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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2005년 수원에서 폐지를 수집하던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발견한 고서적이 이듬해 TV의 문화재 검증프로그램에 나왔다. 감정위원들은 깜짝 놀랐다. 문헌에는 남아 있지만 실체를 보지 못했던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이었기 때문이다. 감정가 1억원을 매겼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해 보물 제1683-2호로 지정했다.
이후 개인수집가에게 갔던 ‘하피첩’이 지난달 서울옥션의 고서적 경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파산한 저축은행이 갖고 있던 18점의 보물 고서적 중 한 점이었다. 추정가가 가장 높았던 고서적은 보물 제745-3호인 ‘월인석보’ 9권과 10권으로 3억 5000만원에서 경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고서적은 바로 ‘하피첩’이었다. 낙찰가는 7억 5000만원. ‘하피첩’의 새로운 주인은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개관 이후 가장 비싼 가격에 사온 문화재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3일 박물관 영상채널 스튜디오에서 ‘하피첩’을 언론에 공개하고 소장 과정과 보존처리 방향 및 향후 전시계획을 밝혔다. ‘하피첩’은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귀양온 지 10년가량 흐른 1810년께 본가인 남양주군 마현에서 부인 홍씨가 보내준 다섯 폭의 비단치맛감에 학연과 하유, 두 아들을 위해 쓴 편지를 모아 재단해 책자처럼 만든 서첩이다.
고려대박물관이 소장한 정약용의 ‘매조도’에 의하면 ‘하피첩’은 본래 네 첩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사라지고 세 첩만 전한다. 정약용은 부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비단치맛감과 한지 등에 아버지로서 두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인생의 교훈을 정성으로 적어내렸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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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서와 초서 외에도 조선후기 쓰는 이가 드물었던 전서로도 적었다. 세 첩 가운데 한 첩의 표지는 박쥐와 구름 문양으로 장식한 푸른종이며 나머지 두 첩은 미색종이로 만들었다. 세 첩 모두 표지 안쪽에 붉은 면지를 사용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저산소보관소에서 살충처리를 한 뒤 직물의 염료를 규명할 방침이다. 복원과정에선 원본과 가장 유사한 종이와 전통 접착제인 소맥전분풀을 쓰고 오동나무상자를 만들어 보관하면서 이르면 내년 2월에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이문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정약용은 많은 서책을 남겼지만 간찰 외에 본인의 필체가 남아 있는 건 전해진 게 드문 만큼 ‘하피첩’의 가치는 크다”며 “특히 정약용이 남긴 전서는 ‘하피첩’ 외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학예연구관은 “특히 부인이 평소 몸에 지닌 것을 가지고 서첩을 만들었기에 민속박물관이 추구하는 생활문화의 계승이란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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