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1,584건
- “국내 反韓 이슬람조직 있었다”
- [조선일보 제공] 정부가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반정부집회 등 반한(反韓)활동단속의 일환으로 지난 4월 국내 체류 방글라데시인들의 조직을 적발, 이들의 반한활동 여부 및 테러지원 연계여부를 조사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법무부는 최근 국회 법사위 김재경(金在庚·한나라당) 의원에게 “국가정보원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함께 지난 4월 국내에 체류 중인 방글라데시인들의 단체인 ‘디와툴 이슬람 코리아’를 적발, N씨 등 조직원 3명을 강제추방했다”는 보고를 했다고 김 의원실이 13일 밝혔다. 법무부는 “나머지 핵심조직원 2명은 검거하지 못해 일망타진하지는 못한 것으로 안다”고 보고했다.
법무부 등이 적발한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란 단체는 경기도 안산·군포·안양 등에서 불법체류 중인 방글라데시인들로 구성된 단체로, 안양의 한 이슬람 사원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은 “국정원 등이 작년 말쯤 이 조직이 불법체류자 취업알선 등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수사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이 단체가 1억원 가량의 자금을 모금해 방글라데시의 특정 정당에 송금했다는 첩보도 입수해 사실여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단체를 조사하면서 국내외 테러활동과의 연계여부도 함께 조사했으나 조사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가 이번 조치에 앞서 지난 4월 ‘불법체류자 반환활동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도 이 단체를 비롯한 일부 불법체류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가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3명에 불과하던 반한활동 관련자가, 올 8월 말 현재 15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마련에도 불구하고, 반한활동을 하고 있는 불법체류자 수가 얼마인지, 또 주도세력이 누구인지 등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국내체류 외국인은 43만8000명으로, 이 중 이슬람국가 출신이 29개국 6만7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들 중 미 국무부가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수단 등 5개국 출신이 1700여명이고, 알 카에다 등 테러단체를 실제 지원한 의혹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7000여명이나 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김 의원측은 “불법체류자들이 과거에는 노동시장에만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공공연하게 단체까지 만들어 반정부 시위 집회도 벌이는 등 반한활동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얼마 전에는 동남아에 있는 알 카에다 지부를 자처하는 단체가 한국에 자신들의 기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테러를 공언한 상황인 만큼 정부측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Zakat and Hawala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특파원으로 미국에 와서 시티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담당 직원은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소셜 시큐리티 넘버(Social Security Number)를 달라고 했다. 뉴욕에 며칠 전에 와서 아직 번호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서랍에서 부시럭 부시럭 핸드북을 꺼냈다. 핸드북에는 각 나라의 면허증 견본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 면허증이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직원은 몇군데 전화를 해보더니 이것만으로는 신분 확인이 안된다고 했다. 나중에 소셜 넘버가 나오면 다시 오란다. 월급을 당장 송금 받아야하기 때문에 계좌를 지금 열어야겠다고 떼를 썼다. 회사에서 써 준 특파원 발령장(letter)을 보여줬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발급한 합법적인 비자가 있는데 또 무슨 증명이 필요하냐며 따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점심 시간이 됐으니, 점심 이후에 오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은행에 갔다. 직원은 상사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와서는 혹시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발급받은 카드를 보여줬다. 그제서야 계좌가 오픈됐다. 직원은 소셜 넘버가 나오면 그 즉시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은행 카드를 넘겨줬다.
나중에 뉴욕에 진출한 한국 은행 관계자들에게 이 얘기를 해줬다.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911 테러 이후 신규 계좌 개설 요건이 대폭 강화됐다는 것. 테러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몇 가지 수칙이 있다고 했다. 고객이 누구인지, 고객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심지어 고객이 누구와 자주 거래하는지도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고객의 거래 성향을 분석해서 등급을 매긴다. 현금 거래가 빈번하면 보고 대상이다. 마약 자금,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해 이전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었지만, 테러 이후에는 감독이 더욱 철저해졌다고 했다. 규정을 어기고 계좌를 열어줬는데 그 계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수만달러 벌금이라고 했다. 당연히 은행은 고객들이 불쾌할 정도로 철저하게 신분을 확인한다.
911 테러는 많은 것을 바꿔놨다. 미국은 대 테러 전쟁을 수행하면서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를 고민했고, 그 구멍을 틀어 막았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를 공격한 테러범들은 은행에 버젓이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585쪽에 달하는 911 진상 조사 위원회 보고서(The 911 Commission Report)는 WTC가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이 어떻게 테러 자금을 조달하고, 어떤 루트로 자금을 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테러 전쟁`은 사실은 `금융 전쟁`이다. 빈 라덴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은 그들이 월가의 시스템, 미국의 막강한 금융 시스템을 능가하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Zakat`과 `Hawala`라는 무기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3년, 빈 라덴의 금융 무기를 살펴보자.
◇빈 라덴과 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벌 2세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빈 라덴은 3억달러의 재산을 물려 받았다. 한 때 미국 정보 당국은 그가 이 돈으로 이슬람 지하드 세력을 지원하고, 알카에다 조직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빈 라덴이 최초 은신처였던 수단에서 쫓겨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칠 당시 그의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 수단에 있던 빈 라덴의 사업체는 수단 경제가 무너지면서 큰 타격을 받았고, 사우디 정부의 압박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끌어 쓰지도 못했다.
빈 라덴은 다른 돈 줄을 찾아야했다. 아프간 전쟁 당시 빈 라덴은 미국에 있던 자말 아미드 알 파들이라는 수하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알 파들은 수단 출신으로 빈 라덴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11만달러를 뒤로 빼돌리기도 했다. 빈 라덴은 알카에다 조직내의 이집트인들을 중용하면서 그들에게 매달 1200달러를 줬지만, 알 파들에게는 고작 500달러밖에 주지 않았다. 알 파들은 이에 앙심을 품었다.
후세인 케르추토우라는 부하는 빈 라덴을 배신하고 미국에 정보를 넘기기도 했다. 케르추토우는 자신의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을 때 빈 라덴이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주지 않은 것에 몹시 분노했다.
빈 라덴은 자신의 돈을 혁명을 위해 희사한 재벌 2세가 결코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빈 라덴은 아프간에 은신했고, 재정적 기반도 탄탄해졌다. 빈 라덴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1인자 오마르와 친분을 쌓았다.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비자없이 아프간을 왕래할 수 있었다. 아프칸 테러 캠프에서 테러리스트 훈련이 이뤄졌고, 조직력도 강화됐다. 알카에다 핵심 조직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후원자로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있었다.
민간 항공기를 이용, 대규모 테러를 감행한다는 아이디어는 빈 라덴이 낸 것이 아니다. 911 테러 계획의 최초 입안자는 카알리드 쉐이크 모하메드(KSM)라는 인물이다. 그는 1993년 WTC 차고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지원했고, 미국 당국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다. 당시 KSM은 카타르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카타르와의 외교적 마찰 때문에 미국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KSM은 전세계를 돌며 이슬람 저항 운동을 벌였다. KSM은 `비행기 테러`를 지원할 세력을 찾다가 마침내 빈 라덴을 만나게 된다. 빈 라덴은 처음에 KSM의 `아이디어`에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빈 라덴은 KSM에게 그의 가족들을 아프간으로 데려오라고 권유한다. KSM은 이를 거부했다. KSM은 자유롭게 `지하드`를 지원하기를 바랬다. 단지 알카에다의 자금력과 조직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KSM은 결국 1998년말에서 1999년초 알카에 합류한다. 빈 라덴의 승인하에 비행기 테러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911 위원회는 911 테러에 소요된 총 비용이 40만~50만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다. KSM이 테러리스트들의 미국내 여행 비용, 훈련비, 생활비 등을 거의 100% 지원했다. 테러범들은 자금을 사용할 때 `특별한 전략`을 쓰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 금융 정보망에는 걸리지 않았다. 911 테러 자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나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911 보고서도 알카에다가 일반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만 기술했을 뿐이다.
◇Zakat
빈 라덴은 개인 재산을 테러에 이용하지 않았다. 아니 이용할 수 없었다. 알카에다는 독특한 자금 조달 네트워크를 발달시켰다.
알카에다의 일년 예산(?)은 대략 3000만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이 돈은 거의 전적으로 기부금(donations)이다. 빈 라덴은 아프간으로 쫓겨난 후 이 네트워크를 재건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알카에다 핵심에는 기부금을 모집하는 특수 그룹이 있다. 이들은 회교권 여러 국가의 부유한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은다. 기부금을 낸 사람들 중 일부는 이 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낸 돈이 끔찍한 테러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회교 전통에 따라 수입의 2.5% 또는 10% 정도를 기부한 것이다. 이것이 `zakat`이다.
자금 모집책들은 이슬람 모스크의 지도자 이맘(imam)에 접근, 신도들이 낸 zakat을 알카에다에 기부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알카에다는 재정 감독이 허술한 회교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냈다. 자금 모집책들은 하라메인 이슬라믹 파운데이션과 같은 재단에 찾아갔다. 이런 재단은 외부 감사가 허술하고, 내부 통제도 엉망이어서 돈을 빼돌리기가 쉬웠다. 대형 재단의 지원을 받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작은 재단들과 그 관계자들은 알카에다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와파 오가니제이션처럼 의식적으로 알카에다에 자금을 준 재단들도 있다. 이런 재단은 사실상 알카에다의 지배를 받았고, 재단 이름의 은행 계좌들은 테러 자금 출납에 이용됐다.
일부에서는 알카에다가 마약 밀매, 다이아몬드 밀매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추측한다. 911 보고서는 빈 라덴이 이같은 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911 테러 직후 월가에서는 테러 정보를 알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주가지수옵션, 선물 등 파생상품을 이용,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911 위원회는 이같은 의혹에 대해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수사국(FBI) 등이 면밀한 조사를 벌였지만, 테러 정보가 선물 거래에 이용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확인했다.
911 보고서는 탈레반 정권 외에 어떤 외국 정부도 알카에다를 재정적으로 돕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알카에다에 동조하는 인물이 정부내에 있고, 이들이 알카에다를 도왔을 수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강하게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위원회는 사우디 정부 기관, 고위 관리들이 알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그러나 알카에다의 자금 모집책들이 사우디 등 주요 중동 국가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회교 신앙의 핵심인데다, 기부(zakat)가 생활의 일부인 이들 국가의 부유한 개인들이 알카에다의 기본적인 자금 줄이라는 설명이다.
◇Hawala
이렇게 모은 돈은 알카에다 조직에 어떻게 전달될까. 또 테러범들에게는 어떻게 전달될까. 미국은 911 테러 직후 `의심스러운 돈` 일체를 동결하는 강력한 금융 제재를 가했다.
911 테러에 대한 속시원한 응징은 빈 라덴을 산 채로 혹은 죽여서라도 잡는 것이지만, 알카에다라는 조직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그 자금원을 끊는 것이 먼저다. 전쟁은 병참 싸움이다.
빈 라덴의 자금 네트워크는 서구적인 금융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체계였다.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온 압둘(CA)은 고향에 있는 가족(CB)에게 두 달에 한 번 송금을 한다. 압둘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다. 수수료도 비싸고, 무엇보다 절차가 복잡하다. 맨해튼에서 금방을 하는 아지즈(HA)가 그의 은행이다. 압둘은 아지즈에게 3000달러 송금을 부탁한다. 압둘은 수수료로 10달러를 제한다. 압둘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작은 오파상을 하는, 먼 친척인 후세인(HB)에게 팩스를 보낸다. 압둘의 아내가 오면 2990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루피로 주라는 내용. 압둘은 국제전화로 아내에게 후세인을 찾아가면 된다면서 비밀번호(remittance code)를 불러준다. 압둘의 아내는 후세인을 찾아가 비밀번호를 댄다. 후세인은 수수료를 조금 떼고 루피화를 준다.
압둘의 돈이 실제로 미국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체되는 것은 아니다. 아지즈와 후세인 사이에 언약으로만 돈이 오가는 것이다. 아지즈와 후세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정산한다.
파키스탄에서 양탄자를 만드는 사다르(XB)는 얼마전 큰 아들 쿠사이(XA)를 뉴욕대로 유학 보냈다. 학자금을 보낼 때는 평소 양탄자 수출로 안면이 있는 후세인을 통한다. 사다르는 후세인에게 3000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루피화로 전해주며, 맨해튼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으면한다고 말한다.
후세인은 사다르의 아들이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고, 나중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후세인은 사업상의 호의로 별도의 수수료 없이 송금을 해주기로 한다. 후세인은 맨해튼의 아지즈에게 팩스를 보낸다. 사다르의 아들 쿠사이가 오면 3000달러를 주라고 한다.
이것이 회교권 국가에 널리 통용되는 사적 송금 시스템인 `Hawala`의 전형적인 예다. 위에 등장하는 아지즈와 후세인을 `Hawaladar`라고 부른다.
하왈라와 같은 사적 금융 네트워크는 회교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필리핀, 인도, 홍콩, 태국 등에도 이름은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의 전통 금융망이 있다.
하왈라와 같은 `Informal funds transfer(IFT)`는 고대 상인들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과 상거래를 할 때 결제 수단인 금이나 귀금속을 직접 가지고 여행할 경우 발생하는 위험-산적, 해적, 마적 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오늘날 IFT는 유럽, 북미 등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송금 수단으로 부활해 각광 받고 있다. 하왈라는 송금 수수료가 저렴하고, 간편하다. 선진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은행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저개발 국가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은행 시스템에서 소외된 계층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선진국의 노동자는 하왈라를 통해 가족에게 송금할 수 밖에 없다.
하왈라다는 지역에 기반을 가지고 있고, 신용이 높으며, 보통 중소규모의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민 노동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기도 하고, 고향에 남은 가족들에게는 적절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에 해외 상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고, 합법적인 국내외 은행 계좌도 가지고 있다. 영업상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하왈라를 이용하기도 한다.(후세인과 사다르의 경우처럼)
하왈라다 시스템은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기반하에 만들어진 금융 네트워크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당국의 감시 감독을 받는 금융 시스템과는 전혀 다르다. 압둘과 사다르의 송금은 금융 당국의 시선에 잡히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돈 세탁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다.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은 이점을 이용했다. 알카에다의 거점인 아프간에는 변변한 금융 시스템이 없었다. 하왈라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금 모집, 집행이 불가피했다. 알카에다를 옥죄는 미국을 피해 돈을 끌어모으는데 하왈라만큼 좋은 시스템도 없었다.
빈 라덴은 파키스탄, 두바이 등 중동 국가에 산재한 하왈라다의 협조를 받았다. 빈 라덴은 은행 계좌를 열 수 없지만, 빈 라덴에 동조하는 하왈라다는 합법적으로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하왈라와 같은 IFT 시스템이 있는 많은 나라들이 이를 공식적인 금융 시스템, 감시감독이 가능한 금융 시스템으로 바꾸려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왈라다에 대한 신고, 등록제 등이 그것이다. IFT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불균형`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러와 금융
"테러는 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과 "하왈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유사하다.
사실 중앙정보부(CIA)는 911 테러 이전부터 빈 라덴을 추적해왔다. 알카에다의 자금 줄을 찾아들어가면 빈 라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왈라와 같은 비공식적이고, 산발적인 금융 네크워크에서 나오는 작은 조각 정보들을 수집해서 종합적으로 분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CIA는 빈 라덴의 자금 줄을 추적하는데 주의를 게을리 하게 된다.
1998년 CIA는 알카에다가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모으는지 윤곽을 잡았다. 일단의 정보요원들이 1999년, 2000년 사우디로 파견됐고, 알카에다의 금융 기법을 이해했다. CIA는 그러나 알카에다의 자금 흐름을 완전히 파헤치는데는 실패했다.
미국 정보 당국내에서도 금융정보를 통일적으로 수집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재무부와 CIA 모두 이를 외면했다. 금융 당국도 911 이전까지는 마약 밀매, 부정 축재 돈 세탁 등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 금융 시스템이 테러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는데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4대의 민간 항공기를 탈취,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테러범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미국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여권과 다른 신분증을 사용했다. 위조 소셜 넘버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 세운 거대한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에 모하메드 아타, 마완 알 세히(WTC에 충돌한 비행기를 조정한 테러범)의 계좌가 숨어 있었고, 재무부와 CIA, FBI는 하왈라같은 사적 금융 네트워크에 무기력하게 유린 당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약한 고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911 보고서는 "테러는 왜 일어나는가, 어떻게 테러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조심스러운 답을 내놓고 있다.
파키스탄의 수백만 가정, 특히 저소득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종교 학교에 보낸다. 이것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교육 속에는 자칫 급진적, 폭력적 원리주의가 숨어들 수도 있다. 수천 달러 정도의 지원이면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지만, 이들은 그대로 방치돼 있다.
911 위원회가 미국 정부에 제안한 정책 대안 중이 이런 것이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힘을 합쳐 새로운 국제 아동 구호 기금을 창설해야한다. 이 기금은 이슬람 국가에 교육 시설 건립과 운영을 위해 직접 사용되어야한다."
보고서는 "테러리즘이 가난에서 나오지 않는다"면서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희망을 잃었을 때, 사회가 붕괴될 때, 국가가 분열될 때, 대지의 피를 마시고 테러리즘이 탄생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경제와 정치적 자유는 서로 연결돼 있다. 국제 무역은 상호 협조와 양보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교환하며, 협상과 법을 통해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911 보고서의 이같은 표현은 미국이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그동안 하지 못한 것, 또는 하지 않은 것을 나열한 듯하다.
하왈라로 돌아가보자. 저임금 불법 체류 노동자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이중적이다. 불체자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100% 차단하는 것도 아니다. 불체자들은 합법적인 신분증을 얻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임금 수준이 매우 낮지만, 어떤 식으로든 세금은 낸다. 이들은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음성적인 금융 거래를 선호한다. 그것이 하왈라의 토양이다.
미국이 테러 자금 네크워크 역할을 하는 하왈라를 없애고 싶다면 이같은 불균형, 불확실성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한다. 미국이 테러 위협에서 벗어고 싶다면, 세계와 함께 걸어가는 의젓함도 보여줘야한다.
- 외국인 고용허가제 내일부터 본격 시행
- [edaily 이진철기자]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노동부는 외국인력의 도입과 관리를 정부가 직접 담당하면서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17일부터 시행한다고 16일 밝혔다.
노동부는 이에 따라 "내국인 구인노력 의무(1개월)를 이행한 사업주는 고용안정센터의 인력부족확인서를 받아 고용허가를 신청한 뒤 구직자 추천과 선정을 거쳐 대행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이나 외국인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 3년간 채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외국인 고용허용제가 적용되는 업종은 종업원 300명 미만 제조업과 총사업비 300억원 이상 사회 간접자본(SOC) 부분 건설업 및 농·축산업 등이며, 현재 채용가능 국적은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8개 나라중 필리핀과 몽골, 스리랑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6개국이다.
노동부는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인력송출양해 각서 체결이 지연된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필리핀, 베트남, 몽골, 스리랑카)에서는 국내 취업대상자 선발이 완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고용허가제 총 도입규모는 2만5000명이지만 사업주 선택의 폭 확대와 양질의 인력도입, 송출비리 방지 등을 위해 전체 외국인 구직자 풀(POOL) 규모는 5만명선으로 유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근로자는 송출국가에서 입국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한국어, 한국문화, 기능실습 교육 등을 이수하게 되며, 입국 후에는 취업교육기관에서 건강진단과 국내적응 교육을 받은 후 최초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에 배치된다.
취업교육기간동안 사업주는 출국만기보험, 임금체불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외국인근로자도 귀국비용보험과 상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최저임금과 노동3권 등 기본적인 권익이 보장되지만 사업체의 휴·폐업과 사업자의 근로계약 해지 등의 경우 외에는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
한편, 노동부는 이번 제도시행을 계기로 불법체류, 취업, 고용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히 대처할 예정이며, 법무부·경찰의 불법체류 단속도 적극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이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3년간 외국인 고용도 불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 파병 결정했더니 "비자발급" 요건강화?
- [오마이뉴스 제공] 다음 주부터 미국 비자를 신청한 한국인의 인터뷰 면제 대상이 크게 축소돼 비 이민 비자를 신청한 사람의 95% 이상이 인터뷰를 받아야 한다. 현재는 65% 수준이다. 또 오는 8월 말부터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 한국인들은 주한 미 대사관에서 지문 스캔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오는 8월23일 이후 전화를 통한 비 이민비자 인터뷰 예약이 폐지되고 인터넷으로만 가능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한 인터뷰 예약 시스템은 30일부터 가동된다. 인터넷을 통한 비자 인터뷰 예약은 기존 비자 수수료 100달러 외에 1만2000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미 대사관은 이번 조치는 미 국경 보안 강화를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실시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김선일씨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내세워 영국군 다음 규모인 3600명을 파병한 한국이 미국의 대 테러 대책의 하나로 마련된 국경 보안 강화 조치를 적용받게 된 것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비자 인터뷰 대상자가 기존보다 30% 이상 증가해 현재 2~3개월 걸리는 인터뷰 대기기간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여 미국 가기는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날 미 대사관은 한국이 비자 면제국가가 될 전망에 대해서는 당분간 전혀 가망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버나드 알터 주한 미대사관 총영사는 30일 오전 서울 남영동 미 대사관 공보과 자료정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새로운 비자 방침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여행자의 편의와 국경 보안의 균형을 놓고 고민했으나 국경 보안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며 "현재 한국인 대상 비이민 미국비자 신청자에 대해 실시해 오고 있는 인터뷰 면제 프로그램 대부분이 8월1일자로 없어지고 2일부터 새 방침이 발효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새로운 비자 정책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미 대사관이 인정한 여행사를 통해 비자를 신청하거나, 미 대학과 교류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이 추천한 경우, 대기업에서 자주 출장을 다니는 직원들을 위해 추천한 경우 인터뷰가 면제됐으나 이제는 완전히 없어진다.
따라서 앞으로 비 이민 비자 신청 때 인터뷰 면제 대상은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미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만 14세 미만 또는 만 80세 이상 신청자 ▲한국정부 직원으로 외교 및 관용여권 소지 신청자와 동반 가족으로 한정된다. 현재는 만 55세 이상 및 16세 미만 신청자 등이 인터뷰 면제 대상이다.
알터 총영사는 "2003년 7월 이전에는 미국 비이민 비자 신청자의 35%만이 비자 인터뷰를 했지만 이후 각종 면제 프로그램이 종결됨에 따라 65%선까지 높아졌다"며 "이번 조치로 인해 미 비자를 신청한 한국인 가운데 인터뷰 대상자는 비이민 신청자의 95%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외교관과 어린이, 노약자를 제외하면 비 이민 비자를 신청한 모든 한국인은 인터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알터 총영사는 "8월 말부터 미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 한국인은 지문 스캔을 받아야 한다"며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오는 10월24일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의 비자 면제 대상국민인 일본인도 미국에 입국한다면 공항이나 항구에서 지문 스캔을 받아야 한다는 것. 지문 스캔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본이 재일교포들에게 행했던 지문 날인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민의 반감을 의식한 듯, 알터 총영사는 "지문 스캐닝은 대사관에서 받느냐 미국 현지 공항에서 받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을 입국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스캔받은 비자 신청자의 지문을 본국에 보낸다. 미 정부가 테러 연류 혐의자인지 등을 검토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보내 비자 발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번 지문을 스캔 받으면 다음에 비자 발급 때는 이전 지문과 대조를 통해 본인이 맞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편,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만 비자 인터뷰 예약을 받게된다. 인터넷으로 비자 인터뷰 예약을 하는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는 30일부터 시작하되, 오는 8월20일까지는 전화 예약과 병행한다. 그러나 8월23일 이후에는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다.
인터넷 예약은 신청자가 사이트(www.us-visaservices.com)에 접속한 뒤 PIN(개인고유번호)을 입력하고 미국 방문 목적과 개인신상정보, 인터뷰 희망일자와 시간 등을 입력하면 된다. PIN은 해당 사이트에서 1만2000원을 비자 또는 마스터 카드로 결제해 구입해야 하며, 한 번 구입으로 신청자를 포함해 직계가족 5명까지 동시 예약할 수 있다.
알터 총영사는 "이는 비자 인터뷰 과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컴퓨터 능력이 뛰어나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으로만 신청을 받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인터넷 시스템에 이미 5개국의 미 대사관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미 대사관의 설명은 논란거리가 많다. 일단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 이용료가 1만2000원이나 되는 산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비자 수수료가 100달러인데,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해 예약만 하는데 1만2000원이나 부담하는 것은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대사관이 아니라 2개의 미국 민간 회사가 이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들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며 "한국인들이 전화로 비자 인터뷰 날짜를 잡으면 보통 8~10분 걸려 전화료가 많이든다. 또 미 대사관은 신청자들이 입력한 정보를 곧바로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대답했다.
한 해 미 비자를 신청하는 한국인은 70만명으로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 1만2000원을 곱하면 산술적으로 연간 84억원이나 된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 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미 대사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비용을 한국인이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인터뷰 면제 대상자의 축소로 인해 인터뷰 및 비자발급 기간이 더욱 지체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내년 1월까지 인터뷰 창구를 3개 더 늘리고 직원도 추가로 고용할 계획으로, 현재 인터뷰 뒤 5일 정도의 비자발급 기간을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여행사 사장은 "인터뷰 뒤 5일 안에 비자 발급을 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현재 비자 신청을 한 지 인터뷰를 받을 때까지 2~3개월이나 걸린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다.
사실 미 대사관이 따로 인터뷰 시설을 늘리지 않는 한 인터넷을 통한 인터뷰 예약은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다.
알터 총영사는 "현재 미 대사관 건물이 너무 좁다. 다른 곳에 크게 지으면 하루 2500명을 처리할 수 있고 대기 시간도 3분의 1이상 단축할 수 있다"며 현재의 미 대사관 공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지방 대도시에서도 비자 인터뷰를 하면, 서울로 집중되는 인원을 분산시킬 수 있고 지방 거주자들의 불편도 덜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지방에 인터뷰 시설을 만들려면 보안 비용 등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결국 미 대사관은 현재 대사관 건물 규모가 좁다며 한국 정부가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의 신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인 지방 인터뷰 시설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영국에 이어 2번째 규모로 파병하는 한국이 대 테러 전쟁 정책의 하나로 실시하는 미 비자 발급 요건 강화 조치를 그대로 적용받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에게 비자 면제국으로 지정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나 오히려 혹을 더 붙인 셈이 됐다.
기존 한국인 신청자의 65%가 비자 인터뷰를 하는 데도 대기 기간이 2~3개월 걸렸는데, 인터뷰 대상자가 95%로 늘어나면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 대사관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모두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철군의 도미노 속에 거꾸로된 예외적인 선택을 한 한국의 경우에 왜 미국이 대 테러 정책으로 실시하는 국경 보안 강화조치의 예외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미 대사관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기존 미국의 비자 면제국에게는 추가로 더 강화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한국이 비자 면제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비자 면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비자 거부율이 3% 미만이어야 하고, 불법 체류자가 적어야 한다"며 "한국의 비자 거부율은 5%가 넘는다. 또 불법 체류자 숫자도 미국내 주요 국가 국민 가운데 10~15위 안에 든다"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특히 "9·11 테러 이후 비자 면제 국가가 새로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아르헨티나의 경우 비자 면제국에서 제외됐고, 벨기에의 경우에는 기계인식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한국이 비자면제 국가가 될 가능성은 당분간 전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