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허가 업체가 20년 간 동물 혈액치료제 독점 공급…당국은 '뒷짐'

시장지배적사업자, 공혈견 혈액으로 만든 동물의약품 허가 없이 판매
농식품부 "법 위반 사항은 수사 기관이 나서야"
동물 의약품 전문가 "사람 혈액처럼 ‘동물혈액원’ 만들어 관리해야"
업체 "전혈 제외한 나머지 제제는 생산 중단"
  • 등록 2023-01-02 오후 5:40:42

    수정 2023-01-03 오전 5:34:36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전국 동물병원에서 수술·치료 등에 쓰는 동물 혈액과 그 혈액에 기반한 치료제가 허가를 받지 않은 한 민간업체에서 20여 년 간 독점 공급돼 온 것으로 밝혀져 1500만 반려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당 업체는 본지가 취재를 시작하자 뒤늦게 시정 조치에 나섰지만,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검역 당국 역시 이 같은 무허가 영업이 장기간 계속된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이 약사법상 제조업 허가를 받지 않고 전국 동물병원에 판매해왔던 특수 A·B 고항혈장과 Sears’ Plasma 제품의 모습(사진=모 동물병원 제공)
당국 허가 없이 20여 년 간 영업…약사법 위반 고발돼

2일 검역 당국 등에 따르면 국내 개·고양이 혈액 90%를 공급하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치료용’으로 전혈(혈액 전체 성분), 농축적혈구(혈장·혈소판 제거), 혈장, 특수혈장, 면역제제를 판매해 오면서 약사법 제31조 1항에 따라 필히 획득해야 하는 ‘제조업 허가’를 받지 않고 지난 2002년부터 영업을 해 왔다.

약사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의약품 제조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기준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약사법 제31조를 위반할 경우 제9장 제93조 벌칙 조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현재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속초 경찰서와 대구 경찰서에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된 상태다. 대구·속초 경찰서 측은 “수사 진행 중이므로 구체적 상황에 대해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이 판매하는 전혈·농축적혈구는 △많은 출혈이 야기되는 수술 △면역 매개성 용혈성 빈혈(IMHA) 등과 같이 수혈을 요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쓰인다. 혈장은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 등 감염성 질환 △강아지 췌장염 등에 투여된다. 이에 더해 한국동물혈액은행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혈장 특수 A·B 고항혈장과 시어스 플라스마(Sears’ Plasma·면역제제)를 자체 제조해 전국 동물병원에 판매해 왔다. 특수 A·B 혈장은 각각 홍역견 치료제, 시어스 플라스마는 홍역조기치료제 및 반려동물 감염성 장염에 쓰인다.

검역본부 “불법은 수사기관이 조사”…취재 후 감독 시작

농림축산식품부 검역본부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이 판매하는 동물 혈액, 혈장, 특수혈장 등이 약사법상 동물용 의약품에 해당한다고 밝혔지만, 그간 법에 따른 실질적 관리는 이행하지 않았다.

농림부 검역본부는 본지의 질의에 서면 답변을 통해 “생물체에서 유래한 물질, 생물체를 이용해서 생성시킨 물질, 그 유사 합성에 의한 물질을 함유한 동물용 의약품을 ‘생물학적 제제’로 정의하고 있다. 혈장 및 농축 적혈구 등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약사법 제2조와 제85조에 따라 동물 질병을 진단·치료·경감·처치·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는 제품으로 판매할 경우 동물용 의약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역본부는 그간 관리·감독이 전무했던 데 대해 ‘한국동물혈액은행이 당국에 제조업 신고를 하지 않아 감독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동물용의약품 제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약사법’ 및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 규칙’ 법령에 따른 적합한 시설·기구를 갖춰 검역본부에 제조업 및 품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제형별로 제조·품질 관리 기준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후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혈액 및 치료제 등은 유효 성분의 조성, 사용 대상, 동물, 투여 경로, 제형 등이 변경되므로 ‘자료 제출 의약품’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검역본부 관계자는 “법 위반 사항은 검역본부가 조사하는 게 아니라 수사 기관에 의뢰해야 한다. 검역본부는 허가를 내준 업체를 점검만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동물 의약품 전문가는 “건강한 강아지에게서 혈액을 받고, 뽑은 혈액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을 검사해 안전한 혈액을 동물병원에 공급해야 하는데 관련 제도는 전무한 상황”이라며 “일선 동물병원에선 여러 사유로 혈액이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당국이 혈액원처럼 동물 혈액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 혈액의 경우 혈액관리법에 따라 전혈, 농축적혈구, 신선동결혈장, 농축혈소판 등을 의약품으로 규정해 관리하고 있다.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는 “(헌혈에 주로 참여하는) 협회 대형견 주인들은 채혈 목적으로 길러지는 공혈견의 열악한 사육 환경을 잘 알기 때문에 혈액 안정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협회는 반려동물이 수혈 받을 일이 생겼을 때 공혈견 혈액을 지양하기 위해 헌혈견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동물혈액은행 측은 “12월 27일 검역본부·농림축산식품부와의 협의를 거쳐 전혈만 생산하고 있다”며 “나머지 생물학적 제제는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생산 재개 여부는) 검역본부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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