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국가주도 에너지정책 필패…‘자발적 감축’ 패러다임 짜야”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인터뷰
기후대응 국가주도는 21세기 트렌드와 역방향
큰 그림 그릴 거버넌스 체계 변화 필요
에너지정책 정치화해선 안돼…탈원전 국내현실 미반영
  • 등록 2022-01-27 오후 6:00:00

    수정 2022-01-27 오후 9:32:32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정태용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한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탈원전 정책으로 정치화됐고, 국가주도의 일방적 발표로 국민의식과 괴리되는 등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에너지·환경 분야의 대표적 친시장주의자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1세기의 메가 트렌드는 4D(디지털·탈탄소화·탈중앙집중화·인구구성변화)로, 이런 흐름에 맞춰 기후위기 대응의 효과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30년 이상 기후변화라는 한 우물을 판 경제학자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기구에서 잔뼈가 굵었고 국내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을 지냈다. 21권의 저서와 40건의 연구보고서, 380건 이상의 연구논문과 발표자료를 펴냈다.

정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에너지정책의 초점은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 발전의 효율적 활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큰 대응 과제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의 변화, 시민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후위기 대응전략과 관련, “얼마를 줄이라고 강제하는 방식의 교토의정서는 실패로 끝났다.자발적 감축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파리협약식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며 국가주도 방식의 탄소중립정책에 회의론을 펼쳤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은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낮은 전환비용으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이라며 “국민들이 체감하는 탄소중립정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환경부가 최근 발표한 K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유럽연합(EU) 30여개 국가가 집단지성을 통해 원자력을 넣을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반해 우리는 한 부처가 정한다. 그러면서 원자력을 빼고 액화천연가스(LNG)를 넣는 정말 잘못된 결정을 내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LNG는 화석연료다. 녹색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탈원전 정책을 정치적 공약으로 내걸면서 원전이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탈원전정책을 결정할지 우려되는 지점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원자력 활용방안은

-국제적 변화, 국내 사정에 따라 고려해야할 사안이다. 탈원전 정책의 대표적인 나라인 독일과 비교하는데,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지리적으로 신재생 잠재력이 많다. 또 독일이 탈원전이 가능한 건 프랑스 때문이다. 유럽의 전기시장은 모두 연계돼있다. 프랑스는 원자력이 주력이며, 유럽은 전력을 사고파는게 가능하다. 유럽 전력시장을 보면 프랑스가 거의 전력수출 1위를 차지한다. 프랑스의 원자력이 없으면 독일이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전력면에서 섬에 가까운 한국이 원전 없이 탄소중립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근본 문제로 놓고 따져봐야 한다.

△한국형 에너지믹스는 어떻게 가는게 옳은가

-그 누구도 기술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앞으로 당장 5~10년 안에 재생에너지가 훨씬 싸질 것인지, 원자력 핵폐기물 위험이 낮은 차세대 원전들이 더 빨리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기술을 한방향으로 정해놓고 예단하는 건 말이 안된다. 물론 청사진을 제시하는건 좋지만 현실을 감안해야한다. 한국의 에너지 상황을 보면 수입이 95%를 차지한다. 요소수 사태처럼 석유, 석탄, 천연가스를 다 수입에 의존하는데 에너지 안보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대응할지 우려된다. 에너지 밀도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땅이 제한적인 한국이 에너지 밀도가 낮은 태양광과 풍력을 늘린다는 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2030년 NDC 40%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쓴 건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전략을 발표한 이후에도 온실가스를 꾸준히 늘려 말과 행동이 배치됐기 때문이다. NDC 목표를 얼마에서 얼마로 올린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인정해주는 게 아니다. 줄여나가는 걸 실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보면 지금은 정권말이다. 국제사회에서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으려면 다음 정부가 계획을 세워나가도록 여력을 남겨 주는게 바람직하다.

△우리사회가 막대한 전환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수용성과 관계가 있다. 기후대응은 효용 최대화보다는 비용 최소화로 가야한다. 그러려면 우리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기후대응은 결국 국민이 해야될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 가치소비가 기업을 바꾸고 있다. 소비행태를 바꾸는 것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전기차를 타면 환경친화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보다 좋은 건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다. 우리나라 환경교육이 거의 전무하다. 시민에 대한 환경교육이 필요한데 정부는 관심이 없다.

△기후위기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는

-우리나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위원회가 있고, 그 위원회는 집행력이 없는 자문기구에 그친다. 이런 거버넌스 시스템은 달라진 상황이나 기술적 변화를 반영하기 쉽지 않다. 탄소중립이든 디지털 전환이든 코로나 대응이든 여러 당면 과제나 문제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한개 부처가 주도할게 아니라 관련 부처들이 융합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부처간 중첩된 문제를 교통정리를 해주는 곳이 없다. 이 때문에 큰 덩어리로 묶어서 의사결정시스템을 만드는 거버넌스의 변화는 꼭 필요하다. 각 지자체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 바텀업 방식의 참여형 기후변화 대응방식이 시민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

정태용 교수는

△1962년생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미국 뉴저지주립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일본 지구환경전략연구기관 기후정책연구부장 △세계은행 선임 에너지 이코노미스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부소장 △아시아개발은행 주임 기후변화 전문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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