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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인)싸이더스 노종윤 이사
- [edaily 전설리기자] "7연타석 홈런에 도전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씨큐리콥(052640)의 자회사인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요즈음 싱글벙글이다. 한국 영화 제작사상 처음으로 연속 4편의 영화를 흥행시킨데 이어 7편 연속 흥행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
싸이더스는 지난해 `살인의 추억`으로 관객 540만명 동원해 대박을 터뜨린데 이어 `싱글즈`(220만명), `말죽거리 잔혹사`(310만명), `범죄의 재구성`(220만명)까지 연속 4편의 영화를 흥행에 성공시켰다. 이는 한국 영화 사상 전례없는 기록. 4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섰음은 물론이다.
노 이사는 "앞으로 개봉될 예정인 3편의 영화도 기대되는 작품들로 7연타 기록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은 세 편의 영화는 인터넷 소설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귀여니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오는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늑대의 유혹`(쇼박스 배급),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인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CJ엔터테인(049370)먼트 배급)과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CJ엔터테인먼트 배급).
노 이사의 입가에 웃음이 머무는 이유는 이 뿐 만이 아니다. 연속된 흥행 성공으로 싸이더스의 재무구조도 건전해진 것도 큰 이유. 영화 4편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플레너스와 분리하면서 떠안았던 막대한 부채를 되갚았고 이에 따라 2년만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올초 코스닥 등록사인 씨큐리콥의 100% 자회사로 편입한 싸이더스는 영화 `늑대의 유혹`이 개봉되는 23일에 맞춰 모회사인 씨큐리콥의 이름까지 싸이더스로 바꿔 완전한 통합을 이룰 예정이다.
노 이사는 "씨큐리콥의 또 다른 자회사인 모바일 컨텐츠 제공업체 올엠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통신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싸이더스를 이처럼 안정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데는 한국 영화계에서 16년간 잔뼈가 굵은 노 이사의 숨은 내공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고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꿔온 노 이사는 대학시절 `영화마당 우리` 활동을 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5기 출신인 그는 이후 감독지망생에서 프로듀서로 변신, 삼성물산 드림박스 사업부 영화팀, 삼성영상사업단 영화사업부 한국 영화팀을 거치면서 현재 싸이더스 영상본부 이사에 이르기까지 16년간 한국 영화 산업을 키우는 외길을 걸어왔다.
`비트` `초록물고기` `처녀들의 저녁식사` `약속` `태양은 없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쉬리` `봄날은 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한국 영화사의 계보를 잇는 낯익은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프로듀서로서 그의 철학은 분명하고 정직하다. 컨텐츠에 대한 기획력만 좋으면 자금이 적극적으로 들어온다는 것. 그는 "좋은 기획력이 경쟁력"이라며 "좋은 기획을 위해서는 좋은 감독, 좋은 작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3년전 외교통상부에서 스크린쿼터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도 노 이사는 이같은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스크린쿼터 축소하면서 시장이 작아지면 그만큼 지원금을 주겠다"는 외통부의 논리에 "스크린 쿼터로 시장이 지켜져야 하고 시장에서 나온 건전한 자본들이 건전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맞섰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여겨졌던 영화 제작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축소하는 기제도 많아져 영화 산업의 힘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 등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기획 단계부터 해외쪽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용이해졌습니다. 프리세일즈(pre-sales)나 해외 펀딩을 통해서 리스크를 헷징하는 거죠"
이같은 맥락에서 싸이더스도 올 연말 개봉할 예정인 설경구 주연의 영화 `역도산`의 한·일 공동 제작을 추진하기 위해 현재 일본 메이저급 영화사들과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그는 밝혔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해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아시아에서 영화 컨텐츠를 제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국가가 현재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한 풀 꺾였고, 중국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산업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아직 멀었죠. 지금이 중요한 타이밍입니다. 좋은 인력들을 유입하면서 시장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국내 영화 관객의 수준도 우리 영화 경쟁력의 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관객은 리트머스 종이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감성이 짙어서 `드라마` 없이 기획적인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단호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여지없이 성공하기 때문에 헐리우드도 우리나라 시장에서의 개봉을 먼저 추진하며 중요한 시험대로 여기고 있습니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 시장이 질적, 양적 성장으로 산업적인 기반을 마련해 후배 영화인들이 좀 더 안정적이고 편하게 영화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아시아·유럽 시장에서 한국 영화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중견 영화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노종윤 이사 약력
82년 상문고등학교 졸업
86년 숭실대학교 졸업
89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졸업
89년 동서 영화사 기획실/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 공동대표 및 기획실장
93년 삼성물산 드림박스사업부 영화팀
95년 삼성영상사업단 영화사업부 한국영화팀
99년 삼부 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00년~ 싸이더스 영상본부 이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 (자료)민노당 김혜경 대표 취임사·문답
- [edaily 조용만기자] 다음은 민주노동당이 6일 밝힌 김혜경 민주노동당 신임 대표 취임사 및 문답자료
◇ 당 대표 취임사
사랑하는 당원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자랑스러운 민주노동당 당대표 김혜경입니다.
이 자리에 선 지금 30 여 년 동안 창신동 골짜기에서, 난곡 산꼭대기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창당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온 당원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들 모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는 수권정당으로의 도약이라는 막중한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진보정당 최초의원내진출, 그리고 명실상부한 제3당 도약이라는 성과는 소중합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이제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체감하면서 정치가 곧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지 여러분, 우리가 제3당 하려고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은 아닙니다. 의석 10개 차지하려고 121명의 지역구 후보들이 패배가 눈에 보이는 싸움에 불나비처럼 뛰어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노동해방, 민중해방이라는 가슴 사무치는 꿈이 고동치고 있으며, 우리들의 눈은 이미 통일조국의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수권정당으로 도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지 여러분 저 김혜경과 함께 6만 당원의 힘을 모아 2012년 집권을 향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눈과 가슴은 이미 집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이 가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비젼과 정책을 가다듬고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실천을 통해 국민들의 가슴속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자리 잡았을 때 비로소 국민들은 우리를 집권세력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우선, 원내와 원외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의 전형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원내에 진출한 우리 10명의 의원들, 누구보다도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사회 개혁의 상징, 투쟁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당원 여러분께서는 힘을 모아 주셔야 합니다. 단병호의원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상징이 되고, 최순영 의원은 무상교육 실현의 상징이 되며, 천영세의원은 언론 개혁의 상징이 되고, 심상정 의원은 부유세 도입과 조세개혁의 상징이 되며, 권영길의원은 자주외교와 통일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나가는 것, 바로 이것이 원내정치와 원외정치를 아우르는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대중정치입니다. 원외 투쟁으로 원내정치가 힘을 얻고, 원내 정치로 원외 투쟁이 활성화 되는 새로운 대중정치, 저 김혜경과 함께 당원의 힘을 모아 반드시 실현합시다.
당원 여러분!
집권을 위해서는 지역과 여성에 투자해야 합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2명으로는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청장 2명으로는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 시켜야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믿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보적 지방자치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국민들은 우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이르지 않습니다. 지역조직 활성화를 위해 재정적, 정책적 투자를 대폭 상향조정하고 2006년 지방자치 선거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갑시다. 2004년 중앙정치 판갈이에 이어 2006년에는 지방정치 판갈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 절반의 지지 없이 민주노동당은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성들과 함께 하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여성적인 구조와 정책을 가진 여성주의적인 정당이 되려고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주노동당은 주로 ‘아저씨’들이 지지하는 정당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저씨들만의 지지에 만족하지 맙시다.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아이들 아토피 걱정에 무얼 먹일지 몰라 울상 짓고 있는 주부들, 그리고 이 세상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며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들의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수다 떨면서 세상사를 걱정하고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북돋울 수 있는 씩씩한 언니들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17대 국회는 개원부터 파행입니다. 개혁을 실천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체, 개혁과 민생이라는 말마저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농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의 당대표로서 아무런 실천도 뒤따르지 않은 박근혜 대표와-정동영 전 당의장 간의 대표 회담 같은 언론 이벤트용 회담이 아니라 진정 민생과 개혁을 위해 각 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논의 할 것을 제안합니다. 진정 국민들을 두려워 할 줄 안다면 각 당 대표들은 즉각 저의 제안에 응할 것이라 믿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이 모든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은 무엇입니까. 바로 당의 통합과 단결입니다. 최고위원회를 운영하라는 당헌의 정신은 바로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통합과 단결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강령과 당헌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통합과 단결의 정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대표인 저를 비롯한 13인의 최고위원들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당원 여러분들께서도 이제 성장통을 앓고 난 후의 청년처럼 쑥쑥 자라나는 당을 만들어 가는 데 마음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당원 여러분!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내 주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 서민들은 우리에게 통합과 연대의 정신으로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해 혁신하라는 엄중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들과 깊이 논의하여 2012년 수권을 위해 직접적인 준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개혁의제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개혁을 위한 한국사회의 모든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뛰겠습니다. 너른 연대의 정신으로 한국사회의 개혁세력을 아울러 내겠습니다.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한 혁신의 길에 당원의 힘과 지혜를 믿고 의지해서 당당히 나가겠습니다. 당원 여러분 힘차게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 일문일답
- 소감은
▲지난 30여년 달동네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세월들이 주마들처럼 스쳐갑니다. 도한 민주노동당의 창당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까지 피와 땀을 흘려온 당원 동지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진보정당의 대표로서, 그리고 원내 제3당의 대표로서 노동자 서민들에게 희망의 정치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우선 민생과 개혁을 위한 5당 대표 회담을 제의합니다. 지난번 박근혜-정동영 회담은 언론용 이벤트 회담에 불고 했다는 것이 한달만에 드러났습니다. 진정 민생과 개혁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2012년 집권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국민들 앞에 진보정당이 그리는 한국사회의 미래와 비젼을 보여드리고 집권을 위해 우리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여성 정치인 육성,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약자가 믿고 의지하는 정당, 아니 그들 스스로가 참여하는 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 공직과 당직이 분리된 민주노동당에서 원내에 진출한 의원단과 관계를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헌 당규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됩니다. 민주노동당은 13인으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있고 의원단은 일상적으로 최고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최고위원회의 정신은 집단지도 체제인 만큼 이 정신이 올곧게 구현되리라고 봅니다.
- 경선 후유증 극복 방안?
▲성장통입니다. 성장하기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당 안에 특히 진보정당안에 다양한 노선이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러한 노선 경쟁이 한 분파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실현하고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기에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경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치열한 토론과 단일한 실천이 중요한데요, 최고위원회가 집단지도체제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 단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원외대표로서의 한계 어떻게 극복하실 계획이십니까?
▲당대표는 당대표입니다. 원내와 원외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당대표입니다. 진보정당에서 당대표가 원내냐 원외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대표의 지도력은 직선으로 저를 선택해 주신 6만 당원들과 당 지지자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 민주노동당이 이제 제도권에 진입했지만 당장 10석 갖고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원내에 진출한 우리 10명의 의원들, 누구보다도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사회 개혁의 상징, 투쟁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원외정치가 뒷받침 해 줘야 합니다. 원외 투쟁으로 원내정치가 힘을 얻고, 원내 정치로 원외 투쟁이 활성화 되는 새로운 대중정치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네 꿈을 펼쳐라… 청약통장으로
- [조선일보 제공] 서울 강남 아파트 평당가가 3000만원을 넘고, 수십만명이 몰린 주상복합 아파트에 몇 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소식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한숨만 쉬기보다는 내 형편에 맞는 전략을 짜고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직장 새내기나 서민들이라면 청약저축부터 가입, 내 집 마련의 꿈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청약저축 가입자를 위한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판교·파주·김포신도시 등 ‘2기 신도시’에는 청약저축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중소형 아파트에 저렴한 분양가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시간과 공간사’ 한광호 대표는 “청약저축은 정부가 무주택자에게 주는 특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청약할 수 있는 전국의 국민주택(민간건설 임대주택 포함)은 4만3843가구에 달한다. 수도권 물량은 민간 아파트 1606가구와 주택공사 공급분을 포함해 2만1914가구다. 향후 2~3년간 서울의 알짜 지역으로 꼽히는 장지·발산·마곡지구, 강남구 세곡동 등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는 서울 시내 9개 지구(81만평)에서도 공공 분양 또는 임대 아파트 2만 9500가구가 새로 지어질 예정이다.
주택공사도 2~3년 뒤 판교신도시(1만2000~1만6000가구), 충남 아산신도시(7000여가구), 파주신도시(4만7000가구) 등에 아파트를 줄줄이 내놓는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올 하반기 분양될 인천시 논현2지구 32평형, 고양시 일산2지구 30·33평형, 부천 소사, 용인 신갈, 용인 동백·보라지구 임대 주택 등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청약예금·청약부금은 민간 건설회사가 공급하는 아파트를 분양받는 반면, 청약저축은 대한주택공사, 지방도시개발공사가 짓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공공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 국민은행 등에서 판매하고 무주택 세대주라야 가입 자격이 생긴다. 매달 2만~10만원 범위 안에서 5000원 단위로 불입할 수 있다. 같은 1순위라도 불입금액,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우선 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빨리 가입, 최대 한도인 10만원까지 매달 불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가입 후 24개월 납입하면 1순위, 6개월 이상 납입하면 2순위가 된다.
청약저축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나중에 청약예금으로 갈아 탄 뒤 민영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게 장점. 청약예금은 전환이 불가능하다. 청약저축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주공이나 도시개발공사 공급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민간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짓기 때문에 교통 등 기반시설이 좋은 편이다. 특히 판교 신도시는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통해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를 평당 850만원선에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대박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청약저축은 청약예금·부금에 비해 가입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고, 청약 가능 물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당첨 확률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4월 말 현재, 청약예금, 청약부금 가입자는 각각 249만여명, 268만여명이지만 청약저축 가입자는 124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Exile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뱅크원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과 시티그룹의 샌포드 웨일(Sanford I. Weill) 이야기를 `Mentor`라는 제목으로 지난 1월29일 기사화한 후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기사의 출전이 어디냐"는 물음이었다.
월가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져 있는 모양이지만, 기사를 쓸 당시에는 보고 베낄만한 책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실린 과거 기사를 검색해서 조각조각 이야기를 맞춰나갔다.
얼마전 맨해튼 팬스테이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어서 역구내 서점에 들어갔다. 신간 코너에 `Tearing Down the Walls`라는 책이 있었다. 부제는 "How Sandy Weill Fought His Way to the Top of the Financail World and Then Mearly Lost It All" 이었다. 단번에 "그 독자가 원하던 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모니카 랭글리라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다. 샌디 웨일 회장이 어떻게 자신의 금융제국을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으며,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Mentor`가 다룬 제이미와 샌디 이야기는 둘 사이가 갈라지고, 복수를 꿈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이미 다이먼이 기사의 중심이다.
언젠가는 샌디의 입장에서 뒷얘기를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샌포드 웨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추방(exile)`이었다.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
샌디는 폴란드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영업으로 그럭저럭 집안을 잘 꾸려나갔다. 샌디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코넬 대학에 입학했다.
샌디의 꿈은 대학 졸업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회사를 이어받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집안에 큰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젊은 여비서와 눈이 맞아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회사도 몰래 팔아버렸다.
샌디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신`을 경험했다. 샌디는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아버지의 배신으로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샌디는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샌디는 어찌어찌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호구지책을 마련해야했다.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이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였다. 1950년대 월가는 황금도시 앨도라도였지만, 샌디처럼 금융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유태인 딱지까지 붙은 샌디는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했다.
샌디가 월가에서 맡은 첫번째 임무는 증권수도였다. 주식과 채권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대금을 받아오는 것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샌디는 회사의 브로커들이 엄청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했다. 그 다음 샌디는 후선부서(back office)에 배치됐다. 브로커나 트레이더들은 계좌를 어떻게 관리하고, 결제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샌디는 묵묵히 백 오피스 업무를 배워나갔다. 마침내 샌디는 보스의 허락을 받아 브로커 시험을 치룬다. 브로커 자격을 얻는 샌디는 직장을 옮겨서 자신만의 고객을 관리하게 된다.
브로커 샌디는 적극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설 위인이 못됐다. 브루클린 친구들과 아내 조안의 도움으로 몇몇 계좌를 관리하며 브로커 경력을 쌓아갔다.
그럭저럭 월가에서 5년을 버틴 샌디는 1960년 유태인 동료들과 함께 작은 회사를 만든다. 그들의 이름을 따서 `카터, 벌린드, 포토마 앤 웨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60년대 월가는 이른바 `Go-Go` 시대였다. 대형 블루칩들은 영원히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브로커 영업도 단순해서 돈 많은 전주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IBM이나 AT&T같은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게 전부였다.
샌디는 그때까지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책상머리를 지키며 기업들의 회계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샌디의 회사도 증시 활황 덕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고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서 백 오피스를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동료들은 샌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샌디는 꼼꼼하게 백 오피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회사가 지금보다 몇배 더 커질 것을 대비했다. 백 오피스 경험이 풍부한 수줍은 브로커 샌디의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구조조정 전문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Go-Go 시대의 거품이 무너지자 월가는 빙하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십년 전통의 브로커 회사들도 하나 둘 문을 닫을 처지가 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회원사들의 부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시절이 험악해지면 사건 사고도 많아진다. 백 오피스 관리를 엉성하게 한 회사들이 잇따라 사고를 치면서 월가 전체의 신뢰도가 위태롭게 됐다.
NYSE는 부실 브로커 회사를 조용히 인수해줄 `청소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때 NYSE의 주목을 받은 것이 바로 샌디의 회사였다. 당시 샌디의 회사는 동업자들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CBWL로 불렸다. 최초 회사를 만든 동료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파트너들을 받아들이면서 CBWL이 됐다. 이 중에는 나중에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되는 아서 레빗도 포함돼 있다.
파트너가 모두 유태인이고, 규모도 보잘 것 없는 CBWL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가의 대형 브로커리지 회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CBWL을 비하해서 `Corned Beef With Lettuce`라고 놀렸다.
이런 CBWL이 `문제 회사들`을 하나 둘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핵심에 샌디가 있었다. 영업전선에서는 뒤로 한발 물러서 있었지만, 후방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은 샌디밖에 없었다. CBWL이 다른 회사들을 인수할 때마다 샌디의 역할이 커졌고 마침내 그는 동료 파트너들을 제치고 CEO가 된다.
샌디는 `무식한 사장`의 전형이었다. 대식가인 샌디는 고상한 예술을 즐기기보다는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시거광이기도 했다. 업무 시간 내내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았다.
샌디는 업무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 불이 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샌디는 회사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빌딩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직원을 붙잡고 샌디는 "채권, 주식예탁증서, 수표는 어떻게 했어"라고 외쳤다.
그 직원은 "사장님, 그걸 어떻게 챙겨 나오겠어요. 피신하기도 급한데"라고 말했다.
샌디는 "이런 망할 놈. 당장 뛰어들어가지 못해. 우리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아직 불이 안붙었잖아"라고 윽박질렀다.
샌디는 비용절감에는 귀신이었다. 하루는 비용관리부서를 순시하다가 우편발송 비용이 너무 많은 것을 지적했다.
직원은 "회사가 합병되면서 증권분석자료를 발송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해명했다.
샌디는 고객명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샌디는 "이런 XX새끼!(You fucking idiot!). 같은 사람에게 중복해서 자료를 보내고 있잖아. 도대체 몇명이나 중복돼 있는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합병, 비용절감, 다시 합병, 다시 비용절감"을 반복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나간 샌디는 1979년 마침내 롭로즈라는 유수의 증권사를 인수, 자신의 첫번째 왕국 시어슨을 완성한다. 시어슨은 1980년 월가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 106층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샌디는 저층을 원했지만 106층에서 시어슨 최후의 경쟁자인 메릴린치 사옥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계약서에 서명한다.
◇수평적 결합에서 수직적 결합으로
샌디가 시어슨 왕국을 만드는데 일등 참모는 피터 코헨이었다. 샌디가 제이미를 얻기 전까지 코헨은 샌디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 규모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코헨은 샌디의 오른팔이었다. 샌디는 코헨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코헨은 자신이 시어슨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샌디는 이를 무시했다. 실망한 코헨은 잠시 샌디를 떠나기도 했다. 샌디는 시어슨 왕국을 완성하는데 코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시어슨을 그에게 넘겨준다는 암묵이 있었다.
1980년대 월가는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월가는 우량 증권사가 부실 증권사를 인수하는 `수평적 결합`에 주력했다. 증권사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쟁의 양상을 하루 아침에 바꿔놓은 대사건이 벌어졌다. 1981년 3월 20일 프루덴셜보험은 바체할시증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보험과 증권, 각기 다른 영역을 결합하는 수직적 합병이 일어난 것이다.
샌디는 프루덴셜의 막강한 보험 세일즈 조직이 증권사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샌디는 그 즉시 합병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프루덴셜에 의표를 찔린 것은 샌디만이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짐 로빈슨 회장도 위기를 직감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은 이전에도 교감을 한 적이 있다.
경쟁사인 메릴린치가 CMA(Cash Management Account)라는 신상품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어슨은 이에 대항하는 FMA(Financail Management Account)를 내놨다. 샌디는 이 상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FMA 고객에게 카드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했다. 그 파트너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도 시어슨이 확보하고 있는 고급 고객 명단이 은근히 탐이 났다. 양사가 이 문제를 놓고 논의를 벌이는 사이 프루덴셜이 바체를 인수한 것이다.
샌디와 로빈슨은 두 회사의 합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생명으로했다. 반면 시어슨은 증권사 특유의 방만한 기운이 넘쳤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샌디의 저돌적인 성격도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삼키지 않을까 우려했다.
시어슨은 25억달러 짜리 회사였지만,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200억달러의 회사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샌디를 받아들였을 때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가 숙제였다.
양사의 합병이 급속도로 진척되던 어느날 샌디와 코헨은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샌디는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불쑥 던졌다.
"코헨 자네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합병을 하더라도 이사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알고 있어."
코헨은 충격을 받았다. 샌디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코헨은 샌디의 집으로 달려갔다. 코헨은 샌디에세 해명을 요구했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우리에게 이사 자리 2개를 준다고 했어. 한 자리는 내 친구 변호사를 앉히려고 한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합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헨은 샌디와의 결별을 직감했다. 두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가 이제부터는 분명히 달라졌다.
◇추방 그리고 새로운 동반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이사회는 시어슨과의 합병을 논의하기 위해 하루 종일 회의를 열었다. 로빈슨과 세부적인 부분에서 합의를 마친 샌디는 불안했다.
마침내 로빈슨이 찾아왔다. 그는 "이사회가 합병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샌디를 이사진에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그의 대리인으로 코헨과 다른 한명을 이사진에 포함시키겠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집행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된다"고 말했다.
샌디는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매년 보내는 레터에 로빈슨 회장과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로비슨과 자신이 동격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로빈슨은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이 합병했다. 시어슨 주주들은 당시 주가의 3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받았다. 샌디 자신도 백만장자가 됐다. 샌디는 그러나 미국 최대의 금융왕국 중 하나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어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조직 문화을 이해하지 못했다. 샌디는 여행자수표 부문의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 들어보려고 담당 이사를 찾았다. 마침 그는 외부 출장 중이었다.
샌디는 출장을 중지하고 즉시 달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이사는 "현재 테스크포스 팀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곧 프리젠테이션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복귀 명령을 거부했다. 샌디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이것이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로빈슨은 샌디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샌디는 회사의 약점을 정확하게 골라냈고, 그 해법도 기가막히게 제시했다. 로빈슨은 이런 샌디를 더욱 견제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로빈슨은 샌디의 오른팔 코헨을 불렀다. 다음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출해야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물었다.
코헨은 "당연히 샌디가 사장이 돼야한다"고 답했다. 로빈슨은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최고급 고객을 위해 유럽에 있는 은행을 하나 인수하려고 했다. 그 인수 프로젝트에 샌디와 코헨이 참여했다.
코헨은 "샌디가 사장이 되지 않으면 이번 유럽 은행 합병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슨은 코헨이 합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흡족해 했다.
이사회가 열렸다. 로빈슨은 공개적으로 코헨을 칭찬했다. 로빈슨은 "코헨은 우리 회사의 보배"라고 말했다. 샌디는 놀랐다. 로빈슨은 곧이어 샌디를 사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로빈슨은 샌디에게 증권 부분(시어슨)에서 손을 떼라고 권고했다. 샌디는 자신의 근거지를 내주는 것이 불안했지만, 로빈슨의 뜻대로 시어슨 CEO로 코헨을 임명하고 자신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사장직에 전념했다.
샌디가 사장으로 승진할 즈음 제이미가 찾아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제이미는 골드만, JP모건 등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제이미는 아버지의 상사였던 샌디에게 어느 곳이 좋은지 자문을 얻으려 했다. 샌디는 제이미에게 자신의 비서로 일해 줄 것을 부탁했고, 제이미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 샌디는 마침내 정상에 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었다. 샌디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샌디는 할 일없이 대낮부터 포도주에 취해, 빈둥거리기만했다.
샌디에게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겼다.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IDS라는 금융자문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샌디는 정열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로빈슨은 코헨을 따로 불러서 IDS 실사를 객관적으로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IDS는 인수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실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샌디는 IDS가 원하는대로 인수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실사단을 보내기로 했다. 실사단에 포함된 코헨이 인수가격이 정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샌디, 인수가격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샌디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코헨은 "그럼 실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본사로 돌아갔다. IDS 인수는 무산됐다. 코헨은 샌디를 도와주지 않았다. 샌디는 코헨이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내에서 샌디의 위치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샌디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관리하는 연금 펀드 하나가 큰 부실로 골치거리가 됐다. 샌디는 그 펀드를 자신이 개인적으로 인수하고 싶다고 했다. 샌디는 로빈슨에게 그 펀드를 받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못이기는 척 이사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샌디의 마지막 요청도 거부했다. 샌디는 구조조정의 대가다. 만약 펀드를 회사 내부자인 샌디에게 팔고, 샌디가 이를 정상화시키면 이사진이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랬지만, 샌디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샌디는 이사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들었다. 1985년 6월 25일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그를 따라 나온 직원은 비서였던 제이미 다이먼이 유일했다.
◇충성심에 대한 집착
샌디는 아버지로부터의 배신, 오른팔 코헨으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충성심`을 부하의 제일 덕목으로 생각하게 됐다.
샌디와 유배 길에 오른 제이미 다이먼은 `사실상의 아들`이었지만, 제이미에게도 무한 충성심을 요구했다.
샌디가 재기에 성공하고, 시티그룹과의 합병을 거쳐, 존 리드 회장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샌디는 제이미 다이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이미 추방된 경험이 있다. 그는 투쟁에서 밀려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제이미 다이먼은 샌디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고, 벌써부터 후계자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샌디는 제이미가 자신의 친딸 제시카 비블리오윅을 내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샌디는 부인과 자식들을 끔찍히 위했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아픈 기억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다.
샌디는 두번 다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친아들이나 다름없는 제이미를 제거했다. 월스트리트는 비정한 거리다.
198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추방당한 샌디는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첫날 샌디는 자신에게 위로 전화를 건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누가 자신의 진정한 친구이고, 누가 자신의 적인지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였다. `복수심`은 월가를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이다.
- 盧 `아마추어 발명가`..윤태영 대변인 기고
- [오마이뉴스 제공]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두 번째 펜을 들었다. 윤 대변인은 19일 발명의 날을 앞두고 1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발명가 대통령의 미완의 사업"이라는 제목으로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② - 발명의 날과 노무현"이라는 글을 실었다. 후보 시절부터 노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사람을 움직이는 글 솜씨가 좋은 윤 대변인이다.
윤 대변인은 지난 4월20일에도 "잃어버린 봄" 제목으로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한 바 있다. 그때는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기간이었다면, 이번은 만물이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는 신록의 기간이다. 그래서인지 글도 훨씬 더 밝고 활기차다.
윤 대변인이 곁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은 "아마추어 발명가"다. 국회의원 및 낙선 의원 시절에 개발한 "노하우 2000"이라는 "인명관리 프로그램"이 그렇고, 노 대통령이 정말로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독서대"가 그것이다.
윤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30여 년 전쯤의 그 유명한 "독서대" 개발과 75년에 "거금 500만원"을 투자해 일을 벌렸다가 말아먹은 사업 비화, 그리고 빚지고는 못사는 기질 등을 오밀조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윤 대변인 글에는 안나와 있지만, 노 대통령은 작년 5월 19일 코엑스(KOEX)에서 열린 발명의 날 행사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아마추어 발명가"로서의 호기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동만 특허청장은 "그때 코엑스에 특허전산망을 전시했는데 노 대통령 내외가 보는 앞에서 특허전산망을 시연해 노 대통령이 30여 년 전에 특허출원한 독서대 실용신안 등록증을 그 자리에서 뽑아서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고 다른 발명품들에 큰 호기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 청장은 "노 대통령의 실용신안 특허는 그후 다른 사업자에 의해 실물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만든 독서대 1개가 아직 특허청에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발명의 날 행사장에 도착해 걸어가면서 주변에 "혹시 발명특허 중에 머리에 쓰면 가지런해져 머리 손질이 필요 없는 그런 모자는 없냐"고 물어 주변을 당황하게 했다. 특허청에서는 발명의 날 행사가 끝난 즉시 혹시 그런 발명품이 있는지 검색해보았는데 다행히(?) 그런 발명품은 아직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과 발명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었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한 끝에 밑에서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이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고 한다.
앞으로도 윤 대변인은 그때그때 사안이 있을 때마다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시리즈"를 틈틈이 쓸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청와대 홈페이지(http://www.president.go.kr)에 오른 윤 대변인 글의 전문이다.
"발명가 대통령의 미완의 사업"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② - "발명의 날"과 노무현
대통령은 발명가이다. 물론 직업발명가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또 어떤 상황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이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그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보거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영락없는 발명가의 모습이다.
우선 인명관리 프로그램("노하우 2000")을 개발하는 데 들인 열정과 정력이 그렇다. 웬만한 젊은 세대보다 컴퓨터를 일찍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했다. 주어진 것을 대충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뭔가 바꿀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발명가가 되는 게 꿈이라서? 결코 아니다. 그것은 천성이자 본능이다. 그 열정은 젊은 참모들조차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두 손을 드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대통령은 회의를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의자 등받이 위쪽의 모양을 옷걸이 모양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래도 그냥 의자에 웃옷을 걸어놓으면 모양이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일리 있는 발상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은 끝이 없었다.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밑에서도 편하게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다. 지난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 아무튼 우리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이다. 그 대통령이 정말로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독서대이다.
오래 전, 30여 년 전쯤의 일이다.
김해 장유의 불모산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노무현, A씨, B씨, 세 명의 고시준비생이 있었다. 뒤늦게 이 팀에 합류했던 A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수험생 노무현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독서대. 말하자면 대통령의 발명품이다. 그 독서대를 이용하면 책을 여러 형태의 각도로 놓을 수 있어서 책을 보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있어도 항상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비스듬히 누운 것 같은 편안한 자세로도 볼 수 있는 그런 독서대였다. 게다가 두터운 수험서와 법전을 동시에 올려놓고 볼 수도 있었다.
A씨는 대통령의 그 발명품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엄연히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언감생심 독서대를 만들어 달라 하기도 미안하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제안을 했더니, 대통령은 제안을 흔쾌히 OK. 한나절 이상 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한 끝에 새로운 또 하나의 독서대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 효용을 만끽한 3인에게 독서대는 고시에 못지 않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던 듯. 3인은 논의를 한 결과 이 독서대를 특허로 등록하기로 합의했고, 대통령은 실제로 이를 특허 등록했다.
그 후 대통령은 결혼을 했고, 그 결과로 3인의 고시준비생 가운데 대통령과 A씨는 시험준비 장소를 대통령의 집이 멀리 마주보이는 산자락에 지은 마옥당(磨玉堂)으로 이전했다. 이후 A씨는 서울의 고시촌으로 다시 이동을 했고, 얼마 후 대통령은 고시에 합격을 했다.
어느 날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대통령이 A씨가 있던 고시촌에 들러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사법연수원을 다녀보니, 고시에 합격하는 게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럴 바엔 아예 지금부터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떨까?"
특허를 받아놓은 독서대를 가지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 결국 철두철미한 성격의 A씨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그 계획서를 들고 3인은 부산의 한 선생님을 찾아가 그 사업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선생님은 뜻하지 않게도(?) 75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00만원을 내놓으면서 이들 일행의 사업에 투자를 했다.
3인은 즉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생산공장을 원활하게 돌리기가 어려웠다. 목재조립품이었던 독서대는 당시 목재가공기술이 여의치 않아 상당한 불량품이 쏟아지는 등 생산과정에서부터 애로가 많았다. 또 광고를 할 자본이 없으니 판로 개척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전고투 그 자체였다. A씨는 고시촌 일대를 돌며 영업을 했고 또 적지 않은 물량을 팔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버티기에는 역부족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1년. 500만원은 30만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막다른 길에 봉착한 3인은 결국 선생님을 찾아가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첫째, 다시 500만원을 투자해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주시거나, 둘째, 그 빚을 갚을 때까지 A씨가 노력봉사를 하거나, 셋째, 기약은 없지만 먼 훗날 갚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쯤에서 일단 정리하자는 것. 말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의 결론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라."
다시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화려한 청문회 스타에서 초라한 낙선자로 전락해 있던 대통령과 A씨가 소주를 함께 했다. 그리고 제법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이 권양숙 여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헤어지려던 즈음, A씨는 권 여사가 건넨 뜻밖의 말에 술이 확 깨었다.
"그때 그 500만원, 이 양반이 변호사 된 후에 제일 먼저 갚았습니다.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준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 놀란 J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이 또 있었다. 권 여사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권 여사를 향한 대통령의 불만 가득한 한마디.
"쓸데없는 소리! 그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더니…."
- 미쓰비시·다임러·현대, 삼각관계의 향방은
- [edaily 하정민기자] 독일 자동차업체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부실 자회사 미쓰비시자동차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두 회사의 관계가 결별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다임러와 한국 현대자동차(005380)와의 전략적 제휴관계에도 이상 기류가 발생하는 등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영난 사태가 세계 자동차업계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현재 업계와 금융시장의 관심은 크게 ▲미쓰비시자동차 회생 가능성 ▲재정지원을 거절한 다임러의 미쓰비시차 지분매각 여부 ▲다임러-현대차의 제휴문제 ▲다임러의 세계화 전략 및 슈렘프 사장의 거취 문제 등으로 압축된다.
◇미쓰비시차 회생할까.."그룹도 손뗄 것" 관측도
올 들어 계속된 미쓰비씨자동차의 경영난은 지난 24일 지분 37%를 보유한 최대주주 다임러가 추가 재정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다임러와 미쓰비시그룹이 합심, 증자를 통해 7000억엔 상당의 자금을 조달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주주들의 반발과 자금난을 우려한 다임러는 "어떠한 재정지원도 해 줄 수 없다"며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미쓰비시그룹이 총대를 짊어졌다.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상사·미쓰비시도쿄파이낸셜로 구성된 미쓰비시그룹은 "최선을 다해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생을 돕겠다"고 밝히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미쓰비시그룹은 최고경영진들의 회의를 통해 오카자키 요이치로 전 미쓰비시중공업 고문을 사장으로 선임하고 공장과 인원의 구조조정을 비롯한 독자회생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일각에서는 미쓰비시그룹이 이번 미쓰비시차 지원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 2000억엔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돈을 쏟아부어도 미쓰비시차의 회생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 4위 자동차업체인 미쓰비시차는 2003년 회계연도(작년 4월~올 3월) 순손실이 720억엔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순손실은 6억6000만달러로 더 늘어날 전망이며 지난 98년부터 까먹은 시장가치만 해도 44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쓰비시가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시장 판촉을 위해 공격적으로 할부금융에 나섰다 대규모 미회수 사태를 맞아 재무구조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리콜을 은폐한 사실까지 발각되면서 판매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이에 미쓰비시그룹도 다임러처럼 결국 두 손을 들고 말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26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미쓰비시그룹역시 다임러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쓰비시차의 부채가 자산의 85%에 달하는 1조1800억엔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가 엉망이어서 미쓰비시그룹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우며 미쓰비시그룹이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조달할 지도 불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다임러, 미쓰비시차 지분 팔까..매수자 없어
지원을 중단한 다임러가 보유한 미쓰비시자동차 지분을 팔 지도 관심거리다. 업계에서는 다임러의 미쓰비시차 지분 매각 가능성이 점점 굳어지고 있지만 과연 매수자가 나타날 것인지가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만프레트 겐츠 다임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컨퍼런스에서 "미쓰비시차 지분 매각에 대한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면서도 "지분을 영원히 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쓰비시자동차가 장기적으로 이윤을 내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곧 다른 투자자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츠의 이같은 발언은 지분 매각을 위한 일종의 전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쓰비시차가 이윤을 내는 기업으로 바뀐다면 다임러가 지원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지분을 매각한다 한들 최대주주도 등 돌린 회사를 누가 쉽게 사들이겠냐는 것이다.
다른 자동차업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날 현대차는 다임러가 보유 미쓰비시차 지분인수 가능성에 대해 "전혀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다임러가 미쓰비시차 회생에 두 손을 든 상황에서 현대차가 지분인수에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미쓰비시자동차가 파산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크레딧퍼스트스위스보스턴(CSFB)증권의 엔도 고지 애널리스트는 "미쓰비시차는 재앙국면을 맞았다"며 상황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파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임러-현대차 제휴 이상없나
한편 업계에서는 다임러가 미쓰비시자동차와의 간극을 갈수록 넓혀감에 따라 결별 수순에 들어간 알려졌던 다임러와 현대차의 관계 정리도 어떤 식으로 결론날 지 주목하고 있다.
다임러는 현대차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현대차가 먼저 독점계약을 체결했던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해 메르세데스벤츠를 현지 생산하겠다고 발표, 현대차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후 양사의 관계는 갈수록 멀어져 상용차 합작사업 논의도 계속 지연됐고 급기야 제휴 종식설로 번지기 시작했다.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이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다임러의 경우 미쓰비시차, 크라이슬러 등 인수한 업체의 실적부진이 가시화하면서 투자여력이 줄었고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현대차 역시 예전만큼 다임러와의 합작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세했다.
이는 두 회사 관계자들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겐츠 CFO는 "미쓰비시차 문제가 현대자동차와의 제휴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대차 노조와 관계된 어려움이 현대와의 문제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 역시 "피트너십이 실패로 끝날 경우 모든 책임은 다임러가 져야 한다"며 "현대차는 3년전의 현대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것이 회사 측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양사 관계자들의 발언은 현 상황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두 회사모두 "당장 제휴문제에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반대의 해석을 가능케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경제주간지 비지니스위크(BW)는 최신호에서 수 주일안에 두 회사가 공식 제휴중단을 선언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글로벌 다임러` 꿈 무너지나..슈렘프 거취도 관심
미쓰비시차는 물론 현대와의 관계도 삐걱거림에 따라 다임러의 세계화 전략 및 이를 주도했던 위르겐 슈렘프 사장의 입지도 크게 타격받고 있다.
슈렘프는 사장 취임 후 벤츠로 고급차 시장만 주도했던 다임러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잇따른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파산 위기에 빠졌던 크라이슬러 합병, 미쓰비시차 인수, 현대차 지분 획득 등이 모두 슈렘프의 진두지휘 하에 이뤄졌다.
벤츠의 고급 이미지에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라는 양 날개를 얹어 GM(제너럴모터스), 포드와 맞서보려 했던 슈렘프의 야심은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쓰비시차의 엄청난 손실에다 인수 당시부터 "사상 최악의 합병"이란 평가를 받았던 크라이슬러역시 아직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쓰비시차 및 현대차와의 관계 악화로 아시아시장 공략의 꿈도 좌절 일보 직전이다.
이와 관련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운도 안 좋았고 전략도 빈약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쓰비시차 인수의 경우 "가지말아야 할 길"을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드-마즈다, GM-이스즈, 르노-닛산, 다임러-미쓰비시 등 세계 유명자동차 업체들이 속속 일본 업체와 손 잡았지만 성공한 예는 르노-닛산이 유일할 정도로 일본 시장 공략이 만만치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임러가 무리한 수를 뒀다는 것. 다임러가 자사 경영진을 미쓰비시차에 내려보낸 것도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포브스는 평가했다.
슈렘프 CEO의 사임 가능성도 거듭 제기되고 있다. 슈렘프는 작년에도 실적부진, 보수과대 등 문제로 비지니스위크가 선정한 최악의 CEO에 선정된 바 있고 지난 주말 컨퍼런스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그의 입지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슈렘프 본인은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슈렘프의 한 측근은 "크라이슬러 합병문제가 거론됐을 때도 슈렘프가 사임하지 않았듯 미쓰비시자동차 투자실패도 그의 사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고전하고 있는 다임러가 중국 시장 공략 강화를 위해 그간의 부진을 만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AWSJ은 슈렘프가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 사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라고 전했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역시 이머징마켓의 중요성을 강조한 슈렘프의 최근 발언을 분석해볼 때 다임러가 중국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바 있다.
- 이철 후보 부인 `낙선일기` 화제
- [오마이뉴스 제공] 지난 4.15 총선 당시 "공안검사 vs 사형수"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부산 북·강서 갑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게 패한 열린우리당 이철 후보의 부인 전명옥씨가 이철 후보의 홈페이지(www.leechul.net)에 쓴 "낙선일기"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일 이철 후보 홈페이지에 "낙선일기"를 올린 전명옥씨는 "언제나처럼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했다"며 일기를 써내려갔다.
"그날 밤 부산에 이사 와서 한 달 반만에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악몽이다"
전씨는 "한 달 반 전 남편 따라 내려온 부산 구포"에서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밥은 먹었는지, 잠을 자는지도 모르고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이곳은 특이한 세상이었다"고 고백한다.
"친구가 만들어준 노란잠바는 이미 타깃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며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리고 웃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계속 보인다"고 적은 전씨는 "(그것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전씨는 "이것이 남편이 뛰어든 부산 북구 선거판의 현실이라면 아내인 나도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라며 "웃고 또 웃었다"고 말한다.
"제 별명이 철의 여인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이어 전씨는 "표현조차 차마 하지 못할 흑색선전"에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면서도 "주말을 기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힘이 솟아난다"며 선거운동 기간 동안 느꼈던 억울함과 감격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선거 후, 일상의 아내로 돌아온" 전씨는 "일부러 그러지(강한 척 하지) 않아도 돼"라는 남편 이철씨에게 "제 별명이 철의 여인이라는 거 잊지 말라"며 "그 동안 감사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같은 "낙선일기"에 대해 "돌풍(jokh)"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전부 글로 표현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며 "언젠가는 고생하신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등 네티즌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다음은 전명옥씨의 "낙선일기" 전문이다.
순간적으로 난 벌떡 일어나서 사무실로 다시 갔다.
언제나처럼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다.
침통한 사무실 분위기 여기저기서 어머니들이 울고 계셨다.
눈이 아파왔고 앞이 흐릿해져서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입은 움직이는데 내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라면 먹어가며 서로에게 격려해주고 힘을 주던
자원봉사자 한분 한분께 손을 잡고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남편을 찾았다.
그냥 손을 잡았다.
남편의 손에서 무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고생했어!
난 웃음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냥 웃고 계속 남편을 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늦은 밤,
남편이 물었다. “콩이 잘 있대?”
“그럼요. 콩이 보고 싶죠?”
콩이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
아내보다 더 좋아하는 콩이를 친정에 맡기고 왔었다.
그날 밤
부산에 이사와서 한 달 반 만에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뒤로 잡아 당기고
알 수 없는 얼굴이 주먹으로 발로 계속 구타를 당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누구 없냐며 도와달라고 외치다
벌떡 일어났다.
악몽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새벽 3시,
갑자기 눈물이 콧물이.......
꾸역꾸역 울고 또 울고
그동안 쌓였던 온갖 설움을 다 토해냈다.
한 달 반 전
남편따라 내려온 부산 구포.
운명이거니 하고 집 구하고, 이사하고, 사무실 구하고, 집기 구하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밥은 먹었는지,
잠을 자는지도 모르고 지난 시간들....
내 일거수 일투족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한참 후에 알게 되고.....
본 선거가 시작된 4월 2일부터
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도 아니고, 부산도 아닌,
그동안 무수히 출장을 다녔던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특이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포5일장 건널목과 그린코아 사거리는
가장 견디기 힘들고 두려운 장소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미친년들 와이리 걸리작거리노”
중년 아주머니가 사정없이 팔꿈치로 치고 지나간다.
다시 또 다시....
모 후보의 건너편 유세차 앞에서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리고 웃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계속 보인다.
또 한 아주머니는
사정없이 발로 차고 지나간다.
친구가 만들어준 노란잠바를 입고 있기에
이미 타켓이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
뒤통수에다 별의별 욕설을 하고...
명짱님 말대로
“아 이건 아닙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라는 말을 정말 하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만화영화 제작사를 설립해서
무수한 고난을 겪을 때마다 난 강해지고 싶었다.
희망과 용기와 웃음을 잃지 않고자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이십여년간 일을 수주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과 유럽을 돌며
무수한 사람을 만나면서도 갖은 힘을 다해 버텨왔고,
보람을 느끼며 여성기업인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거판이지만 이건 아닙니다.
인격 자체를 말살당하고 인간 이하의 모독을 주는 이건 아닙니다.
이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문입니다.”
그러나
이게 남편이 뛰어든 부산 북구 선거판의 현실이라면
아내인 나도 뛰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그래도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머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손을 잡고 또 잡았다.
어느 날
흑색선전 비방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이미 가동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 제보를 하길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해봤다.
“선거 끝나고 죽을 일 있습니까?”
“눈 밖에 나면 이 동네 못삽니다.”
벌써 몇 번째 같은 대답들이다.
우리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갔다.
“할머니 제가 본인입니다. 이철 집사람입니다. 남편도 저도 그런 사람 아닙니다.”
“우리 며느리가 들었다 카더라. 남편이 국회의원 하면서 도둑질해서 재산 모았다 카대.”
“첩 데리고 선거운동 한다 카대. 집만 얻어놓고 잠도 안 잔다 카대.”
그 외에도 표현조차 차마하지 못할 흑색선전...
설명을 하고 설득을 했다.
“알았다. 우리도 바보는 아이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오는 길에
그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주말을 기해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직장인, 학생, 부부들까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힘이 솟아난다.
4월 14일, 마지막 선거 유세장
대한민국의 희망과 미래가 거기에 있었다.
남편이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가슴속으로 느끼고 또 느꼈다.
이 순간 흐르는 눈물은 슬픔과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눈물이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편은 소중한 한사람 한사람에게
낙선인사를 다니느라 또다시 구석구석 지역을 누비고,
난 과묵한 남편 앞에서 또다시 재롱을 부리는 일상의 아내로 돌아왔다.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돼.
상처는 곪는 것보다 터트리는 게 빨리 낫거던.
그냥 욕도 하고 그래.
아니면 내가 대신 맞아 줄 수도 있는데.”
“당신 날 어떻게 보는 거예요?
내 별명이 철의 여인 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그동안 너무 고맙고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이철의 아내 전명옥 씀.
- "탄핵투표" 195명중 70% 이상 출마
- [오마이뉴스 제공] 16대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12일 탄핵안 투표에 참가한 의원들 중 70% 이상이 4.15 총선에 출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가 16∼17일 양일간 야3당의 공천확정자 명단과 "탄핵안 투표" 참가의원 명단을 대조해본 결과, 195명의 "탄핵안 투표" 의원들 중 최소 140명(71.8%) 이상이 지역구 또는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129명 투표) 90명, 민주당(53명 투표) 42명, 자민련(8명 투표) 6명, 무소속(5명 투표) 3명의 순이었다. 이중 한나라당 강신성일(대구 동갑) 박원홍(서울 서초갑) 하순봉(경남 진주을) 의원은 공천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민주당 김홍일 장재식 의원, 자민련 조희욱 의원은 비례대표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아직 거취를 정하지 못한 한나라당 김기배(서울 구로갑), 김황식(경기 하남), 박시균(경북 영주), 이양희(대전 동구) 등 일부 의원들이 출마결심을 굳힐 경우 총선에 출마하는 "탄핵안 투표" 의원들의 수는 15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투표에 참여한 의원들중 40명은 17대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총선에서의 유권자 심판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법적, 도덕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195명의 탄핵안 투표 의원들 중 2명은 탄핵안에 소신껏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들은 전체의 1%에 해당하는 미미한 존재들이다. 자민련 김종호 의원측이 "처음부터 반대했고,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본인 자신이 직접 언론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비밀투표였기에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본회의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투표에 참여한 야당의원 전원이 탄핵안 가결에 따른 정치적 연대책임을 지게 된 형국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40∼50%를 넘나들고, 야3당의 지지율은 10% 내외를 맴도는 상황에서 탄핵안 투표에 참여한 의원들은 각 지역에서 "탄핵반대"의 순풍을 타고 있는 우리당 후보들의 거센 도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각 지역구별 출마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서울(48개 선거구) = 한나라당 박진 의원(서울 종로)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탄핵발의 이전에는 소장파 의원의 소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대표경선 출마를 결심한 상황에서 당론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 이후 당이 여론의 역풍을 맞으며 전당대회가 불투명해지는 등 대표 경선의 꿈이 물건너간 상태.
더욱 직접적으로는 지난 토요일(14일) 이후 매일 저녁마다 광화문에서 탄핵무효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총선까지 시위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지역구 당선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일 실시된 조선일보-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24.3%)은 김홍신 우리당 후보(22.2%)에 2% 차이로 쫓기고 있었다.
탄핵안 투표 당시 경위들에게 끌려나가는 우리당 "옛 동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광진을)도 14일 경선을 통과한 우리당 김형주 후보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됐다. 동대문갑의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도 우리당 김희선 의원과의 힘겨운 승부를 앞두고 있다.
동대문을, 강북갑의 홍준표, 김원길 의원이 맞서게 될 후보들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당 허인회, 오영식 후보는 탄핵정국이 만들어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 특히 허 후보는 2001년 보궐선거에서 홍 의원에 3600여 표 차로 눈물을 흘린 바 있어 세 번째 지역구 도전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후단협 활동과 탄핵표결 현장지휘로 우리당 지도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민주당 유용태 원내총무(동작을)는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 회장의 도전을 받게 된다. 탄탄한 지역기반으로 3선을 노리는 유 총무는 탄핵정국으로 악화된 지역 여론을 진정시키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김기춘 법사위원장과 함께 탄핵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전달했던 민주당 함승희 의원(노원갑)은 우리당 정봉주 후보(전 전민련 기획차장)와 대결을 펼치고, 은평구의 "양대 산맥" 한나라당 강인섭, 이재오 의원은 각각 우리당 이미경 상임중앙위원, 송미화 중앙위원과 맞서게 된다.
2000년 총선에서 1400여표의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쳤던 서대문갑 이성헌 의원(한나라당)은 우리당 우상호 후보와 재대결을 펼친다. "탄핵안 표결"로 한나라당 소장파 이미지에 결정적 손상을 입은 원희룡 의원은 우리당 김재실(전 서울시의원)과 맞닥뜨렸다.
우리당 신기남 의원이 버티고 있는 강서갑에서는 "굿머니 게이트"를 만들려고 했던 민주당 조재환 의원이 저격수로 나섰지만, 고지 탈환이 수월해보이지는 않는다. 구로을 한나라당 이승철 의원은 2000년 보선에서 대결했던 김한길 우리당 총선기획단장과 다시 만나게 됐다.
▲ 인천(12개 선거구) = 우리당 "독수리 5형제"와 한솥밥을 먹었던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중·동·옹진)은 탈당 권유를 끝내 뿌리쳤다. 당에 잔류한 그는 탄핵안 투표에 참여했다가 여론의 유탄을 맞게 됐지만, "반대표의 주인공"이라는 뒷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인천에 출마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황우여(연수), 이윤성(남동갑), 이경재(서·강화을)이고, 민주당에서는 박상희(계양갑), 조한천(서·강화갑) 의원이 나온다. 특히 박 의원은 탄핵안 가결 다음날 KBS 심야토론에 출연해서 "국회 통과된 법률을 잘 알지도 못하는 국민들이 알 필요가 없다" "20∼30대는 분별력이 떨어진다. 선동이나 하고 부화뇌동하고"라는 폭언으로 시청자들의 반발을 샀다. 14일 TV토론부터 민주당 의원들은 자취를 감췄다.
▲ 경기(49개 선거구) = 무려 21명의 의원이 나오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이중 서청원 석방결의안을 주도했던 박종희 의원은 심재덕 전 수원시장(수원 장안)과의 접전이 예상된다. 남경필 의원(수원 팔달)도 노동운동가 출신의 박공우 변호사(우리당)를 만나는데, 낙승을 예상하기 힘든 시점이다.
의정부갑 홍문종, 부천소사 김문수 의원은 노 대통령의 청와대 측근들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다. 홍 의원은 대통령 정치특보인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노무현 저격수" 김문수 의원(부천 소사)은 김만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한 지역구에서 맞붙는다.
탄핵 추진과정에서 한나라당 원내 사령탑을 맡았던 홍사덕 의원은 고양일산갑에서 한명숙 전 환경부장관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됐고, 고양 일산을에 둥지를 틀려는 김영선 의원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의 동생 김두수 동북아비전연구소 소장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을 지낸 안병엽 전 정통부 장관은 경기 화성에서 "한나라당 이적파" 강성구 의원과 대결을 벌인다. 지역구 통합으로 여주·이천에서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과 민주당 이희규 의원이 맞붙으며 우리당 최홍건 전 산자부 차관이 어부지리를 챙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 호남권 (31개 선거구) = 호남에서 민주당 의원 17명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광주에서는 강운태, 김상현, 전갑길 의원의 공천이 확정됐다. 반면, "광주의 정치1번지" 동구의 김경천 의원은 구해우 광주평화개혁포럼 대표,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과의 힘겨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탄핵안 가결"로 노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돌린 한화갑(무안·신안), 김효석(담양·곡성·장성), 이낙연(영광·함평) 의원은 각각 지역구에서 우리당 이윤석, 김정범, 장현 후보와 맞붙게 됐다.
윤철상 의원(전북 정읍)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 우리당 김원기 의원과 격돌을 앞두고 있다. 익산을에서 당내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이협 의원은 조배숙 우리당 전 의원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 대구경북(TK)권 (27개 선거구) = 한나라당이 절대강세를 보이는 TK지역에서도 우리당이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는 지역구는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출마할 대구 중·남구. 한나라당 곽성문, 민주당 조순형, 우리당 이재용, 무소속 백승홍의 4파전 구도이기 때문에 승부를 속단할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국회 본회의장 "대통령 하야" 발언 파문을 일으켰고, 노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도 한 표를 행사한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대구 북을)은 배기찬 전 청와대 정책수석실 행정관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았고, 이번에 우리당 공천을 받은 김준곤 변호사는 대구 달서갑에서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에 도전한다. 배태호 전 한국감정원 노조위원장은 탄핵안 가결과정에서 흔들리는 당내 분위기를 다잡았던 임인배 의원(경북김천)과 맞붙는다.
▲ 부산경남(PK)권 (41개 선거구) = PK지역에서는 한나라당 22명, 무소속 3명의 의원이 출마한다. 부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노 대통령의 측근그룹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리전 양상이 보인다는 것.
최대 관심 선거구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우리당 이철 전 의원이 맞붙는 부산 북·강서갑. 지역정서를 타고 정 의원이 앞서가고 있지만, 탄핵정국을 맞아 표심의 변화가 엿보인다.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산 중·동구에서 탄핵안 표결 당시 특공대를 조직했던 정의화 의원과, 박재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남을에서 김무성 의원과 대결한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김정길 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영도에서 김형오 의원과 맞붙고,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은 부산진갑에서 김병호 의원을 상대한다.
부산 사상구는 노무현과 이회창 측근의 맞대결 양상. 한나라당 권철현 부산시지부장과 우리당 정윤재 사상발전위원장이 자존심을 건 대결을 벌인다.
경남에서는 우리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창원을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을 따돌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민노당은 한나라당에 두 배 가까이 앞서가는 여론조사 등으로 인해 민노당 최초의 지역구 의원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노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을 맡은 김기춘 법사위원장(경남 거제)의 3선 여부도 관심거리다. 본인은 당선을 자신하지만, 만에 하나 낙선할 경우 한나라당으로서는 탄핵소추위원을 교체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무소속 김현철 후보가 아버지 YS의 측면지원을 받고 거제를 공략하는 가운데 우리당에서는 거제에서 20여년 간 약국을 경영하면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지원해온 장상훈 우리당 중앙위원이 "지역구도 타파"를 공언하고 있다.
남해·하동에서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에 맞서서 88년이후 두 번째로 대결을 벌인다. 김 전 장관은 작년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파동으로 일약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고, 그 여파로 남해·하동도 격전지로 부상했다.
▲ 충청권 (24개 선거구) = 대통령 탄핵은 행정수도 이전에 들떠있던 지역민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자민련은 뒤늦게 민심을 다 잡기에 나섰다. 충남에서 자민련 김학원(부여·청양), 이인제(논산·금산·계룡), 정진석(논산·금산·계룡), 충북에서 정우택(진천·음성·괴산)이 출마한다. 우리당은 특히 특히 이인제 의원 선거구에 "최초의 여장군" 양승숙 후보를 내려보냈다.
85년 2.12 총선 이래 내리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 강창희 의원(대전 중구)에서 재선을 낙관했지만, 우리당 권선택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출마하며 낙관할 수 없는 승부로 치닫고 있다. 권 전 비서관은 강 의원이 16대 총선후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이적하고, 지난 탄핵정국에서도 탄핵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무소신"을 파고들 계획이다.
▲ 강원제주권 (11개 선거구) = 민주당 7명, 한나라당 3명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 진출이 두드러진다. 민주당 전국구의 안상현, 황창주 의원이 각각 원주와 태백·정선·영월·평창에서 출마한다.
최대 관심 지역구는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출마를 벼르는 태백·정선·영월·평창.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 전 실장은 우리당 김택기 의원과의 경선을 통과할 경우 한나라당 김용학, 민주당 황창주 의원과 맞붙어 두 의원의 "탄핵 투표"를 심판하게 된다. 설사 김택기 의원이 공천을 받게되더라도 3당의 초선의원이 맞붙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당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