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에 모태펀드 예산까지 감축…“이러다 다 죽어”

VC·스타트업 모두 갈수록 펀딩 난이도 高高
모태펀드 예산까지 줄자, 도미노 붕괴 우려
“진검승부 속 1등만 산다…승자독식 심화”
  • 등록 2022-09-06 오후 8:45:06

    수정 2022-09-06 오후 9:54:07

[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로 벤처투자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내년도 한국모태펀드 예산 규모까지 줄면서 벤처투자업계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중후기 단계 스타트업들은 물론 벤처캐피털(VC)까지 펀드레이징에 줄줄이 실패하는 마당에, 그나마 마중물 역할을 했던 모태펀드까지 출자 규모를 줄이면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가 더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내년 모태펀드 예산 40% 줄여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을 대규모 삭감하면서 VC업계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기부는 최근 2023년 예산안 규모가 올해보다 24.7% 줄어든 13조 5619억원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자금이 아닌 민간 주도 아래 벤처투자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모태펀드 출자 예산을 올해보다 40% 줄어든 3135억원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VC업계는 모태펀드 예산 감축으로 인해 벤처투자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가 쪼그라들면서 벤처투자 생태계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미 모태펀드를 앵커 LP로 확보했지만 민간 매칭 LP를 찾지 못해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VC들이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올해 1차 모태펀드 출자사업 선정 GP 중 다수가 펀드 결성에 실패하자 한국벤처투자는 9월 3일까지인 결성시한을 연장해줬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모태펀드 출자 규모까지 줄면 모험자본을 향한 투자심리가 더 위축돼 트랙레코드 및 LP와의 네트워크가 약한 중소형 VC 위주로 신규 펀드 결성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 통상 VC가 신규 펀드 결성에 실패하면 생존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관리보수는 안 들어오는데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 등 고정비는 나가니 재정악화로 이어지고, 심사역들도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우려가 커지자 이영 중기부 장관은 추경으로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VC업계 기대감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 차원의 기조가 시장주의, 민간 주도 성장이란 점에서 큰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펀딩 어려움에 “시리즈B 라운드는 없다”

문제는 VC들의 어려움이 스타트업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VC 투자가 줄면 스타트업계 전반에 흘러가는 자금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VC가 지갑을 닫으면서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매물로 나온 중후기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올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갈수록 펀드 결성에 실패한 VC들을 비롯해 체력 약한 스타트업들 위주로 연쇄 도산이 일어날 수 있는 관측이 많다.

국내 한 VC 대표는 “모태펀드 자금은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모태펀드를 앵커 LP로 확보한 것 자체가 민간 LP 모집 시 일종의 공신력을 인정받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출자받기 더욱 수월해지기 때문”이라며 “모태펀드 규모가 줄면 자연스럽게 민간 매칭 LP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자금의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기간 도산하는 스타트업이 허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분간 시리즈B 라운드는 없을 거란 말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은 시리즈B 라운드에서 평균 밸류 500억원에 200억원 규모 투자유치를 시도한다. 잘 성사되려면 한 하우스에서 30억~50억원씩 투자해야 하는데, 이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스타트업 하나둘씩 나자빠지면 자본금 탄탄한 대기업들이 이들을 저가에 ‘줍줍’할 수 있는 만큼, 마지막에 웃는 승자는 대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타트업 대상으로 자주 강의하는 국내 한 투자사 대표는 “기존엔 IR 컨설팅이나 멘토링 커리큘럼은 결론적으로 시리즈B에 어떻게 빨리 도달하느냐가 핵심이었는데 요즘엔 시리즈B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손익분기점(BEP)에 빠르게 근접하는 방법과 대기업 등 더 큰 자본에 흡수되는 스몰 M&A가 주요 주제”라고 전했다. 이어 “금리 인상으로 성장주 주가가 급락했다”며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받는 만큼 성장주에 속하는데, 성장주가 박살이 난 이상 시리즈B와 그 이후 단계 투자 라운드가 쉽게 진행되겠느냐”고 덧붙였다.

“저금리 시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승자”

물론 현재 벤처투자업계 들이닥친 유동성 위기는 금리 인상에 따른 것으로, 모태펀드 예산 감축과 무관하다는 의견도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금융권에서는 대출 비즈니스만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만큼 자연스레 위험자산에 대한 출자 규모를 줄이기 때문에 모태펀드 예산이 아무리 늘어나도 민간 매칭 LP를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다른 VC 대표는 “결국은 금리가 내려갈 때까지 버티는 게 승자”라면서 “벤처버블 속에서 우리나라에 VC들이 너무 많이 생겨났다. 이젠 1등과 역량 있는 하우스들 위주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봤다. 이어 “실력을 인정받아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VC와 스타트업만 살아남는, 1등만 더 강해지는 승자독식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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