과 채권딜링의 승부수>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은 무엇입니까. ▲90년대 초반 금리가 급격하게 빠진 적이 있습니다. 14%에서 12%로 뚝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개발신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게 뭐냐면 바로 예금증서입니다. 요즘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기업대출 때 관행적으로 “꺾기” 가 있었잖습니까. 기업들이 대출받기가 힘드니까 사람들이 이 때 모두 CD(양도성예금증서)를 사용한 거에요. 대출 3개월짜리를 받고 CD를 받거나 대출 1년짜리를 받고 3개월마다 roll-over를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귀찮아져서 그랬는지 “차라리 2년짜리 대출을 받고 1년짜리 개발신탁을 가져가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기업들로서는 당연히 그 개발신탁을 팔 수밖에 없었고 이게 증권사로 넘어왔어요. 증권사에서도 이걸 팔아야하니까 저에게 사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2년짜리 개발신탁과 통안채 스프레드를 혼합해서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만 한 것이 아니라 몇몇 다른 사람들도 했는데 시장이 순식간에 불어나더군요. 이 때문에 제가 개발신탁, 통안채, 회사채를 무척 많이 들고 있었습니다. 2~3개월 사이에 금리가 2%p이상 빠졌는데 어느 순간 저는 가지고 있던 모든 채권을 다 팔았어요. 그 당시 분위기는 올해 1월처럼 “채권은 더 간다” 였습니다. 다들 “금리 한자리 수 온다” 를 외치는 상황이었죠. 사실 90년 초에 금리 한 자리 수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워낙 사람들이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몰려드니까 단기간에 급격한 하락이 가능했던 겁니다. 금리가 더 떨어진다는 것이 대세였는데 제가 채권을 파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그러더군요. 도대체 이거 팔아서 뭐할 거냐고. 콜금리도 낮은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개의치않고 규모를 무지무지 많이 줄였더니 바로 금리가 바닥을 찍고 올라갔습니다. 물론 그 후에는 그 때처럼 잘 맞춘 적은 없었습니다.(웃음) -아무 이유없이 그냥 느낌만으로 채권을 내다팔기 시작했습니까.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승부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때처럼 흥미진진했던 딜은 없었어요.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체험> -미 금리선물이니 개발신탁이니 해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신 예가 많은데요.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은 그만큼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섣불리 결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 당시는 아무래도 젊었으니까 “무대포” 로 달려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그때마다 합당한 이유는 있었지만요. 어느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잠시 BTC를 떠나 나라종금으로 가셨죠? 그리고 곧 BTC로 다시 복귀하셨는데…IMF 때 종금사로 이동했다는 것이 좀 이상하네요. ▲97년은 제가 BTC에서 만 12년째 근무하던 해였습니다. ‘외국계 은행에서 이 정도 근무하면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나라종금은 종금업계에서 많이 앞서나가는 곳이었고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던 몇몇 분들이 옮겨가서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일어났었습니다. 옮길 때만해도 해태, 기아가 터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선택을 잘못한 것이 돼 버렸죠.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 때만해도 선배들 중 제게 “언제까지 외국계 은행에서만 근무하고 있을래?”라고 말하는 분이 계셨어요. 그리고 나라종금으로 먼저 옮겨간 선배들이 자금부를 한 번 맡아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또 나라종금이 그 무렵 해외은행과의 합작도 진행하고 있었구요. 그래서 ‘내가 외국계 은행에서 배운 것을 내 팀을 만들어서 제대로 해보겠다’ 는 생각으로 이직한 겁니다. 그게 97년 3월입니다 지금도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세요. “시장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아는 거 아니냐. 97년 1월 한보사태가 터졌을 때 감을 잡았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저는 감을 못 잡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허허. 실은 제가 그 1년전에 호주에 가 있었어요. 그래서 국내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감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아까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죠. 나라종금에 가서 고생 좀 했죠. 당시 언론들이 심심하면 쓰는 기사가 “불쌍한 종금사 국제부담당~”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제가 바로 그 신세가 된 겁니다. 그 때 가족들은 호주에 두고 왔었기 때문에 고생을 더 많이했죠. 고생하는 것은 그나마 견딜만했어요. 그러다 회사가 영업정지를 당하니까 할 일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 뭐합니까. 직원들과 술 마시는 것이 일이었죠.(웃음) 그러던 와중에 이전 상사셨던 강 행장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너 거기서 놀면 뭐하냐. 나 요즘 좀 바쁜데 와서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일 욕심이 무척 많은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다시 BTC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5.18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⑪이동진 HSBC 부지점장(상)
  • [edaily] 우리나라 채권시장에 ‘딜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그 전까지 기관투자가들은 채권이 발행되면 적당한 수익률에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투자전략이었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인 HSBC의 이동진 부지점장은 80년대 중반부터 채권 딜링을 시도한 몇사람중 한명이다. 이 부지점장은 당시 용어조차 없었던 ‘데이트레이딩’이나 금리선물 투자까지 시도하면서 채권시장을 주도한 큰 손이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면서 선진금융시장에서 활용되는 금융기법들을 한국 시장에 도입한 개척자인 셈이다. 채권시장의 많은 사람들은 93년 금융실명제 당시 채권수익률의 방향을 돌려놓는데 외국계 은행인 BTC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이 부지점장이 BTC에서 채권딜링을 담당했다. 이 부지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스스로 “다소 과장됐다”고 말했지만 시장에 쇼크가 왔을 때 대처하는 원리로서 ‘역발상’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후배 채권딜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부지점장이 원래 채권딜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케팅 분야에 흥미가 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BTC에 입사해서 13년이상 채권시장에 몸담게 됐다. 지금은 직접 딜링을 하기보다는 딜러들을 매니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시장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한 고비때마다 매매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채권시장 입문 초기에는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거래방법을 도입해 하나하나 실행해보는 것이 재미였다면 지금은 경험과 경륜으로 시장 방향을 예측해보는 즐거움이 있는 듯했다. 그는 채권딜러라는 직업이 시간을 다투며 수백억원짜리 채권을 사고 파는 긴장도가 높은 일이지만 여유를 잃지 않고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롱런하는 길이라고 충고한다. 그는 동로마사와 관련된 역사서를 번역할 만큼 역사학에 대해 아마추어 이상의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앞서 행하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채권시장이 지금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이전부터 지금과 같은 시장을 꿈꾸고 먼저 행동했던 이 부지점장의 ‘채권인생’을 들어봤다.(약력은 인터뷰 기사 하단 참조) -79학번이시네요. 미시간에서 MBA를 하시구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3월에 입학해서 2~3달 가량 다녔을까. 그리고 곧바로 미국으로 갔어요. 대학 4학년 때 시험을 보고 미국 여러 군데 대학에 입학신청을 했는데 허가서가 딱 한 통 날라왔습니다. 그곳이 바로 미시간이었죠.(웃음) 운이 좋았던 것이 그 무렵 처음으로 군 미필자가 유학을 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습니다. 83년에 가서 석사학위를 받고 85년 6월에 귀국했죠. <자동차와 마케팅의 꿈을 접고, BTC에 입사> -귀국해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귀국 후 바로 BTC(Bankers Trust Company) 서울지점에 입사했습니다. 사실 저랑 MBA를 같이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박사과정을 밟았어요. 저는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 취업하려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자동차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동차 회사도 면접을 봤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회사들을 알아봤죠. 하지만 군대문제 등이 겹쳐서 그런지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일단 귀국했죠. 돌아와서 몇 군데 원서를 냈는데 모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그 기업의 이사께서 “이 친구 일하도록 해”라고 말씀까지 하셨는데도 정식 공채기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락이 늦어지더라구요. 그 때 제가 원서를 넣은 외국계 은행 중 BTC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를 한 번 보더니 흔쾌히 “좋다. 내일부터 같이 일해보자”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은행에서 일할 마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베개를 같이 쓰고 있는 사람과 그 당시 한참 연애중이었어요. 돈도 많이 필요했던 때라 오라는 곳을 망설일만한 여유가 없었죠.(웃음) 그래서 출근했습니다. BTC에서 몇 달 근무하고 6개월짜리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군 복무 시절 저를 물먹인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어요. 내부사정이 이러저러해서 연락이 늦었다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제와서 연락을 주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 일단 군대를 마치고나서 얘기해보자” 이상하게 대기업은 의사결정속도가 상당히 늦더라구요. 제가 “나는 MBA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대우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당시 저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어요. 보통 MBA 코스를 이수하면 파이낸스와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하는데 저는 학창시절부터 마케팅과목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겪어보려고 일부러 외국인 친구들와 어울리고 접시도 닦았습니다. 사실 군 복무를 마치고 BTC로 복귀하고 나서도 한두 군데 정도 면접을 더 봤습니다. 하지만 곧 결혼을 앞둔 상태였고 외국계 은행의 보수가 낮은 편도 아니라 직장을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보니 13년 넘게 근무하게 됐습니다. BTC에서 맨 처음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자금부를 새로 개편하면서 팀이 만들어졌고 그 때 새 팀장으로 오신 분이 현 JP모건-체이스의 CEO이신 홍기명 대표입니다. 그 분께서 같이 일해보자고 말씀하셔서 외환, 채권 딜러로 일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계은행은 이동이 잦습니다. 제 윗분들이 여러 곳으로 움직이시면서 빨리 책임업무를 맡게 된 겁니다. -BTC를 첫 직장으로 잡은 건 원래 계획과는 다른 일이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채권시장에 입문하다> -자금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맨 처음 제 보스는 강정원 현 서울은행장이셨어요. 그 분 도와드리는 일을 했죠. 그 외 크레딧 분석 같은 일도 했구요. 창피한 말이지만 적어도 은행에 다닌다면 대출관계, L/C, 예금, 환전을 어느 수준이상으로는 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저는 입행 후 곧바로 자금부에 들어왔고 딜링업무만 계속해서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친구나 친척들이 사업한다고 L/C가 뭐냐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도 못해줬죠.(웃음) 개인적으로는 베팅을 좋아한다거나 노름에 관심있는 편은 아닌데 십년 넘게 딜링을 하게 된 것이 참 묘하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채권만 한다”고 생각하신 건 언제인가요. ▲입사 초기에야 누구나 그렇듯 분야에 관계없이 업무보조를 많이했죠. 외국계은행이라고 해서 채권은 채권만 외환은 외환만 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요. 제 기억으로는 88년 초 제 사수가 BTC를 그만뒀습니다. 그 후부터 제가 전담해서 업무를 추진했으니까 88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MBA를 마치고 외국계 은행에 입사하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동기들 중 대부분은 학교에 남았죠. 공부를 계속하지 않은 친구들은 증권사로 가기 시작하더군요. 85년 무렵이 증권사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주식이 뭔지 채권이 뭔지 가르쳐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마 외국계 은행도 제가 처음일 겁니다. -학부전공이 경제학이신데 전공결정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다른 전공에는 관심이 없으셨나요? ▲허허. 그러면 또 지나간 얘기가 나와야하는데. 당시 학제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문과생의 경우 법대, 경영대, 인문대, 사회과학대 등등의 단과대를 선택하는 거에요. 사회과학대로 입학했더니 그 안에 십여 개 정도의 전공과목이 있더군요. 정치, 외교, 사회, 신문 등등. 솔직히 경제에 관심이 있어서 간 건 아닌데 같이 입학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경제학과를 많이 선택했습니다. 제일 좋은 과라고 하더군요.(웃음) -중동고를 졸업하셨군요. 당시에도 주먹으로 유명하던 시기였습니까. ▲저희 때는 아직 강남으로 이사가기 전이었이었습니다. 당연히 유명했죠. 하하.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뭐 더 엄청나더군요. -그럼 ‘싸움’에도 자신이 있으시겠군요. 모범생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학업성적과 상관없이 “하고싶은 일은 한다”는 생각을 하신 듯 한데요. ▲싸움요? 전혀 아닙니다. 하하. 보면 아시겠지만.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랑만 어울리지는 않았고요. 물론 고3 때는 공부에 파묻혀 있었지만 얌전한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한달내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보는 스타일은 아니었죠. 고2 때까지는 성적에 그다지 많이 신경쓰지 않았어요. <”채권딜링”이라는 새로운 거래기법을 도입> -학부전공은 경제학이었는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습니다. 학과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전공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물론 그 때 저보고 경제학과를 권유한 친구들은 다 경제학 교수가 돼 있어요. 어떻게보면 저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에이 고등학교 때처럼 좀 놀다가 3~4학년 돼서 공부하지 뭐’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가진 편은 아니었거든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군요. MBA때도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셨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네. 저는 학교에 남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가서 뭔가 일을 하고, 특히 무역업 같은 것 말이죠. 꼭 장사를 하지않더라도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흥미가 있었어요. 아버님께서도 무역업에 종사하셨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공부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거죠. -딜링 룸에 있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만나고 비즈니스활동을 펼치는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인데요.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고민해야 되는 정적인 일이잖습니까. 활동적인 업무를 좋아하는 분이 딜링을 십년 먼게 해왔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언뜻 조화가 안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도 마케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손님을 따라나가는 일도 드물었으니까요. 그래서 곰곰 따져보면 ‘아 나는 마케팅체질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업무에 따라 제 성격이 바뀌어왔는지도 모르겠어요. 학창시절에는 분명 지금보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택한 걸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왜냐구요? 제가 원래부터 외국계 은행을 목표로 하고 BTC에 입사한 건 아니지만 들어와서 보니 외국계 은행의 채권 트레이딩은 저 혼자 하고 있더라구요. 당시 채권을 사고 판다는 딜링 개념에서의 트레이딩을 하는 곳은 외국계에서는 BTC뿐이었습니다. 그건 달리 말해 강 행장을 포함한 BTC 경영진들이 향후 트렌드를 예측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도 딜링을 하지않으면 어떻게 딜링이 가능한가요? ▲물론 혼자라는 것은 약간 틀린 표현이구요. 88년 무렵만 해도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죠. 저는 91년부터 채권거래 규모를 크게 늘렸습니다. 물론 지금 규모랑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은 액수겠지만 하여간 그 무렵에 채권을 크게하는 곳은 저희와 장기신용은행 정도였습니다. -구체적인 액수를 말씀해주시죠. ▲3000억~4000억원 정도 됐습니다. 장기신용은행은 팀을 갖추고 저희보다 좀 더 큰 규모로 했구요. 그 당시 연금, 보험, 투신 등 다른 기관들은 오직 한 가지 전략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buy & hold” 죠. -그 때 딜링용으로 사용했던 주요 채권은 무엇이었나요. ▲당시에는 회사채가 최고였습니다. 시장의 벤치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장기채권은 회사채 3년이 유일하다시피 했으니까요. 지금이야 국채도 있고 예보채도 있고 장기채권의 종류와 수가 다양하지만 그 무렵 어디 그런 것이 있습니까. 회사채가 샀다 팔았다하기 가장 쉬운 채권이었고 채권이 나오기만 하면 투신사가 채권을 싹쓸이해갔죠. 물론 채권발행이 매일매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서 며칠 후에도 살 수는 있었습니다. -현재는 회사채등급이 무척 세분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당시에는 어땠습니까. ▲은행보증/비은행보증 두 가지 분류 정도였죠. 무보증채권이 있긴 했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80년대에는 은행들간의 차이가 없었으니까 증권사 브로커들에게도 “은행보증 채권 얼마얼마 있습니다”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됐어요. 그것이 어떤 은행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채권을 샀다가 팔 수 있는 유동성만 담보되면 어느 회사냐, 어느 은행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때니까요.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2001.05.18 I 정명수 기자
  • 엔씨소프트 등 신영증권 모닝포인트(16일)
  • [edaily] 다음은 16일 신영증권 모닝포인트 내용입니다. ◇엔씨소프트(36570)의 2가지 모멘텀 동사는 최근 주가 급락 후 다시 상승세로 전환하며 반등에 성공함. 최근 동사의 주가 반등의 배경에는 "에피소드8편"의 5월 23일 출시 예정, 외국인 온라인 게임 개발자에 대한 제3자배정 방식의 유상증자 및 스톡옵션 부여, 그리고 17일부터 LA에서 열리는 E3에서의 향후 사업방향 발표라는 요인이 자리잡고 있음. 엔씨소프트 성장성 한계에 대한 우려 속에서, 동사의 주가 모멘텀으로는 아무래도 동사의 해외사업 부문과 국내 리니지 후속편의 성공이라는 2가지를 들 수 있는데 리니지 후속편의 국내 출시는 2002년 하반기로 예상되므로, 그 동안의 동사의 주가는 해외 사업부문의 내용이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됨. 18일 발표되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 주가가 다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됨. ◇2-3세대간 이동전화법인 조기통합은 힘들전망 Inews24.com에 따르면 정통부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정통부는 3년이내에 주파수 양수도가 금지되어있는 현행 전파법조항을 개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조기통합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예외조항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나 정통부에서 예외조항의 허용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IMT-2000서비스 이전에 법인 통합은 힘들전망이다. ◇인터넷 업체들 1/4분기 실적요약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매출액 137억원에 영업이익 5.9억원 경상이익 0.27억원을 기록하였다. 영업이익 흑자 유지의 가장 큰역할은 매출액 증가와 판관비중 광고선전비의 감소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글과컴퓨터는매출액 109억원에 영업이익 30억원을 기록하였다. 경상이익 22억원으로 올해 1.4분기 실시한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이 매출액 증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새롬기술은 매출액은 63억원을 기록하였고 영업이익은 66억원적자에 경상이익은 20억원적자를 기록하였다. 새롬기술역시 전년에 이루어진 분사로 인해 매출액이 다소 감소하였고, 현재 수익기반의 부재로 영업이익이 악화되었다. 한통하이텔은 매출액 136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187억원대비27%가량 감소하였고 이는 온라인 통신서비스의 퇴조에 인한 수익기반약화에 기인하였다. 영업손실도 61억원적자로 전년에 비해 확대되었다. 네오위즈는 원클릭서비스의 퇴조와 세이클럽의성장에 중간단계로 올해 1.4분기 매출액은 84억원으로 전년동기의 69억원보다 증가하였으나 영업이익은 24억원으로 전년동기의 38억원보다 감소하였다. 현재 네오위즈는 감소하는 원클릭매출을 대체하기 위한 세이클럽의 성장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1.05.16 I 김세형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⑩김계동 산업은행 팀장(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산업은행 자금기획부 김계동 시장조달팀장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그 심광수 이사께서 상당히 이색적인 의문을 제기하신 거군요. 해법도 좋았구요. ▲네. 정말 독특한 분입니다.(웃음) 98년 2월부터 10월까지 수신업무 활성화 플랜과 통장식 산금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느라고 혼났습니다. 그때는 평균 퇴근시간이 9시 반, 10시였을 정도니까요. 그해 12월에는 MMDA(Money Market Deposit Account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 시장실세금리에 의한 고금리가 적용되고 자유로운 입출금 및 각종 이체ㆍ결제기능이 결합된 단기상품) 상품판매가 허용됐습니다. 저희도 ‘다모아 저축’ 이라는 상품을 만들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캠페인에 나섰어요. <변화된 금융환경 변화하는 산업은행> -그건 처음듣는 얘기로군요. ▲그때 상당수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산업은행을 다니면서 일반은행처럼 예금 구걸하러 다녀야하느냐는 거였죠. 그럴려고 산업은행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식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어요.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처럼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노조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냈었습니다. 당시 김영태 총재께서 워낙 강단이 있으신 분이라 그걸 이겨내셨죠. 저희 팀에서도 다소간의 진통은 있을지 모르나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정부에서 산업은행의 후원자로 남아있을 것도 아닌데 더이상 정부에 의존하는 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시절에도 정부가 산업은행 운영에 관해서 거의 간섭하지 않았어요. 95%이상을 저희 힘으로 펀딩했습니다. 경쟁력제고를 위한 후방효과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돼야만 하는 시기였어요.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듯 "왜곡된 시장도 시장"입니다.> -제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점은 이것입니다. 시장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는 곳이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발행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경우에 어떠한 생각을 하실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발행을 해야하는데 잘 안된다. 금리도 자꾸 높아진다. 이럴때 발행자의 심경은 어떠할까."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입니다. 산금채 발행시 고려해야 될 요인은 매우 많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은행의 자금사정이에요. 은행자금이 남는 상황에서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을 하겠다고 주장하면 이상하죠. 우리나라 시장의 변동성이 큰 것은 인정하지만 시장상황이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듯 "왜곡된 시장도 시장"입니다. 그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시장은 기본적으로 존중을 해줘야해요. 우리한테 유리할 때만 산금채를 발행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시장에 먹여주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봐요. 시장이 꼼짝달싹 못하고 있을 때는 물론 저도 답답합니다. -답답하다는 것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하하. 산금채말고 자금조달 수단이 다양화됐어요. 산업은행은 산금채만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CD(Certificate of Deposit 양도성 예금증서, 은행이 정기예금에 대해 발행하는 일종의 무기명 잔고 증명서. 은행에서 개인 및 법인을 대상으로 무기명 할인식으로 발행하고 만기는 91일 이상 180일 이내로 발행금액은 5,000만원 이상 제한이 없다)도 발행합니다. 작년 산은이 발행한 산금채와 CD총 규모가 17조입니다. 산금채 10조2000억원, CD가 6조 가량을 차지했어요. 통안채와 마찬가지로 CD는 만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시장 경색이 오래가면 단기채 수요가 늘어나게 되니까 CD 등장 후 그나마 답답함이 가셨다고 할까요.(웃음) 통상적으로 보면 시장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면 은행자금이 남으니까..허허. 고민은 시장상황이 안 좋을때만 하게 되더라구요. <시장은 여자의 마음이고 개구리 뛰는 방향이다> -그것이 자금조달하는 모든 분들의 고민인 것 같습니다. "자금조달을 지금쯤하면 좋겠다" 싶으면 돈이 남아돌고. 올해 들어서 시장상황이 나빠지는 바람에 많이 쉬셨죠?(웃음) ▲정확하게 구정 연휴 이후부터 3월말까지 쉬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좀 발행해 놓고 향후를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리포트도 많이 냈구요. -리포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중장기적으로는 필요할 때 해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뭐 이런 식의 골자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은행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여자의 마음과 개구리 뛰는 방향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시장이죠. 허허. 물론 단기전망은 힘들지라도 중장기적 추세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올해초에 예측한 금리전망의 경우 단기 저점이 너무나 빨리 도달해버렸지만 그래도 이나마 시장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고 있는 것은 "확장적 통화신축 기조" 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때 까지의 저금리기조 정착" 입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산금채 발행이 한번에 끝나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산금채가 채권시장의 스테디셀러인 것처럼 장사를 올 한 해만 할 것도 아닌데 조급할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판촉물 몇 개 들고 무작정 투자기관들을 찾아갔습니다."> -재경부의 경우 국채발행이 잘 안될 때는 담당 사무관들이 넌지시 개인적으로 투자기관에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요.(웃음) 팀장님의 경우 지금 산금채를 발행해야하는 시기임에도 불구, 발행비용이 너무 높아 일이 진척이 안된다 싶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 경험이 있으세요? ▲95년에 한 번 있었습니다.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판촉물 몇 개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농협같은 곳을 돌아나녔죠.(웃음) 그래서 200개 정도 팔았습니다. 물론 해갈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만. -그 당시 무엇때문에 발행이 그리 힘들었나요?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납니다만 하여간 꽉 막혔어요. 오죽하면 판촉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겠습니까. 하하. -그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궁금하군요. 일종의 세일즈를 하신 것인데. ▲말도 마십시오. 그 당시는 제가 채권쪽에 온지 얼마 되지않았을 때라 정말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때는 왜 그리 어색하던지... 이미 산업은행 경력도 상당하던 시기에 졸지에 증권사 영업사원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한 겁니다. 하지만 "이 난관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산업은행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워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으니까요. 다행인 것은 그 때 이후에는 자금조달에 그처럼 절박하게 매달려야 할 상황은 오지 않았습니다. <채권시장,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야> -많은 채권시장관계자들은 외환위기 후 채권시장이 완전히 변화됐다고 말을 합니다. 팀장님은 개인적으로 IMF전과 후의 채권시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모든 부분에서 정말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외환위기 전에는 전체 시장규모가 150조 정도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발행규모만 300조가 넘죠. 특히 장기채권시장이 많이 커졌습니다. 국채 등장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연기금, 보험 등에 장기상품 투자를 허용하면서 시장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채권저변에 종사하는 채권관련 인력들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시장투명성도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채권한다"고 하면 "저 사람이 이거 해서 따로 호주머니라도 차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셨어요. 불과 몇 년전 일입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밝고 깨끗한 분위기가 정착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유독 채권시장만이 ‘우리들만의 리그’로 운영된다는 겁니다. 다른 금융시장의 경우 많은 개방이 일어났어요. 물론 장점도 많지만 global standard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그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산금채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국채가 발행되기 전까지는 산금채가 시장지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단점도 있어요. 딜링장세에서는 대량발행이 곤란하다는 점 때문에 딜링을 채워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고요. 그러나 장기물를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욕구는 충분히 반영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산금채를 FRN(Floating Rate Notes 변동금리부 사채, 발행 금리가 정기예금 금리 등에 연동되어 있는 채권)으로 발행하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아직도 진행중입니까 아니면 취소된 겁니까. ▲상품자체는 확정이 됐습니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얼마로 할 것이냐, 또 스프레드를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의 문제 때문에 늦어지고 있는 것이죠. 저희가 생각하는 상품개발은 완료했지만 시중 FRN이 일종의 변종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것과의 차이를 어떻게 수렴할까 하는 문제를 고민중입니다. 한국 채권시장은 스트레이트(일반 채권)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발행자가 발행을 원할때는 투자자 입맛에 맞지않고 투자자가 원할때는 발행자는 발행하기 싫어요. 시장 자신이 원할때 FRN 발행도 가능할 것입니다. FRN수요는 기본적으로 자금운용자가 자산운용시 매칭을 형성할 수 있어야 생기는 겁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산금채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시장상황에 맞춰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시장발전을 위해 파생상품의 성격을 가미하려는 시도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어쨌든 저희는 시장의 need를 잘 파악해서 그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도록 힘쓸 겁니다. (김계동 팀장 약력) -54년 출생(본적 충남 논산) -72년 서울 경희고 졸업 -73년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입학 -80년 한국산업은행 입행(투자부, 용역사업부, 국제투자부 등) -94년 수신개발부(차장 승진)
2001.05.11 I 정명수 기자
  • 오늘의 증시 키포인트(30일)
  • [edaily] 지난 주말 미국의 GDP성장률이 크게 호전되면서 미 경기와 증시의 바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되고 있다. 또 외국인 매수와 함께 기관 매수도 늘어나고 있는데다 고객예탁금도 9조원에 근접해 수급상황도 다소 호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지난 주 불안한 양상을 이어갔던 채권과 외환시장의 안정여부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 주말 뉴욕증시 상승..기술주 강세 지난 주말 예상보다 큰 폭의 성장률을 기록한 국내총생산 발표로 뉴욕증시가 다시 랠리를 보였다. 장막판 상승폭을 크게 늘이면서 장을 마쳐 내주 장세전망을 밝게 해주었다. 거래도 금요일 치고는 활발한 편이었고 상승종목도 월등히 많아 강세분위기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상승 출발한 뒤 장중 내내 밀고 당기는 혼전끝에 장마감무렵 상승폭을 크게 늘였다. 지수는 어제보다 2.01%, 40.82포인트 오른 2075.70포인트를 기록했다. 다우존스지수도 등락을 거듭했지만 장마감 1시간을 남겨놓고 가파르게 올라 지수는 세자리숫자로 상승, 어제보다 1.10%, 117.70포인트 오른 10810.05포인트로 연중최고치로 장을 마쳤다. 기술주중에서는 반도체주들이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고 인터넷, 네트워킹, 컴퓨터 등도 개장초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텔레콤주들만 약세로 돌아섰다. 기술주 외에는 유틸리티주 정도가 약세였고 유통, 금융, 바이오테크, 금, 운송, 경기민감 소비재, 원재료 등이 상승했다. ◇미 GDP성장률 호조..경기회복 기대감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국내총생산 성장률 호조세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낳으며 증시에 강한 모멘텀을 제공할 전망이다. 미 상무부는 올 1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5년반만에 최저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지난해 4분기의 1%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며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1.1% 성장을 대폭 상회한 것이다. 특히 국내총생산의 2/3을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전분기의 2.8%에서 1/4분기에는 3.1% 증가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은 아닌 것으로 평가됐다. 또 기업재고는 지난 91년 3/4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내용의 성장은 결국 미국 경제가 지난해 4/4분기를 저점으로 다시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올들어 4차례에 걸친 2% 포인트 금리인하 효과마저 가시화될 경우 경기회복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객예탁금 9일만의 감소...추세는 증가세 주식대기 매수자금인 고객예탁금이 9일만에 소폭 감소했다. 28일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예탁금은 27일 현재 8조7153억원으로 하루전 보다 1729억원 감소했다. 고객예탁금은 지난 18일 이후 8일 연속 증가하면서 1조89억원이 늘어난 뒤 이날 9일만에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예탁금의 증가세는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금리동향에 주목..소비자물가지수 발표 최근 급등세를 보이며 다시 증시에 불안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채권시장의 움직임이 다시 주목된다. 일단 지난 주말 미국의 GDP성장률 호조세가 채권시장에는 악재로 부각될 것으로 보이며 오늘 오전에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도 상승세가 예상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금리동향에 따라 증시의 변동성 확대도 우려되는 측면이다. ◇주요 뉴스와 종목 스크린 - 불공정무역 철퇴..저작권침해 물품 수출입, 제조판매 5억 과징금 - "은행 추가합병 필요"..금감위원장 인터뷰 - 야간 전자증권거래소 9월 개장 - 사채업 등록하면 자금출처 면제..당정추진 - 콜금리 내달에도 동결할 듯..한은 고위관계자 시사 - 조회공시 답변기간 줄인다..거래소 당일 오후까지, 빠르면 내달 12일 시행 - 1000만원이하 사채이자 최고 40%로 제한키로 - 러 가스전 개발사업 차질..한보자회사, 이르쿠츠가스전 지분 전량 매각 - 알리안츠제일생명 1500억 증자 - 한일 중기 전자상거래망 구축..10월부터 거래등 시작 - 하이닉스 지원 주초 매듭 - 지방공기업 총체적 부실..141곳 경영 엉망 - 은행 부실채권 4조감소..올들어 자산건전성 제고 - 18개 공기업 올 2106명 감원 - 한-EU 조선분쟁 일촉즉발
2001.04.30 I 이정훈 기자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