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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바라크 퇴진" 이집트 시위5일째…군인들 동조 기미
- [국제부= 외신종합] 30년 집권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이집트 시위사태가 토요일인 29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제2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곳곳에서 이어졌다.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만 경찰발포로 5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 내각 사임발표에도 시위 사태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의 신망이 높은 군대가 진압 명령에 따라 동원됐으나, 사실상 진압에 나서지 않고 있어 앞으로 사태의 핵심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29일 이집트내 카이로 중심가와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운하가 있는 지역 등에서 5일째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진압 명령을 받은 군인들 일부가 시위대의 대통령 사임요구에 동조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시위대를 해산시킬 것으로 예상됐던 무장 군인들이 주둔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반정부 시위대가 무장 탱크에 올라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이 그림은 "호스니(무바라크)는 떠나라. 당신, 당신 아들 그리고 당신의 부패한 당도 떠나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군인들은 시위대를 막기보다는 사진을 같이 찍자며, 탱크 위로 올라오라고 하고 있다. 카이로 중심가인 람세스 광장에서는 수십 명의 시위대들이 군대 트럭을 탈취해 광장을 돌며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인근의 광장에서는 얼굴을 가린 한 군인이 시위대에게 "군대는 국민을 지지할 것"이라는 연설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에 발포하며 수십 명의 사망자를 냈던 경찰들은 시위대들에 밀려 카이로 중심에서는 물러나 대통령 궁을 경계하고 있는 상태다. ○…이집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이면 모두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경찰과는 달리,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등 강제 진압을 꺼리고 있다. 이집트군은 46만 8천여 명의 병력을 보유한 세계 10위의 막강한 규모. 지난 1952년 왕정을 뒤엎는 쿠데타 이후, 4명의 대통령이 모두 군 출신이며 전통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현 모하마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은 70세 후반의 고령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도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막강한 군부의 태도가 앞으로 이집트 사태의 핵심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위사태가 확산하고 있는 동안 언론 등에 나서지 않았던 무바라크 대통령은 전날(28일) 저녁 TV 연설에서 "이집트정부 내각 장관이 모두 공식 사임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82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현재의 시위는 국가의 안정을 해치는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이라며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시위대들의 즉각적인 해산을 요구했다. 무바라크는 "모든 이집트의 안정을 유지하는 어떤 결정도 피하지 않을 것"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들은 경찰의 발포로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형 병원 시체 안치실이 있는 근로자들은 하루 동안 폭력사태로 최소 20명의 시신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 병원에는 다수 부상자들이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28일부터 휴대폰, 인터넷 등 통신과 통행을 금지하는 비상계엄령을 발표했다. 토요일에는 휴대폰 서비스는 일부 개통이 됐으나 다른 통신수단은 여전히 불통상태를 보이고 있다. 토요일에도 시위대들은 통행금지를 거부한 채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8일 TV에 모습을 나타내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정치, 경제 개혁을 위한 `건설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 남북 무력충돌 가상 시나리오… 전면전땐 시간당 50만발 포격
- [경향닷컴 제공] 군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서해 5도에서의 북한군 무력도발이 기어코 지난 23일 벌어졌다. 그동안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선언, 남북 정치·군사 합의사항 무효화, 지대함·함대함 미사일 발사, 서해5도 출입함선 안전 미보장 선언, 대청교전 도발과 지난 1월의 해안포·장사포 NLL해상사격 등의 긴장 강도를 높이는 수순을 밟아왔다 이제는 천안함 침몰사고에 이어 남북간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서해는 가장 민감한 ‘한반도의 화약고’임이 증명됐다.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남북은 이제 일촉즉발의 방아쇠를 갖게 됐다. 우리측은 북한의 도발에 지·해·공 입체 공격을 펼쳐 초기에 북한군을 제압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 K-9 자주포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북한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군 당국의 타격 방법과 수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의 하나, 연평전투가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된다면 국내 모든 경제가 마비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가 재앙에 빠질 우려가 있다. 게다가 서해 NLL 해역은 남북한 화력의 집결 정도를 보면 지상의 155마일 휴전선 이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 화약고나 다름없는 상태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 전투함정 전력의 60%가 전방기지에 전진배치돼 있다. 해상전투에 즉각 참가가 가능한 북한의 서해함대사령부 소속의 8전대는 NLL에서 불과 32㎞ 떨어진 황해도 사곶에 위치해 있고 70여척 이상의 경비정과 고속정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실크웜 미사일 발사 장면8전대의 상급부대인 북한 서해함대사령부는 호위함과 유도탄정 등 420여척, 갯벌에서도 고속기동이 가능한 공기부양정 130척, 고속상륙정 90여척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상어급과 연어급을 중심으로 한 수중전력은 은밀하게 우리 함정에 어뢰를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이에 따라 국지전이 벌어지면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북한군의 연평도 기습상륙 시도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군의 공기 부양정은 완전무장한 30~50명의 병력을 태우고 시속 80~90㎞ 속도로 남한 해안에 상륙할 수 있다. 북한군은 특히 서해안 12전대 예하에 공기 부양정 7개 편대를 집중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창과 황주 등의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MIG 23과 같은 전투기는 북방한계선까지 5~6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만약 서해상에서 남북간 충돌이 재차 발생하면 NLL 북쪽 해역의 북한 어뢰정은 해군의 고속정을 공격하는 한편 유도탄정이 사정거리 46㎞의 대함 스틱스(STYX)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유도탄정은 스틱스 미사일 2~4기를 장착할 수 있어 서해지역에 배치된 40여척의 유도탄정이 공격에 나설 경우 NLL 이남의 초계함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북한 유도탄정이 도발하면 해군의 초계함이 대함 하푼미사일로 응전하면서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웅진반도와 백령도 사이에서 남북 해안포가 동시에 불을 품는 치열한 해안포 공방으로 다시 이어게 된다. 북한은 서해안일대에 76.2㎜(사정거리 13㎞)및 130㎜(사정거리 21㎞) 해안포를 배치해 놓고 있다. 또 북한 등산곶의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사정거리 95㎞)과 샘릿 함대함, 개량형인 KN-01, KN-02 미사일도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북한 4군단이 보유한 122㎜ 방사포 등도 가세하게 된다. 우리측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군의 레이더나 유도장치가 표적을 혼돈해 다른 곳을 향하도록 유인하는 ‘기만전술’로 우선 맞선다는 액션 플랜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 함께 항공전력이 즉각 투입된다.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SLAM-ER)과 공대지미사일(AGM-84), 공대공 중거리미사일(AIM-120C), 합동직격탄(JDAM) 등을 장착한 F-15K와 공대지미사일(AGM) 등으로 무장한 KF-16이 북한의 미사일 기지와 장사정포 갱도에 대한 정밀폭격에 나서야 한다. 대구와 오산의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서해 도서의 장거리 대공레이더에서는 북한 전역에서 뜨고 내리는 모든 항공기를 정밀 추적하는 한편 북한 전투기의 공격 즉시 NLL 남쪽 상공에서 대기하던 F-15K 전투기가 공대공미사일로 격추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마련돼 있다. ▲ 발진하고 있는 F-15K우리 해군은 백령도 해안과 첨단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3200t급 한국형 구축함(DDH-Ⅰ)과 1500t급 호위함(FF)에 장착한 사정거리 130㎞의 하푼미사일과 76·126㎜ 함포 등으로 북한 유도탄정과 해안포 기지를 맹타하게 된다. 연평도와 백령도의 해병대 K-9 자주포도 불을 뿜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면전 양상을 보이면서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 대한 북한군의 실크웜 미사일의 공격까지 감행되고 일본 요코스카항에서 이지스함이 서해로 급파될 것이다. 이지스 순양함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로 북한 해주와 옹진반도 등에 흩어져 있는 북한의 실크웜 미사일기지를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 작전해역으로 향해 항해중인 광개토대왕함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북은 황해도 남쪽에 배치한 기지에서 인천 상공의 항공기까지 공격할 수 있는 SA5 지대공 미사일(사정거리 250㎞)을 날릴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보복조치로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한 240㎜ 방사포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위협한다면 합참은 가용 전력을 총동원해 서부전선 전역에서 대(對)포병작전을 실행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전개되면 전군에 내려지는 방어준비태세인 가운데 가장 높은 데프콘Ⅰ이나 Ⅱ가 내려지면서 작전권이 한·미 연합사로 넘어가고 계엄령 선포와 함께 사실상 전시체제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면전이 시작되면 북한군은 시간당 50만발의 포격을 감행하면서 서울을 고립시키는 한편 평양과 원산선 이남 지역의 10여개 군단과 60여개 사단 및 여단 병력이 전면공격에 나설 것이다. 북이 이같은 국지전 확전을 피하는 대신 다른 보복 수단을 강구한다면 테러 행위 등 비정규군 쪽의 보복 공격도 예상되고 세균 살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북 교류차원에서 당시 북한 지역에 체류중이던 대한민국 국민은 인질로 억류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압도적인 화력을 통한 초기제압을 강조하지만 북한군이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자멸적 공세에 나설 경우 우리 군도 ‘상처뿐인 영광’을 각오해야 한다.
- 北주민, 남쪽도 계엄령 선포하면 이렇게 단속 심하냐?
- [노컷뉴스 제공] 북한의 노동당대표자회가 당초 예상과 달리 늦어지는 가운데 당국이 주민들의 단속을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함경북도 연사군의 소식통은 11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북한은 지방당대표자회가 열리던 지난달 25일부터 완전히 계엄상태에 들어갔고 인민보안부와 국가보위부, 인민무력부 통제인력과 수단들이 총동원됐다"고 말했다.이 소식통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단속이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남조선(한국)에서도 군사훈련을 하거나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데 이렇게 심하게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민보안부 산하 순찰대, 기동타격대, 노동자규찰대와 청년동맹 불량청소년그루빠(그룹), 인민무력부 경무국 등 통제기관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다 인민보위대가 없는 작은 공장, 기업소들은 직원들 5~7명을 항시적으로 대기시켜 놓고 있다"고 전했다. 또 "각 인민반별로 인민반 경비초소를 보강하고 경비인원을 기존의 2명에서 4명으로 늘렸으며, 해당지역 담당 보안원과 보위원들이 수시로 경비실태를 조사하고 있어 밤이면 공동위생실(공동화장살)출입까지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국경지역 도시는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까지 잠복근무조를 조직해 대낮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짐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전했다. 혜산시에 거주하는 소식통도 "이러한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면서 "주민들의 이동을 금지돼 협동농장마다 가을걷이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강도의 경우 겨울이 길기 때문에 빠르면 9월 5일, 보통 9월 9일이면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 동원해 감자캐기를 시작했으나 올해에는 '당대표자회가 끝나면 가을걷이를 시작한다'는 윗선의 지시가 있어 농업부분 간부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전화를 한번 하려면 멀리 마을을 벗어나야 하는데 보안원들이 '삑삑이(금속탐지기)'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을 모두 검열을 하기 때문에 도무지 빠져나가기 어렵다"면서 "검열이 풀릴 때까진 전화를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소식통도 "온갖 위협과 협잡까지 해가면서 사람들 단속하느라 날뛰고 있다"면서 130조 상무가 시도 때도 없이 들이 닥쳐 금속탐지기를 앞세워 집안 곳곳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고 전했다.올해 초에 조직된 130상무는 텔레비전 통로(채널), 불법라디오와 휴대폰, DVD, 컴퓨터, MP3, 오락기구를 비롯한 외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을 검열하는 기구로 노동당, 보위부, 보안부, 간부들과 체신성 기술자들로 구성돼 있다.
- 30주년 5.18 `광주`를 알린 영화들
- ▲ 5.18을 다룬 '꽃잎','박하사탕','스카우트','화려한 휴가'(사진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로 30주년이 됐다. 지난 1980년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이 신군부의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당시 보안사 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데일리SPN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화들을 짚어봤다. 신군부독재가 이어지던 1980년대 5.18은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금기 단어였다. 그러나 지난 1992년 문민정부의 탄생과 함께 5.18의 명예가 회복되고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 1996년 장선우 감독 '꽃잎' 영화계에서는 5.18을 상업영화 테두리 안에서 처음 다룬 작품으로 1996년 4월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꼽는다.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잎 꽃잎이 지고'를 원작으로 한 '꽃잎'은 어린 소녀를 통해 5.18 피해자들의 상처를 되돌아본 작품이었다. 문성근 외에 당시 신인이었던 설경구, 추상미 등이 출연했다. 특히 이 영화로 열다섯의 나이로 데뷔한 이정현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쫓기다 총에 맞아 숨진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 소녀로 분했다. 이정현은 기차 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자해하는 장면에서 실제로 유리창을 깰 정도로 광기가 어린 연기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꽃잎'이 개봉될 당시에는 5.18주범에 대한 반란 및 내란죄가 확정되기 전이었던 때라 영화 개봉 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당시 ‘꽃잎’ 제작에 참여했던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개봉이 될지 불안할 정도로 여러 보이지 않는 압력들이 많았다”며 “ 하지만 감독을 비롯해 촬영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5.18을 소재로 첫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사명감에 임했다”고 밝혔다. ◇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꽃잎’ 이후 다시 영화계가 5.18을 소재로 관객들에게 선보인 작품은 2000년 1월1일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설경구의 ’나 돌아갈래‘라는 명장면으로 시작한 ’박하사탕‘은 순수했던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군시절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민간인을 죽인 뒤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창동 감독은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로 데뷔 한 이후 2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박하사탕’을 완성했다. ‘박하사탕’은 영화계 전문가들로부터 2000년 한국영화가 거둔 가장 큰 수확 중 한 편으로 평가받았다. 작품성과 함께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 2007년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와 김현식 감독의 '스카우트' ‘박하사탕’ 다음으로 5.18을 다룬 영화는 2007년 7월 개봉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다. ‘화려한 휴가’는 5.18 당시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들의 작전명으로 1980년 5월의 광주의 참상을 정면에서 응시한 작품이다. ‘꽃잎’과 ‘박하사탕’이 5.18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영화였다면 ‘화려한 휴가’는 5.18 당시 광주 시내와 도청 앞에서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사진=CJ엔터테인먼트)김상경이 평범한 택시기사에서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군 민우로 분했고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박철민, 나문희 등이 출연했다. 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광주시 인근 상무지구에 도청을 재현한 세트를 지어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영화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은 “대구에서 자랐지만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며 “불의에 맞섰던 시민군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당시 ‘화려한 휴가’는 730만 관객을 모아 2007년 한국 극장가 흥행 톱3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화려한 휴가’ 외에 같은해 11월 개봉한 김현식 감독의 ‘스카우트’ 또한 5.18을 소재로 한 영화로 꼽힌다. 스카우트는 1980년 5월, 광주가 낳은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실제 있었던 대학 스카우트들의 비사를 표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스카우트’의 속살은 5.18로 비롯된 주인공들의 어긋남으로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려고 광주에 내려갔던 호창(임창정 분)은 그곳에서 반독재운동을 하는 대학후배 세영(엄지원 분)을 만났고 결국 5.18의 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5.18을 녹여낸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카우트’로 김현식 감독은 200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임창정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들 네 편의 영화 외에 1988년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와 1993년 제작된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가 상업영화에 앞서 5.18을 다룬 독립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 (김前대통령서거)인동초 인생..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삶
- [이데일리 이숙현기자] `인동초`. 김대중에 대한, 말하자면 비유라기보다 묘사다. 그는 한 때 (혹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빨갱이`였다. 71년 신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될 당시부터 심지어 1997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이 진부한 색깔론은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살아나 그와 그 주변을 괴롭혔다. 사고를 가장한 암살 위협, 납치와 가택연금, 망명, 사형선고 그리고 4번의 대선 도전 끝 대통령 당선과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그는 `인간 김대중`일 수 없었다. 세상사 모든 것이 정치라지만 그는 유독 `정치인 김대중`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에게 질투와 질시는 천형과 같은 법. 그가 짊어졌던 삶이 본인의 온전한 선택이었는지, 보이지 않는 운명의 강요였는지 눈 감아 버린 그만이 알 것이다. 그의 삶은 곧 영욕이자, 자체로 소설이었다.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에서 3차례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모두 실패였다. 4수 끝에 196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5·16쿠데타로 당선 이틀 만에 의원선서도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45세이던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40대 기수론`을 앞세우며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향토예비군 폐지, 노동자·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국 안전보장안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거공약을 내걸고 박정희 후보와 맞섰다. 김대중은 과감한 공약과 호소력 있는 연설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박정희에 95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쿠테타 세력에 의한 온갖 부정선거 의혹 속에서도 김대중은 46%를 득표, 박정희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사건`은 곧 김대중 수난사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72년 유신이 선포되자 김대중은 일본으로 망명한다. 73년 8월에는 그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택 연금. 이제 투옥, 살해 위협, 연금과 감시는 그의 일상사가 된 듯 했다. ▲ `김대중 내란음모죄` 재판 장면1980년 초 `서울의 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듬 해(1980년) 2월 사면복권된 김대중은 이 시기에 김영삼·김종필 등과 함께 정치활동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1979년 12·12사태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이때 김대중은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또 다시 체포, 수감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기를 감옥에서 보낸 그는 9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현지 교포들과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문화인·정치인들이 대거 그의 구명운동을 벌이자 군사정권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이어 1982년 12월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전격적으로 귀국한 그는 김영삼과 함께 급조한 신한민주당을 통해 당시 어용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자 군사정권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수용 등을 담은 `6·29선언`을 내놓았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이끌어냈지만 그것을 내용적으로 실현할 민주화 세력의 통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김대중은 1987년 12월로 예정된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야당의 분열 속에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는 예견된 일이었다. 동시에 민주화세력에게 적전 분열은 재앙을 의미했다. 대통령선거에 패한 후 야당분열에 대한 국민적 비난, 평화민주당 총재직 사퇴, 제13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 그리고 1990년 `3당 합당`. 그의 정치인생 놓인 시련과 굴곡은 끝이 없어 보였다. ▲ 1985년 미국서 귀국 당시 모습그는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또 다시 출마한다. 그리고 패배. 이후 전격 정계은퇴 선언을 했으나 곧 95년 정치활동을 재개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다. 마침내 1997년 12월. 그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4번째 도전 끝에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순간이자, 71년 대선 첫 도전 이후 26년만에 이룬 꿈이었다. 생전에 노무현은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완전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든 그 기본적인 전제를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2009년 8월18일. 그는 떠났다.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86년 인생을 쉼없이 살다갔다. 김대중의 죽음은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 통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2009년 5월 29일, 후배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아이처럼 울던, 그리고 또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의 빈 자리를 이제 누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좋든 싫든 그처럼 역사를 몸으로 웅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이제 쉽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현실적 패배 속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한 `인간`을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죽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치욕과 고통도 있었고 수많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고,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2003년 2월 24일, 대통령 퇴임사)
- "징계, 연행, 압수수색... 교사 양심 못 막는다"
- [오마이뉴스 제공] 19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2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이번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사들은 모두 2만8645명. 교육과학기술부의 징계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난 1차(1만7000여명)보다 1만여명 많은 교사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따로 집계를 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비조합원 교사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전교조는 다음날인 기관지 <교육희망>을 통해 20일 2차 시국선언 참여 교사명단을 발표한다. 이날 전교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징계와 고발, 연행, 압수수색, 소환조사는 때론 우리를 두렵게 했다, 그러나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정부의 탄압도 교사들의 양심과 실천의지를 막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선언은 갈등도 충돌도 힘겨루기도 아니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교육정책의 재검토를 바라는 교사들의 실천의지이자 절박한 요구"라고 설명했다.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우리 교사들은 힘이 없어서 끌려가고 맞고 갇히지만 그래도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교사의 양심은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지난 7일간 이어온 단식농성을 마무리했다.전교조는 이번 2차 시국선언으로 사태가 한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향후 대응방안은 다음주 중 결정할 예정이다. 일단 8월 중 각 시도교육청의 징계에 맞춰 전국 지부별로 항의 행동을 펼칠 계획이다.한편, 반국가교육 척결국민연합 등 보수단체도 같은 시간 전교조 기자회견장 바로 옆에서 '시국선언 교사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맞불을 놓았다.이들은 전교조를 "종북집단" "촛불시위를 선동하고 불법 폭력투쟁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단체로 의법처리해야 할 사악한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합법적인 이명박정부를 독재정부로 매도하면서 북한 김일성부자의 세습독재를 민주국가로 가르쳤다"고 주장하기고 했다. 또한 1차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사회혼란을 야기시켜 좌익혁명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국민 혈세로 북한 혁명전사를 기르는 전교조를 하루빨리 교단에서 퇴출하는 길이 교육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라면서 시국선언자 전원 파면과 전교조 교사 퇴출을 정부에 요구했다.경찰은 두 기자회견장 사이에 50여명의 전경들을 배치해 충돌을 막았다. 서울광장에 있던 시민들이 보수단체를 향해 "집에 가라" "저거 불법집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 베이징올림픽, 티베트 유혈사태로 흔들
- [프레시안 제공]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은 과연 무사히 개최될 수 있을까. 중국산 불량식품 파동, 대기오염, 인권탄압이라는 3대 악재로 올림픽 개최국 자격이 있느냐는 시비에 시달리던 중국 정부에 이번에는 20년만의 최대 시위사태로 번진 티베트 사태가 불거졌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2기 공식출범 전날 시작된 이번 시위는 곧바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티베트인들의 동시다발적인 시위로 확산됐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일제히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서 중국 정부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국제사회 "억류한 승려들 석방하라"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티베트 여행에 대해 미 국무부가 주의령을 발동한 15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티베트 폭력 사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중국정부는 티베트 시위 대처에 자제심을 발휘하고, 억류한 승려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스위스 외교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에 과도한 무력 사용 중지,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의 존중 등을 촉구한 뒤,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구금된 시위자들을 대우하고 평화적 시위자들은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위스 외교부는 티베트의 인권 상황 개선과 아울러 티베트 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평화로운 해결은 티베트 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5일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5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재선출된 후 주석과 국가부주석에 선출돼 차기주자로 확실한 자리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티베트 사태의 원만한 해결은 당면한 정치력 시험대가 되고 있다. 티베트 독립시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 중국 정부가 티베트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국제사회에 명실상부한 세계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경기 과열 극복과 민생문제 등 경제적 문제 외에도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소수 민족들은 올림픽 개최를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4일 티베트(西藏) 라싸에서 시작된 분리독립 요구시위는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앞, 스위스 취리히, 인도 뉴델리, 호주 시드니 등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 북부 다름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15일 성명을 통해 라싸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시신이 확인된 사망자만 30명이며, 사망 추정자만 100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 수는 16명이다. 이에 따라 이번 시위는 지난 89년 16명이 숨진 라싸 폭동 때와 비교해도 20년만의 최대 시위로 평가되고 있다. 라싸에서 쓰촨성 청두(成都)로 대피한 외국인들은 라싸에 당시 10여 대의 탱크가 출동했고 수백명의 병력이 거리를 봉쇄했으며 상가가 모두 철시하는 한편 관광객에 외출금지령이 내려져 사실상 계엄령 상태라고 증언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신도 거의 완전히 제한을 받고 있으며 티베트 내 많은 지역의 통신이 불통되고 있다고 망명정부는 밝혔다. 또한 간쑤(甘肅)성 간난(甘南) 티베트족 자치주에서도 15일 승려 등 수백명이 항의 시위를 벌여 경찰 당국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했다. 중국 서북부 간쑤성 샤허에서도 승려들이 이끈 수천명의 시위대가 시청을 향해 행진하면서 경찰과 대치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인 라싸와 인근 많은 지역에서 일반인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있으며, 텅빈 거리에는 탱크 등으로 무장한 경찰관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고 망명정부는 전했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는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40~50명의 시위대가 "티베트는 정의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중국은 티베트인을 그만 죽이라"고 촉구했다. 이들 가운데 6명은 경찰의 시위중단 요구에 불응한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스위스 거주 티베트인들을 비롯한 100여 명의 시민들은 취리히에서 평화시위를 벌였다. 호주에서는 시드니 주재 중국 총영사관 밖에서 티베트 독립 시위를 벌이던 이들 가운데 5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네팔 카트만두에서도 승려 수십 명을 포함한 1000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승려 12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촛불시위를 벌이다 네팔 주재 중국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고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과 충돌한 것이다. 아울러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단체 '티베트인의 친구'는 대만이 중국에 대해 티베트 탄압을 중단하도록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 단체 관계자는 "현지 티베트인이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총과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이 시위를 진압하고 사원을 장악했다'면서 티베트에 대한 박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고 호소해 왔다"고 전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올림픽 보이콧 거부" 티베트 유혈사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되면서 일각에서 베이징 올림픽 개최 반대 요구로까지 번지자,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은 15일 "올림픽 보이콧은 오히려 순수한 운동선수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IOC는 일관되게 올림픽 보이콧 요구를 거부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게 위원장은 유혈사태가 이어지거나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 과정에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경우 IOC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티베트의 분리독립 요구는 이미 50년이 넘게 지속된 문제다. 중국은 1951년 군대를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합병했으며, 티베트는 1959년 독립을 위한 봉기가 실패하면서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해야 했다. 이후 중국은 1986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에 따라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도한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티베트의 '역사지우기'에 나섰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전신에 해당한다. 중국은 서남공정을 통해 티베트가 원래부터 중국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티베트는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나라와 청나라 시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티베트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킨 이후 이민정책으로 티베트내에서 한(漢)족의 반경을 넓혔고 칭짱철도 개통 이후에는 한족의 유입이 빠르게 늘면서 중국으로 흡수되는 속도에 가속이 붙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티베트 인들은 지난 2월 21일 칭하이(靑海) 성에서 수천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티베트식으로 새해 첫날이어서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티베트 민족은 550여 만 명에 달하며, 티베트로 불리는 시짱(西藏) 자치구 외에도 칭하이·간쑤·윈난(雲南)성 등에 퍼져 있다. 이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14세는 59년 인도로 망명해 해외에서 티베트 독립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 "고립된 티베트, 최대 100명 사망"‥지구촌, 항의시위 확산
- [노컷뉴스 제공] "지금 티베트는 고립된 상태며 최대 100명까지 숨졌다"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최근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발생한 시위사태와 관련해 확인된 사망자가 30명이며 최대 1백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15일 밝혔다.외부 세계와의 통신 제한받아 망명정부는 또 라싸 지역은 사실상 계엄 상태이며 티베트 사원들은 무장 군인들에게 완전히 봉쇄됐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신도 제한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베트를 빠져나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무장한 군인과 탱크가 라싸 시내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고 상점은 문을 닫고 시민들은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티베트 독립요구 시위는 간쑤성과 칭하이 성까지 확대되고 있다.간쑤성에 있는 장족자치주에서는 티베트 불교 승려 수백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해산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17일 자정까지 불법시위자들이 자수하지 않을 경우,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할 것이며 시위자를 숨겨주거나 도피를 도와주는 사람까지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실탄으로 진압 vs 사용한 적 없어"중국 정부는 사망자와 관련해 불법시위대의 방화와 폭력으로 무고한 시민 10명이 숨졌다고 밝혔지만 진압과정에서 실탄을 사용한 적은 없다며 유혈진압 보도를 부인했다.이런 가운데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와 각국의 중국 대사관 앞에는 티베트의 유혈사태에 항의하는시위가 잇따랐다.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확산되면서 베이징 올림픽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한편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시작된 티베트 독립 요구 시위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스위스, 인도 뉴델리, 호주 시드니 등 지구촌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티베트의 분리독립 요구 시위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혈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15일 취리히에서 스위스 거주 티베트인들을 비롯한 1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지구촌 곳곳에서 무력진압 항의시위, 美정부, '자국민 여행 자제령'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날 항의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등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으나, 일부 참석자들은 취리히 소재 중국 총영사관에 돌을 던지거나 진입을 시도해 스위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이를 제지 했다.인도 수도 뉴델리에서도 수십 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대사관 접근을 시도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또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는 1천여 명의 티베트인들이 모여 중국 국기를 불태우고 '자유 티베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호주에서도 시드니 주재 중국 총영사관 밖에서 티베트 독립 시위가 잇따랐고 이들 가운데 5명이 현장에서 체포됐고, 타이완 타이베이에 있는 인권단체 '티베트인의 친구'는 대만이 티베트 탄압을 중단하도록 중국에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미국 정부는 15일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자국민 여행객들에 대해 안전주의 경고령을 내렸다.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은 이날 티베트 지역과 중국 서부지역 일원을 여행하는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안전경고령을 내리고 여행 자제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