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선물을 주고받지 못한다고 해도 명절은 명절이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면서 추석이 선뜻 다가온 것이다. 하늘은 점차 푸르러지고 있으며 들판에서는 수확의 물결이 출렁인다. 봄, 여름에 걸쳐 햇볕과 비바람이 맺어준 자연의 풍성함에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때다. “둥근 달 아래서 송편을 빚으며 정을 나누고 소망을 비는 추석”이라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서도 명절이 지닌 푸근한 정서가 느껴진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명절의 감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추석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으므로 그 분위기를 느끼기에 이르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 주변의 모습은 심드렁하기조차 하다. 저마다 살아가기에 바쁜 탓이다. 과거 어느 시절이라고 바쁘지 않은 때가 없었으련만 요즘은 특히 더한 것 같다. 지난해 추석 무렵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올해 초의 설 명절과도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그런데도 특권층에서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위장전입과 재산증여, 이중국적 정도는 흔하다고 한다. 부모 잘 만난 덕분에 일찍부터 남다른 스펙을 쌓아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무시험으로 질주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드러났다. 연달아 낙제를 하고도 격려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권력층을 중심으로 자기들끼리 은밀히 이뤄지는 일이라고 하니, ‘흙수저’들로서는 편안한 명절을 맞기에는 이미 심사가 뒤틀린 마당이다.
사회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기에 굳게 믿었던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흠집은 없으려니 했다. 하지만 일가족이 동원되다시피 불법·편법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입바른 얘기를 하던 사람들조차 이에 대해서는 뻥끗하지 않거나 두둔하는 투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민망하다.
당장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해서 마음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할 것은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 밑바탕이 돼야 한다.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만큼은 확인돼야 할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정말로 이런 분위기가 이뤄진다면 선물꾸러미를 받지 못한다 해도 푸근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환하게 비춰주는 보름달이 가르치는 한가위 명절의 교훈이다. <논설실장>