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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병역의무 대상인 남성은 국가배상액을 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취업 가능 기간’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같은 사건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피해를 본 경우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적은 배상금을 받았다.
일례로, 9살인 여학생과 남학생이 한 사고에서 동시에 사망한 경우 남학생의 일실수익은 4억8651만원으로 여학생 5억1334만원보다 2682만원 적다. 남학생 취업 가능 기간에서 군 복무예정기간인 18개월을 빼면서 발생하는 차이다.
이러한 산정방식은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을 초래하고, 병역의무 없는 사람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결과가 돼 헌법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다.
법무부는 위헌 근거로 헌법 제11조 1항과 제39조 2항을 제시했다. 이들 조항은 각각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존 산정방식이 왜 불합리한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상을 받아야 할 일이지 벌 받을 일이 아니다”며 “국가가 병역의무자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중배상금지 원칙’ 개정…전사·순직한 군경 유족도 위자료 청구 길 열린다
아울러 법무부는 전사·순직한 군경 유족의 위자료 청구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 법은 ‘이중배상금지 원칙’에 따라 군경 전사·순직 시 유족의 국가배상청구를 불허하고 있다.
하지만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전사·순직군경의 권리와는 별개로 이를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다. 특히 현행 국가유공자법과 보훈보상자법은 보상금 산정에 유족의 ‘정신적 고통 위자료’를 고려하지 않아 법령상 보상과 별개로 위자료 청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장관은 “헌법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이중배상금지 조항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위자료 청구의 근거를 마련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 희생된 군경 유족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법조계 전문가들도 법무부의 이번 조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애초 이중배상금지 원칙은 우리나라가 가난한 시절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한데다 사고 자체도 줄었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충분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고 재정적 영향도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전문가는 국가배상액 산정방식 개정안에 대해 “어느 한 쪽의 권리를 박탈해 다른 한 쪽에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다”며 “병역의무 이행으로 누구도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 조항으로도 근거와 정당성은 갖춰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