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수능을 앞두고 ‘지금 놀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을 지겹게 들었는데요. 노는 것도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공부도 나중에, 사랑도 나중에, 건강 지키는 것마저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대체 무엇 때문에 청소년을 과열된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 입시경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인 18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입시경쟁 반대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
|
약 51만명의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지를 받아든 18일 전국 300여명의 청소년들이 입시경쟁의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14개 청소년단체는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2021 입시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을 통해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한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매년 수능 날이면 이뤄진 청소년 단체의 입시 거부 선언은 올해로 11번째다. 올해는 청소년 324명을 비롯해 총 1012명의 시민이 함께 입시 경쟁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두 번째 코로나 수능’을 맞은 이날 ‘입시경쟁 폐지하라’ 손팻말을 들고 도심 한복판에 선 수십여명의 청소년들은 “경쟁이 아닌 연대, 공정이 아닌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시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이든’에서 활동 중인 이헌규 백신고등학교 학생은 “오늘 집에 돌아가서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하지만, 허황된 외침이 아닌 반드시 이뤄져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입시에서 낙오되어 죽고 싶지 않아서 이 자리에 서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입시경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인 18일 오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입시경쟁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소현 기자) |
|
본인을 직업계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라고 소개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래빗(활동명)은 “저는 수능을 보지 않지만, 수능과 입시에 이상할 만큼 목을 매는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입시경쟁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며 “특성화고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서 죽어 돌아올 때마다, 취업에서 고졸보다 대졸이 우선시될 때마다, 고졸 사원이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 대우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대학을 나와야한다고 하는데 대학이 언제부터 사람 목숨이고 취업기관이었나”고 반문했다.
아울러 이들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인격적인 경쟁에 쓴소리를 냈다. 단체는 “대학과 국제중·자사고 등 일부 특권학교는 학생들을 일률적 기준으로 줄 세워 선발하고, 학생들은 내신·봉사활동 등 입시 기준에 맞추려 학교생활을 저당 잡히고 있다”며 “오늘날 교육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억압적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입시경쟁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계급을 재생산하는 수단에 가깝다”며 “‘입시경쟁이 계층 사다리’라는 말은 잘못된 교육이 지속해서 만들어온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입시경쟁은 청소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한국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이나 복통,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다”며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파괴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은 청소년기에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렸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교육을 받는 목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며 △학교의 학생 선발 권한 박탈 △고교·대학 서열 폐지 △대학 등록금 전면 무상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