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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격전지를 가다②]순천·곡성 민심은 3선 도전 이정현 안아줄까
-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이정현 의원이 예산을 많이 따왔지. 누가 그만큼 예산을 받아올 수 있을까 싶기도 혀”(아랫장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허 모씨)“전작에 국정교과서 야그 듣고는 못 쓰겠다 싶든디. 처음에는 사람이 괜찮다 싶었는디 별수 없구나, 이 사람은 우리랑 생각이 다르구나 싶어이”(남정동에서 거주하는 52세 김 모씨)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26년만에 보수정당 깃발을 꽂은 순천·곡성은 호남권에서도 유일한 여당 지역구다. 덕분에 이 의원은 한순간에 지역주의 타파 정치인으로 올라섰다. 22일 찾은 전남 순천·곡성은 그 흔한 예비후보 홍보용 플랜카드도 보이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곳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야당 텃밭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이 의원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야권 텃밭에서 혈혈단신 뛰어든데 대해 쉽지 않다는 점을 토로하면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순천 여수 광양을 포함한 전남 동부권, 나아가 호남에 할일이 많다”면서 ‘이정현은 인물이 아니다. 일꾼이다’라는 생각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전거를 타고 민심 탐방을 하고 있다. 그의 친서민적인 모습은 순천 시민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택시운전사 강 모(71세, 남)씨는 “이정현 의원이 소통을 참 잘하더라”라면서 “순천에 내려오면 역전이나 터미널에 온다. 올때 항상 자전거를 타고 온다. 기사들이랑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 하면서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집권여당 실세로 그가 예산확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높다. 왕지동에 거주하는 허 모(52세, 남)씨는 “아무래도 예산 때문에 이번에도 새누리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여당의원이 처음으로 됐는데, 야당때보다 더 낫다는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이 의원은 의과대 유치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한데다 특히 국정교과서 등 지역정서와 정반대되는 발언들을 쏟아내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연향동에서 거주 중인 최 모(47세, 남)씨는 “이정현 의원의 역사교과서 발언을 보고 나서 정치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면서 “과장되고 본인이 의도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몸담고 있는 정부 여당을 생각했을 때는 어쩔 수 없겠구나 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서갑원 전 더민주 의원과 노관규 전 순천시장이 유력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친노인사인 서 전 의원은 지난 17·18대 국회의원을 이곳에서 지냈다. 하지만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는 2011년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2013년 특별복권된 뒤 7·30 재보선 때 명예회복에 나섰지만 결국 이 의원에게 패배했다. 서 전 의원은 최근 아침마다 2시간씩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야권 분열과 더불어 새누리당에게 지역구를 뺏긴데에 대한 사죄하는 마음을 담았다. 벌써 한달이 넘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시민들도 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연향동에서 한약국을 운영 중인 최 모씨는 “처음에는 선거철때마다 으레 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또 며칠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요즘 날씨도 추운데 누가 보든 안 보든 아침마다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뽑아줄테니 그만하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노 전 순천시장도 순천만 정원을 기획·유치한 장본인으로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그가 시장을 중도사퇴한데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남아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노 후보 대신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당선된 것도 그에 대한 순천시민의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기계정비업을 하고 있는 이 모(34세, 남)씨는 “순천만정원 박람회 텃밭을 가꾼게 노관규 전 시장이다. 시장 다 끝나고 국회의원 했으면 좋았을텐데 중간에 그만둬서 말들이 많았다”면서 “그래도 노관규가 다시 나온다면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그래도 노관규’라는 깃발을 꽂은 배낭을 메고 지역 민심을 듣고 있다.노 전 시장은 “주변에서는 탈당하라는 의견도 많지만 여전히 고민 중이다. 실제로 정치활동 한 이후 단 한번도 당을 옮겨본 적이 없다.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속내를 밝혔다. 노 전시장이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표가 분산되면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혜택을 볼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순천·곡성(30만9727명)이 인구 초과로 선거구 획정시 곡성이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곡성이 고향인 이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역의원인 김광진 비례대표 의원도 출사표를 던졌다.지난 10일 김광진 의원은 이번 의정보고회를 통해 순천이 키운 국회의원이 이제 순천 발전과 그에 따른 비젼을 제시하여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대 청년과 40대 장년 그리고 70대 노년까지 주민 모두가 행복하고, 농촌과 원도심 등을 비롯한 순천, 곡성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관광분야 ‘247 프로젝트’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 '응팔 리마인드', 당신이 놓친 사람 '성동일'
- ‘응답하라 1988’ 성동일.[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끝났어도 끝난 게 아니다. 재탕, 삼탕으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한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종영했지만 대중의 마음에선 여전히 ‘온에어’인 분위기다. 이른바 ‘응팔 리마인드’. 다시 보니 더 잘 보이는, 또 보니 미쳐 몰랐던 ‘응팔’ 감성, 그 안에 당신이 놓친 사람 성동일이 있다.◇88년도 아버지, 이 시대 부모를 울렸다여전히 어디서든 ‘응팔’ 얘기다. 마지막을 시끄럽게 달군 ‘어남택’과 ‘어남류’는 사그라들었다. ‘기승전남편’의 거품이 사라지니 ‘진짜’가 남았다. ‘응팔’의 알맹이는 바로 그 시대 어른들, 기성세대였다. 그 중심에 성동일이 있었다.극중 이름도 성동일. 그에겐 ‘뚱뚱한 여동생 둘’이 있고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서 세탁소 일을 하는 큰 형이 있다. 한일은행에 30년 몸 담은 모범가장이다. ‘만년 대리’와 ‘빚보증’이라는 말에 학을 떼는 삶의 무게가 무거운 남편이다. ‘양념 꼬막’과 ‘소주’ 한 병에서 행복을 찾는다. 쓸데 없이 마음이 약해 ‘쓸데 없는 물건 사기’가 특기다. ‘염병’과 ‘니기럴것’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불 같은 성격의 아빠여도 다 큰 아들과 딸들에게 ‘뽀뽀하기’를 즐기는 정 많은 집안의 대들보다. 햇빛도 제대로 비추지 않는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동일의 집엔 활기가 넘쳤다.성동일은 1980년대 전형적인 아버지를 연기했다. 집안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모습은 책임감 강했던 이 세상 모든 아버지와 닮았다. 표현은 서툴러도 자식과 아내 사랑은 일등이었던 속 깊은 모습도 마찬가지. 현금 든 월급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아내에게 건네주던 날엔 움츠러든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올림픽 복권 당첨으로 벼락 부자가 된 김성균, 수 천만원 상금을 타오는 천재 바둑기사를 아들로 둔 최무성, 학교가 일터인 학생주임 유재명보다 ‘보편적인 아버지상’에 맞닿아있는 인물이었다. 닳고 단 구두 뒤축을 보여준 한 장면 만으로 ‘응팔’을 사랑한 아버지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그들의 청춘은 새 것으로 갈면 그만인 구두 뒤축보다도 못한 신세였던 터. 40~60대 남성 시청자 사이에서 성동일에 대한 감정 이입이 깊었다.◇아버지, 이 시대 또 다른 아들을 위하여자녀 세대는 아버지를 강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오랜 세월을 살았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상처는 무뎌지고 굳은살은 단단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건 착각이었다. 2화 ‘당신이 나에 대해 착각하는 한가지’에서 동일은 ‘아버지’라는 이름에 조금 다른 시선을 제시해줬다. ‘아들’이었다. 극중 동일의 엄마, 덕선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에피소드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실제로 성동일이 드라마 종영 후 모친상을 당한 비보가 전해져 드라마 속 에피소드는 더욱 회자되고 있다. 할머니를 사랑한 덕선, 보라와 노을이는 울었다. 마음이 느끼는대로 그 슬픔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아버지는 그럴 수 없었다. 맞아야 할 손님이 많았다. 세상이 무너질 듯 힘들어도 티낼 수 없었다. 흔들리면 안 된다는 가장의 책임감이 컸다. 그도 아들이었다. 형이 있는 동생이었고, 여동생이 있는 오빠였다. 못 볼 줄 알았던 형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동일은 아이처럼 울었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라고 오열하던 동일을 보며 많은 아버지들이 힘들었을 터. 옆에서 함께 보는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약한 모습을 들켜선 안 될 그 또한 아버지였기에 눈물을 삼켰다.‘어른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들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텼을 뿐이다. 어른도 아프다.’ 이 내레이션은 이 시대 모든 아들이자 아버지의 고충을 대변해줬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제일로다 보고잡은 게 엄마지, 아따 우리 엄마 보고잡다”라는 동일의 말은 ‘가장 꾸밈 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움직인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응팔’ 성동일.◇감사패, 이 시대 부모를 위한 헌사제작진이 19화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편에서 동일에 대한 단상을 특별하게 그려낸 일도 의미가 깊었다. 동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이 시대 모든 부모를 위한 헌사를 마련했다. 동일의 명예퇴직이었다.직장에 몸 바친 건 세월만이 아니었다. 그의 열정과 젊음이었고 때론 죽도록 도망치고 싶은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명예롭게 회사 떠나는 일을 강요받은 아버지는 ‘두둑한 퇴직금 봉투’만 생각했다. 그렇게 일했으면 그만 당당해도 될 텐데, 아버지는 끝까지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자랑스럽다’ 말해준 건 수 십 분만에 끝난 퇴임식. 감사패 하나 없이 꽃다발만 받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아버지를 돈 벌어오는 기계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요즘이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땐 돈이 필요해서고, 아빠가 보고 싶을 땐 용돈이 급할 때다. 참 표현 못하는 무뚝뚝한 아빠도 서운하지만, 그런 아빠를 마냥 귀찮고 어려운 존재로 치부하는 자식은 더 밉다. ‘응팔’의 동일에게 덕선, 보라, 노을이 만들어준 감사패에 너나할 것 없이 가슴을 친 이유다.“아빠의 딸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서, 좋아하시는 술 한잔 함께 마셔드리지 못해서, 먼저 안아드리지 못해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서 그리고 아빠라는 그 이름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라며 “그럼에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라에겐 존경하는 아빠, 덕선에겐 친구 같은 아빠 그리고 노을에겐 든든한 아빠가 되어주셨기에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는 문구는 사실 모든 자녀가 모든 부모에게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1988년의 동일이 요즘 자녀세대에게 한 소리 한다면 “염병할 그 쑥스러운 게 뭐다고 그 마음을 다 표현 못하고 사능가”라고 하겠지만 그는 다른 얘길 했다.“국화꽃도 한철이고 열흘 붉은 꽃잎 없다고 인제 나가 정신 좀 차리고 뭐 좀 해 볼라고헝께 그것도 사치인가보네. 요로코롬 이러다가 내 인생 다 가분가봅소. 나가 오늘 참말로 큰 거 하나 깨달았네. 꽃잎이 지면 다 끝난줄알았어. 근디 그 꽃잎이 지고나면 또 열매가 맺히더라고. 내가 그걸 까먹어부렀어. 내 꽃잎이 진다고 서럽고 아쉬워만 했지. 내가 그걸 못 봤네. 회사에서 내가 짤리기는 했서도 안했는가. 참말로 자식 농사만큼은 참말로, 참말로 겁나게 잘 지었어. 이런 부모 마음을 자식들이 언젠가는 응답할 것이네. 고맙다고.”자식으로선 절대 헤아릴 수 없을 부모의 마음을 보여준 성동일. 40~60대 아버지에겐 거울처럼, 10~30대 자녀들에겐 본보기처럼 역할한 성동일은 ‘응팔’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 1980년대 치열했던 현실을 뚫어본 8인의 눈
- 오치균의 ‘인체’(사진=가나아트센터).[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리얼리즘 미술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II: 리얼리즘의 복권’ 전이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이란 주제로 여는 두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권순철,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이종구, 오치균 등의 주요작품 100점이 등장한다. 권순철의 ‘갯펄 아낙’, 신학철의 ‘한국현대사: 초혼곡’, 민정기의 ‘알맹이’, 임옥상의 ‘땅 4’, 이종구의 ‘종자’, 고영훈의 ‘새’, 오치균의 ‘인체’ 등이다. 가나아트센터는 “예술에서 리얼리티의 재현이란 단순히 실재하는 대상의 외관을 충실히 모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포함하는 정황에 대한 감각과 인식 전부를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이라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리얼리즘의 면면을 살피고 단순히 한 시대나 사회에 한정한 흐름이 아닌 우리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주요 흐름을 살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20-1020.
- `응답하라 1988` 질주했던 포니..추억의 자동차 '재조명'
-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지난주 최고 시청률 21%를 넘어서며 종방영했다. 가족과 첫사랑, 대학가요제, 1980년대 TV광고 등 다양한 추억들이 응팔의 흥행 이유로 손꼽힌다. 특히 기존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다르게 응팔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독 많았다. 1980년대 말이 한국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대중화가 시작된 본격적인 시기였기 때문이다.1988년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03만5448만대로 지난해 말 2098만9885대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당시 인구가 4203만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4.8%만이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던 시절이다. 이후 자동차 시장은 급격히 발전했고 1995년 국내 승용차 생산규모가 200만대를 돌파, 한국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으로 자리잡게됐다.◇응팔 젊은 주인공의 그때 그차…‘르망·코란도·셀시오’까칠한 매력의 보라(류혜영 분)가 몇달간 쓰기로 했다며 가져온 대학 선배의 차는 대우자동차의 르망이다. 대우차는 1986년을 전후로 월드카 생산이라는 계획을 내세운 후 르망을 생산했다. 아버지가 타던 자동차가 아니라 젊은 층이 타는 차, 국산차가 아니라 세계의 자동차와 경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차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묵직하게 가라앉는 속도감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엔진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불만도 있었다. 르망은 당시 혁신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로 관심을 받았고, 1997년 단종될 때까지 53만6254대의 승용차 판매량과 수출 51만6099대라는 기록을 세웠다.르망.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운명의 또 다른 이름은 타이밍”이라는 명대사를 쏟아낸 정환(류준열 분)의 자동차 신은 여심을 자극한 장면이다. 덕선(혜리 분)을 놓친 후 정환이 빗속에서 타고 있던 차는 쌍용자동차(003620)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란도다.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정환과 잘어울리는 듬직한 차다. 1983년에 지프에서 라이센스를 사들여 국내 생산을 시작했고, 2세대 코란도는 199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때 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한국GM의 전신)에 인수돼 대우차의 엠블럼을 달고 판매되기도 했다. 쌍용차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코란도라는 이름을 주력 SUV 모델군에 쓰고 있다. 정환이 코란도에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비하인드 컷으로 공개됐다. 출처=CJ엔터테인먼트 인스타그램덕선의 마음을 뺏아간 최택(박보검 분)은 바둑 빼고 모든게 서툴다. 택이는 무엇보다 운전을 못하고 주차을 더 못한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도요타배 바둑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도요타의 고급형 세단 ‘셀시오’다. 일본에서는 셀시오로 팔렸지만, 도요타가 1989년 런칭한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의 1세대 LS로도 유명하다. 응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차종 가운데 유일한 수입차다. 국내에 수입차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도 이쯤이다. 수입자유화 정책은 1980년대 들어서서 단계적으로 시작됐다. 전 차종에 대한 수입 자유화는 1988년 4월에 실시됐고, 두 달에 226대의 차량이 수입됐다. 약 20년 흐른 2015년 국내 수입차 판매대수는 한해 24만3900대로, 점유율은 15.5%에 달한다. 등록 대수로 계산하면 138만9000대로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택이 도요타 셀시오를 주차하는 장면. 사진=응답하라1988 캡쳐◇ 중산층의 꿈 ‘포니’, 소형차의 시대 ‘프라이드’응팔에서 자동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성균(김성균 분)이다. 복권 당첨으로 부자가 된 성균의 애마는 1세대 포니를 부분 변경하여 1982년에 출시된 포니2다. 포니는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이자 세계 시장에 현대차(005380)라는 브랜드를 알린 첫 번째 모델로 평가된다. 1980년대 포니는 중산층의 꿈이었다. 1976년 2월 울산공장에서 첫 출고됐고, 첫해에 1만726대가 팔리면서 국내 승용차시장 점유율 43.6%를 차지하는 인기차로 떠올랐다. 포니 2세대의 승용 모델은 1988년 4월에 단종됐고 1990년 1월까지 36만3598대를 생산하며 1세대 판매량(29만7903대)을 앞지르기도 했다.현대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륜구동방식(FF)을 채택한 포니와 엑셀을 시장에 선보인 후 대형승용차 그랜저를 출시했다. 이어 1988년 나온 ‘뉴쏘나타’는 국내외에서 큰인기를 얻어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포니. 자료=한국자동차산업협회성균이 생일날 고른 선물은 기아차(000270)의 프라이드다. 미란(라미란 분)이 거금 2000만원을 주고 사고 싶은 차를 사라고 했지만, 짠돌이 성균은 소형차인 프라이드 팝을 그것도 중고차로 사온다. 1987년 기아차가 내놓은 프라이드는 소형차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가형 모델의 가격은 당시 300만원대였으며 대우차 티코와 경쟁했다. 응팔에서 자동차는 가족들이 즐겨보는 TV광고로도 자주 등장했다. 동일(성동일 분)의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에는 기아차 캐피탈의 TV 광고가 나온다다. 1989년에 출시된 모델로 콩코드의 차체를 활용해 개발한 준중형 세단이다. 캐피탈에는 1.5리터 B5 ECCS SOHC 엔진이 탑재돼 최고 출력이 95마력에 달했고,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13.5초가 걸렸다. 무성(최무성 분)이 아들 택이의 건강을 걱정하며 멍하니 바라보는 TV광고는 엑셀 2세대 광고다. 다만 극중 배경이 1988년 가을이었고, 2세대 엑셀은 1989년 4월 생산됐기 때문에 옥의 티라고 볼 수 있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신문]산업부 '관치 에너지펀드' 논란
-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다음은 21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 -산업부 ‘관치 에너지펀드’ 논란 -글로벌 경제 매서운 한파에 꽁꽁 얼어버린 아시아 증시 -후진 정치 부추기는 국회선진화법 -‘인생역전’ 복권 부자가 더 산다 △줌인-“사실상 원금 보장이라더니..‘닷새만에 말바꿔’”..임종룡 금융위원장 △종합 -홍콩발 쇼크에 외국인 매도까지..‘바닥’ 못찾는 코스피 -유치원 ‘원비 인상’ 공문 발송 보육비 폭탄 결국 학부모에게 △후진정치 부추기는 국회 선진화법 -여 “다수결원칙 지켜라” -야 “자동부의제 바꿔라”-선진화법 장단점은 ‘국회폭력 추방 vs 입법기능 마비’ △정치·경제 -여 상향식 공천 VS 야 인재 영입..총선 흥행몰이 전략 -“일방적 주장에 시간 끌 수 없다” -국민의 당 오늘 원내대표 합의 추대 △금융 -카드업계 선거철마다 ‘수수료율 논란’ 속앓이 -은행권 모바일 뱅킹 해외 영토확장 경쟁 -통신료 잘낸 사회초년생 신용등급 올라간다 △Industry & Company -초저유가 직격탄..알뜰 주유소 생존위협 -알뜰주유소 자립화방안 잠정 보류 -올림픽 특수 잡아라..카메라 신모델 봇물 -대한항공·아시아나 조종사 노사 임금협상 결렬 -“연내 10나노급 D램 개발 프리미엄제품 판매 집중” △산업 -조성진 LG전자 사장 “5년내 초프리미엄 톱5 오른다” -KT, 내달부터 ‘접시없는 위성방송’ 스타트△소비자생활 -발암물질 논란에..햄 ‘설선물 1위’ 빼앗기나 -수입주류·과일값 한국이 제일 비싸 -명절증후군, 호텔서 날려버려요 △Auto&Life -응답하라, 1988 질주했던 포니여 -고속도로·오프로드..어디서나 넘치는 힘 △라이프&스타일 -백팩, 오피스레이디 마음을 열다 -학교가는 조카 세뱃돈 대신 책가방 사줄까△Culture & Sports -10년만에 돌아온 우릴 보러 와요~ -세대 아우르고 장르 초월한 ‘국가대표 문화상’-뱀파이어의 사랑 스크린서 무대로 △스포츠 -김효주처럼 스윙하고 싶으세요? -‘강자들의 무덤’ 된 호주 오픈 테니스 -‘전 종목 17점 이상’ 손연재, 적수가 없었다 -야구 용병 치솟는 몸값 국내 엔트리 입지 좁아져△Stock Market -신평사 VS 증권사..신세계 전망 엇박자 -셀트리온 뛴다고 국산당 웃는 이유 -상장폐지 앞둔 승화 프리텍, 시총 2800억 ’헉‘△마켓 in -대상 ‘되찾은 라이신’ 덕 좀 보나 -‘2조원 굴릴’ 경찰 공제회 최고 투자책임장 또 경찰? -파이시티-상암DMC 매각난항 △글로벌마켓 -시진핑, 경제위기에도 ‘중국굴기’ 속도 -위기의 아제르바이잔 ‘해외자본 통제’ 초강수 -글로벌 리더 2500명 ‘4차 산업혁명’ 길 찾는다 -日 은행, 해외 송금 수수료 확 낮춘다 -亞 오일기업, 저유가에 ‘몸집 줄이기’△사회 -고용부 “인턴보호 가이드라인 만들어 ‘열정페이’ 없앤다” -박유하 교수 “법원 못믿어, 국민참여재판 신청” -‘인분교수’ 항소심서 “징역 12년 너무 무겁다” 주장 △부동산 -‘공급폭탄’ 부메랑 맞은 오피스텔..가격·수익률 내리막 -올해 서울 강북권 아파트 1만7646가구 쏟아져
- [응팔 신드롬]28년을 넘은 응답, '2016 사회'를 돌아보다②
-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응답하라 1988’은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징크스를 다시 한 번 깼다. ‘응답하라 1988’은 시청률로 케이블TV의 새 역사를 썼고 케이블 채널로 중장년층의 유입을 이끌었다. 지금의 40·50대나 기억할 법한 30년전 이야기가 ‘사랑’ ‘가족애’ ‘추억’과 어우러져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완성됐다. 그 시대 음악이 다시 울려퍼지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드라마 한 편에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복고열풍이 거세게 일었다. ‘응답하라 1988’이 남긴 것을 살펴봤다.‘응답하라 1988’◇1988 성보라의 데모, 2015 김영삼의 서거1987년 ‘전두환 정권’의 끝자락.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거국적인 학생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1988년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2학년생으로 그려진 성보라(류혜영 분)는 그 중심에 있었다. 늦은 밤 성보라를 미행하는 무장 경찰들의 모습, “데모하다가 잡혀가불면 네 인생에 빨간줄 생기고 집안도 다 날라가는 거야”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성보라 아버지(성동일 분)의 모습은 당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40~50대 시청자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에피소드에 크게 공감했다. 꼭 이 시기 정치인생에 역변의 2년을 보낸 전 김영상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서거한 상황과 맞물려 1980년대 정치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자유투쟁에 혈안인 청년의 모습이 어떤 어른의 시선엔 “서울대씩이나 가서 공부는 안하고 헛지꺼리만 한다”고 비춰지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아이 사람아,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혼을 내나”라던 성보라 아버지의 자조 섞인 말은 사회에 맞서지 못해 자녀세대에 고통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죄의식이기도 했다. 그 시대 부조리함은 3화에서 그려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났다. 1988년 10월 교도소 이송 중 탈주해 인질극을 펼쳤던 ‘지강헌 탈주 사건’이 다뤄졌다. 500만원 절도를 저지른 자신들보다 70억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형기가 더 짧다는 판결에 불만을 갖고 벌어진 사건이었다. 진압과정에서 자살하거나 사살된 이들은 TV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지강헌이 뱉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희대의 명언으로 남았다. 드라마에서도 당시 뉴스 보도를 인용해 “우리사회의 부조리함을 극명하게 드러낸 비극이 됐다”고 회상했다.‘응답하라 1988’◇1988의 라이징스타 2016의 레전드당시 사회를 바꾼 중심엔 ‘문화계 아이콘’도 있었다. 돌 하나로 나라판을 들썩이게 한 이창호나 이세돌과 같은 ‘천재 바둑기사’가 있었다. 1989년 데뷔한 가수 이승환, 1988년 MBC 대학가요제로 가요계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당시 라이징스타는 28년이 지난 지금 ‘레전드’가 됐다. 새삼 다시 조명되고 있는 당시 스타들은 현대에 이르러 재차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최근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세돌은 이 드라마로 1980년대 바둑 열풍이 흥미를 끌고 있는 현실에 기분 좋은 소감을 전했다. 이승환은 지금 세대는 모를 자신의 지나간 영광을 재현해준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촬영장에 밥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추억하는 법도 1988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대학가요제를 보는 친구들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무대가 시작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저 팀이 우승한다에 한표”라고 외치던 7화는 신해철에 대한 헌사와도 같았다. 아이돌 중심의 요즘 노래, 바둑이 국민적인 관심사에서 멀어진 요즘 스포츠에서 이 드라마가 1988년을 다룬 방법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응답하라 1988’◇1988의 쌍문동, 2016년의 대치동197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316대지 23만 9224㎡에 14층 규모 건물 28개 동으로 건설된 은마 아파트. 1979년 9월 3일 준공돼 강남구에서 개포 1단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단지였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민간건설업자가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분양하는 아파트였지만 그런 목적을 지향하기엔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규모가 컸고, 분양가격도 2000만원을 넘어 무주택 서민을 외면했다는 비난도 나왔다. 1화에서 쌍문동 골목 다섯 가족의 대화에 등장한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1988년 당시 부동산 분위기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은마아파트가 딱 5000만원인데 그거 사요 그거”라는 말에 “무슨 아파트가 5000만원 씩이나 하노”라며 뒤로 놀라 넘어가는 모습은 현재를 사는 시청자를 더욱 놀랍게 만든 대목. 현재 은마아파트는 10억원이 넘는 매매가에 거래되고 있다.1988년과 2016년의 괴리감이 씁쓸함을 던지기도 했다. 은마아파트가 5000만원 하던 시절, 힘든 가운데 살아가던 쌍문동 이웃들에게선 지금으로선 찾아보기 힘든 사람 간에 정이 숨쉬었다. 수 천 만원 돈을 빌려주는 일도 “있는 사람이 돕는거지”라며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옆집에 내 아이를 불쑥 맡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남의 집 문턱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던 일도 다 정 때문에 가능했다. 은마아파트가 10억원이 넘는 요즘엔 강남이든 강북이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내가 제일 힘들어’라며 자기 살기 바쁘다고들 한다. 빈부격차보다 심각한 ‘관계의 격차’에 2016년 사회가 골병이 들고 있다는 무언의 합의에 경각심을 울렸다.◇1988의 골드스타, 2016년의 LG톼사 후 대리점을 차려 돈을 버는 김성균(김성균 분). 그가 매일 입고 다니는 옷엔 ‘Goldstar’라는 노란색 알파벳이 수놓아져있다. 금성사의 로고다. 당시 금성사 대리점장은 돈이 꽤 있어야 차릴 수 있었다. 올림픽 복권에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성균이라 가능한 섬세한 설정이었다. 성균의 집엔 ‘추억의 백색가전’인 한국형 워크맨 아하, 무선전화기, PC모니터 보다 작은 TV,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이조식 세탁기 등 금성사 대표 전자제품이 곳곳에 있었다. 금성사는 1958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공업 회사로 설립됐다. 1995년 1월 사명을 개명한 뒤 지금의 ‘그룹’으로 성장한 LG의 전신이다. 1959년 총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해 1982년 총자본 750억원, 매출액 4500억원, 종사자수 9610명, 수출액 2억 달러 등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삼성, 현대를 비롯해 LG 등 지금의 경제구도를 만든 한 축으로 존재하는 그룹들은 한국 전쟁 후 폐허가 된 국가적인 위기에서 번혁의 입지를 선점했다. 이 드라마를 본 장년층 시청자에겐 ‘내가 저렇게 일했어’ ‘저땐 저렇게 회사가 컸지’라고 회상할 수 있었던 셈.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금성사의 히트 카피는 그 기억여행에 정점을 찍어준 ‘디테일’이었다. ▶ 관련기사 ◀☞ [응팔 신드롬]경제 불황 속 486의 지갑이 응답했다①☞ [응팔 신드롬]1980's 감성, 메마른 문화를 구원하다③☞ [응팔 신드롬]'자고 나니 억소리'..쌍문동 ★들이 탄생했다④☞ 추사랑, 전현무와 만남에 '연예계 시츄 라인' 막내 등극☞ [포토]'미스 콜롬비아' 구티에레스 pt1 '거울에 비친 미녀'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교수 타계(종합)
- 15일 타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사진=신영복 교수 공식 홈페이지)[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1985년 8월 계수님께 일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의 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성찰의 메시지를 전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타계했다. 향년 75세.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서울 양천구 목동의 자택에서 투병 중이었다. 최근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다.경남 밀양이 고향인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88년 8.15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20년 20일을 복역했다. 신 교수는 출소 후 감옥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썼던 엽서와 글들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묶어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전도 유망했던 경제학도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수로 살면서 겪었던 내면의 성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담은 책은 이내 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며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의 책으로 독자들도 만났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담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사면복권 됐으며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신 교수의 필체로 만든 ‘신영복체’가 시중에 나오기도 했다.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한 이후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지만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 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암 투병 소식은 지난해 4월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단 유작 ‘담론’을 출간하면서 공개됐다. ‘담론’은 ‘시경’,‘주역’,‘논어’, ‘맹자’,‘한비자’ 등의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돌아본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감옥 생활에서 체험한 배움과 깨달음을 엮은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한 책으로 신 교수의 사상을 집대성했다. ‘담론’ 발간 이후 사실상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고인은 지난해 7월 만해상 수감을 통해 투병 중인 심정을 담담히 전했다.“이번의 수상은 나로서는 기쁜 것이기보다는 상처가 되살아나는 아픔이었습니다. 행여 모순의 현장과 아픔의 유역을 비켜가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상을 받기보다는 벌을 받는 것으로 일생을 끝마치려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벌을 받고 떠나는 삶이 우리시대의 수많은 비극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덜 빚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빈소는 성공회대내 성공회성당에 마련할 예정이며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18일 오전 치뤄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