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전염병에도 맞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 등록 2021-01-18 오전 6:00:00

    수정 2021-01-18 오전 6:00:00

국가민속문화재 제16호 방상시 가면. 겨울에 전염병 등 나쁜 기운을 상징하는 역귀를 쫓아내는 군례인 계동대나의에서는 눈이 넷 달린 방상시 가면을 썼다.(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조선시대에는 추운 겨울이 되면 눈이 넷 달린 방상시 가면을 쓰고 전염병을 비롯한 나쁜 기운인 역귀를 쫓아내는 의식인 계동대나의를 종종 거행했다. 의식을 행하기 하루 전날 12~16세의 아이를 뽑아 역귀를 쫓는 아이로 삼고, 가면을 씌우고 붉은 바지저고리를 입혔다. 집사는 붉은 수건을 두르고 소매가 달라붙는 홑옷을 입었고, 채찍을 잡은 사람은 방상시가 돼 가면을 썼다. 방상시 가면을 쓴 사람을 중심으로 이들은 궁궐에서 사대문 밖까지 역귀를 쫓았다.

계동대나의는 얼핏 보면 전염병·역귀를 쫓기 위한 세시풍속 중 하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계동대나의는 왕실에서 행했던 다섯가지 의례 중 하나인 ‘군례’였다.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연구관은 “보통 군사의례하면 당연히 군사적인 것만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외부의 침입뿐 아니라 역병 등으로도 나라가 멸망할 수 있었다”며 “전쟁만큼 무서운 게 역병, 추위였다”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올해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통해서 조선 시대 왕실 5가지 의례 중 하나였던 군례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군사의례를 종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지난달 23일 문을 열 예정이었던 특별전은 코로나19로 박물관이 문을 열지 못하면서 현재는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군례 때 입었던 복장부터 군례를 기록한 문서, 깃발 등 다양한 유물을 엿볼 수 있다. 임 연구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도 보여주고 또 코로나19가 물러나라는 염원도 담았다”고 전했다.

프랑스 국립파리언어학원에서 발견된 ‘동장대시열도’(사진=국립고궁박물관)
군례는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대내적인 질서 유지와 왕권의 강성함을 과시하기 위한 의례였다. 5년 전 프랑스 국립파리언어학원에서 발견된 ‘한글본 정리의궤’가 속에 있는 ‘동장대시열도’가 대표적으로 군례를 잘 묘사했다. ‘동장대시열도’는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 화성에서 군사들의 훈련을 시찰하는 모습을 그렸다. 신하들에 둘러싸인 임금의 자리와 격구를 하는 군사 무리 등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고, 한글로 설명이 붙어 있다. 갑옷과 투구, 군복을 착용하고 각종 무기와 형형색색의 깃발, 의장물을 든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왕의 모습은 왕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음을 백성과 신하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켰다.

군례는 그 종류도 다양했다. 왕이 군사들과 함께 사냥하는 강무의,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선로포의·헌괵의, 왕과 신하가 함께 활을 쏘는 대사의, 나라의 빛을 구하는 구일식의, 나라의 나쁜 기운을 쫓는 계동대나의 등이다. 특히 계동대나의, 구일식의는 다른 군례와 달리 군대가 거의 참여하지도, 무기를 쓰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오히려 왕은 소복 차림을 하기도 했다. 즉, 군례는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는 전염병, 역귀부터 일식·월식, 한겨울의 추위까지 모든 위험으로부터의 안정을 의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천담복. 나라의 빛을 구하는 군사의례인 구일식의 때 왕과 신하들은 천담복을 입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계동대나의는 국가에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어도 종종 치러진 의례다. 임 연구관은 “계동대나의는 한겨울 창궐하는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해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던 행사”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년 겨울 했던 건지, 그 빈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임 연구관은 “군사의례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던 만큼 매년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식·월식에도 군례를 했다. 과거 일식·월식은 나라에 우환이 생길 징조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과 신하들은 당일 수양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소복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기도하는 구일식의를 거행했다. 이후 영조대에 이르러서는 왕과 신화 모두 엷은 옥색의 제복인 천담복을 입었다. 임 연구관은 “이런 구일식의는 일식의 나쁜 기운에 맞서 싸운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실제 태조실록에는 1405년(태조 15) 5월 1일 일식이 일어나자 임금이 소복차림으로 인정전의 월대에 나가 일관(길일을 가리는 일을 맡은 관상감)에게 북을 쳐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는 구일식의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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