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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잼버리 파행…정부 무관심, 지자체 방관, 조직위 일방통행 '합작품'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공동위원장인 이상민(가운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3일 야영지 내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에서 열린 긴급 현장 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관영 전북도지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이선우 기자] 부족한 준비와 미흡한 대응으로 파행 위기를 자초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범정부 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지난 11일 공식 폐영했다. 국내에서 32년 만에 열린 대회에는 150여개 국가에서 4만3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자녀의 잼버리 참가에 맞춰 방한한 동반 가족도 1000~2000여명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 세계 청소년 야영대회로 기록될 뻔했던 새만금 잼버리는 부실한 준비와 태풍 악재가 겹치면서 100년 잼버리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회가 됐다. 특히 수년간의 준비기간, 수천억의 막대한 예산도 치밀한 준비와 실행 가능한 메뉴얼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국가적인 행사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말로만 철저한 준비를 주문했다. 대회를 유치한 전북은 6년간 대회 준비보다 새만금 개발에만 몰두했다. 이 같은 정부의 무관심, 지자체의 방관 속에 한국스카우트연맹 인사들로 채워진 조직위원회는 주먹구구식, 일방통행식 운영으로 대회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윤은주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 교수는 “새만금 잼버리는 대한민국 국제행사 개최사(史)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며 “국제행사는 백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 (사진=연합뉴스)◇행안부, 문체부 6개월 남겨 놓고 뒤늦게 합류컨트롤타워 부재는 정부 무관심 행정을 빼고는 설명이 안된다. 2018년 제정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은 유치 당시 491억 원이던 예산을 두 배 넘게 늘리는 보증서 용도로만 쓰였을 뿐, 행사 성공 개최에 필요한 충분조건이 전혀 되지 못했다.2017년 장관이 직접 유치 현장까지 동행했던 여성가족부는 유치 성과에만 도취해 6년을 ‘허도세월’했다. 폭염, 모기, 위생 등 문제에 발 빠른 대응은 고사하고 아무런 대책도 주도적으로 내놓지 못하면서 주무 부처로서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 “잼버리 주무 부처가 여가부였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마저 없었다.지난 2월 합류한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전체 준비 기간의 90% 이상이 허비된 상황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북도 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이대로 가다간 큰 사단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행안부, 문체부가 합류하고 143억원이 긴급 편성된 올 2월 이후 4~5개월간의 골든타임 중에도 상황이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이데일리 문승용 기자]무관심 행정의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가부는 잼버리 유치 이후 장관이 4차례 바뀌는 동안 정영애 전 장관과 현 김현숙 장관 단 2명만 새만금 현장을 찾았다. 횟수도 정 전 장관이 한 차례, 지난해 5월 취임한 김 장관 세 번이 전부다. 개영 일주일 전인 지난달 24일 김 장관이 직접 챙긴 현장점검도 요식행위에 그쳤다. 점검 현장엔 김 장관 외에 임상규 전북 행정부지사, 권익현 부안군수 등이 동행했지만 그 누구도 파행의 직접 원인이 된 부실한 화장실, 샤워실 등 시설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위생과 방충은 무관심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깝다. 코로나19 감염이 완전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150여개 국가에서 4만 명이 넘는 청소년(만 14~17세)이 한곳에 모이는 행사에 범정부 차원의 방역 대책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개영을 1주일 남겨놓은 7월 말은 일일 감염자 수가 4만 명을 넘어서며 재유행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1000억원이 넘는 사업 예산 중에서 방역 관련 예산은 전체의 2%가 조금 넘는 28억원이 전부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사전에 코로나19 방역 대책만 제대로 세웠어도 현장에서 위생, 방충 문제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태풍 카눈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조기 퇴영이 결정된 지난 6일 행사 관계자들이 그늘막을 해체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4만명 참여 국제행사에 행사 전문가는 배제 전북은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예산 419억원을 투입한 전북은 대회 준비에는 소홀한 채 새만금 개발에만 열을 올렸다. 도청 안에 설치한 잼버리 추진단은 내부에서조차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할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 그나마 있던 추진단도 대회를 1년 넘게 앞둔 지난해 초 10명 규모의 2개팀(지원팀·시설팀)으로 축소해 버렸다.전북은 잼버리 유치로 황무지나 다름없던 새만금에 인프라를 확충할 명분을 얻게 된 데에만 주목했다. 잼버리 참가자 이동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며 7900억원을 들여 새만금 내부 동서남북을 잇는 십자도로를 개통했고, 새만금 국제공항은 예비타당성까지 면제받으면서 정부로부터 8000억원을 받아냈다. 국제공항 없이 잼버리를 여는 건 국제적 망신이라던 주장과 달리 새만금 국제공항은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다. 2조원 가까이 들어가는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 역시 아직 건설이 진행 중이다.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새만금 신항만(3조 2000억원), 인입철도(1조 3000억원), 연결도로(1조 1200억원) 등 그동안 잼버리를 이유로 정부로부터 받아낸 예산만 11조원”이라며 “잼버리와 상관없는 새만금 개발에만 몰두한 결과가 새만금 잼버리 총체적 부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지난 8일 조기 퇴영 결정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철수한 독일 잼버리 대원들이 용인시 처인구 명지대에서 기숙사 입소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정부의 무관심과 전북의 방관을 등에 업은 조직위는 한국스카우트연맹에 의해 주먹구구식, 일방통행식으로 운영됐다. 조직위는 시설 부족 등 부실한 준비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 스카우트 정신’이라며 묵살하기 일쑤였다.대회 준비와 운영에 국제행사 개최 경험을 갖춘 총괄 운영사 등 전문가는 애초부터 배제됐다. 여기에 협력사는 전북 기업 우선 배정이라는 지역주의까지 더해지면서 조직위는 더더욱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5본부 34부 40팀으로 세분화한 조직위는 몸집은 비대해지고 역할과 책임은 모호해지면서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회가 절반 가까이 지날 때까지도 조직위는 예멘과 시리아, 수단 등 국가들이 입소하지 않았다는 사실 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김한석 한국이벤트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제행사는 잘해도 본전, 한 번 실수하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큰 ‘독이 든 성배’와 같은 것으로 정부와 지자체, 민간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는 필수”라며 “새만금 잼버리 준비와 운영 상의 문제점을 모두 백서로 남겨 다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영화 '비공식작전'으로 본 해외피랍 실태...예방하려면?
-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최근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에서 피랍됐던 도재승 서기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도 서기관 납치 사건은 광복 이후 첫 납치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피랍사건은 일어나고 있지만 형태는 과거와 달라졌다. 국내외 피랍사건 현황을 분석하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사진=쇼박스)◇무장단체 피랍은 감소 추세…해적 납치 등은 여전히 벌어져1986년 1월 31일 오전 8시 10분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 도재승 2등서기관은 대사관 앞에서 무장 괴한에 피랍된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간의 내전이 펼쳐지는 레바논에서 한국 외교관을 납치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무장단체는 ‘리비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투쟁혁명 세포’로 알려졌고, 이들은 돈을 요구했다. 정부는 긴 협상을 이어갔고, 도 서기관이 풀려난 건 납치 1년 9개월만인 1987년 10월이다. 영화 비공식작전은 교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았다.1987년 레바논에서 피랍됐던 도재승 서기관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사진=KTV 유튜브 갈무리)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랍사건은 30여건에 달한다.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 피랍됐던 김선일씨 사건,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분당 샘물교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사건, 2018년 리비아 무장괴한에 현지 회사원 피랍,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에 억류됐던 사건 등 매년 3~4건의 피랍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다만 탈레반 등 무장단체가 우리 국민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사건은 2007년 샘물교회 사건 이후 급감했다. 외교부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라크 등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했기 때문이다.여권법 개정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해외 국가를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하는 ‘여권의 사용제한’ 조항은 2007년 4월 20일부터 시행됐다.샘물교회 사건은 선교를 위해 교회 성도들이 그해 7월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면서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3개 국가를 16년째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 이외 러시아 일부지역, 리비아, 시리아, 수단,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예멘, 우크라이나, 필리핀 일부지역, 이스라엘(가자지구) 등이 여행금지 국가다.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해적이 많아진 것은 경제적 이유 탓이다. 극심한 가뭄 탓에 식량 부족이 만연하고, 이슬람 무장단체 알 샤바브가 장악하면서 해적활동이 생계수단이 됐다.이에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해적 피해를 막기 위해 청해부대를 2009년부터 파견하고 있다. 현재는 광개토대왕함급 구축함을 보유한 청해부대 40진이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외교부 여행경보4단계 여행금지 지역(사진=외교부)◇“예방이 우선”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앱 안내외교부는 ‘해외 피랍 예방법’을 4가지로 안내한다. 먼저 여행지에서 낯선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 숙소, 향후일정 등 여행 관련 정보나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말라고 권고한다.더불어 공신력 있는 여행사 또는 현지를 잘 아는 사람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또 납치나 강절도 등 신변 위협을 항상 고려하면서 주변의 변화를 경계하고, 현지 문화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주의한다.외교부 영사안전국은 여행사와 선교단체 등을 대상으로 안전간담회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전 세계 테러ㆍ치안 동향 공유 △종교 관련 해외법령 제ㆍ개정 정보 공유 △피랍상황 가정 모의훈련 프로그램 실시 △트라우마 힐링센터 운영 등을 안내하고 있다.또 안전한 해외여행을 위해 홈페이지와 ‘해외안전여행 국민여행’ 앱에 현지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정강 외교부 영사안전국장은 “여권법에 따라 여행금지구역을 설정한 이후로는 무장단체 피랍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여권분실 등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데, 외교부 홈페이지 등 안내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내전 우려까지 나오는데…네타냐후, 사법개혁 왜 강행했나
-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스라엘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영국의 채널4 뉴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민주주의의 뿌리를 위협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용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부가 (국민) 다수에 의해 불법으로 인식된다는 측면에서 시민 불복종, 즉 내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동안 현재와 같은 국가 분열 상황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 올해 1월부터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29주 연속 이어진 데다, 지난 3월 자신의 뜻을 거스른 국방장관을 해임한 이후 예비군들마저 반대 여론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최우방국인 미국까지 우려를 표했음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AFP)◇유죄 판결 막으려 ‘사법부 장악’…장기집권 야욕 드러내네타냐후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가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기본법 개정안을 가결한 이후 TV 연설을 통해 “3부(입법·사법·행정부) 간의 균형 복원 등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입법을 계기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는 시민 다수의 결정에 부합하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게 됐다”며 “유권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종말이 아닌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집권 연정 소속 극우 의원들은 수십만명 규모의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와 야권 의원들의 반발에도 사법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합리성’(reasonableness) 원칙에 근거해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사법심사 권한을 박탈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여당 의원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 권한을 일반 공무원인 판사가 억제하는 기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네타냐후 총리의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 11월 뇌물 수수, 사기, 배임 등 3건의 범죄 혐의로 공식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상 현직 총리가 수뢰 혐의로 기소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2007~2016년 온라인 매체 ‘왈라 뉴스’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는 대가로 산업 규제를 풀어 이 매체를 운영하는 이스라엘 최대 통신회사 베제크가 5억 2000만달러의 이득을 챙기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프리티 우먼’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과 또다른 억만장자로부터 수년간 고급 샴페인과 쿠바산 시가 등 수십만달러 상당의 대가성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AP통신은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지지자들은 사법 개혁이 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말하지만, 반대 시위자들은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파트너들의 개인적· 정치적 불만에 의한 권력 장악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도록 사법부를 장악해 장기 집권을 위한 야욕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헌법학 교수인 아미카이 코헨은 AP통신에 “사법부는 정부 권력에 대한 유일한 견제 도구”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경찰이 24일(현지시간) 텔아비브의 사법 개혁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를 뿌리고 있다. (사진=AFP)◇둘로 쪼개진 민심…정치·안보·경제적 후폭풍 우려올해 내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등 혼란이 이어져 왔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우려가 잇따른다. 갈라진 민심이 이스라엘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분열로 이어지고, 외교·안보 및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여서다. 최근 이스라엘 국영방송 칸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6%가 사법 개혁에 반대하고 35%는 찬성하는 등 극명하게 여론이 나뉘었다.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11월 말까지 포괄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야당 측과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반대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경찰과 시위대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대학생들부터 대기업, 의료계, 금융권, 법조계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서 파업을 선언하거나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며 병원, 은행, 쇼핑몰, 상점 등이 폐쇄됐다. 이스라엘 국방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예비군 수만명이 복무 거부를 선언했다. 복무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엔 시리아 폭격 등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1000여명의 공군 조종사와 정보 및 특수부대 소속 병력이 포함돼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앙숙인 이란을 비롯해 그 대리세력으로 꼽히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과도 무력 대치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기술 국가로 이끈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70%는 사회적 혼란과 보수화를 우려해 일부 사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 4월 사법 개혁을 둘러싼 혼란을 우려하며 이스라엘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내렸다. 네타냐후 총리는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전복을 시도한다고 비난하고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제시한 타협안을 거부하는 등 사법 개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에 이스라엘의 국가적 갈등 및 혼란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이스라엘의 한 보수 싱크탱크는 “사법개혁을 둘러싼 공론 분열로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군사적 대립 발판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언론들도 “네타냐후 우파 연정이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후폭풍…'민심 분열'로 안보·경제 타격 우려
-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도의 이스라엘 초강경 우파 정부가 안팎의 거센 비판과 저항에도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 처리를 끝내 강행했다. 네타냐후 정권은 사법 체계 개편을 위한 추가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어 반대 시위 등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가 “야권과 대화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아울러 보수화를 우려한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해외로 이전하는 등 경제적 타격도 예상된다. 외교·안보적으로도 이란,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과의 무력 대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와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오른쪽),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24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 있는 크네세트(의회)에서 사법 정비를 위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표결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날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의회의 입구를 막으며 시위를 벌였다.(사진=EPA/연합뉴스)◇네타냐후, 거센 저항에도 ‘사법개혁’ 법안 가결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현지 언론 및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 2∼3차 독회(讀會)를 열고 법안을 찬성 64표, 반대 0표로 가결 처리했다. 최종 표결을 보이콧한 야당 의원 56명은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지속하며 30시간 가까이 격렬히 저항했지만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야권은 물론 시민단체 등 상당수 국민들이 표결 결과에 분노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의사당 밖에서는 수만명이 천막을 치고 밤샘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부터 법조계, 의료계, 예비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위 그룹으로 나뉘어 법안 저지를 위해 항의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대 시위는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 개혁을 발표한 지난 1월 이후 29주 동안 이어졌다. 시위가 격화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생중계 TV 연설을 통해 “3부(입법·사법·행정부) 간의 균형 복원 등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항변하며 오는 11월 말까지 포괄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야당 측과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법관선정위원회를 통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동안 최고 법원인 대법원은 ‘합리성’에 근거해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 권한을 일반 공무원인 판사가 억제하는 기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사법 심사’ 권한을 박탈해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다. 이번 사법 개혁은 사기 및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법 개혁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방어 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네타냐후 우파 연정이 이스라엘을 헌법 위기에 빠뜨렸다. 군 복무 중요성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가장 신성한 ‘신화’(myths) 일부가 삭제됐다”고 비판했다. ◇둘로 쪼개진 민심 “외교·안보·경제에 치명적” 경고 잇따라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두고 갈라진 민심이 이스라엘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분열로 이어지고, 외교·안보 및 경제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이스라엘 국방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예비군 가운데 수만명은 지난 22일 복무 거부를 선언했다. 이들 예비군은 지난 3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요아브 갈란트 당시 국방부 장관이 해임된 이후 대다수가 반대 여론으로 돌아섰다. 이스라엘의 한 보수 싱크탱크는 “사법개혁을 둘러싼 공론 분열로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군사적 대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무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엔 시리아 폭격 등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1000여명의 공군 조종사와 정보 및 특수부대 소속 병력이 포함돼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앙숙인 이란은 물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 이른바 이란의 ‘대리 세력’(proxy)과 무력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경제적 파장도 예상된다. 이스라엘을 기술 국가로 이끈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70%는 사회적 혼란과 보수화를 우려해 일부 사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150여개 대형 기업과 은행 등이 참여하는 이스라엘 비즈니스 포럼도 총파업 선언으로 반정부 시위에 힘을 실었다. 이스라엘 의료협회는 이날 25일부터 24시간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을 설계한 법무부 장관은 사법 체계 개편을 위한 추가 입법까지 예고한 상태여서 이스라엘의 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이스라엘 예루살렘 의회 앞에서 ‘사법 정비’ 입법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AP)◇“민주주의 훼손”…美 등 국제사회 우려 목소리 커질듯국제 사회에서도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집권 이후 7개월 만에 성사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네타냐후 총리 초청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미국 백악관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변화가 계속되려면 가능한 광범위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혀 왔다”며 “오늘 (의회) 표결이 가능한 가장 적은 수의 찬성으로 진행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더 넓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의 노력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협과 도전의 크기를 감안할 때 지도자들이 사법정비를 서두르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민을 합의로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며 우려 표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