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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충격에 빠트린 TV다큐, 내용은…
- [조선일보 제공] 지난 11월 13일부터 24일 사이 중국 관영 중앙TV(CCTV)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하자 중국 사회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대국은 어떻게 일어섰나(大國堀起·대국굴기)’. 방송 직후 시청자와 네티즌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이 프로그램은 중국 역사에 이정표가 될 내용이다. 이 방송은 정치체제 개혁이라는 ‘큰 움직임(大動作)’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무슨 소리. 이것은 신(新) 자유주의가 파산하는 장송곡에 불과하다.” 이 방송은 15세기 이후 세계를 호령한 9개 대국(大國)의 발흥과 패망의 역사를 돌아보며, 각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은 어떻게 해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짚어보는 역사 다큐멘터리이다. CCTV 제작팀이 무려 3년에 걸쳐 9개국의 역사적 현장과 박물관 등을 직접 찾아가 1차 문건을 확인해 제작한 역작이다. 제작팀은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쳰청단(錢乘旦) 교수를 비롯해 수도사범대학 류신청(劉新成) 교수, 영국 노팅엄대학의 쩡용녠(鄭永年) 교수 등 중국 안팎의 학자ㆍ전문가 100여명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생동감 넘치는 화면과 충실한 내용 덕분에 이 방송은 중국 시청자들로부터 “2006년 중국 사회를 뒤흔든 최고의 TV 프로그램”이란 찬사를 받았다.딱딱한 역사물임에도 불구하고 12회 시리즈가 끝나자 방송사에는 “재방송하라”는 시청자의 전화가 쇄도했다. 결국 CCTV 측은 지난 11월 27일 이 프로그램을 재방송했다.중국 CCTV는 역사 다큐멘터리 '대국은 어떻게 일어섰나' 12편을 6개의 DVD에 담아 일반 판매용으로 제작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담은 6개짜리 DVD는 12월 20일 베이징 등 대도시 서점에 깔리자마자 2~3일 만에 동이 났다. 8권으로 된 ‘대국굴기’ 책 역시 1만질이 순식간에 매진됐다.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13억 중국인이 이 방송 내용에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하상(河)’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하(黃河)의 죽음’이란 뜻의 이 프로그램은 1988년 CCTV가 제작한 기획 다큐멘터리. ‘하상’은 만리장성이나 용(龍) 같은, 중국인이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여기던 전통문화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황하’ 자체가 ‘황색 얼굴의 중국인과 중국 전통’을 상징한다. 중국의 전통문화에 비수를 들이대고 서방 문명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은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지 1년 뒤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이 발발했다. 일부 학자는 “하상이 1989년 중국 민중운동의 사상적 선도 역할을 했다”고도 말한다. 이 작품이 그토록 환영 받은 것은 개혁ㆍ개방 초기 젊은층의 사회 모순에 대한 반발과 변화 욕구를 잘 담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로부터 18년 만에 중국 사회가 또다시 한 TV 프로그램으로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방송 내용이 무엇이기에 중국 사회가 요동치는 것일까.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의 도움으로 DVD를 긴급 공수받아 본 ‘대국굴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아니, 중국의 관영 매체가 이런 방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사회가 이런 내용을 소화할 만큼 성숙했단 말인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런 방송을 내보내는 의도가 무엇인가.’ 충격과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총 12편의 방송은 6개의 DVD에 담겨 있다. 편당 방송시간은 약 45분. 유럽의 지명과 인명, 역사적 사건을 중국식 표현으로 쏟아놓기 때문에 방송 내용을 따라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먼저 제1편 ‘해양시대(海洋時代)’는 15~16세기 신항로·신대륙 발견으로 강대국으로 우뚝 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발견한 동기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향료(香料)’였다고 본다. 하지만 식민지로부터 은(銀)을 약탈해 엄청난 부를 쌓은 두 나라는 상공업 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종교활동과 사치, 식민지 확장에 전념하다 쇠락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제2편 ‘소국의 대업(小國大業)’은 국토 면적이 베이징의 2.5배에 불과하고 12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습지의 나라 네덜란드가 17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비결을 찾는다. 제작진은 그 비결이 네덜란드인의 자유분방하고 실용적인 사고에 있다고 본다. 제3편 ‘현대로 달려가다(走向現代)’와 제4편 ‘공업화의 서막(工業先聲)’은 모두 영국에 관한 것이다. 먼저 3편은 1215년 ‘마그나 카르타’를 체결한 이후, 1588년 영·서(英西·영국과 스페인)전쟁과 1688년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군주의 권한이 제한되고 시민이 자유권을 쟁취해 ‘개방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4편은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중심지였던 영국의 상인이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곧 신의 선택을 받는 것’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 아이작 뉴턴 이후 ‘과학의 시대’가 열리고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모든 산업에 일대 생산혁명이 일어났다는 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자유무역의 정신이 꽃피고 막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제5편 ‘격정의 세월(激情歲月)’은 18세기 말 프랑스가 대혁명을 거쳐 어떻게 현대 민주사회의 기반인 자유ㆍ평등ㆍ박애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제 6편 ‘제국의 세월(帝國春秋)’은 19세기 프로이센의 철혈(鐵血) 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재적인 방식으로 공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전 국민 의무교육을 실시해 국가를 강성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7편 ‘백년간의 유신(百年維新)’은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이 1853년 7월 8일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을 목격한 이후 약 100년 사이에 어떻게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서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발전했는지를 탐구한다. 중국의 한 학자는 그것을 ‘처음은 놀라지만 다음엔 심취하고 마지막에는 미치는(始驚次醉終狂)’ 일본인의 태도에서 찾는다. 당시 일본은 중국·조선처럼 서방 문명의 파도에 쇄국의 빗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흑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몰래 배에 오른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메이지 정부의 관리를 거쳐 훗날 경제계에 투신, 500개의 기업을 설립한 일본 기업계의 대부)처럼 국가 지도부와 지식층이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그 비결이라고 지적이다. 제8편 ‘강대국의 길을 모색하다(尋道圖强)’와 제9편 ‘풍운 속의 새로운 길(風雲新途)’은 피터 대제의 개혁과 국민의 저항, 예카테리나 여제의 교육 개혁과 영토 확장 등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몸부림과 이어진 사회주의 혁명 등 현대 러시아의 흥망을 다루고 있다. 10월 혁명 후 레닌은 신 경제정책을 실시해 러시아 경제를 회복시키고, 이어 스탈린은 국가 주도의 공업화 정책으로 소련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키웠지만 배후의 문제를 덮어버렸다고 ‘대국굴기’는 지적한다. 제10편 ‘새로운 나라, 새로운 꿈(新國新夢)과 제11편 ‘위기 국면의 새로운 정치(危局新政)’는 미국에 관한 것이다. 제 10편은 미국 제헌의회가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위한 법률적 보호장치를 제공했으며,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고, 그 후 특허권 보장과 과학기술의 발달 등이 미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끌었다고 지적한다. 제11편은 자유경제로 인해 각종 경제사회의 재난이 출현하자 미국 사회 내부에 진보주의가 대두했으며 이들의 주장으로 ‘반독점법’이 제정되고, 두 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 경제가 발전,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제12편은 9개 대국의 흥망에서 ‘교훈 찾기’이다. ‘대국굴기’는 “각국 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서로 엇갈리지만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상·문화의 영향력과 정치체제·제도의 개혁이다”라고 지적한다. 프로그램은 또 미국 하버드대학의 조셉 나이 교수가 제기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도 지적한다. ‘대국굴기’는 “평화와 발전은 현재 세계의 기본 주제”라면서 “다시는 전쟁과 패권쟁탈전을 통해 대국이 될 수는 없으며 영구평화와 공동번영의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 건설이 인류가 공동노력해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한다.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역사 다큐멘터리의 어떤 점이 중국 시청자를 사로잡고 격렬한 논쟁을 야기한 것일까. 먼저 종전과는 다른 역사관이다. 홍콩 시사잡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12월 10일호에서 “‘대국굴기’는 마르크스주의로 역사를 해석하는 전통적 시각에서 탈피, 식민지 지배와 경제적 수탈을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력으로 재해석하는 시각을 선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권력 간 균형과 우수한 사회구조, 법치사상 등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제국주의에 대해 일종의 ‘복권(平反)’을 해주었다”는 것이다.더욱 놀라운 것은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자유’ ‘경쟁’ ‘사유재산권’ ‘민권’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제4편 ‘공업화의 서막’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에 대해 대국굴기는 이렇게 설명한다. “국부론은 인류 경제활동의 주요한 동기는 ‘개인의 이익 추구’이며,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효율적인 물자 분배가 이루어지고, 시장경제와 사회가 발전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모델’은 당시 정부와 상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학문을 중시하고 지식인을 우대하는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놓고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寶) 등 4세대 공산당 지도부가 정치ㆍ사회 개혁을 위한 다음 단계의 조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관측은 프로그램 제작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대국굴기’가 나오게 된 것은 200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프로그램 제작 총책임자인 런쉐안(任學安)은 총서(叢書) 후기에서 “그 해 11월 말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들었다.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15세기 이후의 세계 주요 국가의 발전 역사’에 대해 집체학습을 했다는 뉴스였다. 그때 돌연 저 먼 곳에서 역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나의 생각으로 나는 온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역사의 부름이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소수의 국가지도자만이 학습하던 세계 강대국의 역사를 13억 중국인에게도 알림으로써 ‘국민을 교육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베이징대학 쳰청단 교수는 “CCTV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국굴기를 제작했는데, 그들에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비교적 중요한 국가의 역사 발전과정을 비교함으로써 중국이 거울로 삼을 만한 경험과 교훈을 얻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 중국 내 보수좌파 진영인 ‘마오쩌둥기치망(毛澤東旗幟網)’은 “제작자들이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식민지 약탈을 미화한 것은 비과학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또 우파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레닌과 스탈린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륙굴기’가 국민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9개의 대국 다음은 중국’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한 시청자는 “이 프로그램이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고 싶은 것(言外之意)은 ‘다음은 중국’이란 것”이라고 지적했다.중국 지도부가 3년 전부터 ‘대국의 흥망사’를 공부하고, 지금 모든 중국인이 그것을 학습하는 현상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정신적·제도적·학문적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고자 하는 공산당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 대륙과 이어진 한반도 사람이 이 현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중국인이 꿈꾸는 ‘대국’은 미국이나 러시아 다음 가는 ‘2등국’이 아니라 이 모든 나라를 누르는 ‘1등국’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소개되어 정치인과 국민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 (CEO 칼럼)두바이의 도약과 창조 경영
- [가온미디어 임화섭 대표] 요즘 정부나 재계에서 두바이 배우기 열풍이 거세다. 두바이의 성공 요인에 대해 신문 기사는 물론이고, 매거진, 단행본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고위 관료의 방문도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은 중동 어디쯤 위치했는지도 가물가물한 두바이인데, 왜 그리 화제가 되고 있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창업 초기인 2001년부터 지금까지 1년에도 몇 번씩 꾸준히 두바이를 방문해 왔다. 두바이는 마치 1970년대의 대한민국 서울과도 같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솟아오르는 고층 건물들, 여기저기 파헤쳐진 도로, 넘쳐나는 사람들 그리고 몰려드는 세계의 자금. 매번 방문할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두바이는 급성장 중이다. 5년 전 이런 생기와 역동성에 매료되고 확신이 생겨 우리 회사의 중동 지역 거점을 두바이로 정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예상보다 더 탁월한 선택이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황무지에 불과하던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는 이제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기 힘든 국제 비즈니스의 요람이 되었다고 들었다. 사무실이며 주거단지는 우리나라 보다 더한 가격 급등을 보이고 있다. 두바이는 그 자체의 사업적 의미도 대단하지만, 입지전적 경영방식이 더욱 음미할 만 하다. 반세기전 한가한 어촌에 불과했던 부족국가가 이제 세계의 무역 요충지이자 아이디어와 자금이 몰려드는 중동의 허브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뜨거운 열정과 신념으로 이뤄냈다. 필자는 두바이를 볼 때마다 경영에의 가르침을 얻고 돌아온다. 두바이의 경영방식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번째는 창조 경영이다. 선왕 쉐이크 라시드의 유지를 받아 현 지도자인 쉐이크 모하메드가 두바이 개발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후, 가장 주력한 것은 창의적 아이디어의 모집이었다. 세계 유일의 7성 호텔이라 불리는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이나, 분양만 했다 하면 매진이 되어 벌써 세번째 건설을 추진중인 야자 섬 (Palm Islands), 그리고 세계 지도대로 만든 인공섬인 The world는 벌써 많이 알려진 명소이다. 그 뿐 인가. 중동 유일의 스키장은 인근부자들을 부르고 있으며, 요즘은 해저 호텔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버즈 알 아랍 헬리포트에서 타이거 우즈의 골프 시타 및 아가시-페더러 테니스 시합은 어떠한가. 아이디어 하나로 집요하게 차별성을 추구한 후, 두바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끊임없이 고객을 불러모으는 창의성 관리는, 하이테크 기업에서도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인 것이다. 두번째는 실용주의와 고객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두바이에서는 술의 판매가 자유롭다. 그래서 중동의 부자들은 암시장에서 술을 사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 두바이 온 김에 마음껏 즐기고 가기도 한다. 게다가, 이자를 받지 않는 이슬람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기업들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많은 노하우가 두바이에 모여 있다. 심지어, 해외 기업이 투자를 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이나 부담이 없도록 경제특구도 잘 조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이비 무슬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두바이 사람들은 매우 독실한 무슬림으로 라마단에는 비즈니스가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사업을 조성하고,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있어서는 알라가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의 유연성을 발휘한다. 결국 그들은 중동에 있지만, 유럽의 도시 하나를 만들어 냈다. 민족에게 도움이 안되는 설익은 교조주의는 이미 두바이에서 내버려졌다. 세번째는 비전과 리더십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는 두바이의 변신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한다. 이런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선왕의 웅대한 꿈을 생생히 머리에 그리며 진두지휘한 지도자 쉐이크 모하메드가 그 정점이다. 60년대 항구 개발 도중 잠깐 솟아난 석유는 얼마 가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오일 달러를 모두 창조적 인프라로 변환시켜 놓았다. 결국 그는 후손이 두고두고 먹고 살 미래를 열어 놓았다. 세계의 관심과 형제국가들의 부러움을 받는 두바이의 자부심까지 덤으로 남겼다. 결국 두바이 시민들이 초상화를 모실 정도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모하메드라고 한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이 사람만이 재산인 우리 나라의 기업들이다. 가슴 벅찬 미래를 함께 꿈꾸며, 누구보다 다르고자 하는 창의성으로 고객에 집중하여 유연한 사고를 하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신화는 만들어질 것이다. 인재가 넘쳐나는 우리기업들도 두바이처럼 할 수 있다. 예전에 이미 그랬듯. 사막은 오아시스를 숨겨 아름답다고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하이테크 기업들은 열정을 숨기고 있어 아름다울 것이다. 또 다른 8대 불가사의를 이 땅에서 곧 보는 날을 기대한다. 임화섭 대표 <약력>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삼성전자 종합연구소방송용 디지털 모니터 개발유럽향 양방향 디지털TV 개발 총괄 리더 가온미디어 대표가온미디어 2001년 5월 설립2002년 12월 정통부 유망중소기업 선정 2004년 7월 산자부 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 (ATC)선정 2005년 7월 코스닥 시장 상장2006년 1월 아시아 태평양 고속성장기업 53위 선정 2004년 11 무역의 날7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2005년 7월 코스닥 시장 상장2006년 1월 2006 아시아 태평양 고속성장기업 500대 기업중 53위 수상
- [새영화] 미녀는 괴로워 (VOD)
- [조선일보 제공] 김용화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미녀는 괴로워’(14일 개봉)는 웃음과 눈물의 급소를 제대로 짚고 있다. 성형수술을 소재로 한 이 경쾌한 상업영화는 배꼽을 잡게 하는 에피소드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드라마로 관객의 두 시간을 쥐락펴락한다. 한나(김아중)는 선 자세에서 자기 발이 보이지 않는 ‘뚱녀’. 원작만화(스즈키 유미코 作)에서는 ‘세균’이라고까지 스스로를 비하할 만큼, 자아 존중감이 부족하다.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가창력을 가지고 있지만, 버거운 외모 탓에 대중 앞에 나서는 꿈만 꿀 뿐. 재능은 없고 미모만 있는 아미(서윤)의 립싱크 가수로 그림자 인생을 산다. 그뿐이랴. 정신병원에 있는 아빠(임현식)의 병원비를 대려고 밤에는 음란전화 아르바이트도 불사한다. 언감생심, 소속사 프로듀서 상준(주진모)을 짝사랑하던 한나는 급기야 전신성형수술을 결심한다. 자신의 고객이던 성형외과 의사 이공학(이한위)을 협박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치는 것. 붕대를 풀던 날, 의사의 첫 마디는 “누구냐, 넌”. 데뷔작 ‘오! 부라더스’에서 따뜻한 코미디에 재능을 보여줬던 김용화 감독은 자신의 장점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형 이전 ‘뚱보 한나’와 성형 이후 ‘미녀 한나’를 경쾌한 리듬으로 비교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나의 노력에도 잊지 않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라텍스 특수 분장을 통한 95㎏의 거구로 변신한 김아중은 표현 그대로 온몸을 던지면서 애교 있는 발성과 연기를 보여준다. 수술을 통해 48㎏의 S라인으로 탈바꿈한 뒤 첫 방송출연 무대에서 열창하는 한나의 장면은 상업영화 카타르시스의 한 정점이라고 생각될 정도. 또 유난히 잦은 클로즈업이 끄덕거려질 만큼 매력적인 주진모는, 최소한 이 겨울 동안에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성형은 옳지 않아”식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말을 맺는 대부분의 대중 영화와 달리, ‘미녀는 괴로워’는 열린 결말로 상투성을 벗어난다. 미모 자체가 이미 자본의 일부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영화 한 편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수많은 여성들의 울분 해소나 대리만족을 주기에는 큰 부족함이 없을 듯. ▲영화 `미녀는 괴로워` 예고편
- (테마기획)"상사의 미래는 투자와 트레이드에 있죠"
- [알마티=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유전개발은 대부분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운영하는 광구의 지분을 사들여서 배당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석유개발'이라고 부르기 어렵다.유전탐사와 개발 노하우가 전혀 없더라도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지난해 8월 LG상사가 카자흐스탄에서 아다 광구의 지분 45%를 인수하고 운영권을 따낸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LG상사는 이 지분을 석유공사와 절반씩 나눠갖고 한국 업체 최초로 카자흐스탄에서 직접 석유를 뽑아낼 꿈에 부풀어있다.98년 오만의 부카유전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본격화된 LG상사의 해외유전개발 사업은 모두 장현식 상무(에너지사업부장)의 손끝을 거쳐갔다. 83년 입사후 91년부터 자원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근 장 상무는 15년이 지난 지금 LG상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유전개발 전문가가 됐다.장 상무는 해외 유전개발 사업을 위해 가장 시급한 요소로 전문인력 확보를 첫손에 꼽았다. 다음은 장현식 상무와의 일문일답. ▲해외 유전투자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은?-해외 유전을 매입하고 탐사하는 일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이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특히 경영자 입장에서는 성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실패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인력이다. IMF 때 많은 사업을 축소하고 인력도 줄였다. 그러나 최근 2~3년 간 유가가 많이 오르고, 석유사업 전문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력 수급에 불균형이 생겼다. 이게 모든 석유사업자들이 갖고 있는 고민 거리일 것이다. 인력을 늘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해외 자원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12~13명 가운데 현재 5명이 카자흐스탄에 상주, 파견돼 있으며 나머지 7~8명은 국내에서 카자흐스탄 사업을 지원하거나 다른 신규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사실 메이저 기업과는 경쟁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신규 자원개발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새롭게 입사한 자원개발 전공자들도 충분한 경험과 기술을 획득하기 까지는 7~8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외 자원투자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프로젝트는?-오만 부카(Bukha)광구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 같다. 지난 1997년 IMF 전에 들어가 최근까지 기대보다 더 큰 수익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LG상사와 석유공사 등 한국 기업들로만 컨소시엄을 이뤄 생산에 성공한 베트남 11-2(가스전)도 상징성이 크다. 상사가 수출입을 통해 돈을 벌던 시기는 지났다. 앞으로 상사가 살 길은 투자와 트레이드인데, 수익성이 높은 트레이드를 위해서는 자기 물건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석유는 물론, 구리나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 개발에 나서게 된 것. 사실 최근 4~5년 간 투자가 집중되긴 했지만 해외 자원개발은 꽤 오래 전부터 추진해왔다. ▲내년이후에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방향과 계획은?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유전개발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석유뿐만 아니라 가스 개발에도 투자하고, 생산 가스를 이용한 석유화학 사업을 병행해 시너지를 노릴 생각이다. 지난해 오만에 석유화학 합작사를 설립한 것과 같은 방식의 오프테이크(off-take·해당 플랜트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권리를 획득한 후 이 물품의 해외 수출을 담당) 분야를 강화할 계획이다. ▲해외 유전개발 기업들이 유사시에 원유를 들여오는 것은 경제성이나 해당 광구의 계약조건, 정유사의 반발 등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에너지 자원은 해당 국가의 소유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자원개발을 해도 국내로 들여올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석유를 못 들여와도 기업이 자원개발로 수익을 내고 국가경제에 보탬이 된다면, 다시 그 돈으로 석유를 사올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가격이 문제일 뿐 법적 제약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에너지 독립은 기업의 자원 개발뿐만 아니라 국가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에떤 정책이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나? -유전개발 사업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부는 성공불융자(사업 실패시 융자금 감면)를 통해 사업비의 80%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 소진으로 실질적으로 40% 수준밖에 지원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현재 민간기업의 경우 상당 금액의 투자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데, 사업에서 실패할 경우 피해가 매우 커지게 된다. 고시 비율(80%)만큼의 실질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리스크를 분산시키려면 더 많은 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장현식(張玄植) 상무 약력-1956년 11월 8일 생-부산고,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졸업-1983년 10월 LG상사 입사-LG상사 자원개발/프로젝트팀(91.4 ~ 99.12)-LG상사 에너지팀/자원개발TFT장(00.1 ~ 04.12)-LG상사 에너지사업부장(05.1 ~ 현재)
- (edaily리포트)환율 하락의 에필로그
- [이데일리 이승우기자] 올해 환율이 크게 내렸지만 그 탓을 누구에게 돌리기가 참 힘듭니다. 기업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투기세력들도 그렇고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환율 급락의 과정에서 여러 주체들이 과도한 행태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과도했던 부분은 다시 반대 작용으로 타격을 준다는 과거 경험을 교훈 삼아 이제 환율 급락이 진정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채권외환팀 이승우 기자가 전합니다. Thanks to: 중국 위안화 절상.. 대단했던 조선업체의 달러매도 공세.. 떨어지는 환율에 웃음짓던 수입업체들.. 명철하지 못했던 정부 외환정책.. 그리고 이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았던 역외 투기세력..올해 환율을 920원대로 떨어뜨린 영광(?)을 이들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이들중 영광을 받고자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어쩔 수 없었거나 `내탓`이 아니라고 하는군요정부는 투기꾼들 때문이라며 연일 `쏠림현상`만을 되풀이하고 있고 조선업체는 환 변동위험을 피하자니 곧바로 헤지(선물환 매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른 수출업체들은 환율이 떨어지니 덩달아 팔 수 밖에 없었다며 오히려 하소연을 하네요.그러면 환율을 끌어내린 주역은 누구입니까? 답답하네요. 올해 환율 급락의 시나리오를 보면 이렇습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우리 경제의 회복 흐름은 당연히 통화(원화) 강세(환율 하락)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경제가 튼튼해지면 통화 가치가 올라가는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1분기 6% 이상의 고성장을 하면서 결국에는 환율 1000원이 붕괴되더니 네자릿수 환율은 점차 멀어져갔고 저점은 계속해서 낮아졌습니다. 이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쪽이 바로 역외 투기세력입니다. 이들은 헤지 펀드 등 글로벌 시장에서 틈이 보이면 여지 없이 공격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회복에 대한 그림은 원화 투기에 최적의 찬스였습니다. 여기에 합세한 것이 바로 중공업체를 비롯한 수출업체들입니다. 환율이 내려가는 것을 보니 당연히 위험하다 여겨 달러를 일단 팔아 치워야 한 것입니다. 5월에 927원에서 저점을 찍고 나서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을 좌지우지 한다고 자부했던 역외세력들이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역외도 927원 정도 환율이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달러를 사기 시작했죠. 그런데 국내 조선업체들을 비롯한 다른 수출 업체들이 합동공세를 펼치며 환율 오르는 것을 막았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대목입니다. 1000원대, 980원대, 960원대에서 끊임없이 달러를 팔았던 업체들의 환율 담당자들이 추가로 환율이 오르면 오히려 이에 대한 질책이 두렵다며 환율이 오를때마다 달러를 공격적으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930원, 940원 환율이 갑자기 960원, 970원 혹은 그 위로 오르게 되면 예전에 팔아버렸던 달러들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런 양상들이 올해 외환시장에서 포착됐습니다. 환율 전망은 시쳇말로 `신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큰 위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5월 이후 수출업체들의 달러 매도 행태는 과도했다는 것이 외환시장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지적입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리 원화의 구매력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수입물가도 싸져서 내수 부양에도 도움이 되지요. 해외에 나가서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중소 수출기업들은 정말 상당히 어려운 지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튼튼한 대기업들은 환율 800원대에 맞추어 내년 경영계획을 짠다고 하던데, 중소수출기업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요. 옛날처럼 환율을 높게 유지해 수출로 먹고 살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환율이 하락해 내수와 수출, 두가지 축으로 균형성장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나 환율이 과도하게, 너무 빨리 떨어져 버리면 수출은 수출대로 무너지고 내수는 살아나지 못하면서 `균형 성장`이 아니라 `균형 침체`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외환을 직접 운용하는 딜러들도 이럽니다. "사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환율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내리니 국가 경제를 위해서 좀 두렵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환시장을 취재하는 기자는 환율 하락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는 겁니다. 물론 최근 정부의 개입으로 환율이 반등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그동안 국내에 달러를 공급했던 원천인 경상수지가 균형으로 가고 있고, 내년에는 적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국은행이 그러더군요. 그리고 은행의 대규모 단기 해외차입도 주춤해졌습니다. 기업들의 선물환 매도도 11월 들어 급감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달러 약세라는 부정적인 여건은 여전하지만, 그와 상반된 움직임도 있는 것이지요.올해를 되돌아보면서 저질러졌던 각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과도했던 행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필요 이상으로 환율이 급락하지 않아 이 글이 정말 환율 급락의 에필로그(epilogue)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 잊을 뻔 했습니다. 환율 하락에 대해 특별히 경의를 표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Special thanks to: 소득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나라, 그래서 해외에서 매년 엄청난 빚을 조달해야 하는 나라, 그렇게 많은 빚을 쓰면서도 이자는 제일 낮게 무는 나라, 자신들의 빚이 너무 많은 것은 다른 나라의 수출 때문이라며 달러 약세를 강요하는 나라, 바로 미국입니다.
- (딸기아빠의 재무설계)내년 해외펀드 어디가 좋을까?
- [이데일리 김종석 칼럼니스트]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1)번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안전줄은 한 개, (2)번 엘리베이터는 세 개다. 어떤 엘리베이터가 더 안전할까? 당연히 (2)번 엘리베이터다.해외투자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에 집중 투자하는 몰빵투자보다 여러 국가에 투자해 위험을 줄이는 분산투자가 좋다. 친디아, 브릭스 등 여러 국가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를 고르는 것도 지혜로운 투자다.일본 및 이머징마켓 증시의 인기가 뜨겁다.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글로벌 증시에서 철저히 소외 받은 국내 및 일본 증시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이제라도 해외펀드로 갈아타야 하지 않을까 고민중이다. 전문가들도 내년 해외펀드의 수익률을 높게 보고 있다. 해외 주요국 경제전망 및 증권시황 점검을 통해 내년 투자 계획을 세워보자. 올해 해외펀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시장이 중국이다. 외국인들이 외화로 거래하는 상하이B 지수는 50% 이상의 상승률을 보여 11월말 현재 중국펀드 평균수익은 20%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 이상을 기록중인 가운데 2008년 올림픽, 2010년 엑스포 등 초대형 이벤트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외화유입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중국은 올들어 경기 연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금리 인상과 지급 준비율 인상, 부동산 안정화 조치 등 거시적인 조치들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과열 경기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다. 물가 상승률도 2%에서 안정을 찾았다. 1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의 유동성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위안화 절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며 돈은 불려줄 곳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지속되는 높은 성장률, 안정적인 소비자물가, 수출입 규모 확대 등을 근거로 국제 금융 자본의 중국에 대한 베팅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몇 가지 체크 포인트가 있다.첫째는 비유통주의 유통화 추진이다. 중국은 현재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 공기업 지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보유했듯 중국도 공산당이 주요 기업들의 발행주식 물량 중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다. 이른바 `비유통주`다. 시범 기업들의 유통화 발표로 우량 기업들의 주가가 20% 이상 상승하면 중국 증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둘째는 위안화 절상이다. 변동환율제 도입으로 중국 환율 절상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커졌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국내 부동산, 채권, 주식 등 투자상품 및 실물자산 가격의 장기적인 상승세를 이끌어낼 전망이다. 셋째는 A, B 증시의 통합이다. 같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시장에서 각기 다른 가격이 형성될 수 있으며 거래되는 통화에 따른 환율 차이에 의해 가격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B증시 상장기업 주식은 같은 기업의 주식으로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로 환산할 경우 A증시 같은 종목에 비해 가격이 약 35% 할인돼있다. A, B증시가 통합될 경우 B주식이 A주식으로 편입되면 주가는 A증시를 따라 상승할 것이다. 이는 중국 증시를 밝게 보는 또 하나의 이유다.최근 중국 시장과 관련해 올림픽 관련 인프라 건설을 위한 경기특수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으므로 지난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올해 50%에 가까운 상승률은 누가 보기에도 부담스럽다.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올해 일본 경제는 60년대 이자나기 경기(57개월간 경기확장국면)보다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지만 주가는 경기만큼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본펀드 투자붐이 계속되기도 했지만 라이브도어의 회계 부정, 제로금리 포기에 따른 금리 인상, 투자심리 후퇴 등이 기업이익 증가세와 고용여건 개선 등의 호재를 압박했다. 제로인의 자료에 따르면 12월1일 현재 일본 펀드의 평균수익률은 -3.86%. 한마디로 글로벌 증시 상승세에 합류하지 못하고 최하위 수익률을 기록한 고단한 한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주식 시장에서 가장 큰 호재는 긴 조정기간. 그래서인지 내년 포트폴리오에서 일본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달 14일 발표한 3분기 실질 GDP성장률은 전기 대비 0.5% 증가해 7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설비투자의 확대, 소비와 비제조업의 경기회복, 미국 경제의 연착륙 기대감에 기인한 결과다. 내년 일본 시장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국제적 기준으로 볼때 인플레이션 상황은 적정한 수준이다.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가계 부채 비중이 늘어날 수 있으나 주식 시장에 타격을 줄 만큼 위협적인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투자심리 회복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스크 요인도 없지 않다. 미국 경기가 경착륙하면서 IT 부문 생산조정 등이 현실화 될 경우 성장세가 둔화돼 정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PER(주가수익비율)는 18배로 이머징 아시아 평균 12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므로 저평가 됐다고 볼 수 없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상대적으로 낮아 투자 매력도도 떨어진다. 올해 일본 주가는 박스권 등락을 반복하며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역외펀드의 경우 환헤지를 하지 않았다면 원/엔 환율하락 추세에 그대로 노출돼 그 수익률이 더욱 낮았을 것이다. 기존 일본펀드를 보유한 투자자는 성급하게 환매하기보다는 추세 상승을 기다렸다가 비중을 축소하는 전략이 바람직하겠다. 일본 시장에 신규 투자할 경우 전문가들의 환율 전망을 참조해 환헤지를 해둬야 한다. 경제구조가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증시가 최근 동조화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환리스크와 세금 등을 무릅쓰면서까지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일본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올해 인도의 증시 상승률도 중국 못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의 10대 수익률 우수 펀드 가운데 인도 펀드가 8개나 들어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디아펀드, 친디아, 브릭스펀드 형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도는 현재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무역수지 적자 확대, 높은 물가 상승률, 부동산 가격 급등, 가파른 대출 증가율 등이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인도는 최근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네델란드 철강회사, 미국 호텔 등의 인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LG필립스엘시디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인수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인도 경제는 젊은 IT 세대의 풍부한 소비력을 기반으로 8%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금융 부실이 없는 상황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이머징 마켓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도 인도 경제를 밝게 하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자원 부국으로 오일 머니를 국가 현대화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석유자원 매장량: 세계8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1위, 철광석 매장량: 세계1위, 석탄 매장량: 세계2위 등) 무궁무진한 자원을 호재로 주가 상승률 또한 가파르다. 유라시아 철도 연결로 세계 물류 허브로 부상하기 위한 원대한 꿈을 꾸고 있기도 하다. 90년대 모라토리엄으로 러시아를 떠났던 외국의 기업들은 러시아로의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도소매업체들의 진입으로 내수시장도 점차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추세다. 내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성장성을 더욱 밝게 한다.그러나 2008년 대선을 앞두고 고개를 들고 있는 정국 불안 등은 위험 요인이다. 최근 헤지펀드가 원자재 펀드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증시에 대해 낙관만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브라질은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인 성장 기조를 유지했다. 최근 인플레이션 위험과 환율 변동성 등으로 금리가 20%대 이하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주가도 글로벌 증시의 상승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대외교역보다 탄탄한 내수 기반도 경제 회복의 길을 닦는데 기여했다. 특히 바이오 에탄올 분야의 풍부한 원료와 높은 기술은 고유가로 신재생 에너지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인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세, 높은 외환보유고(820억 달러), 재정·무역흑자 기조 등 거시 경제지표의 호조와 높은 금리 덕분에 브라질을 향한 해외 투자자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금리로 주식형 펀드보다는 채권형 펀드의 인기다.최근 모 증권사에서 베트남 펀드를 출시해 꽤 짭짤한 재미를 봤다. 공모, 개방형 펀드로 모집했으나 많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베트남 주식 시장의 시가총액은 7조원. 상장기업도 79개에 불과하다. 과다 투자시 가격 왜곡 및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사무실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외국자본이 물밀 듯 몰려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베트남은 풍부한 인적·물적자원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7.6%의 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WTO 가입에 따른 대미 교역 증가 및 외국인 투자 증가로 증시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분산투자 차원에서의 투자를 고려해볼 만 하다. 필자는 고향이 남도 끝이어서 명절때만 되면 도로 위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낸다. 고속도로를 이용해 운전하다가 막히면 교통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OO번 국도가 덜 막히니 우회하세요`라는 방송이 나오면 `정말 그럴까?` 갈등하다가 이내 따라간다. 하지만 잘 뚫린다던 그 길은 이미 교통 지옥으로 변해있다. `가던 길로 계속 갈걸`하는 후외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투자한 해외 펀드 수익은 한없이 커보이게 마련이다. 좋은 수익을 내는 펀드나 종목을 쫓아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듬해 평균 수익률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해외펀드 투자시 유의할 점`에 대해 살펴보겠다.김종석 우리투자증권 용산지점 차장
- 쓸쓸함만 즐긴다고요? 바람의 속삭임도 들어보세요
- [조선일보 제공] 폐사지(廢寺址)는 ‘침묵’의 공간이다. 그곳의 침묵은 견고하다. 그러나 그것은 허공과 같아서, 햇볕이든 바람이든 구름이든, 혹은 지나가는 길손이든 무심으로 맞아준다. 무엇을 듣고 배우고 알려는 강박 없이, 그저 지나가는 바람인양 슬며시 다가갈 일이다. 절터 중에는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품고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폐사지의 진정한 국보적 의미는 ‘텅 빈 공간’으로서의 위엄이 아닐까? 시간 앞에서 풍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땅, 물, 불, 바람’으로 돌아간다. 텅 빈 옛 절터에서 이러한 세계의 실상을 관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폐사지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천년 저편에서 지금 여기로 이어지는 시간의 은하로 자맥질하여, ‘있는 그대로’ 우리네 삶을 성찰하는 것. 이 또한 폐사지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학술적 가치보다는 자연적 배경이 빼어난 폐사지를 찾아봤다.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진전사터·낙산사' ▲ 진전사지 삼층탑. (사진작가 박보하씨 제공)강원도 하면 먼저 고개가 떠오르게 된다. 대관령, 한계령, 구룡령…. 하나같이 웬만한 멧부리를 능가하는 높이에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이 고갯마루 어디로든 선림원지를 갈 수 있다. 약간 돌긴 하지만 한계령을 넘기로 하자. 차창으로 들어오는 내설악의 풍경화첩을 넘기다 보면 고갯마루. 미천골은 태고의 자연이 숨쉬는 우리나라 최고의 계곡 가운데 하나다. 미천골 국립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 옥빛 계곡 물 소리를 길잡이 삼아 800m쯤 걸어 오르면 산기슭에 바투 앉은 선림원터가 있다. 선림원은 804년 순응이라는 스님이 창건한 절인데 어느 날 큰물이 나서 흙더미에 묻혀 버렸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삼층석탑(보물 제444호), 지붕돌의 귀꽃이 약간 손상됐지만 연꽃 조각이 섬세한 석등(보물 제445호), 몸돌은 사라지고 돌거북과 용머리만 남아있는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가 있다. 삼층석탑 뒤 건물터의 주춧돌 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린다. 추녀 끝에 계곡물 소리가 풍경소리로 걸린다. 골 이름도 이 절에서 비롯됐다 한다. 한창 번성할 때 쌀뜨물이 계곡 하류까지 흘러내렸다 하여 미천골(米川谷)이 됐다는 것이다. 협소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대중이 살았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넘치는 건 병이다. 설악산 대청봉 동쪽 기슭 둔전골로 든다. 7번 국도를 타고 속초로 가다가 물치해수욕장 전 장산리에서 옛 속초비행장쪽으로 좌회전하여 곧장 가면, 길이 다하는 곳에 삼층석탑(국보 제122호) 하나가 솟아 있다. 단아하면서도 날렵하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석탑 중 하나다. 진전사터에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서 산기슭으로 오르면 돌계단이 부도(보물 제 439호)로 이끈다. 9세기 중반에 조성된 도의 국사의 부도로 추정하는데, 학자들은 이 부도를 한국석조형부도의 시원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선법(禪法)을 배우고 돌아온 도의 스님은 당시 교학과 염불 위주의 풍토를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육성은 ‘마귀의 말’이 되고 말았다. 이에 서라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은거한 곳이 진전사다. 고승의 유골을 모시는 부도는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신 탑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도의 스님의 부도가 한국 최초의 부도라는 말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이 땅에 뿌리내렸다는 선언적 의미를 띠게 된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인간 존엄의 절대성에 대한 가없는 긍정이다. 낙산사로 간다. 폐사지 여행길에 낙산사는 왜?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물론 낙산사는 폐사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봄 불탄 자리에 새싹이 돋았다 시들고, 검게 그을린 나무 등걸 곁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그 곁에 새로이 절집이 지어지는 현장에서 이번 여행을 마치고 싶었다. 낙산사는 전쟁터처럼 처참했고, 포연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비장한 모순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바다를 배경으로 보면 한낱 봄꿈에 지나지 않는다.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이용) 현남IC → 양양 → 논화삼거리 → 56번 국도 구룡령 방향 15㎞지점에서 좌회전(선림원터) → 양양 방향 56번 국도 → 44번 국도 → 7번 국도 속초 방향 → 장산리에서 좌회전8㎞(진전사지) → 7번국도(낙산사) 강원도 강릉 '굴산사터·신복사터' 굴산사 가는 길은 충분한 실망 연습을 해야 한다. 낭만이 끼어들 여지는 더욱 없다. 논 가운데에 우뚝 선 당간지주를 보고 ‘폐허의 미학’ 운운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통일신라 말, 서라벌은 시들어 가는 나무였다. 왕실은 왕위 쟁탈전에 골몰했고 지방에는 호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때 이른바 구산선문으로 상징되는 산문선이 발흥한다. 굴산사도 그 중 하나였다. 사굴산문의 개산조인 범일 스님이 터를 닦았다. 범일 스님은 경문왕·헌강왕·진성왕 등이 국사로 모시고자 했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높이 5.4m) 굴산사 당간(보물 제86호)은 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기개의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논 가운데에 우뚝한 당간에는 툭툭 돌을 털어낸 정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정성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일체의 형식과 권위를 거부하는 선불교답지 않은가. 기술이 모자라서도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닐 것이다. 간공(竿孔)의 정교함이 그것을 말해 준다. 굴산사터는 당간이 있는 들판에서 나와 학천 건너 학산오독떼기 전수관 맞은편 길 가에 있다. 그러나 유심히 찾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태풍 ‘루사’가 모든 걸 휩쓸고 간 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폐사지마저 부스러진 것이다. 그러나 밭을 가로지르는 길이 끝나는 곳 민가 옆에, 갓 피어 오른 듯한 연꽃 받침돌 위에 놓인 부도(보물 제85호)를 만날 수 있다. 진흙탕에 뒹굴어도 정신만은 오로지 하라는 가르침으로 새긴다. 신복사터 굴산사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와 강릉시내쪽으로 가다가 강릉보건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약 500m 들어가면 구릉 같은 산기슭에 신복사터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 어떤 사람도 무장해제시킬 것 같은 미소를 머금은 석조 보살상(보물 제84호)과 삼층석탑(보물 제87호)을 만난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오랜 세월을 노천에서 보낸 신복사터 공양상은 상처가 많다. 코는 많이 부서졌는데, 석불의 코를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당한 수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미신이라고도 야만적 행동이라고도 말할 자신이 없다. 오랜 세월 인고의 나날을 보낸 이 땅 어머니들 얼굴이 겹치기 때문이다. 입술도 깨어져 마치 이가 다 빠진 할머니가 웃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보살상의 얼굴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좋다. 최첨단 기술로 감쪽같이 복원을 한다고 해도 결사반대하고 싶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 그것이 폐사지가 오늘에 해야 할 역사적 구실이 아닐까.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이용) 강릉IC → 관동대 정문 → 구정면 학산리(굴산사지) → 강릉시내방향 → 강릉보건소 지나 장애인서비스센터 끼고 우회전 500m(신복사지) 충북 충주 '미륵사터 하늘재' ▲ 미륵사지 오층탑.(사진작가 박보하씨 제공)‘하늘재’라는 아주 매력적인 이름을 단 고개가 있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갯마루 가운데 하나인데, 새재 북쪽에 있다.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156년, 아달라이사금 3) 열린 고개라는 계립령을 이곳으로 추정한다. 미륵사터는 이 고개의 서쪽에 있다.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다가 몽골의 침입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절 이름은 미륵대원이었다. 현재 절터(사적317호)에는 석불입상(보물 제96호)와 석등(충북도 문화재 제19호), 오층석탑(보물 제95호) 등의 유물이 남아있다. 미륵은 석가모니부처 입멸 후 56억 7000만 년에 세상에 나타난다는 부처다. 어느 시대건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이 클수록 메시아를 갈구한다. 불경스런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엔 강남 아파트가 그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륵사터에서 1.5㎞ 정도 호젓한 숲길을 오르면 그곳이 하늘재다. 그리고 그 고개 너머 마을이 관음리다. 관음(觀音)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내면으로 되돌려 성찰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메시아는 결코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 것이다. 스산한 계절이다. ●찾아가는 길(중부고속도로 이용) 일죽IC 충주 수안보 597지방도 미륵사터 (영동고속도로 이용) 이천IC 장호원 충주 수안보 597지방도 미륵사터
- 밑바닥부터 실력 닦은 ‘맨발의 청춘’
- [조선일보 제공] 세대 문제 전문가들은 IMF세대가 “실용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갖춘 세대”라고 정의한다. IMF 이전의 대표격인 ‘386세대’는 강인하지만 이념 편향적이다. 2001년 이후 안정기에 대학을 졸업한 ‘포스트IMF 세대’는 실용적이고 유연하나, 강인한 생존력은 약하다. 반면 IMF세대는 이념 대신 실질·실용의 마인드로 무장하고 강인함의 경쟁력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IMF세대는 386세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과도한 이념성을 띠지 않고, 2000년대 학번처럼 극단적으로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 생존법을 찾은, 우리 시대의 이정표가 되는 세대”라고 말했다. 여기 밑바닥부터 시작한 IMF세대 3명의 분투기가 있다. 전쟁의 폐허와 보릿고개를 거친 아버지 세대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환란(換亂)의 한복판에서 버텨낸 젊은이들은 또 다른 인생의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 이보람씨 (디지털오아시스 CEO) 과외 5개씩 뛰며 학비 벌어 2년간 퇴근 잊은채 IT경력 연매출 45억 벤처회사 창업.◆창업, 될 때까지 포기는 없다 친구들과 5000원짜리 점심 한 끼를 먹으면 하루 종일 굶어야 했다. 그래도 없는 티는 죽어도 내기 싫었다. 스무 살 여학생은 이를 악물었다. 이화여대 이보람(여·30·95학번·교육공학 전공)씨는 과외를 5개씩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댔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IMF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1998년 초, 이씨는 휴학을 하고 돈을 벌기로 했다. 청첩장을 찍는 사업을 하겠다며 전국 200여개 예식장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한 곳도 뚫지 못했다. 주인이 던진 신발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대학축제 포스터와 책자를 디자인하면서 사업을 이어갔지만 신통치 않았다. 설상가상 1999년 초 IMF 때문에 사업에 실패한 건물주인이 보증금 6000만원을 떼먹고 도망갔다. 첫 사업은 이렇게 허무하게 정리됐다. “2000년 초 작은 IT회사에 들어갔어요. 월급이 문제가 아니라 인맥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요.” 회사에 살면서 1년에 딱 열흘 집에 들어갔다. 27살, 최연소 팀장이 됐다. 삶이 안락해질 때쯤 그는 제2의 도전에 나섰다. 2002년 온라인 웹페이지를 만드는 디지털오아시스를 창업한 것이다. 지금 그의 회사는 연 매출 45억원 규모로 컸고, 이씨는 주목받는 벤처 유망주가 됐다. ▲ 손승현씨 (한국증권 차장) ARS 증권서비스 바닥일 하루 2~3시간 자며 주식공부 꿈꾸던 증권사서 고속 승진.◆취업, 밑 바닥부터 차근 차근 1999년 2월, 손승현(32·93학번)씨는 증권사가 목표였지만 뽑아주는 곳이 없었다. 서울의 사립 K대 경제학과를 나왔고 토익도 900점, 미국선물거래소 자격증까지 땄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100곳이 넘게 정신없이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겨우 한 카드회사 계약직 고객상담원으로 취직했다. “하루 종일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텔레마케팅을 하는 일이었죠. 그래도 고맙기만 했어요.” 꿈을 포기할 수 없어 6개월 뒤 결단을 내렸다. 바닥부터 시작했다. 증권정보를 전화 ARS(자동응답서비스)로 알려주는 서비스 업체에 취직했다. 월급은 100만원 안팎. 그래도 이곳에 가면 증권 차트를 보고 시장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못할 거예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차트보고,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분석했죠. 그리곤 퇴근해서 모든 종목의 차트를 새벽 3~4시까지 보고 잤으니깐요. 주말도 없었어요.” 그렇게 1년, 감(感)이 왔다. 2001년 4월 손씨는 목표하던 한국증권에 ‘경력직’으로 입사했고, 차장으로 승진했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뭐든 열심히 하게 돼요. 어쩌면 20대에 인생의 가장 큰 좌절을 느낀 게 제게는 행운이었을지 몰라요.” ▲ 김정임씨 (두싯 두바이 호텔) 캐디생활로 돈 모아 호주로 500만원만 들고 두바이行 특급호텔에서 영업 담당.◆해외, 맨손으로 개척한다 1998년, 부모님의 고깃집에 손님이 없었다. 경북대 독문과 3년생이던 김정임(여·31·95학번)씨는 부모님께 “제가 돈을 벌게요”라고 선언하고 휴학계를 냈다. 무작정 대구의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첫 직업은 골프장 캐디였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1999년 호주로 떠났다. 토마토 농장 인부,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 등을 하며 영어를 배웠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미국·태국·일본을 쫓아다니며 무역실무를 익혔다. 지난해 4월 다시 한 번 인생을 건 결정을 내렸다. 단돈 500만원을 들고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한창 발전하는 두바이라면 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수십통의 이력서를 냈지만 채용하겠다는 연락은 없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속도 끓어올랐다. 가져간 돈이 거의 바닥날 무렵인 같은 해 7월, 극적으로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고객서비스 업무를 하는 일자리를 찾았다. 열심히 일했다. 5개월도 안 돼 두바이의 특급 호텔 ‘두싯 두바이’의 연회장 담당 직원으로 스카우트 됐다. “지금은 제가 원하던 세일즈팀으로 옮겨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어요. 대학 졸업장 없이도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부모님께 돈을 부칠 수도 있고,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믿을건 실력뿐” 자기계발에 올인 IMF세대는 여전히 뜨겁다. 졸업 후 10년 세월이 흘러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자기 경쟁력 계발을 위한 투자에 열심이다.98년 졸업한 윤모(여·경희대 신방과·94학번)씨의 꿈은 애니메이션 전문가였다. 50여차례 면접을 봐 2000년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 회사를 여섯번 바꿨다. 그래도 바꾸지 않은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영어학원만은 계속 다녔다. 직장이 부도나 월급을 못 받아도 학원비는 냈다.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미국에 애니메이션 유학도 다녀왔다. 그 덕에 올 봄 유명 드라마 제작회사에 취직하는데 성공했지만, 지금도 영어학원은 다닌다. 결국 실력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씨는 “다른 세대보다 우리 세대가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온라인 취업사이트 잡코리아가 전국 1205명의 대졸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MF세대의 10명 중 8명은 졸업 후에도 각종 학원이나 대학원에 다니는 등 자기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잡코리아의 변지성 팀장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젊은이들을 보면 IMF 시절에 졸업한 사람들이 많다”며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 (딸기아빠의 재무설계)복리의 이해(1) - 72법칙의 활용
- [이데일리 김종석 칼럼니스트] ◈ 맨해턴을 단돈 24달러에 넘긴 인디언<?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국제금융의 중심인 월가, 911테러의 대명사인 World Trade Center로 유명한 미국의 맨해턴을 24달러에 샀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지만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1626년의 일이다. 당시 맨해튼 섬에는 원주민 인디언들과 초기 네덜란드 이민자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이민자 대표로 뽑힌 피터 미누아트(Peter Minuit)는 이주민들이 점점 늘어나 영토가 부족하게 되어 인디언 추장과 협상을 통해 맨해턴을 24달러에 구입하였다. 그것도 구매대금은 현금도 아닌 장신구와 구슬로 지불한 것이었다.흔히 어리석음을 비유할 때 단돈 24달러에 국제경제의 심장부인 맨해턴을 넘긴 당시의 인디언들을 이야기 하는데, 과연 그럴까?1626년의 24달러가 38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로 불어나 있을까?전설적인 투자자 피터린치는 1989년 재미있는 분석자료를 내 놓았다. 당시 인디언들이 받은 24달러가 연 8%의 수익을 냈다고 가정하고 복리로 계산했을 때 1989년 당시 그 가치가 무려 30조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맨해턴 섬이 1,730만평이니 평당 170만달러에 주고 산 셈인데 1989년 분석 당시 맨해턴 전체 땅값은 600억달러(평당 3,468달러)에 불과 하였다.피터 미누아트가 단돈 24달러로 횡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복리의 마술을 생각한다면 누가 더 현명한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무목표 달성, 복리투자가 정답이다.간혹 저금리를 핑계로 저축을 해서는 뭐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저금리'는 금융시장에서의 돈의 가치평가의 문제이지, 재무설계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경제성장이 활발하여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많아 금리가 높았던 시대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화 되가는 과정에서 저금리는 당연한 결과물일 뿐이며 '금리가 낮아서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며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아인슈타인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극찬하며 세계8대 불가사의라고 불렀던 '복리'의 마술을 이용하면 원하는 재무목표를 달성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문제는 인내심과 얼마나 빨리 저축을 시작했는지 시간의 문제이지 원금보장형 고금리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얼마든지 있다.원금 보장형 예금에서부터 간접투자상품인 펀드와 개인연금 및 변액보험까지 나의 투자성향과 목적에 맞는 상품의 적절한 조합으로 복리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풍요로운 삶을 준비해 보자.◈ 복리, 시간과 수익률의 마술복리의 마술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투자자는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우는 워렌 버핏이다.실제로 그는 40년 동안 매년 26.5%의 수익률을 내고 재투자 함으로서 5,000달러짜리 펀드를 12,000배인 6,000만불로 만들었으며, 물가상승률 5%를 감안하더라도 1,700배인 850만달러로 만들어 복리의 마술을 실례로 보여주었다.위의 사례처럼 1,000만원을 매년 10%의 확정수익률 상품에 5년간 투자했을 때 단리와 복리의 이자는 110만원의 차이가 발생하며, 투자기간을 10년 20년 늘린다고 했을 경우 그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표2)그렇다면 원금이 2배인 2,000만원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단순히 계산해서 10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0년은 단리로 계산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고 복리로 계산하면 7.2년이 걸린다.복리이자의 계산은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에서 이자가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것으로 가입햇수가 길어질수록 제곱승수가 필요하므로 일반적인 계산기로 조차 계산하기가 어렵다.이럴 때 간단히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복리의 계산, 72법칙으로연 10%의 복리상품에 가입했을 때 원금의 두 배로 불어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어, 10년 아니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복리는 이자에 이자가 붙는 구조라는 것을 망각하면 안될 일이다.이럴 땐 72법칙을 활용해 보자! 이자율을 72로 나누면 원금이 2배가 걸리는 시간을 복리로 계산해 주는 아주 유용한 법칙이다.즉 72를 이자율인 10%로 나누어보면 7.2가 되는데[72÷10=7.2] 이는 원금의 2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년 5%짜리 상품이라면 몇 년이 걸릴까? [72÷5=14.4] 14.4년이 걸린다. 투자원금이 2배가 되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 외에도 72법칙은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이번에는 투자기간이 정해져 있을 때 원금의 2배가 되려면 얼마의 수익이 나야 하는지도 간단히 계산해 보자.예를 들어, 4년후 현재의 집에서 큰집으로 넓혀서 이사를 가는데 필요한 자금이 1억원이고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5천만원이 있다면 4년후 1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년 얼마의 수익을 내야 할까?간단히 72를 4로 나누어 보면 [72÷4=18] 매년 18%의 수익을 내야 4년후 목표금액을 달성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금융상품을 선택하여 투자를 하면 된다.또한 현재 대출을 받고 있는 경우, 이자를 원금만큼 납부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계산해 볼 수 있다. 현재 11%의 대출을 받고 있는 경우 6.5년이면 원금만큼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72÷11%=6.5년]이처럼 72법칙은 계산기 없이도 72라는 숫자에 이자율과 투자기간을 대입함으로서 자산형성, 부채관리, 목표수익률 설정 등 재무목표 설정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재무계산기’라고 볼 수 있다.◈ 72법칙의 의미위의 계산에서 우리는 금리와 시간과는 정의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금리가 높을수록 돈이 불어나는 속도는 커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의 크기도 커진다는 사실을 통해 비록 적은 돈이라도 하루 빨리 투자를 해야 복리의 마술에 의해 돈의 크기는 눈덩이처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며, 이처럼 72법칙에서 우리는 여러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첫째, 부자가 되는 시간을 앞당기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저금리 시대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저금리에 투자를 한다면 상대적으로 돈이 모이는 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장기투자를 해야 복리효과가 더 커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둘째, 저축만 고집할게 아니라 투자도 해야 한다!원금보장과 확정수익의 의미가 장점보다는 리스크와 단점에 가까운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투자환경은 급 물살을 따라 소용돌이 치며 흘러가는데 원금보장만을 고집하다가 흘러간 세월을 못내 아쉬워 하며 흘러간 물을 한움쿰 움켜쥐려고 허우적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따라서 저성장, 저금리시대에는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해 펀드, 변액보험 등 다양한 투자상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재투자를 해야한다.투자성향에 따라 어떤 상품을 고를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저축이건 펀드건 변액보험이건 투자성과(이자)에 대한 재투자를 해야만 자산의 크기는 눈덩이 효과로 커지게 된다. 넷째, 목표가 없이는 어떤 꿈도 이룰 수 없다!재테크와 재무설계의 차이는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며, 이 둘 사이에는 투자성과에서 많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꿈을 이룰수 있는 자는 구체적인 목표설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기간에 따라 이벤트에 따라 재무목표를 반드시 설정하고 실행에 옮기자.(다음 호에서는 복리를 활용한 실제 금융상품 활용 및 복리투자의 성공요건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김종석 우리투자증권 용산지점 차장)
- (투자의날을 만들자)<2부>⑩주식 `불신의 골` 너무 깊다
- [이데일리 김경근기자] 유명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정(가명·여·34)씨는 주식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주식투자로 잃은 돈을 생각하면 화까지 치밀어 오른다. 닷컴 붐을 타고 주식 열풍이 휘몰아 쳤던 지난 2000년. 김씨는 '대박'을 꿈꾸며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한푼두푼 모은 거금 5000만원을 과감히 투자했다. 처음엔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금새 수익률이 30%를 웃돌았다. 나도 이제 꽤 부자란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김씨를 들뜨게 만들었던 기쁨은 잠시. 닷컴 버블이 꺼지며 일년만에 투자한 돈이 거의 반토막났다. 절망적이었다. 손해를 만회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됐다. 자기가 산 주식은 가격이 떨어지고, 갖고 있던 주식을 팔면 기다렸다는 듯이 올랐다. 몇해가 지난 후 김씨 수중에 남은 돈은 겨우 1000만원. 손해를 만회하려고 추가로 투자한 돈까지 고려하면 지난 6년간 6000만원 정도가 날아갔다. 1년에 1000만원꼴로 잃은 것이다. 김씨는 이제 '주식'이라면 손사래부터 친다. "주식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요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주식에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지만 선뜻 나서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짓는다. "대박을 꿈꾸고 묻지마 투자를 한 책임이 있긴 하지만, 이제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편이 나을 것같다"는 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뢰가 무너져 있다. 한국에선 여전히 주식이 건전한 '투자(投資)' 수단이 아닌 '투기(投機)'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 주식은 패가망신 지름길?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주식시장이 걸음마 단계이던 때부터 이같은 불신이 싹텄다. 지난 1975년부터 3년간 불어닥친 건설주 파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동특수와 맞물려 건설주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열풍에 빠졌다. 3년간 건설업종은 무려 5000% 이상 올랐다. 건설증권과 건설화학 등 단지 ‘건설’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주가가 폭등한 사례도 있다. 그야말로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다. 지나침이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후유증이 무척 컸다. 시골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일부 농부들까지 주식 바람이 불어 땅 팔고, 소 팔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쪽박을 찬 사례까지 나타났다.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은 지난 2000년을 전후한 닷컴주 버블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닷컴을 앞세운 벤처 바람이 불면서 온 나라가 주식 열기로 뜨거웠다. '열기(熱氣)'가 아닌 '광풍(狂風)'이었다. 벤처에 투자해 열배, 백배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자 앞다퉈 주식투자에 나섰다. 조금만 여윳돈이 생겨도 너나 없이 주식에 투자했다. 증권사 창구엔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부대까지 등장했다. 빚까지 내 투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때 마침 외환위기로 강제 내지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은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을 싸들고 증권사 창구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일년 남짓. 주식투자 열풍이 지나간 결과는 참담했다. 닷컴주의 거품이 걷히고, 경기마저 침체에 접어들자 주가는 바닥 모르게 떨어졌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에 발목이 잡혔던 코스피 지수(연평균)는 406.07을 기록했다. 다음해인 2001년엔 닷컴붐에 힘입어 806.83으로 껑충뛰었다. 닷컴 붕괴 조짐이 보이던 2000년엔 734.22, 2001년엔 576.31로 추락했다. 주가 하락은 그대로 개인 투자자 피해로 나타났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묻지마 투자'에 나섰던 소위 개미들의 꿈은 닷컴 거품과 함께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가슴엔 불신만 남았다. 더이상 주식 투자를 않겠다며 밀물처럼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주식 시장도 차갑게 얼버붙었다. 외환위기를 지나 닷컴 붐이 절정에 달하던 지난 2000년 1205조원이었던 연간 주식거래대금은 다음해 917조원으로 떨어졌다. 특히 유가증권 시장은 지난 1999년 867조원을 정점으로 낮아져 2000년 627조원, 2001년 491조원으로 2년새 무려 40% 이상 줄었다. 그 결과 국민들에겐 주식은 '도박',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인식이 확실하게 심어졌다.◇ 줄잇는 금융사고..투자 분위기 찬물 지난 해부터 국내 주식시장이 불신을 딛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저축의 시대가 가고 투자의 시대가 왔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주식투자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침 은행창구에서 펀드가 본격적으로 판매되면서 간접투자 붐도 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같은 투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각종 금융 사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 돈을 마음대로 유용하고, 횡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증권사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다시 불신을 심어주고 있다. 정창모 금융감독원 총괄조정국 검사총괄 팀장은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 주식을 사고 팔면서 손실이 났을 때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다른 고객 계좌에서 돈을 마음대로 옮겨 문제가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며 "심할 경우 고객돈을 갖고 사라지는 횡령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영대 대우증권 감사실장은 "직원들의 횡령 사고를 막기 위해 고객들의 도장과 주식거래 카드를 아예 갖고 있지 못하게 단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고객들과 직원들이 편의상 이같이 거래를 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정부 관리당국과 증권사들의 자정 노력으로 증권사 금융 사고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1년 24건이던 증권사 직원의 횡령 및 유용은 2002년 20건, 2003년 15건, 2004년 13건으로 차츰 감소했다. 지난해엔 10건만 적발됐다. 그러나 횡령 및 유용 금액은 지난해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지난 2002년 464억원으로 최대를 기록한 후 대폭 줄었지만 작년에 207억원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그만큼 횡령 사건을 일으킨 증권사 직원들이 대담해진 것이다. 증권사의 모럴 해저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잘못된 관행이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대우채 사건이 대표적인 증권사 모럴 해저드 사례로 꼽힌다. 증권사들이 위험이 있는 투자상품을 마치 저축상품인 것처럼 팔았다가,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펀드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 사건이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뿐만 아니라 증권사까지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 자본시장 불신부터 해소해야..아직 갈길 멀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국민들에게 건전한 투자의 장으로 인식되기 위해선 "시장의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천웅 우리투자증권 전무는 "주식은 속성상 안전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항상 내재한다"며 "따라서 주식시장과 기업들의 투명성이 담보돼야 투기가 아닌 투자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과거 한국 주식시장이 투기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시장 투명성 떨어져 투기적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 정보가 평등하게 공개되고, 기업들이 투자자들이 신뢰할 만큼 투명한 운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전한 투자 환경이 조정된다는 것이다. 박 전무는 "개인 투자자들도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에 큰 돈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시장을 투기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성급한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은 신뢰를 먹고 산다. 투자의 시대에 걸 맞는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장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멀었다.* 협찬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 후원 :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
- “정부 믿다 내집꿈 날아가” 전세사는 서민들 절망
- [조선일보 제공]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35)씨. 25평형 아파트를 9200만원에 전세로 살던 그는 작년 말부터 집을 사러 다녔다. 마침 직장과 가까운 관악구 봉천동 P아파트(당시 시세 3억4000만원)가 매물로 나왔다. 하지만 3000만원 남짓한 연봉에 은행 빚 내기가 부담스러웠던 데다, 집값이 내릴 것이란 정부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존 전세를 연장했다. 현재 P아파트는 시세가 5억원을 넘었다. 김씨는 “(정부에) 감쪽같이 속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퇴직자 박모(60)씨는 “남들은 집값 올라 좋겠다지만, 뭘 모르는 소리”라고 말한다. 지난 2000년 서울 강남 대치동에 3억원을 주고 샀던 아파트(40평)가 최근 12억원을 훌쩍 넘은 것. 하지만 내년부터 보유세만 매년 700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그는 “팔면 양도세만 1억5000만원이고, 남은 돈으로 작은 집 마련하고,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할 판”이라며 “1가구 1주택자를 투기꾼 취급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뒤통수 맞은 실수요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은 잡겠다”던 구호를 믿었던 무(無)주택자에겐 내 집 마련의 꿈이 정말 꿈이 됐다. 지난 7월 일산에서 집을 사려다가 말았다는 이모(36·경기 용인)씨는 “8월 판교 분양에 당첨될 걸로 믿었다가 결국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폭탄’에 숨어버린 매물 유(有)주택자들도 집값이 올랐지만 각종 ‘세금 폭탄’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서울 목동에 45평 아파트를 가진 유모(50)씨는 “5억에 산 집이 지금 16억쯤 하지만, 양도세 내고 나면 같은 평형으로 옮기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잠원동의 박모(42)씨도 “집값은 올랐지만 1주택자라고 기분이 좋은 것 만은 아니다”고 했다. 정부는 불로소득 환수를 내걸고 양도세를 대폭 올렸다. 그러나 주택 시장에는 매물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수요는 있는데 매물이 꽁꽁 숨으면서 가격 상승에 불을 붙인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집값이 뛰면서 1주택자라도 양도세를 내는 6억원 이상 고가 주택은 수도권에서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7배 가량 급증했다. 보유세 인상은 집주인의 전·월세 가격 인상 욕구를 부추겨 안정됐던 주택 임대시장마저 불안 속에 빠뜨렸다. ◆무차별 투기 규제에 우는 지방 부동산 투기를 찾기 힘든 지방도 무차별적인 투기 억제 대책에 골병이 들고 있다. 정부는 2003년 이후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을 남발했다. 주택과 토지 투기지역은 전 국토의 30%가 넘게 지정돼 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은 21%를 웃돈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방 6대 광역시마저 투기과열지구로 꽁꽁 묶여 있다. 부산의 S공인중개사 경모 사장은 “각종 규제로 시장이 얼어붙어 새 아파트로 들어갈 사람 중 20~30%는 기존 집을 처분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시장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 투기 억제 제도를 지역별로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분보다 시장 안정이 우선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고 있다’며 ‘시장 안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투자자문사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정부가 시장의 반응을 무시한 채 ‘내가 옳은데 왜 그러느냐’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지적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조주현 원장은 “실패로 결론 난 ‘묻지마 규제’ 위주의 정책 대신 ‘햇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베스트’ 주용철 세무사는 “시장에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완화 조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선 은퇴 세대에 세제혜택 우리 정부가 부동산 세제개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미국에서는 양도세 감면 혜택이 훨씬 크다. 주택을 5년 이상 보유하고 2년 이상 거주할 경우, 부부 합산 50만 달러(5억원 정도)의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다주택자라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특히 은퇴세대들에게는 보유세 감면혜택도 주고 있다. 독일은 장기보유 주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양도소득을 비과세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박용석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장기보유 등에 대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60세 이상 은퇴세대에 대해서는 보유세와 양도세 감면혜택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애들은 가라, 우리가 인생이다, 음악이 인생이다”
- [조선일보 제공] ‘음악이 있는 길 위의 인생’들은 소멸한 그 지점에 진저리 나도록 붉은 꽃송이들을 던져놓고 사라진다 슬픔을 모르는 글라디올러스 같은. 1 음악이 인생이다 빗줄기 수묵처럼 번져올 때 차 안에서 홀로 라이 쿠더의 음악을 듣는 것은 위험하다. 빗물에 튀기는 그의 기타소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아픈 추억들을 불러다 주고 말 것이기에. 그 위에, 삶은 유한한 것이며 모든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와 회한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시간이 곧 올 것이라는 예감까지 얹어 줄 것이기에. 그러나 햇살이 명주이불처럼 낭창낭창할 때라면 그의 기타소리는 마음의 주름까지 펴줄 것이다. 그러기에 라이 쿠더는 천생 사시사철 햇빛 환한 쿠바에서라야 제 맛이 난다. ▲ 푸른 나무, 밝은 태양, 맑은 하늘 그리고 청옥빛 카리브…. 쿠바인의 낙천성은 이런 자연의 영향도 크다.빔 벤더스는 또 누구인가. 하얀 날개가 아니라 우중충한 코트를 입은 음울한 표정의 사내가 온몸으로 읊은 ‘베를린 천사의 시(詩)’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사람이 아니던가. 빔 벤더스는 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주제인 ‘길 위의 인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음악이 있는 길 위의 인생’이다. 길 위의 인생들은 너나없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정지된 시간 속으로 하얗게 바스러지며 소멸해간다. 그러나 ‘음악이 있는 길 위의 인생’들은 소멸한 그 지점에 진저리 나도록 붉은 꽃송이들을 던져놓고 사라진다. 슬픔을 모르는 글라디올러스 같은. 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 애초에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부에나비스타는 몰랐을 것이며 언젠가 화면 속의 저곳을 찾아가 저 가수들의 열기와 체온이 느껴지는 바로 그 장소에 앉아 노래를 들어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태양을 삼키러 그들이 온다.” 흡사 스타 축구선수들의 월드컵 출장기사 같은 ‘부에나비스타’의 이 광고문구에 실소하던 나도 막상 무대 위의 표범 같고 야생말 같은 노인들의 공연을 보면서는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태양처럼 뜨거운 노장들은 온몸으로 이렇게 말한다. “애들은 가라. 우리가 인생이다. 음악이 인생이다.” 2 음악이 양식이다 쿠바에는 거지가 없다는 알도의 거짓말은 차라리 사랑스러울 정도. 걷다 보면 거리와 광장에서 불쑥 손을 내미는 노인이나 아이들을 무시로 만난다. 어쩌면 알도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환히 웃거나 혹은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재잘거리며 친밀함을 보이는 아이들, 낯선 이에게 빈손을 내밀면서도 온몸으로 낙천성을 발산하는 그 아이들에게 ‘거지’라는 말은 아무래도 모독이다. 대체 무엇이 저들의 영혼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가, 탁함이라곤 없는 맑은 눈빛을 간직하게 하는가, 배꼽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환한 미소와 기쁨의 기운을 발산하게 하는가. 아무래도 저 리듬이다. 광장이나 골목 할 것 없이 환청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 하는 저 타악기 마라카스의 리듬. 귀와 피부 속으로 스물스물 스며들어와 핏줄을 타고 흐르면서 단숨에 아드레날린이라도 주사한 듯 심장박동을 팽팽하게 당겨 일으키는 저 북소리. 아련하면서도 저릿한 그 자장(磁場) 속으로 들어서면 그 누구라도 현실의 크고 작은 결핍쯤이야, 존재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거늘, 하며 가슴 속에서 간지럼처럼 퍼져나가는 행복감과 충만감에 푹 잠겨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찬찬찬…. 석양이 되면 골목과 거리에 넘치는 밴드와 음악소리. 그중에는 부에나비스타로 귀에 익은 ‘찬찬’도 있다.손(son). 룸바(rumba). 과히라(guajira) 그리고 쿠반 재즈…. 아프리카 음악의 전통 속에 라틴아메리카의 숨결이 섞인 그 개성적인 음악들이야말로 수많은 이방인을 취하게 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가난과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허물어질 듯 가까스로 버티고 서있는, 차라리 유머러스 해 보이는 엉뚱한 색깔이 칠해져 있는 담벼락 아래 희미한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불빛 아래 모여 앉아있는 사람들, 파랗게 불을 켠 눈으로 여행자를 탐색하는 윤기 자르르한 야생고양이의 실루엣, 나와 풍경 사이로 흘러가는 노래들, 찬 찬, 관타나메라…. 앤티크 박물관에서 끄집어내온 듯 낡았지만 묘한 매력을 풍기는 자동차와 마호가니빛 피부의 쿠바인들 사이로 걷다 보면 레몬을 짜 넣은 얼음물 한 잔이 환장할 만큼 그리워지는데, 그 끈적임과 더위와 갈증 사이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살갗을 애무하는 노래, 노래들. 3 밤의 나시오날 호텔 부에나비스타를 말하며 흥분하는 내게 알도는 ‘그쯤이야’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과 나를 만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들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너스레 끝에 알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꼭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면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한 번 오는 게 좋겠다며 슬쩍 말끝을 흐렸으니. 암스테르담에서의 데뷔공연으로 꿈같은 환호와 열광의 중심에 서게 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이후 카네기홀의 공연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회공연으로 아바나를 오래 비우게 된다. 나 역시 그들을 꼭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낮에는 이발사로 일하며 밤에만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던 콩파 세군도, 마치 연인의 몸을 어루만지듯 피아노를 다루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 구두를 닦다 ‘발견되어’ 클럽으로 끌려와 노래를 불렀고 70세가 넘어서야 그래미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브라힘 페레르. 화면 속으로 날 빨아들였던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알도의 말처럼, 부에나비스타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 그들은 쿠바의 많은 뮤지션 중의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 나시오날!’을 외친다. 1930년대 영화 속에서 본 듯한, 너무나 낡은 소련제 빨간 택시. 쿠바에선 시간과 역사가 뒤섞인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두 개의 얼굴을 보이며 울고 또 웃는다. 알도. 짐작과는 늘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게 여행이고, 그리고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