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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건설, 사회공헌 8000시간·도서관 70호점 돌파
- △지난 13일 서울시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한화건설 봉사단과 지역주민들이 꿈에그린 도서관 70호점 개관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한화건설 제공][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한화건설이 도서관 설립, 복지기관 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한 시간이 8000여시간을 돌파했다. 한화건설은 28일 지금까지 연간 1492명이 참가해 120회의 사회공헌활동을 펼쳤으며 총 봉사활동 시간인 8543시간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 임직원의 4분의 3이 참여한 것으로 참여가 어려운 해외 현장 근무자를 고려하면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이라고 한화건설 측은 설명했다.한화건설은 건설업 특성을 살려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은 한화건설 아파트 브랜드인 ’꿈에그린’ 이름을 따 장애인 시설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도서관을 만드는 ‘꿈에그린 도서관’ 조성사업이다. 한화건설은 2011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그린내’에 1호점 도서관을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2월 13일 서울시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에 70호점을 성공적으로 개관했다. 한 이 사업을 통해 총 4만여권 이상의 도서를 기증했다.도서관 리모델링 뿐만 아니라 도서와 책상, 의자 등을 함께 지원해 독서와 휴식이 모두 가능한 공간을 조성, 장애인 및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주요 취지다. 한화건설 직원들이 건설업 노하우를 살려 철거작업, 청소부터 친환경 페인트칠, 붙박이 책장 설치, 책꽂이 조립, 사포질, 도서 정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에 참여한다. 더불어 지속적인 도서 공급이 가능하도록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도서를 기증하는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한화건설의 또 다른 사회공헌활동인 ‘건축 꿈나무 여행’과 ‘진로체험교육 건축학교’는 아이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건축과 관련된 꿈을 키워주는 사회공헌활동이다. 건축 꿈나무 여행에서는 한화건설 직원과 건축학부 대학생, 서울시 꿈나무 마을 어린이가 파트너십을 구축해 건축 유적지와 친환경 건축물 탐방에 나서거나 한화건설의 실제 건축 현장을 방문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진로체험교육 건축학교 프로그램은 월 1회 자율학기제를 시행하는 중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건설사 직원들의 직무를 소개하고 모형 건축물을 함께 만들며 건축 관련 진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화건설 최광호 대표이사는 “꿈에그린 도서관과 건축학교, 건축 꿈나무 프로그램은 올해 가장 의미 있었던 사회공헌 활동”이라면서 “건설사의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밖에도 한화건설은 종로종합사회복지관, 성동장애인 복지관, 강화 성안나의 집 등 장애인 및 아동시설과 연계를 맺고 한화예술더하기 전통문화교육, 독거노인 지원, 무료급식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한화건설은 주말 가족 나들이 명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시청 앞 분수공원’도 기증한 바 있으며 매년 한화그룹이 주최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교향악 축제 등의 공익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성공異야기]①“열정이 나의 무기”…이상훈 청년컵밥 대표
- 이상훈 청년컵밥 대표는 “비즈니스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컵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이벤트를 마련, 소통에도 힘을 썼다.(사진=신태현 기자)[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오전 8시.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 서류가방을 든 커리어우먼이 급하게 홍대역 2번 출입구로 들어간다. 1분이 채 지났을까. 다시 뛰쳐나온다. 노점을 하는 할머니가 파는 김밥을 집어 들더니 다시 자취를 감췄다. “바쁜 와중에도 김밥은 꼭 사 먹어야 했던 것일까. 지극히 평범한 맛. 유명한 맛집이어서 일부러 사 먹는 게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도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특성상 김밥은 ‘최상의 간편식’이라고 생각했었다.”◇우연히 찾아온 ‘컵밥’ 사업 아이템지난 22일 이데일리가 서울 서대문 북가좌동 ‘청년컵밥’ 마케팅 운영본부에서 만난 이상훈(26) 대표는 창업 아이템으로 ‘간편식’을 떠올린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바쁜 출근길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김밥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간편하지만 좀 더 든든하게 속을 채울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한 것이 ‘주먹밥’. 김밥보다 더, 한번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내가 커리어우먼이라면, 화장한 얼굴에 밥풀이 묻기라도 한다면 재구매를 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숟가락을 꽂아 주자. 그런데 이 또한 불편했다. 서류가방을 든 채 숟가락으로 주먹밥을 퍼먹는 것은 우스워보였다. “그럼 컵에 넣어 볼까?”청년컵밥은 이렇게 탄생했다. 갖가지 반찬과 소스로 맛을 내고 언제 어디서든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컵밥. 이 씨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는 “비즈니스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고객이 거부하면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상훈 청년컵밥 대표는 “비즈니스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컵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이벤트를 마련, 소통에도 힘을 썼다.(사진=신태현 기자)이 대표의 사업수완은 남달랐다. 포장의 기술을 빨리 터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포기, 곧바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좀 더 빨리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전역 후엔 사업 초기자금을 벌기 위해 꽃 노점상부터 시작해 돌도 팔았다. 이 씨는 “남들과 달라야 산다”고 말했다. 돌도 팔 수 있다고 단언했다. 제주도로 갔고 돌을 주워 각각 건강, 행복, 결혼, 우정, 사랑 등의 글씨를 새겨 고객 개개인에 맞는 감성 마케팅을 했다고 말했다. 돌이 든 박스는 판매시작 4시간 만에 완판됐다. 그는 “내 열정을 시험받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내겐 열정이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다. 휴대폰 판매업으로 첫 사회생활을 했다. 손님이 없을 땐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아파트나 상가 부녀회를 찾아갔다. 귤과 캔커피를 들고 그들을 중심으로 홍보했다. 이후 넉 달 만에 그의 월급은 1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리곤 ‘사직서’를 제출했다. “월급이 많다고 이 생활에 젖어들면 내 꿈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내 꿈은 휴대폰 판매직이 아닌데, 난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특제소스 얹은 ‘곱창컵밥’ 유명세이 대표의 청년컵밥은 ‘곱창컵밥’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학창시절 곱창 1인분에 배가 안 차서 밥과 함께 덮밥식으로 먹었더니 맛이 있었다. 그래서 곱창컵밥을 만들었더니 대박이 났다. 수익이 10배 정도는 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컵밥에 들어갈 소스를 들고 다니며 여러 요리 전문가들을 찾아 다녔고 평가받고 자문을 얻었다. 그렇게 얻은 이 대표만의 ‘특제소스’, 소스를 업그레이드 한 이후엔 곱창컵밥을 먹기 위해 100명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이때 일 매출만 800만원을 찍었다. 청년컵밥을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사진=청년컵밥)청년컵밥은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밤도깨비야시장 푸드트럭에 선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서울시는 전국의 푸드트럭 300대를 모아 서비스, 맛, 위생 등을 평가해 100대를 선정했고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최종 선발한 100팀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진행했다. 청년컵밥은 여기서 1등을 차지했다. 이 대표는 “1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남들과 다른 마케팅에 있었다”며 “고객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댄서를 동원해 공연을 하고 8월15일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 곱빼기로 음식을 제공하는 등 고객과 소통하며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청년컵밥. (사진=청년컵밥)청년컵밥은 더 높은 비상을 준비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신세계백화점 하남 스타필드점, 강남점, 명동본점, 경기점 등에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이 대표는 “컵밥하면 저렴한 ‘노량진 컵밥’만을 생각하는데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백화점에 입점해 프리미엄 컵밥 메뉴를 개발하자는 것이었고 현재 랍스타, 스테이크, 육회 등을 넣은 고급컵밥을 내놨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도 노리고 있다. 해외사업부를 따로 만들어 20여 개국에 마스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목표로 글로벌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일산에 청년곱창 간판을 단 오프라인 매장도 열 예정이다. 이 밖에도 발열컵밥 개발 및 특허 진행, 편의점에 청년컵밥 도시락 납품 등도 협의 중이다. 청년컵밥은 올해 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내년 매출 목표액은 20억원으로 잡고 있다. 이 대표는 “돈도 인맥도 기술도 없지만 어떤 일에 목표를 갖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그 어떤 수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대표는…1992년 서울 출생이다. 충암고 졸업 후 곧바로 육군 6사단 GOP에 입대, 병장 만기 전역했다. 꽃 노점상, 휴대폰 판매직 등을 해오다 사업 초기자금을 마련, 2016년1월1일 청년컵밥을 창업했다. 그해 7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주최하는 창업가 멘토로 선정돼 활동 중이다. 청년컵밥은 2016년 8월 한강푸드트럭 100대 중 꼭 맛 봐야할 3대 푸드트럭 중 1대로 선정됐으며 지난 4월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명동본점, 하남스타필드점, 경기점에 팝업스토어로 입점하기도 했다. 10월에는 ADEX 서울공항 에어쇼에 납품하는 F&B 계약을 체결했다. (자료=청년컵밥)
- 아프리카 사망 독립PD 유족 인터뷰.."잊지 않겠다"
-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인터뷰 일시 : 2017년 12월 21일 △ 참석자 : 박경준 블루라이노 대표(故 박환성 PD 동생), 오영미 씨(故 김광일 PD 배우자),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 회장, 복진오 한국독립PD협회 전 권익위원장, 권용찬 한국독립PD협회 대외협력위원장 △제작·인터뷰 : 김유성 이데일리 기자 안녕하세요, 이데일리 (기자) 김유성입니다. 다들 아실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야생전문 독립PD였던 박환성 PD가 아프리카TV 현지에서 촬영중 순직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PD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박환성 PD와) 저와는 6월말에 만났습니다. 그때 기사를 쓰고, 7월말 귀국을 하면 또 만나자고 했습니다. 후속 기사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고, 그의 후속 기사는 그의 사망 소식이 됐습니다. 5개월 뒤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었을까요? 박 PD가 바꾸고자 염원했던 방송사 갑을 형태는 바뀌었을까요? 언론사 최초가 될 수 있는데, 5개월만에 유족분들이 나오셨습니다. 자리에는 고 박환성 PD의 동생분, 고 김광일 PD의 아내분이 와 계십니다. 독립PD협회 송학규 회장, 복진오 PD, 권용찬 PD가 와 계십니다. -유족분들, 안녕히계시냐고 물어보기가 민망합니다만,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박경준 씨(고 박환성 PD 동생)“사고로부터 5개월 남짓 지났는데, 아직 바뀐 것은 많지가 않습니다. EBS와 유족 간 협상은 진행중이고 마무리 단계입니다. 하지만 EBS와 블루라이노(박 PD의 스튜디오 법인) 법인과의 (분쟁 관계는) 진척된 단계가 없습니다. 풀어나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유족간의 보상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이 되고 그 다음에는 불루라이노와 EBS 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오영미 씨(고 김광일 PD) “아이들도 있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애들하고 힘내서 살자 살자 버티고 있지만 버틴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드라마에서 나올 법 했는데, 너무 공허함도 많이 들고. 이게 진짜 사실인제 가짜인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잘 지내고 있다고 못하는 것 같아요. 저 혼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고. 많이 버티려고 하고 많이 버티려고 하고 있지만.” -제작이 중단된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는 어떻게 되나요? △박경준 씨(고 박환성 PD 동생)“박환성 감독의 유지를 받는 측면에서는 EBS와는 더 이상 하지 작업하지 않으려는 유가족의 생각이 고려가 돼야 합니다. 야수의 방주는 전파진흥협회 EBS 양측에서 제작 지원금을 받기로 하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파진흥협회에서도 제작 중단하는 것으로 됐습니다. 나머지 지원금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작품 완성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이 돼야 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방송을 할 것인지. (지금 당장) 그런 부분은 당장 해결해야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방송 작품이 어떻게 하면 우리 형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성 있게 갈 수 있을지 시간을 갖고 봐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야수의 방주’ 제작중이던 박환성 PD 생전 모습 (독립PD협회 제공)-유족과 EBS 간 합의 사항은요? “EBS와 유족 간 합의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다만 그 부분은 법원에 의한 민사 조정 절차에 있습니다. EBS가 공사다보니 관련 규정이 없습니다. 법원의 중재 하에 양쪽이 어느 정도 수용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법원의 조정안도 어느 정도 나왔습니다. 최종 수용을 남겨둔 과정에 있습니다. 100% 결정 난 것은 아닙니다. EBS 사장 등 윗선에서는 유족을 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EBS 전체적으로는 소극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에서는 아직 미진하다고 봅니다.” -자제 분은 몇 명인가요?△오영미 씨 “두 명입니다. 10살 딸, 8살 아들이 있습니다. 올해가 결혼 10년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남편이 꿈속에 나타났습니다. 자기 잘 살아 있다면서 갑자기 나타났어요. 저는 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갈 것 같은데 꿈 속에서라도 먹고 싶은 것, 이런 것 다 해주고 싶은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꿈속에서) 찍었어요. 사실 영상이나 사진 남아 있는 게 없었어요. 얼마나 가슴 속에 한이 됐을까. 그 사람이 한 마디 했어요. ‘다들 나 없는데 잘 지내고 있지?’라고. ‘당신 없는데 누가 잘지내겠느냐’고 발끈했어요. 그 사람 표정이 낙담했다고 해야하나. 평소에 밝은 얼굴이었는데. 함박 웃음이었는데. 눈웃음이 멋있었는데. 그 표정이 아니었어요.” -방송 업계 을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오영미 씨 “저보다도 그 사람이 수모를 더 많이 겪었어요. 전 독립PD가 아니지만 이것저것 간접적으로 접해서, 부당한 것을 많이 알고 있었어요. 한번은 시사를 6번이나 한 적도 있었고요. 외주방송 PD들이 아이템 짜기 쉽지 않은데. 결론은 이 사람 만든대로 원상복구 됐고요. 본사에서는 방송을 아는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달라진 점이 많으시죠?△오영미 씨 “달라진 점이 딸이에요. 이제 10살인데. 얘는 다 알아요. 아빠랑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는데. 제가 생각을 했어요. 사진을 보면서. 왜 우리는 가족사진이 없을까. 딱 2장 있었고요. ‘찍자찍자’했던 게 ‘방송일 때문에, 시사 때문에, 편집 때문에’ 등등으로 미뤘어요. 결론적으로 찍을 시간이 없었죠. 제대로 나온 가족 사진이 없어서 만화 캐리커처 그리는 분한테 따로따로 그림으로 그려 가족사진을 만들기도 했어요. 저는 허탈한 심정이죠. 어느 날 밤늦게 눈물이 떨어지는데 주체할 수 없는 거예요. 쏟아지는 눈물을 꼭 참아내면서 집에 갔는데, 막상 전화할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내 평생의 동반자였는데, 이 사람이 가고 나서 누가 내 얘기를 들을까.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큰 애가 어느 날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산타가 진짜 있을까,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잠시 후 또 물어보는 거예요. ‘진짜 산타가 있어?’ 10살이니까 산타가 없다는 것은 알잖아요. 그런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로 아빠를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한 숨이 푹 꺼지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어요. 전 ‘아빠가 그날 못 오시더라도 꿈속에서라도 나타날 거야’라고 했어요. 예전에는 마음 속에 꾹꾹 담고 있었는데 요새는 심리 치료를 받고 있어요. 애들이 충격이 있다 보니까. 조금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얘네들도 아빠를 가둬두는 게 아니고 오픈해서 이야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애들도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여자 혼자서 살아가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런 저런 상황들을 생각하며 강하게 살아야겠다. 버티고 있어요.” -형이 하던 제작사를 이어 받으셨어요. △박경준 씨 “대표이사 승계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박환성 감독이 진행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 EBS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EBS 주장에 따르면 박환성 감독의 블루라이노가 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돼 있어요. 박 감독도 정확한 근거를 요구했지만 그 이후로도 EBS가 입장을 표명한 게 없습니다. 여전히 블루라이노 픽처스가 계약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박경준 씨 “그게 앞 뒤가 안 맞는 것입니다. 방불특위에서도 그런 것에 대한 진상조사와 정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BS 측과 회담을 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박환성PD와 김광일 PD 사고 소식 후 아프리카 현지에 수습하러 갔을 당시 간략한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복진오 PD (독립PD협회 전 권익위원장. 현 협회 방불특위 부위원장) “상황 소식을 들었을 때 감정적으로 많이 슬펐습니다. EBS와의 관계 때문에 억울했던 측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고인들을 어떻게 모셔와야할지 상당히 막막했습니다. 가족들한테 어떻게 연락을 해야할지도. 비용적인 문제도 그렇고. 기적처럼 뜻하지 않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기적처럼 두 분을 모셔왔습니다. 우리들도 힘들었는데, 가족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는 게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도 나름 역할을 잘했습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남아공 현지 경찰과도 적극 협조했습니다. 현지 가이드, 시신 안치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다만 국가적 시스템이 돼 있고, 사고 직후에 대처를 명확히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도와줘 가족의 품으로 모셔올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사고 수습단에서는 사고 원인을 어떻게 보셨나요? △복진오 PD “업무에 대한 과도한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박환성 PD와 같이 2014년도 인도에 촬영을 갔었는데, 그때도 적은 예산으로 해외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자가 운전을 해야했고. 밤에 이동해야했고. 과도한 업무에 적은 제작비로 압박이 심했습니다. 같이 경험해본 저로서는 이 문제를 안고 남아공을 간다는 게 걱정됐습니다. 촬영 현장도 힘든데, 이 복잡한 법률적인 문제를 갖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더라도 절대 이런 생각하지말고 편하게 촬영에만 집중해라. 돌아오면 해결할 수 있는 게 생길 것이다.” △권용찬 PD (독립PD협회 대외협력위원장) “이러한 비극이 잊혀지지 않고 거듭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면, 그리고 이런 게 쌓이면서 변화를 준다면 미디어 생태계 환경도 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작권도 방송사가 소유·전유 하는 환경 문화가 쉽게 바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송사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플랫폼이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저작권의 무게중심 이동도 기존의 변화 흐름보다 훨씬 더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봅니다.” -사고 소식 들었을 때 당시 심경은 어땠나요?△박경준 씨 “외교부 직원으로부터 들었을 때부터 남아공 방문까지 정말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모님한테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부터 모든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걸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나, 정말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많이 나아지거나 치유됐거나 하는 부분은 많지가 않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관점에 따라서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겠지만,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입장에서는 유가족은 정신적 충격이 큽니다. 자연사나, 질병사보다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꽤 장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당장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승화시키고 싶습니다. 형과 관련된 유품 물품을 처분하거나 잊는 게 아니라, 그걸 옆에 두고. 지금은 슬프지만 ‘우리 형이 그랬지, 대단했지’ 좋은 기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중입니다.” -남편 김광일 PD는 어떤 분이셨나요? △오영미 씨 “열정적이고 자기 일을 끝까지 해내는 PD였어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박환성 PD와도 비슷했죠. 고집불통이었다는 게. 방송계에서는 인재를 잃은 것이죠. 제 나름대로는 영웅이었어요. 제 삶에 있어 변화가 시작된 게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였어요.”“남편은 독립PD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도 PD를 하고자 했던 것은 어릴 때 힘든 과정도 있었고, 방송으로 보여주면서 뭔가 개선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시작했어요.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데로 옮겨야 하고, 그것(작품)은 내것이 아니고.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많이 충돌했고. 지치기도 했죠. 야수의 방주를 마지막으로 (한숨) 접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다른 친구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푸드트럭 같은 일. 새롭게 이사도 하고 다른 것 다 포기하고 우리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자. 그러면서 결론은 ‘마지막’이라고 했죠. 그런데 마지막이란 말이 진짜 ‘마지막’이 됐어요. 사실 남아공으로 떠날 때, 현관 나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고 했어요. 가기가 싫다라는 말을 자꾸 했어요. 그게 죽음으로 가는 저승길이었는지 직감했던 것 같고요. 촉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 자기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시계도 10분 빨라요. 방송일이라는 게 10초도 아깝죠. 10분 일찍 나가려다보니까. 지금도 저희집 시계는 10분 더 빨라요. 그냥 많이 힘들어던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들에게 못 다한 말이 있다면요?△오영미 씨“옆에 있을 때, 아프다고 할 때 발도 주물러주고 했어요. PD들은 허리가 많이 아파요. 허리도 주물러주고. 시간이 없으니 면도에 손톱도 깎아주고 다 해줬죠. 그래도 못해준 게 많은데. 그 사람은 그게 너무 좋았나봐요. 회사 가서 자랑하고, 천사라고 하고. ‘우리 애들 멋있지, 잘 생긴거야’ 그런 자랑도 많이 했죠. 하늘에서도 자랑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걱정은 잠시라도 붙들어 매고 잘 지내길 바라고 있어요.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이 분(남편) 돌아가시고 하늘이 안보였어요. 이러다 공중분해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해서든지 악착같이 버텨서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를 다시 만날 때까지 버티면서 기다리지 않을까요. 문자로 보냈던 거 ‘사랑한다’고 했어요. 너무 보고 싶었고. 결혼 10년 되는 날 리마인드 웨딩을 하기로 했는데, 올해가 10년되는 해였어요. 가족사진 찍자고 했는데 찍지도 못했고. 다시 보면 화를 낼 것 같아요. 원망하면서 화내면서 안도하지 않을까요. 사랑한다고 잘 지내라고 하고 싶어요” △박경준 씨 “형의 일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법인 대표까지 승계받은 이 위치에서 정말로 형이 바라던 바를 잘 이행하고 있을까 의문을 제 스스로 갖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뭔가를 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그런 부분에서 정말로 잘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줬으면 합니다. 그걸 하고 싶었습니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사표 44%' 민식 왜곡 비례대표 비율 높여야
-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1면-‘사표 44%’ 민식 왜곡 비례대표 비율 높여야-‘창업 산고’해결사…엑셀러레이터가 뜬다-신동빈 ‘배임 시름’ 덜었지만…웃을 수 없는 까닭-제천 2층 여탕, 건물 잘 아는 직원들 해고…화재 피해 키웠다-[사설]“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김정은의 오기-[사설]세월호 이후 안전장치 뭐가 달라졌나△줌인&-日기업 오명 씻고 ‘토종기업’ 새 시작-다이소 ‘아시아의 별’로 높이 뜨겠소-비트코인, 최악 폭락서 반등 “韓·日 개미 투자자가 주워담아”-“신동빈 남은 재판, 뉴롯데 행보에 중요한 변수”△‘경영 비리’ 롯데 경영진 1심서 대부분 무죄-‘이현령비현령’ 배임죄, 엄격히 해석…경영상 판단은 존중했다-신·황·소 ‘삼각편대’ 투명경영 속도낸다-日과 경영고리 끊고 ‘롯데 정체성’ 회복하나△바꾸자 선거구제-2등 지지한 표도 민심…권역별비례·석패율제 도입은 ‘민의 심폐소생술’-1963년 첫 비례대표제, 2004년 1인2표…거대정당 이점은 반세기 그대로-영남 득표 자신있는 민주 “연동형 비례제 하자” 영남 수성 자신없는 한국 “의원수 증가는 안돼”-英·美 단순다수제, 정치 안정적…獨형 비례제는 민심 반영이 장점△제천 화재는 人災-“직원만 있었어도…”수동 버튼 누르면 누구나 열 수 있는 2층 여탕 자동문-“엄마 가지말라요 제발”…유족들 오열, 하늘도 울었다-제천 화제 희생자 보상 1억원…차보험 보상보다 낮아△정치-김정은 “통큰 작전 전개”…문 ‘평창구상’ 흔들리나-몸무게 6배 중력…혼절의 공포가 엄습했다-與野 성탄·연말 표정△경제-비과세 범위를 납세자 맘대로?…종교인 과세, 시행하기도 전 특혜 논란-트럼프 감세에 美 재정적자 커질라-글로벌 금융위기 10년 됐지만…“국제교역 증가세, 이전 수준 회복 어렵다”△금융-‘중심성성’…손태승 취임 일성과 함께 대탕평 인사-P2P대출 과열경쟁 막는 건 ‘고자질’?-김정태 ‘셀프 3연임’ 승부수…최장추천委서 ‘셀프 퇴진’-H&B스토어 찾는 남성 고객, 5년새 늘었다.△창업 마중물 ‘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 선발부터 보육까지…‘창업 성공 네비’ 엑셀러레이터 잡아라-에어비앤비·드롭박스…대박 스타트업 키운 ‘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사이 ‘중간자’ 역할△산업&기업-‘조양호 꿈’실현되나…공청회서 “대한항공-델타 조인트벤처 필요성 공감”-中, 수요·공급 무시한 ‘D램값 인하 압박’ 움직임-삼성전자 평직원도 ‘동료 평가’ 한다-‘상여금 분할’발목…현대重 임금협상 해 넘기나-“55인치 239만원”…LG 올레드TV 대할인△산업-듀랑고vs블소vs리니지2…정초부터 모바일게임戰 ‘삼국지’-‘영업 기밀’이라며…방통위 평가 거부한 애플-아이폰 구형 모델 ‘고의 성능 저하’…줄소송 위기-공항 주차장 여유 대수 네이버 검색으로 OK△소비자생활-로봇이 5만개 물품 중 하루 2만건 주문 받아 척척…쓱~배송-네이처컬렉션 신촌점 체험형 매장으로 탈바꿈-‘이게 공짜였어?’…나만 몰랐던 호텔 무료서비스-[유통 e사람]강병학 BGF 전략기획실 브랜드 매니저△중소기업·벤처-지친 심신 어루만져 줄…무술련 ‘안마 의자王’ 쟁탈전 후끈-120살 활명수 힙합을 만나다-소진공 ‘영탤런트’ 표창-“지진 아픔 함께해요”△화통토크-방송사 돌며 박카스 돌리던 ‘박동아’…29년 연예계 풍파, 원칙으로 버텼죠-길러기 나앉을 판에 ‘가을동화 OST’성공…삶의 철학까지 바꿔△증권&마켓-내일 하루 뿐…‘배당株 막차’ 올라타세요-외인 매도 속 美박싱데이 주목 연말증시 ‘산타랠리’ 이어갈까-저출산에 해외직구까지…완구株 ‘상탄특수’ 실종-‘거품 논란’ 신라젠, 한달 새 시총 2.2兆 증발△증권-현대상선 실권주 인수한 KB·한투證…주가 하락에 속앓이-“창업자금 푼다고 끝이 아니다” 스타트업 멘토로 나선 회계법인-주가 하락, 신용등급 물음표…편의점, 성장 멈췄나-행정공제회 등 글로벌 PEF 지분에 투자한다△문화&스포츠-빌리와 신나는 크리스마스…조성진과 희망찬 새해 어때요-2017 판매 1위 LP 라라랜드△스포츠-김민휘 “준우승 두번 아쉽지만 PGA 자신감 되찾았죠”-메시 ‘나는 전설이다’ ‘526골’ 단일팀 최다新-결정적 찬스 날려버려 손흥민, 평점마저 최저 ‘이달의 선수’ 위기-날씨 때문에 비용 때문에…근대 올림픽 30년 만에 동계올림픽 ‘독립’△사람&나눔-“기술벤처·中企 지원기관으로 역할 전환할 때”-에어부산, 이대호 선수와 ‘꿈의 야구교실’ 진행-‘시간이 돈’…가상화폐로 발빠르게 대처해야-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 ‘인간경영’ 가치창조 대상-인사가 만사△오피니언-[목멱칼럼]금감원, 고압적 검사관행 개선할 때-[데스크의 눈]‘신과함께’가 전한 용서와 공감-[기자수첩]‘역사’가 돼버린 12월 임시국회△부동산-稅폭탄 피하려다 분담금 마찰…속도전 재건축 곳곳 ‘파열음’-판교 알파돔 상장리츠 사업자 LH, 신한금융컨소시엄 선정-1순위 자격요건 강화로…올해 아파트 청약경쟁률 ‘뚝’-인천공항까지 車로 30분…생활숙박시설로 장·단기 임대 운영 가능△사회-‘안개로 망친 크리스마스 휴가’ 인천공항 이틀간 1122편 차질-마을 민원해결 나선 ‘우리동네 주무관’-5개월 만에 말문 여는 이재용 27일 항소심 최후진술 주목-文정부 첫 저출산종합대책,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다-직원 사망사고 수습하다 자살한 상급자 ‘산재’
- [인터뷰]②박원순 "서울시 공무원 수 맘대로 못해…文, 지방분권 행동으로 보여달라"
- 박원순 서울시장이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대담=선상원 정경부장 정리=이데일리 김재은·조진영 기자] 인구 1000만명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박원순 시장. 사람중심 도시, 사람특별시를 꿈꾸는 그다. 공교롭게도 몇달전 서울시에선 공무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 시장 임기동안 7명의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왜 그랬을까. “일을 너무 많이 시켰죠. 서울시정에서 어느 하나 손대지 않은 게 없어요. 그러다보니 서울시 공무원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어요. 예산이 3배로 늘어났고, 80개 넘는 과가 만들어졌지만, 공무원 수는 부족하죠. 지방분권, 지방행정이 필요한 이유에요.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날 때마다 빚쟁이처럼 얘기하는데 조직 자율권을 주지 않네요.” 지난 18일 서울시장실에서 만난 박원순 시장은 지방자치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에게 지방분권 실행력을 강조했다. ◇ 말로만 지방자치…자율권 ‘시급’박 시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빚쟁이처럼 따라다닌다고 했다. 장관이 결심해 대통령령만 고치면 되는데 그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의 휴가(안식년 도입 등)를 대폭 늘리고, 서울시에선 개미새끼 한마리 못 들어오게 초과근무를 없애고 싶지만, 중앙정부가 다 쥐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행안부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각 지자체의 직급별 정원과 인건비를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 규모에 따른 3급 이상의 공무원 숫자도 못박아 놓은 상태다. 이는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행안부 장관이 발의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수정이 가능하다. “공무원의 수준과 비전을 높이면 그만큼 그 도시는 잘되게 돼있다. 서울시는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틀어쥔 것을 풀어주면 서울시는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서울시는 10년 근속시 10일 휴가, 30년 근속시 30일 휴가를 주고, 해외 시찰을 나갈 때 며칠 휴가를 붙여 써서 돌아보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마저도 금지돼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내세워 현행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대 4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이같은 재정분권에 필수적인 게 행정운영에 대한 자율성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규정에 숫자를 못 박을 게 아니라 조례를 통해 결정하게끔 지자체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근로시간 단축…주 4일제도 할 수 있다박 시장은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주 5일제뿐 아니라 주 4일제도 시도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여야간 공방을 벌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선 “무리하더라도 그 방향이 맞다면 가야 한다”고 했다. 주 5일제를 예로 들며, 주 5일제를 시행할 때 (재계에선) 대한민국 경제가 절단날 것처럼 반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특히 “최악(최장)의 노동시간, 최저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으로 가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라며 “제가 서울시 공무원들을 맘대로 할 수 있다면, 주 5일제는 물론 주 4일제를 택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물론 선택적으로 원하는 사람에 한해 급여는 조정하겠다고 했다.박 시장은 1970~80년대 고도성장시대처럼 오랜 시간 일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업무시간은 혁신·창조적인 일상으로, 나머지 시간은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독일같은 모델을 꿈꾼다. 이미 서울의료원과 신용보증기금에서는 초과근무수당을 양보하고, 그에 맞는 신입직원을 채용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16.4%나 오르며 자영업자 부담이 크다는 지적엔 “처음에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득수준은 노동의 질과 관련돼 있다”고 했다. 그는 “과도기적으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게는 세금감면 등으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생활임금제를 시행중이며, 내년 임금을 시간당 9211원으로 책정했다. ◇ 개헌은 국회 몫..차기시장 요건은 그는 개헌에 대해선 국민의 기본권 확대와 함께 자치와 분권을 시대적 대세로 꼽았다. “참여민주주의나 협치가 대세인데, 주민자치나 지방분권도 더 높은 민주주의를 위해 우선인 것 같다. 제왕적 대통령제라지만, 설사 잘못된 대통령이 오더라도 국민들의 기본권은 지켜주고,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도록하는 그런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번 개헌에 담겼으면 한다.” 특히 대통령이 발의하기 보다는 대의제 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개헌안을 논의해서 발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제안한 광역서울도에 대한 의견을 묻자 “꼭 합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며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만약 경기도와 서울시가 합칠 경우 하나의 행정구역에 2500만명이 살게 돼 전체 인구의 절반이 하나의 행정구역에 묶이게 된다. 그는 이에 대해 “넌센스”라면서도 “서울, 경기도, 인천은 하나의 통행권 안에 있는 만큼 서로 협력할 게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앞으로의 꿈에 대해 “대한민국 혁신의 테스트베드인 서울시정의 성공이 곧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며 “서울이 대한민국 혁신의 표준을 만들고, 글로벌 최고 도시로 도약하는 게 지금 나의 소임”이라고 했다. 차기 시장 요건으로는 △세가지 안목(과거 성찰·선진국 교훈·미래전망)과 통찰력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세계 도시와 연대를 통한 혁신 선도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를 두고 어떤 정치적 거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이는 어떤 정치권력도 스스로 가질 수 없고, 시민과 국민이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군주민수(君舟民水:정치인은 민심위에 떠 있는 배로 민심이 향하는 곳에서 길을 찾고 답을 찾는다)’를 택한 박 시장이 3선 도전에 나설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전문] 文대통령 베이징대 연설…“한중, 역지사지 관계로 발전해야”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중국 베이징대학교를 방문해 ‘한중 청년의 힘찬 악수, 함께 만드는 번영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에 앞서 베이징대 당서기 하오핀(오른쪽)으로부터 베이징대의 옛날 이름인 ‘대학당’이라고 쓰인 명패를 전달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은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 (사진=연합뉴스)[베이징=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역지사지하며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베이징대학을 방문, ‘한중 청년의 힘찬 악수, 함께 만드는 번영의 미래’라는 주제의 연설에서 한중 수교 25주년의 역사적 의미와 한중 양국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200자 원고지 68매 분량의 연설에서 한중 양국의 역사, 문화, 인물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역사적 유사성과 공통분모도 강조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제가와 홍대용, 삼국지, 윤봉길 의사 등이 두루 거론됐다. 아울러 북핵문제와 관련,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과의 대립과 대결이 아니다”며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북한이 비핵화와 더불어 대화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한편, 문 대통령의 이날 베이징대 연설에는 린첸화 총장을 비롯해 베이징대 교수와 교직원, 학생 300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학 연설 전문베이징 대학 학생 여러분,교수님과 교직원 여러분,존경하는 하오핑 서기님, 린젠화 총장님,따지아 하오(大家好)!따뜻한 박수로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중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이며최고의 명문 베이징 대학을 방문하게 되어아주 기쁩니다.약 2주 후면 새해를 맞게 되는데,베이징 대학 개교 120주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참으로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입니다.베이징 대학의 4대 자랑거리가일탑호도(一塔湖圖)라고 들었습니다.이름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캠퍼스 중앙의 호수,‘미명호(未名湖, 이름없는 호수),‘거기에 비치는 보야탑(博雅塔)의 모습은과연 명불허전입니다.아울러 1천만권이 넘는 장서를 소장한 도서관이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중국의 지성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여러분의 큰 자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 말고도 얼마나 자랑거리가 많습니까?여러분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이곳은중국 현대사의 발자취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20세기 초 여러분의 선배들은 ‘5·4 운동’을 주도하며중국 근대화를 이끌었습니다.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재들이‘애국, 민주, 진보, 과학‘의 전통에 따라 중국의 발전에 공헌해 왔습니다.5.4 운동을 주도한 천두슈, 중국 공산당을 창시한 리따자오를 비롯하여역사적 인물들은 물론, 제가 오후에 만날 리커창 총리도 베이징 대학의 동문입니다.한국의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 중에도베이징 대학 출신이 있습니다.1920년대 베이징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였던 이윤재 선생은 일제의 우리말과 글 말살 정책에 맞서한글을 지켜냄으로서 나라를 잃은 어두운 시절 빛을 밝혀 주었습니다. 오늘날 베이징대학에는 1천명이 넘는 한국인 유학생이 수학하고 있습니다.한국인 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도전 정신, 창의적 발상, 다른 문화적 배경은 ‘두루 포용(兼容幷包)’하는 베이징대학의개방적 학풍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한국인 유학생들과 여러분 모두,신시대 중국과 양국관계를 이끌어갈베이징 대학의 자랑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학생 여러분, 여러분이 베이징 대학의 자랑스러운 전통 속에서 더욱 빛나듯,한·중 관계도 수 천 년에 걸친 교류와 우호친선의 역사 위에굳건히 서 있습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는 베이징을 다녀 온 후, 중국을 배우자는 뜻으로 ‘북학의’라는 책을 썼습니다.“중국은 말과 글이 일치하며 집은 금색으로 채색되었다. 수레를 타고 다니며 어느 곳이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같은 시대 베이징에 온 홍대용이란 학자는 엄성, 육비, 반정균 등 중국학자들과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맺었습니다.“멀리 떨어져있지만 서로를 알아주는 각별한 친구”라는 뜻입니다.그는 중국의 친구들이 “도량이 넓고 기운이 시원스럽다”고 남겼습니다.지금 이 ‘천애지기’가 수만으로 늘어나 있습니다.한국에는 중국유학생 6만 8천 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중국에는 한국유학생 7만 3천 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작년 1년동안 양국을 오간 사람들의 숫자는 1,300여만 명에 달합니다. 이렇듯 한국과 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한국에는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친척보다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 가까움 속에서 유구한 세월동안 문화와 정서를 공유해왔습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중국의 세계적 화가 치바이스의 전시가 열렸습니다.저의 아내도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치바이스의 10권짜리 도록 전집을 보면서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공감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매일 같이 중국 문화를 접합니다.많은 소년들이 ‘삼국지연의’를 읽고, 청년들은 루쉰의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을 읽습니다.‘논어’와 ‘맹자’는 여전히 삶의 지표가 되고 있으며, 이백과 두보와 도연명의 시를 좋아합니다.저도 ‘삼국지연의’를 좋아합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은 유비가 백성들을 이끌고신야(新野)에서 강릉(江陵)으로 피난을 가는 장면입니다.적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하루 10리 밖에 전진하지 못하면서도백성들에게 의리를 지키는 유비의 모습은‘사람이 먼저’라는 저의 정치철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지금 중국 청년들 사이에 ‘한류’가 유행한다고 하지만,한국에서 ‘중류’는 더욱 오래 되고 폭이 넓습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중국의 게임을 즐기고, 양꼬치와 칭따오 맥주를 좋아합니다. 요즘은 중국의 쓰촨요리 ‘마라탕’이 새로운 유행입니다. 한국은 중국의 문물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이러한 문물들은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하였습니다.비취색으로 빛나는 고려청자, 세계 최초로 발명된 고려의 금속활자,조선의 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 등은당대의 중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중국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저는 이것이 한류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중국과 한국 사이에 공통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어온 역사가 길고,서로 함께하는 추억이 많기 때문에 한류도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1992년 수교 이후 한중관계가 눈부시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로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양국이 오랜 세월 쌓아온 추억과 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학생 여러분,1992년 한중 수교는동북아의 냉전구도를 허물고끊어졌던 양국의 교류의 역사를 다시 이으려는 지도자들의 위대한 결단의 산물이었습니다.저는 수교 직후인 1993년, 제가 변호사로 일하던 부산시 변호사회와 중국 상하이시 율사회의 자매결연을 위해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수교 이후 비교적 일찍 중국을 방문한 셈입니다. 그 후 몇 번 더 중국을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상전벽해 같은 변화의 모습에 놀라고 감동 받습니다. 1993년 당시의 상하이시의 모습과지금의 모습이 전혀 다른 것만큼이나,지난 25년간 양국 관계 역시, 상전벽해라 할 만큼의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양국 관계의 발전은 한국과 중국 국민들이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였으며,동북아가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협력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역사적으로도 그랬습니다.중국이 번영하고 개방적이었을 때 한국도 함께 번영하며 개방적인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당나라와 한국의 통일신라,송나라와 한국의 고려,명나라와 한국의 조선 초기가 양국이 함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표적인 시기입니다. 그럴 때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였고, 중국이 이끄는 동양문명은 서양문명보다 앞섰습니다. 저는 그러한 의미에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를 높이 평가합니다.시진핑 주석의 연설을 통해 저는,단지 경제성장 뿐 아니라 인류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나아가려는 중국의 통 큰 꿈을 보았습니다. 민주법치를 통한 의법치국과 의덕치국, 인민을 주인으로 여기는 정치철학, 생태문명체제개혁의 가속화 등 깊이 공감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입니다.주변국들로 하여금 중국을 신뢰하게 하고 함께 하고자 할 것입니다.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추구하는 시 주석의 말에서는 중국 인민을 위해 생활환경을 바꾸겠다는 것뿐 아니라 인류가 나아갈 길에 중국이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호혜상생과 개방전략 속에서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견지’하겠다는 시 주석의 말에큰 박수를 보냅니다.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입니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더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랍니다. 인류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두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그 첫째는, 항구적 평화이고 둘째는 인류 전체의 공영입니다.저는 중국이 더 많이 다양성을 포용하고개방과 관용의 중국정신을 펼쳐갈 때실현가능한 꿈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입니다. 베이징 대학 학생 여러분,제가 중국에 도착한 13일은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겪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에깊은 동질감과 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불행했던 역사로 인해 희생되거나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모든 분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이러한 불행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과거를 직시하고 성찰하면서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의 문, 협력의 문을 더 활짝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조선청년 윤봉길이 폭탄을 던졌습니다.이곳에서 개최된 일제의 전승축하기념식을 응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윤봉길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영웅 중 한명입니다. 그의 거사로 한국의 항일운동은 중국과 더 깊게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현장에서 체포되고 사형되었지만,지금 루쉰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훙커우공원에는그를 기념하기 위해 매원이라는 작은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중국의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비와 사당들이 있습니다.‘삼국지연의’의 관우는 충의와 의리의 상징으로 서울의 동묘를 비롯해 여러 지방에 관제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한국의 완도군에서는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한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진린 장군을 함께 기리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지금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2천여 명 살고 있기도 합니다.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정율성로’가 있습니다.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이 ‘정율성로’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고 있습니다.마오쩌뚱 주석이 이끈 대장정에도 조선청년이 함께 했습니다.그는 한국의 항일군사학교였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광주봉기(광둥꼬뮌)에도 참여한 김산입니다.그는 연안에서 항일군정대학의 교수를 지낸 중국공산당의 동지입니다.저는 엊그제 13일, 그의 손자 고우원(까오위엔) 씨를 만났습니다.그 분은 중국인이지만 조선인 할아버지를 존경하며 중국과 한국 사이의 깊은 우정으로 살고 계셨습니다.중국과 한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한 동지입니다.저는 이번 중국 방문이 이러한 동지적 신의를 바탕으로양국 관계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저는 중국과 한국이 ‘식민제국주의’를 함께 이겨낸 것처럼지금의 동북아에 닥친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길 바랍니다.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15차례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고, 6차 핵실험도 감행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발사한 ICBM급 미사일은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서서,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은 중국과도 이웃하고 있으며,북한의 핵개발 및 이로 인한 역내 긴장 고조는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평화와 발전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한중 양국은 북한의 핵 보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할 수 없으며,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북핵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과의 대립과 대결이 아닙니다.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를 절단할 수 있다(二人同心, 其利斷金)”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힘을 합친다면한반도과 동북아의 평화를 이루어 내는 데 있어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는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내년 2월 한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스포츠인들은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으로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3일, 유엔 총회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193개 회원국 중 중국을 포함하여157개국의 공동 제안을 통해 표결 없이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를 바라는세계인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2020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하계올림픽이,2022년에는 이곳 북경에서 다음 동계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동북아에서 연속 개최되는 올림픽의 성공을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도모하는 좋은 계기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한국 국민들도 우다징, 판커신, 리즈쥔 등 중국 동계스포츠 스타들의 경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두 달 남은 평창 올림픽이 평화의 올림픽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중국 국민들의 많은 응원을 당부 드립니다. 학생 여러분,저는 지난 여름 휴가기간 중‘명견만리’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이 책에는 ‘중국의 3.0’시대를 이끌어 나가는중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두려움 없이 창업에 도전하며,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그러한 도전정신으로 탄생한 것이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세계적 기업일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유학중인 양국의 젊은이들은자신의 나라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누구보다도 강한, 도전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최근 한국의 대학들은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이 한 팀으로 이뤄한·중 기업에서 실습할 수 있는인턴십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양국 젊은이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지금 중국은 드론, VR(가상현실), AI(인공지능) 같은4차 산업혁명 분야의 중심지입니다.한국의 젊은이들도 ICT 강국의 전통 위에서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미래를 찾고 있습니다.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함께 협력한다면양국은 전세계의 4차 산업혁명 지도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양국은 지난 25년간 경제통상 분야에서놀라울 만한 협력을 이루어 왔습니다.그러나 한·중 간 경제협력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양국은 경제에서 경쟁 관계에 있고, 중국의 성장은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양국의 오랜 역사에서 보듯이,또한 수교 25년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증명하듯이, 양국은 일방의 번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운명공동체의 관계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간 전통적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양국간 경제·통상 협력을ICT, 신재생 에너지, 보건의료, 여성, 개발, 환경 등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야 합니다. 또한, 한·중간 전략적 정책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우리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우리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간의 연계를 희망합니다. 중국은 제19차 당 대회에서“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선언했습니다.시진핑 주석께서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과‘중국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국정기조로 선언했습니다.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성장을 저해하고 사회통합을 해치는 경제 불평등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과감히 전환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의 “소강사회”의 꿈과한국의 “사람중심 경제” 목표가 서로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합니다.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숫자보다국민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근본정신이 같기 때문입니다. 한중 양국이 이러한 정책 목표의 유사성을 기반으로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한중 양국의 공동발전을 실현하고, 지역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아시아의 발전, 더 나아가 인류 공영을 촉진하는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베이징 대학 학생 여러분,교수님과 교직원 여러분,존경하는 하오핑 서기님, 린젠화 총장님,왕안석의 시 명비곡의 한구절이 떠오릅니다.인생락재 상지심(人生樂在相知心), ‘서로를 알아주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다’ 저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역지사지하며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은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수천 년간 이어진 한·중 교류의 역사는양국 간의 우호와 신뢰가 결코 쉽게 흔들릴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저는 ‘소통과 이해’를 국정 운영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이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저는 시진핑 주석에게 통 이라는 글자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의 ‘통’자를 딴 것입니다. 저는 양 정상간, 양 국가간, 양 국민간에도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관계 개선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마음을 열고서로의 생각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진정성 있는 ‘전략적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지도자 간에, 정부 간에,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에 이르기까지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노력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 두 나라가 어려움을 극복하고,평화와 번영의 운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양국 국민 공통의 염원이며,역사의 큰 흐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양국 간의 경제 협력만큼 정치·안보 분야의 협력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25년 전의 수교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양국이 함께 열어나갈 새로운 25년도많은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필요로 합니다.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의 대문호 루쉰 선생은“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미지의 길을 개척하는 여러분의 도전정신이중국과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 믿습니다.여러분의 열정과 밝은 미래가한·중 관계의 새로운 발전으로이어지기를 기원하며 강연을 마칠까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터뷰] RCC 이상희 대표 “각국 정상에게 내가 만든 셔츠 입혀 보는 게 목표”
- 지난 14일 오후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RCC 대표가 이데일리 뷰티in과 만나 그가 꿈꾸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이데일리 뷰티in 문정원 기자]인터뷰 : 김재홍 뷰티in 편집장ㅣ 정리·사진 : 문정원 기자방송인 출신으로 미국 유명대학에서 국제경영 MBA까지 취득했지만 돌연 남성패션사업에 빠져들어 혈혈단신으로 미국 시장에서 맞춤형 셔츠사업에 도전한 한국의 한 여성 CEO가 있다. “한국의 바느질 솜씨는 뉴욕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최고로 인정한다”며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Made in Korea'맞춤형 드레스 셔츠를 선보이고 있는 ‘레드크라운크레인(RCC · Red-crowned Crane)’ 이상희(38)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삶을 스타일링 하는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로 자신을 지칭하고 싶다는 이 대표는 최근 유튜브에 남성 패션은 물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Sangshow(생쇼)’라는 채널을 개설, 호응을 얻고 있다. 자신의 방송경력을 십분 살려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며 유튜브 업계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데일리 뷰티in]은 사업 일정 차 잠시 한국에 입국한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대표(사진)를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상류층 사회를 상대로 한국의 명품 맞춤형 드레스 셔츠 사업을 전개하며 파워 유튜버로 점차 인지도를 확산시키고 있는 이 대표로부터 패션사업 계획과 더불어 그가 그리고 있는 라이프스타일리스트로서의 삶의 목표를 들어봤다.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RCC 대표 - 방송인을 하다가 국제경영 MBA까지 전공했다. 갑자기 남성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드레스 셔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 졸업 후 방송 일을 하다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돼, 뒤늦게 MBA(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 UIC)를 공부했다. 졸업할 즈음 시장조사를 하면서 남성 패션 관련 온라인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전망이 밝다는 결론을 내려서 시작하게 됐다.”“물론 패션이나 의상에 전혀 관심이 전혀 없었다면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부터 종이 인형을 갖고 놀면서도 판매하는 인형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직접 디자인해 색칠한 옷들을 인형들에게 입히고 놀곤 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귀찮아 졌지만 20대 때는 소위 ‘옷 좀 입는다’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옷에 관심이 많았다.”“남자는 수트를 입을 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다. 멋진 남자가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심리는 여자나 남자나 같은 것 같다. 멋진 남자들에게 멋진 옷을 입히고 싶어서 남성복을 시작하게 됐다."- 맞춤형 드레스 셔츠 사업이 최근 확대되고 있다. 보편화된 맞춤 드레스 셔츠 브랜드와 레드 크라운 크레인에 차별점은 무엇인가.“합리적 가격에 최상 품질의 셔츠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품질 만큼 최고라고 자부한다. 같은 원단으로 셔츠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품질의 차이는 바느질 기술이다. RCC의 드레스 셔츠는 한국 최고의 바느질 기술을 갖춘 제작라인에서 맞춤형 셔츠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 바느질은 세계 최고다. 뉴욕 등 전 세계에서 인정한다."“사업 시작에 앞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장미라사의 이영원 대표가 쓴 ‘성공한 남자는 수트를 입는다'란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읽은 뒤에 이 대표를 찾아뵈어야 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고 무작정 찾아뵈었다. 다행히 이 대표께서 여러 가지 조언과 함께 길을 알려주며 용기를 줬다. 여자라서 더욱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 현재 RCC에서 판매되는 맞춤형 셔츠를 생산하는 제작 라인도 이 대표님을 통해 발견하게 됐다.”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RCC 대표- 한국에서 직접 제작을 하다 보니 셔츠 제작 기간 및 배송 시간까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나.“한국은 이탈리아나 다른 국가보다 맞춤형 셔츠 제작부터 배송까지 소요되는 시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빠르다는 것이다. 최고 품질의 셔츠를 제작하지만, 주문제작 시스템이 빠른 것이 한국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미국에서는 맞춤형 옷은 당연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문이 오는데, 제가 직접 고객을 만나고 맞춤형 상담을 통해 제작하기 때문에 보통 한국에 나올 때 미팅을 통해서 진행된다. 한국과 미국을 자주 오가고 있다.” - 맞춤형 셔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트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고 했다. RCC를 향후 어떻게 성장시키고 싶나."맞다. 남자는 수트를 입었을 때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남자는 수트를 입는다'란 이영원 대표의 말처럼 수트가 주는 긴장감과 다듬어진 모습이 가장 멋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물론 수트회사로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수트를 할 생각은 없다. 향후에는 맞춤형 드레스 셔츠 회사에 남성 뷰티를 접목시킬 계획이다. 남성 화장품, 향수 등 단일 품목으로 추가 해 나갈 계획이다. ‘남성토탈뷰티’ 개념의 사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angshow(생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우선 생쇼의 뜻부터 얘기하면 '이상희'란 제 이름에서 '상'을 부를 때 영어로 '생'이라고 불러서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기도 하고, 영어 '라이브'의 뜻인 '생', 또한 ‘쌩쇼 하네’ 할 때의 의미도 있다.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다.""중학교 때부터 방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었고 오프라 윈프리를 롤모델로 삼아 토크쇼 호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단은 아나운서가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중파 방송에 지원했지만 쉽게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천지역 케이블방송에서 시작해 한국과 미국 캐나다에서 각종 방송 경험을 쌓았다. 이후에 SNS 페이스북의 '라이브'란 기능을 알게 되면서 Sangshow(생쇼)를 시작하게 됐다. 1인 방송이 많아진 요즘 편집을 안 하고도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에게 감사한 일이다.""유투버들은 기본적으로 컴퓨터도 잘 다루고 편집도 잘 해야 하는데 사실 전 엄청난 기계치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란 마음으로 라이브를 하게 됐는데 역시 방송할 때 희열을 느끼고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또 예전에는 1인 방송을 하고 싶어도 방송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있어, 쉽게 시작하지 못했는데 남성복을 시작하고 나서 전문성을 살려 남성 패션 뷰티 채널을 시작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주 라이브를 하다가 그냥 방송하고 흘려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유투브 채널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친한 지인들이 편집을 도와주겠다고 나서줘서 생쇼가 시작 된거다.""이제 7개월 정도 된 초보 유투버이고 구독자 수도 아직 많지 않다. 홍보차 관심을 끌기 위해 ‘원더우먼’ 영상을 찍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원더우먼으로 변신해 촬영한 영상이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유튜브에서 많은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됐다. 여성 뷰티 채널은 넘쳐나고 남성 뷰티 채널도 꽤 있지만 여자가 운영하는 남성 패션 뷰티채널은 국내에선 아직 못 본 듯하다. 생쇼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멋진 남자는 외모뿐 아니라 ‘생각이 멋진’ 남자다. 그런 면에서 삶을 스타일링 하는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로 지칭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멋진 남자’들이 많아져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생쇼가 돕고 싶다."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RCC 대표- 유학생활, 방송인, 사업까지...평범한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성격인 것 같고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갔다가 대학까지 진학하려고 했는데 가정형편상 1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결국 이런 상황 때문에 검정고시를 보게 되면서 다양한 삶이 시작된 것 같다. 대학 졸업할 때쯤에 IMF가 터지면서 학원에서 6년 정도 영어선생님을 하며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다시 유학을 간 것이 서른 살 때쯤이다. 이때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게 됐는데, 대학(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매스컴 전공) 졸업 즈음에 또 미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다행히 방송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는데, 금융 위기다 보니 있는 현지 사람들도 감원하는 상황이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삶 자체가 평범할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상황을 탓하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계획한대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삶의 경험들이 현재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시카고에서 오랜 생활을 해오고 있다. 기억에 가장 남는 뜻 깊은 일이 있다면? "몇 년 전 시카고의 KBC라는 한인 방송국에서 일할 때 NATO가 열린 적이 있었다. 전 세계 기자들이 다 모인 대규모 행사였는데, 저도 작은 지역 방송에서 근무했지만 기자증을 발급받아 취재를 갔다. 그 자리에서 전 세계의 언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 자체로 굉장히 뿌듯하고 감격스런 일이었다. 제 커리어 쪽으로 큰 획을 그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얼마 전 생쇼에서 시카고 라이언스 클럽의 주요 멤버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입양인들을 위한 피크닉을 30년 넘게 매년 진행해 왔다고 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한국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며 30년 동안 매년 피크닉에 데려왔다는 부모나 그 양부모와 입양인들을 위해 매년 행사를 개최한 라이언스 클럽 분들을 지켜보며 감동을 받았다. 미약한 채널이지만 생쇼를 통해 그런 분들을 인터뷰 하고 알릴 수 있었다는데 보람을 느꼈다."- 새해 계획은.“RCC의 새해 계획은 많다. 특히 희망은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와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에게 저희 드레스 셔츠를 입히는 것이다. 국내 최고의 셔츠를 자부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Sangshow 관련, 내년에는 영어 교육 컨텐츠를 시도해 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서브 채널을 신설하려고 생각 중이다.""궁극적으로는 제 주변, 저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것이 제 목표이자 꿈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변에도 회사 대표님들이 많은데 어쩌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자리. 불안한 마음, 말 못하는 힘든 부분들이 많을 거다. 그 분들이 진짜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치유로 방향을 맞추고 콘텐츠들을 고민 중이다.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일을 방송을 통해 직·간접적으로도 조금씩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방송은 제가 나이를 먹어도 하고 싶은 일이다. 인터뷰의 여왕 바바라 월터스 처럼 은퇴 전까지 혹은 할 수 있다면 죽기 전까지 남녀노소를 떠나 멋진 분들을 인터뷰 하고 싶다.”
- '이번생' 정소민 "실제 연애, 대화로 푸는 스타일"(인터뷰)
- 사진=노진환 기자[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차세대 ‘로코퀸’을 예약했다. 털털한 여자친구부터 외유내강 드라마 작가 지망생까지, 캐릭터는 조금씩 다르지만 매번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훨훨 날았다. 지난달 28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극본 윤난중, 연출 박준화,)의 윤지호 역을 맡은 정소민이다. KBS2 시트콤 ‘마음의 소리’, KBS2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 이어 3연타 홈런이다. 정소민이 연기한 윤지호는 명문대를 나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인물이다.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던 그는 위기 끝에 집주인 남세희(이민기 분)와 계약결혼을 결심한다. 모진 소리 한 번 못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 같지만 강인함과 의외성을 지녔다. 정소민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해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이는 흥행으로 이어졌다. 정소민은 “내 자신과 닮은 캐릭터였다. 고민하는 지점이 맞닿아 있었다”면서 “저 역시 위로받고 공감하며 연기했다”고 ‘이번생’을 돌아봤다.◇“운명적 작품…닮아도 너무 닮아”극중 캐릭터는 정소민과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는 1세 차이로, 사색적인 성향이나 끈기 있는 성격 등이 비슷했다. 경남 출신 부모님 아래 1남1녀 중 맏이였다. 한예종 수석 입학생인 그 또한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냈다. 정소민을 염두에 두고 쓴 대본은 아닐까 싶었지만, 실제 모델은 윤난중 작가의 친구였다. “처음 대본을 받고 운명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재미있는 대본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갔어요.”‘이번생’은 30대의 사랑·우정·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만큼 공감의 힘이 중요했다. 직접 연기를 하는 정소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꿈을 먹고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깜깜할 줄은 몰랐다”는 자신의 대사를 곱씹었다. “5년 전엔 마음이 조급했어요. 노력에 비해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작업 방식이 틀렸는지 의문도 들었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이 외롭고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당시 치열했던 고민은 밑거름이 됐다. 성실한 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빛을 발한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에 대한 고민은 이제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라며 “지난해부터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웃었다.때문일까. 최근 출연작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작품을 고를 때 기준에 대해 묻자 ‘흥미’를 꼽았다.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는 “줄거리나 캐릭터에 공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노진환 기자◇“실제론 마대표가 좋아요”‘이번생’엔 다양한 커플과 캐릭터가 등장한다. 사랑 없는 결혼을 택하는 윤지호-남세희을 비롯해 새롭게 시작하는 커플, 결혼으로 고민하는 장수 커플이 등장한다. 이상형에 가까운 캐릭터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한 후 마상구(박병은 분)를 꼽았다. “어머니가 ‘이번생’ 애청자였어요. 어느 날 마상구 같은 남자 괜찮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너의 뾰족한 창이 찌르는 게 아프지만, 내가 찔려서 그 창이 무뎌진다면 그거 참 다행’이란 대사 때문에요. 그 부분에 공감했죠.”그는 2012년에도 종합편성채널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을 통해 결혼이란 소재를 다뤘다. 그에게 결혼관을 묻자 “여전히 고민 중인 지점”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생’에서 ‘결혼은 어른 대 어른이 하는 것’이란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다른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후반부 윤지호-남세희의 로맨스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남세희의 첫사랑 고정민(이청아 분)이다. 모든 사실을 눈치챈 윤지호는 갑자기 남세희의 곁을 떠난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일부 시청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소민은 “실제 연애할 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대화로 푸는 스타일”이라며 “각자 방법이 다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윤지호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적당히 나머지 단추를 꿰매서 입는다면, 윤지호는 하나하나 푼 다음 제대로 단추를 채워야 하는 성격인거죠. 미련할 수도 있지만, 윤지호는 그런 사람이에요. 윤지호의 선택을 저 역시 쫓아가려고 했어요.”사진=노진환 기자◇”미리 살아본 서른…여유 생겼죠“1989년생인 정소민은 올해 스물아홉이다. 작품을 통해 서른 살을 미리 살았다. 그는 ”더욱 성숙해졌으면 좋겠다“며 기대와 설렘을 드러냈다. “목표에 연연하기보다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이 많아졌어요. 답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고민 자체도 재미있어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잖아요.”한예종 연기과 출신인 정소민은 2010년 MBC 드라마 ‘나쁜남자’로 데뷔했다. 주로 로맨스 장르에서 싱그러운 매력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상대방과 깊은 호흡이 로맨스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 관련 작품이나 몸으로 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센 액션이나 무용하는 역할도 좋아요. JTBC ‘디데이’(2015)를 하면서 처음 경험해 봤어요. 보통 대사로 풀어갈 때가 많은데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 색다르더라고요. 많이 배웠어요.” 그는 20대를 돌아보며 가장 잘한 일로 “배우란 직업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망설임 없는 답변이었다.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요. 좋은 직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터득하다보니까 재미도 찾았죠.”부드러운 말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마냥 사랑스러움이 아닌 이면에 숨겨진 단단함이 전해졌다. 정소민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였다.
- 안무가 김주빈, 창작무용극 '착한 사람' 무대 올린다
- ‘착한 사람’[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김주빈 안무가의 작품 ‘착한 사람’이 14일과 15일 오후 8시 서울 SAC아트홀에서 열린다.이번 ‘착한 사람’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Der gute Mensch von Sezuan’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안무로 꾸며졌다. 한국 무용을 기반으로 한 창작무용극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무기로 내세웠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철학, 심리학 등의 바탕을 둔 인문학적 소재를 사용하고, 관객 참여 형 공연 방식을 채택, 베이스·드럼·기타 등 라이브 악기를 무대로 끌어올렸다. 안무가 김주빈은 ‘댄싱9’ 시즌3에서 하휘동의 히든카드로 등장하여 큰 호응을 얻었던 스타로 비보이에서 한국무용까지 섭렵한 새로운 꿈을 꾸는 한국 춤, 대중과 소통하는 한국 춤을 꿈꾸는 안무가다. ‘동아 무용 콩쿠르 금상(동아일보사, 2014), ’청춘대로 덩더쿵 최우수 작품상(두리춤터·2015), ACT 페스티벌(스페인·2016)에서 ‘ACT-BAD Prize 2016’을 수상해 한국 창작 춤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갈 가능성을 보여줬다.연출가 김예나는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원 석사를 졸업했으며, 현재 스튜디오 나나다시의 대표이자 연출가다. 스토리텔링과 움직임 연극을 제작하고 장소특정형 연극인 로드씨어터를 실험하며 서울 창작 공간 연극축제의 운영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서울 연극제 미래야 솟아라, 2014’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신춘문예 단막극제, 2015’ 등을 출품했다.
- [런던에서 온 편지]18.내 집 마련, 얼마나 걸릴까
-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 런던은 언제나 공사 중입니다. 어딜 가더라도 한창 건물을 지어 올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런던 중심가인 시티 지역이나 킹스크로스 근처에는 상업용 고층 건물들이 지어 올라가고 있고, 주거 지역에서도 옛 주택들을 허물고 새 단장하거나 저개발 낙후 지역이었던 곳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런던 교통의 중심지 복스홀에서 조금 떨어진 나인 엘름스 지역은 럭셔리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는 곳으로 한창 각광받고 있죠.이민정 통신원이렇게 끊임없이 런던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급량이 늘어나는데도 상업용 건물이나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비싼 곳으로 손에 꼽힙니다. 주거용 건물을 예로 들어볼까요. 비교적 시내 중심가에 있고 그럭저럭 깔끔한 신식 1베드룸 아파트 15평이 주당 300파운드, 한 달 렌트비는 약 1500 파운드(약 225만원) 정도 합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영국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2만8200파운드(약 4176만원), 한 달로 치면 약 348만원을 법니다. 아주 단순한 계산이긴 하지만 한 달에 348만원을 벌어 225만원의 월세를 내고 살기는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직장은 런던 시내에 있더라도 거주지는 런던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고, 더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찾아 교외로 나갑니다. 이 정도만 놓고 보면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죠. 한국에도 서울 근교지역에 넓고 저렴한 터전을 마련해놓고 서울 시내로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이 있는 것처럼 런던 상황도 비슷합니다.런던의 상업용 건물, 주택 가격은 왜 천정부지로 치솟을까요. 단순한 시장 논리라면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그러나 인기 있는 글로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요를 가장한 투기세력이 런던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24층 임대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로 80명이 사망하고 25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이들을 수용할 아파트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그렌펠 타워 근처 1652개의 고급 주택이 부동산 큰 손들이 투자용으로 사들인 후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으로 놀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었죠. 빈집 가운데는 미국 뉴욕 전 시장이자 미디어 거물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사들인 방 7개의 1600만파운드짜리 고급 주택도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요.런던시 전경. 사진=이민정 통신원영국 서민들은 특히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것이 투기자본이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 부동산 시장에 급격하게 흘러들어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야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지니스 공용어인 영어권이자 EU 단일 시장 접근성도 확보한 영국에 유럽 사무실을 내려고 몰려든 글로벌 기업들, 투자은행들, 이 기업들의 임원들, 직원들, 이민자들 등 몰려드는 수요에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발 빠르게 대응해 건물을 올리고, 덩달아 늘어나는 수요 기대에 부동산 투기 세력도 활개를 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는 것이죠. 중국 부자들도 런던 부동산의 신흥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돈 많은 중국인이 런던에 호화 주택이나 건물을 투자나 별장용으로 사들이면서 시세를 올리는데 거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런던의 집값은 런던 시민의 가계 소득보다 한참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싱크탱크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이 영국중앙은행 데이터를 인용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런던을 포함해 영국에 사는 중저소득자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매년 5%의 가계 소득을 모아 집 보증금을 만들기까지 약 24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네요. 내 집 마련은 만국 공통의 난제인 것 같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영국의 EU 가입 이후 런던에 투기성 자본이 밀려와 서민들이 살던 집을 헐어버리고, 거기에 신식 빌딩을 지어 가격을 더욱 올리고, 그러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로 많은 불확실성을 안게 됐지만 적어도 서민들은 부동산 가격은 좀 내려가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실제 영국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평균 집 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 파운드 상승에 그쳤다고 합니다. 전국 평균 집값은 22만3000파운드로 조사됐고요. 작년 6월 브렉시트 결정 국민 투표 이후 연간 집 가격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물론 집 가격 상승폭이 물가상승률과 실질 소득 상승폭보다는 높지만요. 브렉시트로 직격탄을 맞은 런던은 심지어 올 6월 집 가격이 전달에 비해 평균 3000파운드정도 떨어졌고, 작년 6월과 비교해서는 1년 사이 약 2.9% 증가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런던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약 48만2000파운드(약 7억908만원)가 든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죠.
- 조환익 퇴임.."휴가 잘라 먹는 상사, 삼대 저주 받을 것"
- 조환익 한전 사장.[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5년 만에 퇴임한 조환익 한국전력(015760) 사장이 “제가 제일 잘 한 점은 아침에도 생각해보니 ‘여름철 휴가 때 휴가 잘라먹은 상사는 삼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이메일을 쓴 것”이라며 위트 있는 퇴임사를 했다. 조환익 사장은 8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 같은 이메일을 쓴 뒤) 새로운 휴가문화가 많이 정착됐죠”라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조 사장은 제일 아쉬운 점에 대해선 “뭐 그리 바쁘다고 사업소를 자주 못 갔을까 하는 점”이라며 “오지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스킨십도 하고 밥도 먹고 막걸리도 마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5년 동안 나만의 시간을 1분도 제대로 못 가진 것 같다”며 “그동안 많이 고단하고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행복했고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설비 건설 갈등 △전력난 △적자 문제 △세계에너지총회 유치 △나주로 본사 이전 등의 소회를 전했다. 조 사장은 “한전은 이제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회사”라며 “한전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돼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몸 아프지 마십시오, 마음 아프지 마십시오”라며 “옆에 동료가 웃으면 ‘왜 웃냐’고 물어 같이 웃고, 혼자 우는 사람 있으면 껴안고 같이 울어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조 사장은 “후임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으나 영국 원전 수주라는 큰 사업을 앞두고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며 지난 6일 원전 수주 이후 이같이 퇴임식을 열게 됐다. 조 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주미한국대사관 상무관, 통상산업부 공보관, 산자부 무역투자실장, 산자부 차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등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12월 17일 한전 사장에 취임한 뒤 두 차례 연임했다. 임기는 이종훈 전 사장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조 사장의 당초 임기는 내년 2월28일까지였다.다음은 퇴임사 전문이다.입사하던 날부터 기다리던 날이 오늘 드디어 온 것 같습니다. 아까 동영상 보면서 많이 울컥했습니다. 잘 만들었습니다. 제가 저런 동영상의 주인공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 식사하고 일찍 들어갔는데 과거 5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서 잠을 못 잤습니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5년에서 8일 빠지는 1817일 근무했습니다. 언론에는 최장수 CEO라고 나오는데, 이종훈 사장은 5년 플러스 20일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최장수는 아닙니다.모든 일이 ‘시작은 새벽처럼 서서히 밝아오지만, 끝날은 해 떨어지듯 갑작스럽게 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퇴임을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임기를 모두 마친 게 아니라 제가 원해서 좀 더 일찍 퇴임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들과 작별의 준비를 충분히 못 했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저는 올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시즌2’니까 빛가람 혁신도시에 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건 새로운 CEO가 하는 게 맞다, 그런 생각입니다. 연말까지는 자리를 물려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2012년 12월 17일에 한전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생전 경험 못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한 다섯 가지 정도가 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첫째는 지역주민과의 전력설비 건설갈등입니다. 밀양뿐 아니라, 전국에서 건설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해결의 기미는 없고.두 번째는 전력난. 여러분 다 경험하셨죠? 2013년도. 정말 우리가 그때 기적을 만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은 순환정전을 몇 번 겪었을 겁니다. 셋째는, 적자투성이 회사. 적자인데 누가 상대는 해줍니까. 국가가 적자나면 얼마나 국제무대에서 무시합니까. 우리나라도 IMF를 겪어 봤죠. 어떤 사업에 투자 하나 하려고 하면 ‘어디 빚더미 회사가 투자를 하냐’ 이런 핀잔을 받았습니다. 넷째는, 세계에너지총회입니다. 우리가 모처럼 개최했는데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심지어 총회 사무국에서는 개최권을 반납하라는 말까지 했으니 국가 망신을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마지막으로는, 삼성동에서 오랫동안 뿌리 내린 회사를 이곳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삼성동 땅을 잘 팔아야 하고, 이쪽으로 와서 정착도 잘 해야 했습니다.이 모든 게 하나도 쉬운 게 없었고, 내가 왜 시련을 겪어야 하나, 내가 무엇 때문에 한전에 와서 이 모든 짐을 다 짊어져야 되는지 하는 생각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고, 오죽하면 제 책에다 “몸만이라도 건져 나오게 하소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그런데 한전의 기적을 봤습니다. 우리 노조간부들이 솔선수범해 갈등의 현장에서 불침번을 서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참 하기 힘든 결단입니다. 노조위원장님부터 앞장서서 방호를 해줬는데, 거기서 우리는 한 마음이 됐습니다.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끝까지 소통했고, 결국 그 어려운 것을 타결했습니다.전력난은 정말 어마어마했죠. 8월 15일로 기억합니다만, 이미 순환단전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산자부 장관과 제가 삼성동에서 대국민호소문을 내고 밤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화력발전 2기가 정지해 있었습니다. ‘정말 불가피하게 이런 일을 당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우리 전 직원을 다 투입시켜 절전파도타기 국민 이벤트를 했습니다. 각자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후 피크시간에 에어컨 꺼주세요”라고 주변에 부탁했죠.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것이 기적을 불러 일으켰어요. 치솟던 전력수요가 꺾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은 한 번도 전력난을 겪지 않았어요. 이게 다 뭐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정성, 우리 KEPCO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겁니다. 우려했던 대구세계에너지총회는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행사로 잘 치렀습니다. 우리의 해외조직이 총동원 되어 활동한 덕분입니다. “앞으로 이렇게 잘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삼성동 부지, 그렇게 많이 받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거 때문에 나중에 힘든 면도 있었지만, 그것이 여기 와서 우리가 당당하게 투자하고 KEPCO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한전의 힘이고 화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력이면 어떤 기적이라도 만들 수 있고 미래를 끌어가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더 많은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더 많은 것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너지밸리, 에너지 신사업, 업(業)의 변화를 통해, 한전은 단순한 전기 도매상에서 이제는 에너지 솔루션 회사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해외사업도 적극적으로 드라이브 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에서 만든 상품을 세계에 잘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빅스포를 만들었어요. 이뿐 아니라, 4차산업혁명을 현장에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한번 해보자 했는데, 그게 북방경제위원회에서 동북아 최대 핵심의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나중에 꼭 빛을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게 다 기적이죠. 여러분들이 뭉쳐서 만들어 낸 겁니다. 한전의 저력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저는 삼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빛가람 시대를 연 사장이 됐습니다. 3개월을 할지, 길어야 5개월 할지 모른다던 사장이 이제는 새로운 하나의 시대를 여는 사장이 됐고, 빛가람 3년을 마치고 어느 정도 기반을 만들어 인계하는 영예로운 사장이 됐습니다. 주가는 치솟았고, 포브스 랭킹 유틸리티 회사 1위가 됐습니다. 저희가 예전에 동경전력 가서 조금이라도 배웠는데, 이제는 역전이 됐습니다. 한전의 영광이 온 거죠.하지만 공기업이 웬 흑자를 이렇게 많이 내냐며, 사회에서 굉장히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됩니다. 급기야는 작년에 전기요금 누진제, 전기요금 폭탄 이런 말로 한전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사업도 부진했고,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위기를 맞습니다. 수익도 줄어가고. 그러면서도 한전은 새로운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이제는 업을 바꿔보자, 에너지솔루션플랫폼으로 승부를 내보자” 하는 생각으로 전 세계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선보였고, 시설장비도 디지털화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투자기업을 유치한 덕분에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에도 속도가 붙었고, 이제는 스스로 놔둬도 될 만큼의 자생력을 갖게 됐습니다. 빅스포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아마 세계 제일의 전력신기술 엑스포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매년 11월이 되면 전 세계가 여기 광주로 찾아와 새로운 전력기술 동향을 살펴볼 거고, 빅스포 행사 중에 많은 비즈니스 거래도 이뤄질 것입니다.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에도 맞춰 가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만 한전이 가야 할 길입니다. 노력해야 합니다.며칠 전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는 낭보를 영국과 일본이 저희에게 전달해줬습니다. 그 자체가 협상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참 잘 된 일입니다. 8년 만에 우리가 원전수출을 해냈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기술로 제압했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사건입니다. 제가 나간 후에도 이게 꼭 성사돼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으면 합니다. 마침 제가 나가는 시점에 좋은 소식을 들려 퇴임을 빛내준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한 걸음도 잘 못 갈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타 업종과도 경쟁해야 합니다. 오로지 우리가 가진 나침반을 들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에너지 공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한전공대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저것 할 게 참 많습니다. 이 지역을 세계 최고의 에너지 지식산업 클러스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굳이 삼성동에 갈 필요 없다, 여기에 더 많은 정보와 인프라가 있다”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꿈이죠. 저는 떠나갑니다. 아마 후임사장이 지금 그려놓은 그림 위에 꽃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항상 긍정적 사고를 가지십시오. 자기 자신과 건강한 대화를 하십시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성공을 합니다. 저의 꿈을 여러분들이 꼭 이루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적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업(業)의 변화를 꼭 실현해주시기 바랍니다. 해외사업은 이제 막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실제로 지난번에는 사흘 연속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발표됐습니다. 수염이 뚫고 나오려면 10여 년이 걸리지만, 일단 뚫고 나오면 매일매일 자란다고 합니다. 대단한 정성을 들여온 우리의 해외 사업을 이제는 하나의 KEPCO Belt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번 영국 원전사업에서 한전이 중국을 제치면서 원전수출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잘 준비해서 앞으로 있을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우리가 계속 이겨야 합니다.또 앞으로도 한전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돼야 합니다. 에너지생태계를 관리 육성하고 KEPCO KIDS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 지역에 에너지 관련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곳에서 사람을 키우고, 지역을 혁신시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한전은 이제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회사입니다. 그만큼 많은 책무가 따르고 사명감도 커졌습니다. 제가 제일 잘 한 점은 아침에도 생각해보니 “여름철 휴가 때 휴가 잘라먹은 상사는 삼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이메일을 쓴 것입니다. 그 후로 새로운 휴가문화가 많이 정착됐죠? 제일 아쉬운 건, 뭐 그리 바쁘다고 사업소를 자주 못 갔을까 하는 점입니다. 1차사업소에도 못 가본 데가 있고, 특히 2차사업소는 더 많이 못 갔습니다. 오지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스킨십도 하고 밥도 먹고 막걸리도 마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힘든 출장도 여럿 있었고, 사흘 연속 야간비행도 했기 때문입니다. 또 일주일에 몇 번씩 나주와 서울을 왕복하며 일했습니다. 5년 동안 나만의 시간을 1분도 제대로 못 가진 것 같습니다.한전이 여기에 뿌리내리도록 해주신 지역주민분들께 아주 큰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임식에 와 주신 광주부시장님, 전남부지사님, 나주시장님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광주 명예시민이고 나주 명예시민입니다. 저를 계속 명예시민으로 대해주십시오. 그동안 많이 고단하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고 보람 있었습니다. 저는 떠나가고 한전의 OB가 됩니다. 앞으로 편안하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몸 아프지 마십시오, 마음 아프지 마십시오. 옆에 동료가 웃으면 왜 웃냐고 물어 같이 웃고, 혼자 우는 사람 있으면 껴안고 같이 울어주십시오. 여러분, 고맙고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