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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선 "강간", 한국선 "화간"?
- [오마이뉴스 제공] "피해여성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 성관계를 했다 하더라도 적극 저항하지 않았다면 준 강간이 아니다." &8211; 2004년 3월 28일 서울고법 형사4부 엄상필 판사
한국과 미국의 "강간죄" 규정의 차이
"데이트강간"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간혹 사용되는 말이지만, 아직까지 이 개념은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정서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합의에 의한 "데이트"와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강간"이 상호모순적인 개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해서 만나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강간"이 성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사회에서 "데이트 강간"은 성범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미국남성들이 한국남성들보다 성적으로 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다. "강간죄"에 대한 규정과 법집행이 한국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엄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형법은 여자들이 "완강히 저항"하지 않는 한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파악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와 정반대로, 여성이 능동적으로 동의를 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 행위는 강간으로 간주한다. 한국에서 "적극적 저항"을 범죄의 구성요소 보는데 반해, 미국에서는 "여성의 적극적 동의"만을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여성의 동의에서 성관계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이라도 여성이 반대의사를 표하면 상대방은 즉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 즉 성폭행으로 간주된다. 여성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동의"가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인지가 동의 자체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의 "동의"는 온전한 판단력을 가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적, 심리적 협박에 의한 것이 "동의"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술이나 약물 등으로 온전한 판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린 결정 역시 "동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당연히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과의 성관계는 모두 강간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성숙한 판단이 불가능한 미성년자와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정신적 장애자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들과는 어느 경우라도 "동의에 의한 성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성범죄를 조장하는 성범죄 판결
지난 3월, 한국에서 만취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진 한 여성이 형부를 준 강간죄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일이 있다. 판결문은 무죄선고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소인이 술에 취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형부의 성관계에 응했거나 적극 저항하지 않아서 피고인이 동의한 것으로 알고 성관계를 가진 것 같다."
미국 대부분의 주가 명시하고 있는 형법에 따르면, 위의 사건은 명백히 강간에 해당한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내려진 판단이 "동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의사 표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적극 저항하지 않아서 피고인이 동의한 것으로 알았다"는 앞의 "무죄항변"은 오히려 강간죄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14살의 미성년자이며 정신지체 장애인 여성을 5년에 걸쳐 8차례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어른이 겁을 줘 옷을 벗게 한 후 성폭행한 점은 인정되지만 절대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이 무죄판결의 이유였다.
"장애인 미성년자이더라도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무죄다." &8211;2004년 9월 16일 부산고법 형사2부 윤재윤 부장판사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강간사건 발생회수는 14.3건이었다. 이는 2003년보다 0.8건이 더 늘어난 것으로, 사건 총수로는 428건이 더 증가한 6959건을 기록했다. 같은 해 미국의 인구 10만 명당 강간사건 발생회수는 32.1명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한국이 미국보다 성범죄문제가 덜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성폭행 신고비율이 54%에 이르는 반면, 한국은 6%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비율을 고려한 한국의 10만 명당 강간사건 발생비율은 238건으로, 미국(59건)의 4배를 넘어선다. 여기에 기소율과 미국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포괄적이고 엄격한 법규정을 통해 성범죄를 처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격차는 훨씬 더 커진다. 위의 통계수치에는 기소된 사건만 포함되어 있고, 한국에서 신고된 성범죄사건 중 기소되는 비율은 3분의 1 미만이다.
한국 남성법조인 60% ""야한 옷" 성범죄 유발"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전 세계적인 상식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에 비치되어 있는 한 교육안내서에는 성폭력이 "언제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결코 피해자가 입고 있는 옷이나 피해자가 있는 장소, 또는 하고 있는 행동과 무관하다"고 못 박고 있다. 이 안내서는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사건의 모든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 안내서도 말하고 있듯이, 성폭력이 "성적 욕망"때문에 발생하는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폭력성, 분노 그리고 권력에 의해 매개된 가해자의 자발적 행동임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성폭력이 "성적 욕망의 크기"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그리고 사회적 위계가 높은 사람이 아래의 상대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런 면에서 대단히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서 한국 남성법조인의 60% 이상이 "여성의 야한 의상이 성범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범죄 판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한국은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사회적 환경을 지닌 곳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조리극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한국의 왜곡된 성의식 때문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 야만적인 문화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형법은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범죄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필사의 저항"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법논리 뒤에는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미국의 형법은 철저히 피해자의 신변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범죄구성요소로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 피해자의 저항행위가 목숨을 위협하는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때로는 가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범죄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위험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행의 17%, 그리고 폭행미수의 39%가 피해자에게 육체적인 상해를 초래한다. 성폭행은 가해자가 흉기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피해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폭력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가해자와 맞서 싸우는 것이 상황을 피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더 나아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강간과 성폭행: 당신이 알아야 할 것," Bingham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름에 불구하고, 한국의 형법은 "목숨을 건 사투" 아니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분법을 강요하고 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범죄 상황 하에서 "적극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기구가 할 일이 아니다. "정절 아니면 목숨"이라는 조선시대의 "은장도 정신"이 현대의 법정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바뀌고 있는 "강간"의 정의
2003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로라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남자친구 존과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가졌다. 관계 도중 그녀는 마음을 바꾸어 "이제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만 두라"는 구체적인 거부의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남자친구는 행위를 계속하다가 그녀가 네 번째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후 그 남자는 강간죄로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명백히 동의에 의해 성관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상대가 마음을 바꾸어 거부의사를 표하면 즉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은 충분한 거부의사의 표시였고, 따라서 그녀의 의사에 반한 채 계속 성행위를 한 것은 명백히 "강압에 의한 강간죄(offense of forcible rape)"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클레어 쿠퍼, "법원판결: 강간은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명할 때 시작된다" <새크라멘토 비> 2003. 1. 7.
피고는 피해자가 "집에 가겠다"라는 첫 발언이 있은 후 5분, 그리고 네 번째 말을 들은 후 1분여 만에 그녀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그리고는 남자의 생리적인 특성상 곧바로 행동을 멈출 수 없다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의 거부의사를 들은 이후에도 피고가 계속해서 양손으로 원고의 허리를 잡은 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강간"의 범죄구성요소로 충분하다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이 있은 후 미국 대다수의 주들이 "강간"의 법규정을 수정했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강간의 예외적 사례로 보는 기존의 입장을 탈피해 "합의"는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순간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94% 이상의 법조인들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여관에 들어간 경우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불리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2003년 성폭력상담소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낸시 깁스는 이런 견해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그녀에 따르면, "여성이 남자와 술을 함께 마시거나, 함께 밤길을 걷거나, 심지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그녀가 바닥에 억지로 눕혀져 성폭행을 당하고 싶다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8211; 낸시 깁스, "강간은 언제 시작되는가" <타임>, 1991. 6. 3.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로 다루어지는 한국의 성범죄
미국무부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만연한 성범죄로 고통 받는 한국여성의 상황을 "인권문제"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2004년 2월에 발간된 이 보고서는 가정폭력과 함께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분류하고 있다.
"강간은 심각한 상태이다. 1월부터 9월까지 1만3914건의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이중 3630건만 기소되었다. 강간사건에 따르는 피해자의 사회적 오명 때문에 많은 사건이 신고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여성단체들이 사건 신고와 처벌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으며,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교육을 벌이고 있다. 여성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다수의 강간사건이 기소되지도 않은 채 무마되고 있으며, 성범죄자로 기소되는 경우도 아주 미약한 처벌만을 받는다." - "인권실천에 관한 국가 보고서," 미국무부 제출, 2004. 1. 25일 발간.
남성중심사회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모순을 발견한다. 하나는 남성이 언제나 여성보다 "이성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입장이 되면 갑자기 여성의 옷 하나에도 통제력을 상실하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돌변한다. 물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나면 즉시 "이성적인" 지배자의 위치로 복귀한다.
한국의 성범죄 법체계에 반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 남성들이다. 한국의 형법이 가정하고 있는 바, 스스로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완강한 저항"이 없는 한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체계는 남성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끔찍한 범죄자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비인도적 법 앞에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성별과 끔찍한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공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법원에서 당신을 "무죄"로 판결해준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 (한국경제 반세기)"아! 경부고속도로"②
- [edaily 이종석기자] 경부고속도로는 여러 면에서 놀랄만한 기록들을 세웠다. 2년5개월이라는 짧은 공사기간을 통해 총연장 428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순전히 우리 자본과 기술로 건설했다. 건설비용으로는 총 428억원이 소요돼 Km당 1억원이라는 경이적인 비용으로 공사를 마쳤다.
IBRD는 당시 보고서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선진국 수준으로 건설하려 했다면 Km당 5억원, 최소 2140억원의 자금이 소요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선진국의 5분의 1 비용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던 데는 “선개통-후보완” 원칙이 크게 작용했다.
박 대통령은 “가난한 살림에 처음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우선 개통시켜 이용하면서 통행료 수입내에서 보완해 나가자”며 선개통-후보완 원칙을 제시했고,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산정의 논리적 토대가 되었다.
◇ “안되면 되게 하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박 대통령의 밀어부치기 사례는 공기단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년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428Km 대동맥을 뚫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면서 기록적인 공기를 기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첫 구간인 서울-수원간 공사로, 일체의 행정절차를 무시한 사전공사로 진행됐다. 정상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경제기획원에서 각 부별 예산이 배정되고 이 예산이 부처별로 재배정되어야 비로소 건설부 고속도로 건설단에 예산이 확보된다. 이후 재무부 국고국에서 사업발주 승인을 받아 조달청으로 서류가 넘어가면 발주가 공고되고 건설업체들의 입찰-심사-낙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행정절차를 준수했다면 서울~수원간 고속도로 공사는 5개월여 이상 지체됐을 것이고, ‘2년5개월 완공’이라는 공기목표 달성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종성 당시 건설부 차관(8대 국회의원 역임)의 회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2차5개년계획 연도안에 완성되어야만 했습니다. 3차 5개년계획 때 이 도로를 이용해 새로운 경제계획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지요. 박 대통령이 원하던 기간내에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임무가 건설부 및 현장 직원들의 가슴속에 사명감처럼 와 닿아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밀어부치기는 국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법안 날치기 통과도 감행됐다.
68년 2월28일. 고속도로 건설재원으로 사용될 석유류법 개정안이 회기를 하루 남기고 국회에 제출됐다. 고속도로 건설비용 마련을 위해 휘발유 값을 100% 인상하는 내용이었다.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건설 작업이 상당기간 지연될 수 밖에 없는 만큼 여당 입장에서는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회기 마지막날인 2월29일 오후 4시40분 석유류세법개정안과 도로정비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러나 당시 여야간 쟁점이었던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둘러싸고 본회의는 파행을 거듭했고, 국회의장은 결국 6시40분 정회를 선언해 버렸다. 회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5시간 남짓.
다급해진 여당 수뇌부는 한밤중에 청와대로 집결한다. 밤 10시30분 김종필 당의장, 길재호 사무총장, 김진만 원내총무, 이만섭 부총무 등이 박 대통령과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나라 경제 살리겠다고 고속도로 만들겠다는데…야당이 반대한다고 그걸 하나 통과 못 시켜?” 참석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은 여당 수뇌부는 회기 종료 40분을 남긴 밤 11시20분 국회로 돌아왔고 결국 날치기 통과를 감행한다.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장형순 국회부의장이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본회의 속개를 선언하고 두개 법안을 일괄 통과시켰다. 회기 종료를 불과 5분 남겨놓고 이뤄진 날치기였다.
이만섭 당시 공화당 부총무의 회고.
“대통령에게 혼쭐이 나고는 허겁지겁 청와대를 빠져 나왔습니다. 제가 김진만 총무에게 “이거 합시다. 해야지 어쩝니까”라고 말했지요. 이때부터 국회에 돌아와 단상 점거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불과 30분도 채 안 걸렸을 겁니다. 사람이 한번 혼이 나고 나니깐 전부 달라집디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박정희 작사 작곡 지휘…신화의 탄생”
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마침내 완전 개통됐다. 긴 교량 32개와 짧은 교량 328개를 건설하고 터널 12개를 뚫는 민족의 대역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에 투입된 연 인원만 해도 900만명에 달했다.
이날 대구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준공기념식에서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는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체이자 민족적인 대예술작품”이라며 건설 참여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가져온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국가 전 부분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국토의 1일 생활권화가 가능해졌으며, 인적 물적 자원의 지역간 이동이 원활해지고 대도시 집중이 가속화되는 등 새로운 사회현상들이 나타났다. 경제적으로는 교통수송 및 유통구조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그 자체로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경부고속도로는 사방에 막혀 있던 산맥들을 뚫으면서 말 그대로 “조극 근대화의 길”로 부상했다.
국민 각자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보고 경제 및 생활상의 여러 변화들을 체험하게 되면서 초기 고속도로 건설에 쏟아졌던 비난은 사라지고 어느새 "지지"와 "격찬"으로 바뀌었다.
만일 당시 국민적 반대 여론에 굴복해 정부가 고속도로 건설을 미루거나 늦췄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아마도 한강의 기적은 20년 이상 지연됐거나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때 박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비범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교통수송상의 애로 때문에 60~70년대의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도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경부고속도로는 시종일관 대통령이 직접 일궈낸 업적 중의 업적, 대작품입니다. 결코 주무부처나 내각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엇갈린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불도적식으로 밀어부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한국 경제개발의 주춧돌이 되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혈맥"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온갖 반대와 장애요인을 무릅쓰고 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한 박정희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대통령 스스로가 철두철미하게 무장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의 회장(CEO)으로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직접 기획하고 실천에 옮겨 만들어낸 성과물이었다.
`한국도로공사 15년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나 교향악에 비유한다면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 지휘로 이루어진 불멸의 걸작품이다.” 고속도로와 박정희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압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 반세기"는 매주 화, 목요일 게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