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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금요일` 중동 민주혁명 분수령 맞는다
  • `분노의 금요일` 중동 민주혁명 분수령 맞는다
  •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중동 지역을 휘감은 민주화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기세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그간의 울분을 모두 토해내듯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고,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의 충돌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집트에 이어 시민혁명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바레인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17일(현지시간) 바레인 국가안보위원회는 소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시위 진압에 처음으로 투입했다.  군과 경찰의 합동 진압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수도 마나마의 펄 광장에 모인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적어도 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에서는 지난 14일에도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대 2명이 사망한 바 있다. 바레인은 1인당 소득이 2만7000달러에 달하는 부국으로, 튀니지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달리 국민의 생활은 여유로운 편이지만 민족 간의 갈등이 문제다. 바레인 전체 인구의 70%는 시아파지만 의회와 정부 등 권력기관은 수니파인 알-칼리파 가문이 1971년 이후 40년째 장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아파의 불만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미국은 이란 등 중동 지역의 적대국 견제 목적으로 현재 바레인에 해군 5함대사령부를 주둔시키고 있는 만큼 혹시라도 시위의 불똥이 튈 것을 염려, 이번 소요 사태를 더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무려 42년이나 장기 집권 중인 리비아에서도 시위는 격화되는 모습이다. 리비아 반정부 세력은 이날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주에만 리비아에서 19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수도 사나에서는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 간의 충돌로 지금껏 최소 4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반정부 시위는 18일을 기점으로 더 불붙을 전망이다. 이날은 무슬림 예배일을 맞아 바레인과 예멘 등에서 `분노의 금요일`로 명명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예정돼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사퇴 이후 시위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는 이집트에서도 같은 날 시민 혁명을 자축하는 `100만인 승리의 행진`이 예정된 가운데 친 무바라크 세력 역시 근처에서 집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집트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밖에 지난 14일부터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이란에서는 야당 세력들이 정권 탄압을 규탄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오는 20일에 열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이날이 시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1.02.18 I 김기훈 기자
  • "무바라크 퇴진" 이집트 시위5일째…군인들 동조 기미
  • [국제부= 외신종합] 30년 집권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이집트 시위사태가 토요일인 29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제2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곳곳에서 이어졌다.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만 경찰발포로 5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 내각 사임발표에도 시위 사태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의 신망이 높은 군대가 진압 명령에 따라 동원됐으나, 사실상 진압에 나서지 않고 있어 앞으로 사태의 핵심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29일 이집트내 카이로 중심가와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운하가 있는 지역 등에서 5일째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진압 명령을 받은 군인들 일부가 시위대의 대통령 사임요구에 동조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시위대를 해산시킬 것으로 예상됐던 무장 군인들이 주둔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반정부 시위대가 무장 탱크에 올라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이 그림은 "호스니(무바라크)는 떠나라. 당신, 당신 아들 그리고 당신의 부패한 당도 떠나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군인들은 시위대를 막기보다는 사진을 같이 찍자며, 탱크 위로 올라오라고 하고 있다. 카이로 중심가인 람세스 광장에서는 수십 명의 시위대들이 군대 트럭을 탈취해 광장을 돌며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인근의 광장에서는 얼굴을 가린 한 군인이 시위대에게 "군대는 국민을 지지할 것"이라는 연설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에 발포하며 수십 명의 사망자를 냈던 경찰들은 시위대들에 밀려 카이로 중심에서는 물러나 대통령 궁을 경계하고 있는 상태다. ○…이집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이면 모두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경찰과는 달리,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등 강제 진압을 꺼리고 있다. 이집트군은 46만 8천여 명의 병력을 보유한 세계 10위의 막강한 규모. 지난 1952년 왕정을 뒤엎는 쿠데타 이후, 4명의 대통령이 모두 군 출신이며 전통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현 모하마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은 70세 후반의 고령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도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막강한 군부의 태도가 앞으로 이집트 사태의 핵심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위사태가 확산하고 있는 동안 언론 등에 나서지 않았던 무바라크 대통령은 전날(28일) 저녁 TV 연설에서 "이집트정부 내각 장관이 모두 공식 사임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82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현재의 시위는 국가의 안정을 해치는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이라며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시위대들의 즉각적인 해산을 요구했다. 무바라크는 "모든 이집트의 안정을 유지하는 어떤 결정도 피하지 않을 것"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들은 경찰의 발포로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형 병원 시체 안치실이 있는 근로자들은 하루 동안 폭력사태로 최소 20명의 시신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 병원에는 다수 부상자들이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28일부터 휴대폰, 인터넷 등 통신과 통행을 금지하는 비상계엄령을 발표했다. 토요일에는 휴대폰 서비스는 일부 개통이 됐으나 다른 통신수단은 여전히 불통상태를 보이고 있다. 토요일에도 시위대들은 통행금지를 거부한 채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8일 TV에 모습을 나타내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정치, 경제 개혁을 위한 `건설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2011.01.30 I 문주용 기자
남북 무력충돌 가상 시나리오… 전면전땐 시간당 50만발 포격
  • 남북 무력충돌 가상 시나리오… 전면전땐 시간당 50만발 포격
  • [경향닷컴 제공] 군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서해 5도에서의 북한군 무력도발이 기어코 지난 23일 벌어졌다. 그동안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선언, 남북 정치·군사 합의사항 무효화, 지대함·함대함 미사일 발사, 서해5도 출입함선 안전 미보장 선언, 대청교전 도발과 지난 1월의 해안포·장사포 NLL해상사격 등의 긴장 강도를 높이는 수순을 밟아왔다 이제는 천안함 침몰사고에 이어 남북간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서해는 가장 민감한 ‘한반도의 화약고’임이 증명됐다.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남북은 이제 일촉즉발의 방아쇠를 갖게 됐다. 우리측은 북한의 도발에 지·해·공 입체 공격을 펼쳐 초기에 북한군을 제압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 K-9 자주포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북한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군 당국의 타격 방법과 수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의 하나, 연평전투가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된다면 국내 모든 경제가 마비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가 재앙에 빠질 우려가 있다. 게다가 서해 NLL 해역은 남북한 화력의 집결 정도를 보면 지상의 155마일 휴전선 이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 화약고나 다름없는 상태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 전투함정 전력의 60%가 전방기지에 전진배치돼 있다. 해상전투에 즉각 참가가 가능한 북한의 서해함대사령부 소속의 8전대는 NLL에서 불과 32㎞ 떨어진 황해도 사곶에 위치해 있고 70여척 이상의 경비정과 고속정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실크웜 미사일 발사 장면8전대의 상급부대인 북한 서해함대사령부는 호위함과 유도탄정 등 420여척, 갯벌에서도 고속기동이 가능한 공기부양정 130척, 고속상륙정 90여척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상어급과 연어급을 중심으로 한 수중전력은 은밀하게 우리 함정에 어뢰를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이에 따라 국지전이 벌어지면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북한군의 연평도 기습상륙 시도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군의 공기 부양정은 완전무장한 30~50명의 병력을 태우고 시속 80~90㎞ 속도로 남한 해안에 상륙할 수 있다. 북한군은 특히 서해안 12전대 예하에 공기 부양정 7개 편대를 집중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창과 황주 등의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MIG 23과 같은 전투기는 북방한계선까지 5~6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만약 서해상에서 남북간 충돌이 재차 발생하면 NLL 북쪽 해역의 북한 어뢰정은 해군의 고속정을 공격하는 한편 유도탄정이 사정거리 46㎞의 대함 스틱스(STYX)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유도탄정은 스틱스 미사일 2~4기를 장착할 수 있어 서해지역에 배치된 40여척의 유도탄정이 공격에 나설 경우 NLL 이남의 초계함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북한 유도탄정이 도발하면 해군의 초계함이 대함 하푼미사일로 응전하면서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웅진반도와 백령도 사이에서 남북 해안포가 동시에 불을 품는 치열한 해안포 공방으로 다시 이어게 된다. 북한은 서해안일대에 76.2㎜(사정거리 13㎞)및 130㎜(사정거리 21㎞) 해안포를 배치해 놓고 있다. 또 북한 등산곶의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사정거리 95㎞)과 샘릿 함대함, 개량형인 KN-01, KN-02 미사일도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북한 4군단이 보유한 122㎜ 방사포 등도 가세하게 된다. 우리측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군의 레이더나 유도장치가 표적을 혼돈해 다른 곳을 향하도록 유인하는 ‘기만전술’로 우선 맞선다는 액션 플랜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 함께 항공전력이 즉각 투입된다.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SLAM-ER)과 공대지미사일(AGM-84), 공대공 중거리미사일(AIM-120C), 합동직격탄(JDAM) 등을 장착한 F-15K와 공대지미사일(AGM) 등으로 무장한 KF-16이 북한의 미사일 기지와 장사정포 갱도에 대한 정밀폭격에 나서야 한다. 대구와 오산의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서해 도서의 장거리 대공레이더에서는 북한 전역에서 뜨고 내리는 모든 항공기를 정밀 추적하는 한편 북한 전투기의 공격 즉시 NLL 남쪽 상공에서 대기하던 F-15K 전투기가 공대공미사일로 격추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마련돼 있다. ▲ 발진하고 있는 F-15K우리 해군은 백령도 해안과 첨단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3200t급 한국형 구축함(DDH-Ⅰ)과 1500t급 호위함(FF)에 장착한 사정거리 130㎞의 하푼미사일과 76·126㎜ 함포 등으로 북한 유도탄정과 해안포 기지를 맹타하게 된다. 연평도와 백령도의 해병대 K-9 자주포도 불을 뿜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면전 양상을 보이면서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 대한 북한군의 실크웜 미사일의 공격까지 감행되고 일본 요코스카항에서 이지스함이 서해로 급파될 것이다. 이지스 순양함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로 북한 해주와 옹진반도 등에 흩어져 있는 북한의 실크웜 미사일기지를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 작전해역으로 향해 항해중인 광개토대왕함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북은 황해도 남쪽에 배치한 기지에서 인천 상공의 항공기까지 공격할 수 있는 SA5 지대공 미사일(사정거리 250㎞)을 날릴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보복조치로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한 240㎜ 방사포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위협한다면 합참은 가용 전력을 총동원해 서부전선 전역에서 대(對)포병작전을 실행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전개되면 전군에 내려지는 방어준비태세인 가운데 가장 높은 데프콘Ⅰ이나 Ⅱ가 내려지면서 작전권이 한·미 연합사로 넘어가고 계엄령 선포와 함께 사실상 전시체제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면전이 시작되면 북한군은 시간당 50만발의 포격을 감행하면서 서울을 고립시키는 한편 평양과 원산선 이남 지역의 10여개 군단과 60여개 사단 및 여단 병력이 전면공격에 나설 것이다. 북이 이같은 국지전 확전을 피하는 대신 다른 보복 수단을 강구한다면 테러 행위 등 비정규군 쪽의 보복 공격도 예상되고 세균 살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북 교류차원에서 당시 북한 지역에 체류중이던 대한민국 국민은 인질로 억류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압도적인 화력을 통한 초기제압을 강조하지만 북한군이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자멸적 공세에 나설 경우 우리 군도 ‘상처뿐인 영광’을 각오해야 한다.
  • 北주민, 남쪽도 계엄령 선포하면 이렇게 단속 심하냐?
  • [노컷뉴스 제공] 북한의 노동당대표자회가 당초 예상과 달리 늦어지는 가운데 당국이 주민들의 단속을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함경북도 연사군의 소식통은 11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북한은 지방당대표자회가 열리던 지난달 25일부터 완전히 계엄상태에 들어갔고 인민보안부와 국가보위부, 인민무력부 통제인력과 수단들이 총동원됐다"고 말했다.이 소식통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단속이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남조선(한국)에서도 군사훈련을 하거나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데 이렇게 심하게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민보안부 산하 순찰대, 기동타격대, 노동자규찰대와 청년동맹 불량청소년그루빠(그룹), 인민무력부 경무국 등 통제기관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다 인민보위대가 없는 작은 공장, 기업소들은 직원들 5~7명을 항시적으로 대기시켜 놓고 있다"고 전했다. 또 "각 인민반별로 인민반 경비초소를 보강하고 경비인원을 기존의 2명에서 4명으로 늘렸으며, 해당지역 담당 보안원과 보위원들이 수시로 경비실태를 조사하고 있어 밤이면 공동위생실(공동화장살)출입까지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국경지역 도시는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까지 잠복근무조를 조직해 대낮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짐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전했다. 혜산시에 거주하는 소식통도 "이러한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면서 "주민들의 이동을 금지돼 협동농장마다 가을걷이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강도의 경우 겨울이 길기 때문에 빠르면 9월 5일, 보통 9월 9일이면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 동원해 감자캐기를 시작했으나 올해에는 '당대표자회가 끝나면 가을걷이를 시작한다'는 윗선의 지시가 있어 농업부분 간부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전화를 한번 하려면 멀리 마을을 벗어나야 하는데 보안원들이 '삑삑이(금속탐지기)'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을 모두 검열을 하기 때문에 도무지 빠져나가기 어렵다"면서 "검열이 풀릴 때까진 전화를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소식통도 "온갖 위협과 협잡까지 해가면서 사람들 단속하느라 날뛰고 있다"면서 130조 상무가 시도 때도 없이 들이 닥쳐 금속탐지기를 앞세워 집안 곳곳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고 전했다.올해 초에 조직된 130상무는 텔레비전 통로(채널), 불법라디오와 휴대폰, DVD, 컴퓨터, MP3, 오락기구를 비롯한 외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을 검열하는 기구로 노동당, 보위부, 보안부, 간부들과 체신성 기술자들로 구성돼 있다.
  • 조현오 후보자 비하 발언 `법적` 책임 있나?
  • [노컷뉴스 제공]`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보유와 천안함 유가족 비하발언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해 야권이 법적 대응을 묻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향후 민형사상 적용법률과 양형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조 후보자를 허위사실 유포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구속수사해야 한다"면서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형법 308조는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에서도 사망한 자에 대한 인격권의 침해가 있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구제절차를 유족이 대행하게 하고 사망 후 30년까지 보호기간을 설정해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엄히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노무현 재단측이 조 후보자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함께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혀 손해배상 규모 등에도 관심이 쏠린다.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 얼마인가 보다는 승소 여부가 중요한 것 아니겠냐"며 "(조 후보자의 발언이) 재산피해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이므로 유족들이 소정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할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국가공무원법 63조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조 후보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17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이 자리에서 '공무원 품위 손상' 공방이 거세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공무원법 33조 역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사람을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어 조 후보자 입장에서는 야권의 공세가 이래저래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편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망자 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모씨가 2006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서울1945'의 KBS 제작진을 상대로 한 것이다. 관련 소송은 1, 2심에서 "(드라마는) 사실보다 허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이 여운형 암살지시를 내렸다는 내용도 명확하지 않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으며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같은 인물인 이모씨가 앞서 지난 1999년 '4.3계엄령은 불법이었다'는 내용의 기획기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제주일보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역시 대법원까지 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 후보자의 발언은 드라마라는 특수성도 감안되지 않을 뿐더러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형법상 '위법성 조각사유'에도 해당되지 않아 소송이 이어질 경우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다.
30주년 5.18 `광주`를 알린 영화들
  • 30주년 5.18 `광주`를 알린 영화들
  • ▲ 5.18을 다룬 '꽃잎','박하사탕','스카우트','화려한 휴가'(사진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로 30주년이 됐다. 지난 1980년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이 신군부의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당시 보안사 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데일리SPN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화들을 짚어봤다. 신군부독재가 이어지던 1980년대 5.18은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금기 단어였다. 그러나 지난 1992년 문민정부의 탄생과 함께 5.18의 명예가 회복되고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 1996년 장선우 감독 '꽃잎' 영화계에서는 5.18을 상업영화 테두리 안에서 처음 다룬 작품으로 1996년 4월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꼽는다.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잎 꽃잎이 지고'를 원작으로 한 '꽃잎'은 어린 소녀를 통해 5.18 피해자들의 상처를 되돌아본 작품이었다. 문성근 외에 당시 신인이었던 설경구, 추상미 등이 출연했다. 특히 이 영화로 열다섯의 나이로 데뷔한 이정현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쫓기다 총에 맞아 숨진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 소녀로 분했다. 이정현은 기차 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자해하는 장면에서 실제로 유리창을 깰 정도로 광기가 어린 연기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꽃잎'이 개봉될 당시에는 5.18주범에 대한 반란 및 내란죄가 확정되기 전이었던 때라 영화 개봉 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당시 ‘꽃잎’ 제작에 참여했던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개봉이 될지 불안할 정도로 여러 보이지 않는 압력들이 많았다”며 “ 하지만 감독을 비롯해 촬영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5.18을 소재로 첫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사명감에 임했다”고 밝혔다. ◇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꽃잎’ 이후 다시 영화계가 5.18을 소재로 관객들에게 선보인 작품은 2000년 1월1일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설경구의 ’나 돌아갈래‘라는 명장면으로 시작한 ’박하사탕‘은 순수했던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군시절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민간인을 죽인 뒤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창동 감독은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로 데뷔 한 이후 2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박하사탕’을 완성했다. ‘박하사탕’은 영화계 전문가들로부터 2000년 한국영화가 거둔 가장 큰 수확 중 한 편으로 평가받았다. 작품성과 함께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 2007년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와 김현식 감독의 '스카우트' ‘박하사탕’ 다음으로 5.18을 다룬 영화는 2007년 7월 개봉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다. ‘화려한 휴가’는 5.18 당시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들의 작전명으로 1980년 5월의 광주의 참상을 정면에서 응시한 작품이다. ‘꽃잎’과 ‘박하사탕’이 5.18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영화였다면 ‘화려한 휴가’는 5.18 당시 광주 시내와 도청 앞에서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사진=CJ엔터테인먼트)김상경이 평범한 택시기사에서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군 민우로 분했고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박철민, 나문희 등이 출연했다. 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광주시 인근 상무지구에 도청을 재현한 세트를 지어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영화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은 “대구에서 자랐지만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며 “불의에 맞섰던 시민군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당시 ‘화려한 휴가’는 730만 관객을 모아 2007년 한국 극장가 흥행 톱3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화려한 휴가’ 외에 같은해 11월 개봉한 김현식 감독의 ‘스카우트’ 또한 5.18을 소재로 한 영화로 꼽힌다. 스카우트는 1980년 5월, 광주가 낳은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실제 있었던 대학 스카우트들의 비사를 표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스카우트’의 속살은 5.18로 비롯된 주인공들의 어긋남으로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려고 광주에 내려갔던 호창(임창정 분)은 그곳에서 반독재운동을 하는 대학후배 세영(엄지원 분)을 만났고 결국 5.18의 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5.18을 녹여낸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카우트’로 김현식 감독은 200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임창정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들 네 편의 영화 외에 1988년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와 1993년 제작된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가 상업영화에 앞서 5.18을 다룬 독립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2010.05.18 I 김용운 기자
  • 태국 군-시위대 충돌 격화..최소 24명 사망
  •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태국 정부 군경과 반정부 시위자들의 충돌이 지속되면서 사망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1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태국 군이 시위 지역에 대한 봉쇄에 나선 후 최소 24명이 사망하고 187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가운데는 프랑스 TV방송 기자도 포함됐다.충돌 지역에서는 거대한 폭발음과 총성이 난무하고 있으며 고층빌딩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이에 대해 아시핏 총리는 충돌 후 처음으로 출연한 TV 연설에서 "우리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희생자들을 막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시위를 끝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시위대도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나타우드 사이쿠아르 시위대 지도자는 "방콕 시내가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있다"며 "군대를 철수해야만 우리도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태국 당국은 18년만에 최악의 폭력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시위 지역의 수도와 식료품 공급을 중단을 모색하고 있다. 또 방콕 시내에 대한 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학교의 폐쇄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외신들이 전한 사진에서는 방콕 시내 거리에는 희생자들의 시체가 일부 놓여있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으며 태국 정부는 어떤 폭력 행위에도 발포할 수 있는 사격 지역 2곳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0.05.16 I 양미영 기자
  •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카친스키 대통령은 누구?
  • [조선일보 제공]10일(한국시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레흐 카친스키(61) 폴란드 대통령은 반(反)공산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현재 총리 직을 맡고 있는 야로슬라브 카친스키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일란성 쌍둥이 형이다. 쌍둥이 형제가 한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를 맡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1949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카친스키는 한때 아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바르샤바 대학에서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카친스키는 1970년대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공산주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0년부터 폴란드 자유노조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1981년 12월 공산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자 반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구금되기도 했다.1989년 폴란드 자유노조가 합법화되자 카친스키는 레흐 바웬사의 핵심 참모로 활동했다. 바웬사는 자유노조의 지도자이자 훗날 민주혁명을 성공시킨 뒤 대통령에 취임한 인물이다. 카친스키는 1989년 6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90년 12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이 되자 핵심 고문으로 활동했다. 1996년 법무장관에 임명됐고, 2000∼2001년 예지 부제크 총리 정부에서 다시 법무장관을 지냈다. 카친스키는 2001년 쌍둥이 형과 함께 PiS(Law and Justice:법과정의)를 창당하고 초대 당수를 지냈다. 2002년 바르샤바 시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 10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 5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사망 당시 대통령 임기만료를 불과 8개월 남겨두고 있었다.
 파리아스 감독 "중동행? 그저 황당할 뿐"
  • [클럽월드컵] 파리아스 감독 "중동행? 그저 황당할 뿐"
  • ▲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감독[아부다비 = 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아무런 사실 확인도 없이 내 거취와 관련한 보도가 나온 것이 황당하기 그지 없다. 나는 포항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감독이 자신의 중동 클럽 이적설이 제기된 것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사실 무근임을 명확히 밝혔다. 현재 FIFA클럽월드컵 참가차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머물고 있는 파리아스 감독은 14일 구단 관계자를 통해 "중동팀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무엇이든 기사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축구 관련 모 해외 사이트는 '파리아스 포항 감독이 사우디 클럽 알 아흘리 제다와 감독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며, 조만간 이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 사이트는 '파리아스 감독이 70만 달러의 연봉을 수령할 예정이며, 알 아흘리는 포항에 4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줄 것'이라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파리아스 감독은 타 클럽의 이적 제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간 4~5개 클럽으로부터 지휘봉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그는 "하지만 해당 구단들의 제의에 대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여 이적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며 불쾌한 감정도 내비쳤다. "클럽월드컵이 끝나면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갈 생각"이라 밝힌 파리아스 감독은 "브라질에 머무는 기간 동안 포항스틸러스 이외의 어떤 팀도 나에게 연락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거취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김태만 포항스틸러스 사장 또한 "(파리아스 감독의 갑작스런 이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리아스 감독이 유명세를 타다보니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모양"이라 언급한 김 사장은 "그동안 확인한 감독의 인품을 생각해보더라도 이런 방식의 이적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아마 파리아스 감독이 팀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면 내게 제일 먼저 이야기했을 것"이라며 신뢰관계를 재차 강조한 뒤 "확인 조차 필요 없는 내용"이라며 더 이상 마음쓰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해외 언론의 보도로 인해 갑작스럽게 불거진 파리아스 감독의 이적설 논란은 당사자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서 '짧은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관련기사 ◀☞[클럽월드컵] 포항, 4강전 '필승 비책' 찾았다☞[클럽월드컵] 파리아스, 포항 선수단에 '계엄령' 선포☞[클럽월드컵] '돌아온 영웅' 이기형의 해피송
2009.12.14 I 송지훈 기자
 파리아스, 포항 선수단에 ''계엄령'' 선포
  • [클럽월드컵] 파리아스, 포항 선수단에 ''계엄령'' 선포
  • ▲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감독[아부다비 = 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감독이 남미클럽대항전 챔피언 에스투디안테스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선수단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군기잡기에 나섰다. 파리아스 감독은 오는 16일 새벽1시(이하 한국시각) 모하메드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에스투디안테스와의 FIFA클럽월드컵 4강전에 대비해 선수단에 개별 행동을 가급적 자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숙소인 알 라하 비치 호텔을 벗어나는 것을 비롯,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적극적인 통제에 나설 뜻도 밝혔다. 평소 선수들의 자율 행동을 배려해 온 파리아스 감독이 갑작스럽게 강경책을 구사한 건 강철군단이 마젬베(콩고)와의 첫 경기 승리에 만족해 나태해질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1차 목표로 정한 '4강 진출'의 꿈을 이룬 상황에서 선수들이 에스투디안테스와의 맞대결을 '친선경기'쯤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파리아스 감독의 생각이다. 여기에는 FC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을 성사시킨다는 기본 목표 이외에 브라질 출신 사령탑으로서 아르헨티나 클럽에 패할 수 없다는 감독 스스로의 각오 또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파리아스 감독은 마젬베전 직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남아메리카 출신 감독으로서 아르헨티나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아르헨티나 클럽(에스투디안테스를 지칭)은 한국 클럽(포항)을 우습게 봐선 안 될 것"이라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파리아스 감독은 당초 13일로 정해둔 선수단 전체 회식을 뒤로 미뤘다. 뿐만 아니라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불구, 훈련도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등 승리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한 구단 관계자는 "파리아스 감독이 근래 들어 이례적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아르헨티나 클럽(에스투디안테스)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강호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선수단을 강하게 압박하며 '최상의 팀 컨디션 만들기'에 나선 파리아스 감독의 노력은 '결승 진출'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해답은 16일 새벽에 공개된다.
2009.12.14 I 송지훈 기자
(김前대통령서거)인동초 인생..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삶
  • (김前대통령서거)인동초 인생..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삶
  • [이데일리 이숙현기자] `인동초`. 김대중에 대한, 말하자면 비유라기보다 묘사다. 그는 한 때 (혹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빨갱이`였다. 71년 신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될 당시부터 심지어 1997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이 진부한 색깔론은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살아나 그와 그 주변을 괴롭혔다. 사고를 가장한 암살 위협, 납치와 가택연금, 망명, 사형선고 그리고 4번의 대선 도전 끝 대통령 당선과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그는 `인간 김대중`일 수 없었다. 세상사 모든 것이 정치라지만 그는 유독 `정치인 김대중`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에게 질투와 질시는 천형과 같은 법. 그가 짊어졌던 삶이 본인의 온전한 선택이었는지, 보이지 않는 운명의 강요였는지 눈 감아 버린 그만이 알 것이다. 그의 삶은 곧 영욕이자, 자체로 소설이었다.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에서 3차례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모두 실패였다. 4수 끝에 196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5·16쿠데타로 당선 이틀 만에 의원선서도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45세이던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40대 기수론`을 앞세우며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향토예비군 폐지, 노동자·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국 안전보장안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거공약을 내걸고 박정희 후보와 맞섰다. 김대중은 과감한 공약과 호소력 있는 연설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박정희에 95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쿠테타 세력에 의한 온갖 부정선거 의혹 속에서도 김대중은 46%를 득표, 박정희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사건`은 곧 김대중 수난사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72년 유신이 선포되자 김대중은 일본으로 망명한다. 73년 8월에는 그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택 연금. 이제 투옥, 살해 위협, 연금과 감시는 그의 일상사가 된 듯 했다. ▲ `김대중 내란음모죄` 재판 장면1980년 초 `서울의 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듬 해(1980년) 2월 사면복권된 김대중은 이 시기에 김영삼·김종필 등과 함께 정치활동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1979년 12·12사태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이때 김대중은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또 다시 체포, 수감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기를 감옥에서 보낸 그는 9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현지 교포들과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문화인·정치인들이 대거 그의 구명운동을 벌이자 군사정권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이어 1982년 12월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전격적으로 귀국한 그는 김영삼과 함께 급조한 신한민주당을 통해 당시 어용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자 군사정권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수용 등을 담은 `6·29선언`을 내놓았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이끌어냈지만 그것을 내용적으로 실현할 민주화 세력의 통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김대중은 1987년 12월로 예정된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야당의 분열 속에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는 예견된 일이었다. 동시에 민주화세력에게 적전 분열은 재앙을 의미했다. 대통령선거에 패한 후 야당분열에 대한 국민적 비난, 평화민주당 총재직 사퇴, 제13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 그리고 1990년 `3당 합당`. 그의 정치인생 놓인 시련과 굴곡은 끝이 없어 보였다. ▲ 1985년 미국서 귀국 당시 모습그는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또 다시 출마한다. 그리고 패배. 이후 전격 정계은퇴 선언을 했으나 곧 95년 정치활동을 재개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다.  마침내 1997년 12월. 그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4번째 도전 끝에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순간이자, 71년 대선 첫 도전 이후 26년만에 이룬 꿈이었다. 생전에 노무현은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완전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든 그 기본적인 전제를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2009년 8월18일. 그는 떠났다.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86년 인생을 쉼없이 살다갔다. 김대중의 죽음은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 통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2009년 5월 29일, 후배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아이처럼 울던, 그리고 또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의 빈 자리를 이제 누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좋든 싫든 그처럼 역사를 몸으로 웅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이제 쉽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현실적 패배 속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한 `인간`을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죽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치욕과 고통도 있었고 수많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고,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2003년 2월 24일, 대통령 퇴임사)
2009.08.18 I 이숙현 기자
  • "징계, 연행, 압수수색... 교사 양심 못 막는다"
  • [오마이뉴스 제공] 19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2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이번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사들은 모두 2만8645명. 교육과학기술부의 징계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난 1차(1만7000여명)보다 1만여명 많은 교사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따로 집계를 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비조합원 교사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전교조는 다음날인 기관지 <교육희망>을 통해 20일 2차 시국선언 참여 교사명단을 발표한다. 이날 전교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징계와 고발, 연행, 압수수색, 소환조사는 때론 우리를 두렵게 했다, 그러나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정부의 탄압도 교사들의 양심과 실천의지를 막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선언은 갈등도 충돌도 힘겨루기도 아니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교육정책의 재검토를 바라는 교사들의 실천의지이자 절박한 요구"라고 설명했다.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우리 교사들은 힘이 없어서 끌려가고 맞고 갇히지만 그래도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교사의 양심은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지난 7일간 이어온 단식농성을 마무리했다.전교조는 이번 2차 시국선언으로 사태가 한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향후 대응방안은 다음주 중 결정할 예정이다. 일단 8월 중 각 시도교육청의 징계에 맞춰 전국 지부별로 항의 행동을 펼칠 계획이다.한편, 반국가교육 척결국민연합 등 보수단체도 같은 시간 전교조 기자회견장 바로 옆에서 '시국선언 교사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맞불을 놓았다.이들은 전교조를 "종북집단" "촛불시위를 선동하고 불법 폭력투쟁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단체로 의법처리해야 할 사악한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합법적인 이명박정부를 독재정부로 매도하면서 북한 김일성부자의 세습독재를 민주국가로 가르쳤다"고 주장하기고 했다. 또한 1차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사회혼란을 야기시켜 좌익혁명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국민 혈세로 북한 혁명전사를 기르는 전교조를 하루빨리 교단에서 퇴출하는 길이 교육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라면서 시국선언자 전원 파면과 전교조 교사 퇴출을 정부에 요구했다.경찰은 두 기자회견장 사이에 50여명의 전경들을 배치해 충돌을 막았다. 서울광장에 있던 시민들이 보수단체를 향해 "집에 가라" "저거 불법집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 (VOD)위구르 유혈 사태‥156명 사망
  • [이데일리 김수미기자] 중국 위구르 지역 우루무치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해 최소 156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위구르족과 한족의 난투극에서 촉발돼 분리 독립 요구로 확산했는데 유혈사태 후 계엄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건물은 불에타고 시민들의 부상도 잇따라, 거리는 마치 전쟁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도로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오릅니다. 전복된 자동차는 완전히 까맣게 타 뼈대만 남았습니다. 수십채의 집과 상점들도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에서 중국 공안과 위구르 족 시위대와의 충돌로 인한 대규모 유혈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6여명이 숨졌고 800여명이 다쳤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리 홍/위구르 주민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저에게로 다가와서 다짜고짜 저를 공격했어요. 뭐라고 말할 틈도 없었어요. (인터뷰) 후안 정자오/위구르 주민 아무 것도 묻지도 않아요. 한족이 지나가면 무조건 공격해요. 버스가 지나가고 있을 때도 무조건 버스를 공격했어요. 이번 시위는 지난달 광둥성 완구공장에서 발생한 위구르족과 한족 근로자들 간 집단 난투극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면서 촉발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위구르족 차별에 항의하는 분리 독립 요구 시위로 확산됐습니다. 현재 우루무치 시내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탭니다. 인터넷과 국제전화 이용도 사실상 모두 끊겼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은 계속해서 물대포와 장갑차까지 동원해 강경 진압을 펼치고 있어 유혈 사태는 더욱 확대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1949년 중국에 합병되고 난 이후 분리 독립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직전에도 수십 명이 숨졌습니다. 월드 리포틉니다.
2009.07.07 I 김수미 기자
  • 고시 강행에 성난 민심..촛불 다시 타오를까
  • [이데일리 김보리기자]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장관고시를 강행하면서 시민들은 물론 정치권과&nbsp;시민단체의 반발이 뜨거워지고 있다. 6.10 집회를 정점으로 차츰 잦아들던 촛불민심에 고시강행이&nbsp;다시 기름을&nbsp;부을 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이날 도심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고돼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nbsp;이명박 대통령의 국가정체성 도전하는 시위에 대한 강경 발언 또한 촛불시위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 야권과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권이 배후를 들먹이면서 공안정국 조성을 시도하고 있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대통령이 강경 진압발언을 시사한 가운데 이날 촛불집회는 경찰과 시민과의 충돌도 예상된다. &nbsp;정부의 장관고시 강행 방침이 알려진뒤 일부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기 위해&nbsp;경복궁역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30여명이 연행되고, 경찰과 마찰을 빚는 등 성난 민심이 벌써부터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시민과 경찰의 마찰이 격화돼 경찰이&nbsp;강경진압에 나설 경우 성난 촛불민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강경대응을 낳는 악순환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野3당, 다시 한 목소리로 고시 결사 반대 야권은 고시 강행으로 비판의 칼날을 다시 세웠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25일 논평을 통해 "내용도 형편없는 합의를 해놓고 고시 관보게재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이후에 (합의문을) 교환하기로 했다는 것은 굴욕외교의 최절정"이라고 비판했다. 차 대변인은 이어 "서명도 되지 않은 휴지조각을 들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최후통첩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꼬집었다. 차 대변인은 "민심에 역행하는 장관 고시를 위한 모든 일정은 즉각 중단돼 한다"며 "비상한 각오로 고시 강행 저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한미쇠고기재협상대책특별위원장은 "추가협상의 문제점과 잘못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국민건강을 위험에 빠트리는 협상을 바로잡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를 강행하면 국가로서의 책무를 포기하고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위원장은 "이대로는 국민안전을 지켜낼 수 없고 검역주권을 행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정부가 장관고시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며 장관고시 강행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장관고시 강행을 계엄령 발동에 비유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정부의 고시 관보게재 의뢰는 국민의 의사를 억누르기 위해 사실상의 계엄령을 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뼈저린 반성의 결과가 일방적인 관보 게재냐"며 반문한 뒤, "관보게재를 초비상 사태로 규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 광우병 대책회의 `국민을 향한 전쟁선포` 광우병국민대책회의도 이날 오후 2시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대표자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고시강행은 `국민을 향한 전쟁선포`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대책회의는 "정부가 설명하는 추가협상 결과를 100% 믿는다 해도 그것은 소나기를 피해갈 시간을 벌기 위한 땜질식 임시방편"이라며 "정부는 추가협상 과정을 솔직히 공개하고, 국민적 토론에 성실히 임하라"고 밝혔다. 광우병 대책회의가 기자회견 후 청와대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시작하자 오후 3시부터는 정부의 고시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 수백 명과 함께 연좌시위를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 30여명을&nbsp;연행했다. 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3시 경복궁역 인근에서 규탄 집회를 가진 뒤 7시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서 ‘고시강행저지 총력집중 촛불대행진’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에앞서 당정은 이날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를 26일 관보에 게재키로 했다. 정운천 농식품부장관은 이날 행정안전부에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의 관보 게재를 요청한 상태다.
2008.06.25 I 김보리 기자
  • 베이징올림픽, 티베트 유혈사태로 흔들
  • [프레시안 제공]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은 과연 무사히 개최될 수 있을까. 중국산 불량식품 파동, 대기오염, 인권탄압이라는 3대 악재로 올림픽 개최국 자격이 있느냐는 시비에 시달리던 중국 정부에 이번에는 20년만의 최대 시위사태로 번진 티베트 사태가 불거졌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2기 공식출범 전날 시작된 이번 시위는 곧바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티베트인들의 동시다발적인 시위로 확산됐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일제히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서 중국 정부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국제사회 "억류한 승려들 석방하라"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티베트 여행에 대해 미 국무부가 주의령을 발동한 15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티베트 폭력 사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중국정부는 티베트 시위 대처에 자제심을 발휘하고, 억류한 승려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스위스 외교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에 과도한 무력 사용 중지,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의 존중 등을 촉구한 뒤,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구금된 시위자들을 대우하고 평화적 시위자들은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위스 외교부는 티베트의 인권 상황 개선과 아울러 티베트 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평화로운 해결은 티베트 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5일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5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재선출된 후 주석과 국가부주석에 선출돼 차기주자로 확실한 자리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티베트 사태의 원만한 해결은 당면한 정치력 시험대가 되고 있다.&nbsp;티베트 독립시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 중국 정부가 티베트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국제사회에 명실상부한 세계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nbsp;중국 당국은 경기 과열 극복과 민생문제 등 경제적 문제 외에도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소수 민족들은 올림픽 개최를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4일 티베트(西藏) 라싸에서 시작된 분리독립 요구시위는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앞, 스위스 취리히, 인도 뉴델리, 호주 시드니 등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 북부 다름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15일 성명을 통해 라싸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시신이 확인된 사망자만 30명이며, 사망 추정자만 100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 수는 16명이다. 이에 따라 이번 시위는 지난 89년 16명이 숨진 라싸 폭동 때와 비교해도 20년만의 최대 시위로 평가되고 있다. 라싸에서 쓰촨성 청두(成都)로 대피한 외국인들은 라싸에 당시 10여 대의 탱크가 출동했고 수백명의 병력이 거리를 봉쇄했으며 상가가 모두 철시하는 한편 관광객에 외출금지령이 내려져 사실상 계엄령 상태라고 증언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신도 거의 완전히 제한을 받고 있으며 티베트 내 많은 지역의 통신이 불통되고 있다고 망명정부는 밝혔다. 또한 간쑤(甘肅)성 간난(甘南) 티베트족 자치주에서도 15일 승려 등 수백명이 항의 시위를 벌여 경찰 당국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했다. 중국 서북부 간쑤성 샤허에서도 승려들이 이끈 수천명의 시위대가 시청을 향해 행진하면서 경찰과 대치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인 라싸와 인근 많은 지역에서 일반인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있으며, 텅빈 거리에는 탱크 등으로 무장한 경찰관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고 망명정부는 전했다.&nbsp;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는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40~50명의 시위대가 "티베트는 정의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중국은 티베트인을 그만 죽이라"고 촉구했다. 이들 가운데 6명은 경찰의 시위중단 요구에 불응한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스위스 거주 티베트인들을 비롯한 100여 명의 시민들은 취리히에서 평화시위를 벌였다. 호주에서는 시드니 주재 중국 총영사관 밖에서 티베트 독립 시위를 벌이던 이들 가운데 5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네팔 카트만두에서도 승려 수십 명을 포함한 1000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승려 12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촛불시위를 벌이다 네팔 주재 중국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고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과 충돌한 것이다. 아울러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단체 '티베트인의 친구'는 대만이 중국에 대해 티베트 탄압을 중단하도록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 단체 관계자는 "현지 티베트인이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총과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이 시위를 진압하고 사원을 장악했다'면서 티베트에 대한 박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고 호소해 왔다"고 전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올림픽 보이콧 거부" 티베트 유혈사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되면서 일각에서 베이징 올림픽 개최 반대 요구로까지 번지자,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은 15일 "올림픽 보이콧은 오히려 순수한 운동선수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IOC는 일관되게 올림픽 보이콧 요구를 거부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게 위원장은 유혈사태가 이어지거나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 과정에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경우 IOC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티베트의 분리독립 요구는 이미 50년이 넘게 지속된 문제다. 중국은 1951년 군대를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합병했으며, 티베트는 1959년 독립을 위한 봉기가 실패하면서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해야 했다. 이후 중국은 1986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에 따라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도한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티베트의 '역사지우기'에 나섰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전신에 해당한다. 중국은 서남공정을 통해 티베트가 원래부터 중국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티베트는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나라와 청나라 시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티베트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킨 이후 이민정책으로 티베트내에서 한(漢)족의 반경을 넓혔고 칭짱철도 개통 이후에는 한족의 유입이 빠르게 늘면서 중국으로 흡수되는 속도에 가속이 붙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티베트 인들은 지난 2월 21일 칭하이(靑海) 성에서 수천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티베트식으로 새해 첫날이어서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티베트 민족은 550여 만 명에 달하며, 티베트로 불리는 시짱(西藏) 자치구 외에도 칭하이·간쑤·윈난(雲南)성 등에 퍼져 있다. 이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14세는 59년 인도로 망명해 해외에서 티베트 독립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 "고립된 티베트, 최대 100명 사망"‥지구촌, 항의시위 확산
  • [노컷뉴스 제공] "지금 티베트는 고립된 상태며 최대 100명까지 숨졌다"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최근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발생한 시위사태와 관련해 확인된 사망자가 30명이며 최대 1백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15일 밝혔다.외부 세계와의 통신 제한받아 망명정부는 또 라싸 지역은 사실상 계엄 상태이며 티베트 사원들은 무장 군인들에게 완전히 봉쇄됐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신도 제한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베트를 빠져나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무장한 군인과 탱크가 라싸 시내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고 상점은 문을 닫고 시민들은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티베트 독립요구 시위는 간쑤성과 칭하이 성까지 확대되고 있다.간쑤성에 있는 장족자치주에서는 티베트 불교 승려 수백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해산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17일 자정까지 불법시위자들이 자수하지 않을 경우,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할 것이며 시위자를 숨겨주거나 도피를 도와주는 사람까지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실탄으로 진압 vs 사용한 적 없어"중국 정부는 사망자와 관련해 불법시위대의 방화와 폭력으로 무고한 시민 10명이 숨졌다고 밝혔지만 진압과정에서 실탄을 사용한 적은 없다며 유혈진압 보도를 부인했다.이런 가운데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와 각국의 중국 대사관 앞에는 티베트의 유혈사태에 항의하는시위가 잇따랐다.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확산되면서 베이징 올림픽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한편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시작된 티베트 독립 요구 시위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스위스, 인도 뉴델리, 호주 시드니 등 지구촌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티베트의 분리독립 요구 시위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혈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15일 취리히에서 스위스 거주 티베트인들을 비롯한 1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지구촌 곳곳에서 무력진압 항의시위, 美정부, '자국민 여행 자제령'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날 항의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등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으나, 일부 참석자들은 취리히 소재 중국 총영사관에 돌을 던지거나 진입을 시도해 스위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이를 제지 했다.인도 수도 뉴델리에서도 수십 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대사관 접근을 시도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또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는 1천여 명의 티베트인들이 모여 중국 국기를 불태우고 '자유 티베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호주에서도 시드니 주재 중국 총영사관 밖에서 티베트 독립 시위가 잇따랐고 이들 가운데 5명이 현장에서 체포됐고, 타이완 타이베이에 있는 인권단체 '티베트인의 친구'는 대만이 티베트 탄압을 중단하도록 중국에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미국 정부는 15일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자국민 여행객들에 대해 안전주의 경고령을 내렸다.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은 이날 티베트 지역과 중국 서부지역 일원을 여행하는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안전경고령을 내리고 여행 자제를 당부했다.
암살당한 부토 전 총리는 누구인가
  • 암살당한 부토 전 총리는 누구인가
  • [뉴욕=이데일리 김기성특파원] 27일 총선 유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파키스탄 전 총리는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세계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중 한명으로 평가받아 왔다. 지난 1953년 파키스탄의 남부 항구도시인 카라치에서 태어난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의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한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의 딸이다. 그의 아버지도 지난 1979년 군사구테타로 실각한 뒤 처형당한데 이어 그 마저 테러로 사망함에 따라 비운의 가족사를 안게 됐다. 그의&nbsp;정치 인생은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한 뒤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가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의 군사쿠데타로 실각하고 처형당하자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이끌며 반정부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에게 닥쳐온 것은 옥고,&nbsp;가택연금,&nbsp;망명 등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는 1981년 하크 정권에 의해 체포돼 3년간 옥고 등을 치룬 뒤&nbsp;영국으로 돌아가 망명 생활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PPP를 원격 조정하면서 계엄령 철폐 등 반정부운동을 주도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지난 1986년. 하크 정권이 계엄령을 철폐하자 그해&nbsp;망명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으며, 198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하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명하자 그해 선거를 통해 35세의 나이로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nbsp;자신이 주도하던 정부가 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이듬해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마는 수모를&nbsp;겪었다.&nbsp; 그는 1993년 다시 총리에 취임하기도 했으나 또다시 불거져 나온 부패 스캔들로 3년만에 중도 하차하고 1999년&nbsp;망명길에 다시 올랐다. 특히 그는 망명생활중에도 부패 혐의로 인터폴의 적색수배 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nbsp;&nbsp;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올 하반기&nbsp;대법원장 해임 이후 거센 퇴진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권력분점 협상을 제시하면서 부터였다. 하지만&nbsp;지난 10월 8년만에&nbsp;고국땅을 밟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환호 뿐만은 아니었다. 테러 위협이&nbsp;그를 줄곧 따라다녔다.&nbsp;그의 친미성향 때문에&nbsp;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표적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는 귀국 직후&nbsp;고향인 카라치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140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nbsp; 그는 또 국가비상상태를 선포한 무샤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대신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와 연대의사를 천명함으로써&nbsp;적대세력을 더욱 키우는&nbsp;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귀국 3개월만에 자살폭탄 공격을 받아&nbsp;숨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됐다.
2007.12.28 I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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